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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 의사들이 '아침 먹지 말라' 권유한 이유

[서평] '아침식사의 문화사 Breakfast'

등록 2020.04.03 10:03수정 2020.04.0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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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친구에게 놀라운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대학생으로, 방학동안 잠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야간 시간대를 맡고 있었기에 그날도 평소와 같이 긴 밤을 지새웠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기 직전의 아침에 손님이 들어왔다.

손님으로 들어온 아저씨들은 간단한 식사와 소주를 구매했다. 그리고 아침식사로 구매한 것을 모두 먹고 떠났다고 한다. 친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아침에 커피를 마시거나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경우는 있어도, 술을 마시고 출근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퍽 놀랐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책을 읽고 역사적으로 아침에 술을 마시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과거 유럽에서는 아침에 술을 마시는 일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지금과는 너무 다른 아침식사 문화
 

아침식사의문화사 ⓒ 헤더안트앤더슨

 

<아침식사의 문화사 Breakfast>는 미국의 음식 전문 저술가인 헤더 안트 앤더슨이 쓴 책이다. 그는 요리에 관심이 많아 가정 요리에 대한 요리책을 저술한 바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각국의 아침식사 역사에 대해 분석하고, 어떤 음식이 아침식사의 재료로 쓰였는지 상세하게 설명한다. 나아가서 아침식사가 사회 풍조에 맞게 변화하는 과정을 다채롭게 묘사한다.

저자에 의하면, 중세 유럽에서 아침식사는 바람직하지 못한 나쁜 행동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오늘날과 비교하면 신기한 일이다. 중세의 사람들은 사회 지도층이 먹는 일에 엄청난 시간을 허비한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가톨릭교회도 아침식사에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또한 과식과 과음 등 육체와 관련된 모든 쾌락이 억압되었던 중세 시대에 금식은 꼭 필요한 덕목이었다. 중세의 도덕론자들은 가벼운 점심과 그보다 조금 더 충실한 저녁, 이렇게 두 끼면 하루 식사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따라서 가톨릭교회 입장에서 볼 때 아침식사는 천박하고 상스러운 것이었다. - 본문에서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아침식사가 금지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노인이나 병자처럼 한낮의 식사를 기다리기 어려운 사람들, 육체노동을 해야 할 사람들, 집을 떠난 여행자들에겐 아침식사가 허락되었다.

여기에 의사들도 아침식사의 반대 세력이었다. 책에 따르면, 150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의 의사들이 건강한 성인에게 아침을 먹지 말 것을 권했다고 말한다. 당대 의사들은 전날 식사한 것이 완전히 소화되기 전에 또 식사를 하면 순수한 것이 순수하지 않은 것과 뒤섞여 불결해진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아침식사를 먹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아침식사로는 주로 곡물로 된 음식을 먹는 것이 보편적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먹었던 음식으로 죽을 꼽는다. 죽은 비교적 저렴하고 만들기도 쉬운데다가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어서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야곱이 렌틸콩 죽 한 그릇을 얻어먹는 대신 동생 야곱에게 장자의 권리를 넘기는 장면이 나온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버터를 넣은 소운이라는 귀리죽을, 케냐에서는 음료로 마실 수 있을 만큼 묽게 만든 우지라는 발효 죽을 마셨다고 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아침식사를 먹을 때 술도 함께 즐겼다고 한다. 과거에는 수질이 안 좋았기 때문에 도수가 높은 음료가 가장 안전한 음료였다. 카페인 음료가 보편적인 오늘날의 직장인들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에일을, 작가 새뮤얼 존슨은 위스키를 즐겼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아침에 술을 마시는 풍조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동료가 아침을 먹기 전에 맥주 한 잔, 아침을 먹으면서 한 잔, 아침과 점심 사이에 한 잔을 마신다며 불평했다고 한다. 하지만 농부들도 아침식사 때 에일 맥주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니, 아침에 마시는 술맛이 꿀맛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씨리얼이 아침식사 메뉴로 떠오른 까닭

반면 과일은 아침식사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술은 가깝고 과일은 멀었던 것이다. 아침식사가 보다 확실한 문화로 정착된 17세기 후반에도 과일과 채소는 고기와 달걀보다는 덜 중요한 재료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아침식사에 과일이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라고 하니, TV 광고나 매체에서 보이는 아침식사 풍경은 짧은 역사를 가진 셈이다.

근대 이후에는 아침식사가 기업의 소비 촉진을 위한 광고와 결합했다. 대표적인 상품이 바로 시리얼이다. 오늘날에도 유명한 켈로그 사와 포스트 사는 서로 경쟁하면서 아침식사의 판도를 뒤흔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어린이들이 먹을 수 있는 시리얼 제품을 만들어서 내놓았다. 시리얼 회사들은 시리얼 제품을 구매하면 어린이들도 간편하게 아침식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낮잠을 자고 있어도 아이는 스스로 아침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메뉴를 선택하고, 식사를 만들고, 먹는 과정에 부모의 손이 필요 없다. 아이가 스스로 자립심을 키우는 것이 좋은 교육임을 홍보한 것이다. 이런 홍보 전략은 많은 사람들에게 먹혀들었고, 오늘날에도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저자는 아침식사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계속 바뀌어왔음을 지적하고, 아침식사가 시대의 변화에 맞춰서 그 모습과 재료를 달리 해왔다는 사실을 재밌게 풀어낸다.

중세 사람들의 인식 변화, 자본주의의 발달, 산업 사회의 등장과 차량 운전자의 증가 등 현실 변화에 맞추어 아침식사도 변화해왔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역사의 변화에 발맞춘 식문화의 발달 과정을 따라가게 된다.

아침식사를 먹을 것인지, 먹지 않을 것인지의 선택은 개인의 자율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에는 아침식사를 안 먹는 것을 인생의 규칙으로 삼고, 전혀 먹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야심한 밤에 이 책을 읽으며 세계 각국의 아침식사 사진을 보니, 내일 아침은 꼭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식사의 문화사 Breakfast

헤더 안트 앤더슨 (지은이), 이상원 (옮긴이),
니케북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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