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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 원작과 영화가 달랐던 점은

[리뷰] 영화 <남산의 부장들> 총성 속에서 충성을 끄집어 내다

20.04.01 14:00최종업데이트20.04.0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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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동아일보 김충식 기자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원작은 박정희 정부 당시 남산 중앙정보부장의 흥망성쇠를 다뤘다. 중앙정보부는 국민을 감시하고 정치에 개입한 최고의 권력기관이었다. 이후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10.26 사태를 일으키면서 박정희 정부는 문을 닫는다.

이전에 봤던 도서 '남산의 부장들'은 남에게 추천할 만한 좋은 책이었다. (관련기사: 의심 속에서 흔들린 충성, 영화가 잘 담아냈을까) 저자는 증언에 기반해 중앙정보부 요원들의 비밀을 모았고, 2인자라는 위치에서 오는 고뇌와 갈등도 잘 설명했다. 원작 도서가 좋은 책이었기에 영화도 크게 기대가 되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 컷 ⓒ (주)쇼박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원작에서 표현된 2인자의 고뇌에 감독의 상상력이 가미됐다. 원작은 10.26사태에 대해 간접적으로 언급하기 때문에 영화는 감독의 상상력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감독은 자신만의 손질을 통해서 빈 틈을 채웠다. 일부 캐릭터는 성격 자체가 변경되었다.
 
가장 큰 특징은 김재규의 캐릭터 변경이다. 책에서 묘사되는 김재규는 성미가 급한 터프가이다. 매사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일을 좋아하지 않고, 자기가 정한 것은 밀고 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의 인물이다. 그런 성격의 사람을 자신에 비해 경력이 일천한 차지철 경호실장과 경쟁시킨 것이 비극의 단초였다.
 
김재규는 5.16 쿠데타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다른 군부 친위대 그룹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는 오랜 군, 관 경력을 자랑하고 화통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그러나 이런 성격은 일부만 반영되고 영화에서 크게 바뀌었다. 영화에서 김재규는 김규평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등장한다. 김규평(이병헌 분)은 남보다 사려깊고,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인물이다. 하극상을 저지르는 곽상천(이희준 분) 경호실장에게 달려드는 모습도 있었지만 책에서 묘사된 모습과는 분명 다르다.
 
또 김규평은 우직하고 성미가 급하기보다는, 근대 이후의 국가 체제에 대해 자신의 소임을 다하려고 한다. 곽상천 경호실장은 이런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박통의 우상화에 몰입하기 때문에 증오의 대상이 된다.
 
원작의 김재규는 급한 성미에 식견이 부족한 경호실장을 용서하지 않을 강단이 느껴진다면, 영화의 김규평 중정부장은 곽상천 실장이 저지르는 행동이 구체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에 분노한다. 김규평에겐 곽상천이 국가를 좀먹는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변경된 점이 있다. 김재규는 5.16 쿠데타에 가담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참여한 것도 모자라 박통과 함께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변경되었다. 김 부장이 영화의 후반부에 외치는 대사는 자신을 사적으로, 공적으로 배신한 동료에 대한 응징까지 들어있다. 영화의 물줄기를 크게 바꿔놓은 설정이다.
 
이런 수정을 통해 영화는 공적인 처단과 사적인 분노를 섞었다. 설정 변경을 통해 얻은 것은 김 부장과 박통의 끈끈한 인연이다. 박통은 김 부장과 과거를 회상하면서 추억에 잠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김 부장과 다른 사람과는 공유할 수 없는 인연을 갖게 되었다. 김 부장에게는 충성을 다하고 자신의 의지가 흔들리지 않도록 견뎌야 할 근거를 주는 존재가 생겼다.
 
권력의 2인자에 대해 박통이 가지는 감정은 중정에 집중하는 원작의 특성상 시각적으로 묘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영화는 이를 기가 막히게 풀어냈다. 박통은 성급한 불안과 초조를 느끼는 사람으로, 항상 주변 인물들을 의심한다. 2인자에게 모든 것을 몰아주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믿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유형의 인간은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되지 않는 이들 앞에서만 진정할 수 있지만, 그런 사람은 없기에 박통은 영화의 어떤 시점에서도 침착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 반면 김 부장이 박통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조심스럽고 섬세하다. 몰래 박통의 이야기를 도청하다가 경직되는 모습은 일반적인 주군과 신하라기보다는 일본 중세 가문의 가신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러나 박통은 그런 고유한 인간관계를 깨부수면서까지 2인자에 대한 의심을 키운다. 결국 이를 통해 '흔들린 충성'이라는 주제가 극대화된다. 누구도 2인자로 영원히 살아남을 수 없고 배신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것이 남산의 부장들이 가지는 숙명이라는 사실이 명징하게 전달된다.
 
이 영화는 그날 있었던 총성과 관련된 이야기 중, 충성에 관한 내용을 크게 강조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개인이 가지는 충성이 뒤틀리는 모습을 통해, 어떤 이들도 스스로를 보존할 수 없는, 누구든지 의심해야 하는 박정희 독재 체제의 문제를 짚어냈다. 약간 돌아가는 방법으로 원작의 문제의식에 도달한 셈이다.
박정희 역사 박통 김부장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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