본문듣기

흑사병과 싸운 이탈리아 소도시의 기록

[서평] 코로나19 시대에 눈에 띄는 책 '크리스토파노와 흑사병'

등록 2020.04.02 17:02수정 2020.04.02 17:40
0
원고료로 응원
코로나19로 온 세계가 어려움을 겪는 요즘이다. 처음에는 아시아를 위주로 퍼졌지만, 곧 유럽에서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오면서 피해가 크게 증가했다. 질병 그 자체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어려움도 큰 문제지만,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는 상황이다.

전염병으로 인한 피해는 국가와 도시에 크나큰 타격을 준다. 때문에 국가는 이를 막기 위해 철저하게 노력하기 마련이다. 한국에서도 의료진과 공무원분들이 불철주야 코로나19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맞서 싸우고 있다.


과거에도, 세계를 뒤흔든 전염병을 막기 위해 맞서 싸운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 책은 그들의 이야기다.
 

크리스토파노와흑사병 ⓒ 카를로M치폴라

 
<크리스토파노와 흑사병>은 미국 버클리대학교 교수를 지낸 경제사학자이자 고문서학자인 카를로 M. 치폴라 교수가 쓴 책이다. 그는 프라토 국립기록물 보존소에 있는 역사기록물을 바탕으로, 프라토라는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가 흑사병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흑사병은 역사를 바꾼 질병 중 하나로 꼽히는 병이다. 흑사병으로 인해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봉건제와 경제 체제 자체가 흔들렸고, 역사가 바뀌는 기점이 되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그런 흑사병이 1629년, 이탈리아의 '프라토'라는 도시를 덮쳤다. 당시 프라토의 인구는 1만 7천명 정도였다고 한다. 프라토는 과거의 베네치아나 제노바같은 강력한 이탈리아 도시 국가가 아니라, 피렌체 대공국의 영향력 하에 있는 도시였다.

프라토 사람들은 피렌체 대공국에 의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프라토에는 의사가 7명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
 
프라토에는 두 명의 외상치료 의사와 두 명의 개업전문의가 있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한 명은 전문의 자격증을 획득하였을 뿐 의료 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이발과 간단한 외과치료를 병행하는 두 명의 외과의사와 개인적으로 전문적인 의료행위를 하는 다른 한 명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모두 7명의 의사가 17,000명의 주민을 상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32P
 
결국, 프라토 사람들에게 제시된 유일한 선택지는 스스로 흑사병에 대처하는 것뿐이었다. 이들은 시민 크리스토파노 디 줄리오를 보건 위원으로 임명, 흑사병에 맞서 보건 행정을 펼치도록 했다.

책의 주인공 크리스토파노는 경리 출신으로, 의학을 배워서 의사가 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행정 업무를 지휘하고 재정을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책에 따르면, 보건위원은 매력적인 직업이 전혀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보건위원의 일은 굉장히 고된 일이었다. 업무량도 많은 데다가 정치적 알력 다툼에서 자유롭지도 않았고 정부도 전폭적인 지원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월급도 시신 매장인과 비슷했다. 크리스토파노는 굉장히 꼼꼼하고 계산적인 사람이었지만,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 보건위원을 맡았다.

프라토 시는 나름의 대처에 착수했다. 프라토 관리들은 환자를 격리시키고, 죽은 사람이 머물던 방을 소독했다. 전염에 노출된 집들은 병이 다른 곳에 전염되지 않도록 22일간 폐쇄했다. 사망한 발병자의 가족은 집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고, 사망인의 물품도 다른 곳에 격리했다.

가족에게는 창문을 통해 생필품을 공급했고, 사망인의 가족에게 필요한 적정량의 생활비도 측정했다. 크리스토파노는 보건 행정 문서를 매우 꼼꼼하게 정리했다. 흑사병 환자의 수, 회복자의 수,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폐쇄하고 개방한 주택의 숫자, 재정 지출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해 책임을 다했다.

책에 따르면, 프라토의 보건 행정이 마냥 잘 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오늘날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처럼, 요양 병원은 어디에 설치해야 할지, 이를 위해 재정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두고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거나 갈등하는 사태도 일어났다. 속칭 '빽'을 써서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지 않으려고 버티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당시 과학기술로는 흑사병을 완벽하게 막아내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다. 페스트균은 19세기 말에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라토 관리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격리를 시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많은 희생자를 남기고 흑사병이 프라토 시를 떠나갔다.

이 책은 짧은 책이다. 크리스토파노의 기록은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 대충 읽다보면 크리스토파노의 노력이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록과 통계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당시 프라토 시민들이 흑사병에 대처하기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다. 현장에서 업무를 맡은 이들은 엄청나게 높은 치사율을 알았을 터인데도 꿋꿋이 보건 업무를 맡다가 사망했다.

저자는 이탈리아 소도시의 보건에 대해 기록했지만, 프라토 사람들이 보여주는 혼란, 갈등, 한정된 재정을 사용해야 하는 위원의 고뇌는 보편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짧지만 깊은 책이다.

크리스토파노와 흑사병 - 갈릴레오 시대, 공중위생의 역사에 관한 연구

카를로 M. 치폴라 (지은이), 김정하 (옮긴이),
정한책방, 2017


#크리스토파노 #보건 #흑사병 #이탈리아 #역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화해주실 일 있으신경우에 쪽지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