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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4.15총선290화

투표하는데 성별이 왜 궁금하죠?

"선거인명부 성별표시, 인권침해이자 차별" 성소수자 단체, 인권위에 긴급구제 신청

등록 2020.03.31 15:21수정 2020.03.3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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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선거인명부 성별표시에 대한 국가인권위 긴급구제 기자회견'에 참여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들. ⓒ 성소수자차별받대 무지개행동

제21대 국회의원총선거를 앞두고 '성별 정보가 표시된 선거인명부가 인권침해 및 차별'이라는 취지의 진정과 긴급구제신청이 제기되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하 '무지개행동')은 31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82명의 진정인을 대리하여 선거인명부에서 성별표시 삭제를 구하는 진정 및 긴급구제를 신청한다'고 밝혔다. 피진정인은 국회의장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각 시·군·구의 장이다.

선거인명부는 선거인의 범위를 공증 또는 확정하기 위해 작성되는 문서로, 공직선거법 제37조는 선거권자의 성명, 주소, 성별 및 생년월일 기타 필요한 사항을 기재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공직선거법 시행규칙의 선거인명부 양식 정중앙에는 법적 성별을 기재하는 칸을 두고 있다.

무지개행동은 성별 정보가 표시된 선거인명부가 인권침해 및 차별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무지개행동 박한희 집행위원은 "성별은 개인의 인격을 나타내는 중요한 정보로서 헌법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보호되는 정보이므로 국가기관을 포함한 누구도 정당한 이유 없이 성별을 수집, 이용, 기록해서는 안 된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인명부는 정당한 필요성 없이 선거인의 성별을 기록, 표시하고 있는 바, 이는 명백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침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한희 집행위원은 "또한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인터섹스 등 이분법적 성별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투표에 있어 차별을 받는 문제가 있다"며 "여성 또는 남성으로만 지정할 수 있는 법적 성별 표기의 한계, 법원이 요구하는 엄격한 법적 성별정정 요건을 고려할 때, 법적 성별과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성별이 불일치하는 경우 투표 과정에서 정체성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노출되어 혐오와 차별을 당할 우려가 있고, 결국에는 투표를 포기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연구용역을 통해 실시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실태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응답자 중 66.7%가 주민등록번호를 드러내는 일에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했으며, 2017년 트랜스젠더 27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제19대 대통령선거에 불참한 트랜스젠더 응답자 중 33.3%가 '신분증 문제로 불참했다'고 응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하여 임푸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활동가는 "트랜스젠더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차별은 일상에서의 끊임없는 본인 인증 요구로 이로 인한 스트레스, 성별에 대한 거짓말을 강요당하는 것으로부터 오는 상처를 언제까지 감당해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무지개행동은 진정 및 긴급구제 신청에 앞서 뜻을 같이하는 시민 207명과 함께, 지난 29일부터 31일까지 각 지자체 홈페이지 및 해당 부서를 통해 선거인명부를 열람하고 선거인명부에 성별 정보가 표시된 점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선거권자는 누구든지 선거인명부에 누락 또는 오기가 있거나 자격이 없는 선거인이 올라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열람기간 내에 구술 또는 서면으로 당해 구·시·군의 장에게 이의를 신청할 수 있다'는 공직선거법 제41조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의제기에 대해 지자체들은 '해당 문제는 선관위 소관'이라는 답변만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상) 성별정보가 표시된 공직선거법 시행규칙 선거인명부 양식 (하) 성별정보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도쿄 도 시나가와구 투표입장권 ⓒ 오승재

 그렇다면 같은 문제에 대해 외국에서는 어떻게 처리할까. 

무지개행동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투표 시 선거인확인은 선거인이 각 지자체로부터 사전에 배부받은 투표소 입장권을 제시함으로써 이뤄지는데, 해당 입장권에 성별이 표시됨에 따라 트랜스젠더 등의 성소수자가 투표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문제제기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많은 지자체에서 투표소 입장권에 성별란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해 아이치현 내 54개 시정촌(市町村, 일본의 기초지자체 단위를 묶어 이르는 말) 중 47개 시정촌이 투표소 입장권에 성별란을 두지 않았다.

또한 미국의 경우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로 등록을 해야 하고, 이 때 작성하는 유권자 등록 신청서에 기입하는 정보가 주(州)마다 차이가 있는데, 네바다, 몬타나, 버지니아, 오레건, 워싱턴, 유타, 캘리포니아 등 여러 주에서는 성별정보를 포함하지 않거나 필수적으로 기재하지 않아도 무방하도록 해당 신청서 양식을 정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한희 집행위원은 "외국의 사례를 참조해도 선거에 있어 반드시 성별정보를 표시할 필요성을 없다"면서 "한국 역시 이러한 변화들에 발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31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에 '선거인명부 성별표시에 대한 진정 및 긴급구제 신청서'를 제출하고 있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박한희 집행위원. ⓒ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무지개행동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선거인명부 성별표시에 대한 진정 및 긴급구제 신청서'를 제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48조에 따르면 인권위는 '조사대상 인권침해나 차별행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고, 이를 방치할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권고할 수 있다.

무지개행동은 "4월 3일 선거인명부가 확정되기 전에 긴급구제 결정을 통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분명한 입장을 밝혀줄 것을 요구한다"며 "이번 진정을 시작으로 그동안 합리적 이유 없이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공문서상의 이분법적 성별 표시에 대한 전반적 개선을 위해 관련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향후 활동 계획을 밝혔다.

이번 진정 및 긴급구제 신청을 통해 선거인명부 성별표시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 제기가 수면 위로 떠오름에 따라, 향후 관련 사회적 논의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
#트랜스젠더 #공직선거법 #선거인명부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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