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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코로나191926화

강도, 상점털이, 탈옥... 코로나가 몰고 온 더 큰 재앙들

[코로나19 속 중남미] 어제 도둑이 들었다

등록 2020.04.02 08:17수정 2020.04.0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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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2019년부터 캠핑카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알래스카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필자는 파나마에 있던 중 코로나19 사태를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필자와 같은 캠퍼들이 직접 SNS에 올린 글과 인터뷰 등을 통해 모은 경험담을 정리해 중남미에서 코로나19와 관련된 소식을 전합니다.[편집자말]
어제 새벽,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편한 기운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옆에 누워 곤히 자고 있는 둘째 아이의 작은 손가락을 쓰다듬으며 다시 잠을 청해볼까 하는 사이, 아래층 주방 문이 쿵 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공교롭게도 창 밖으로 우스스하고 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바람 때문에 문이 닫혔나 보다' 생각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으슬으슬한 기운에 잠도 오지 않고, 머릿속은 갖가지 공상으로 엉망이 되어 버렸다. 청각은 이미 곤두서 있었기에 작은 도마뱀이 기어가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우리가 자고 있던 방 문에는 나무 구슬을 길게 꿰어 만든 발이 걸려 있었는데 점토처럼 들어찬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나무 구슬 틈 사이로 어슴프레 보이는 달빛이 어떤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뭔가 움직였던 것일까. 동공을 아무리 확대하고 눈을 부릅떠봐도 보이는 것은 없었다. 유령인지 뭔지 하는 것들을 떠올리며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나의 신경조직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겨우 몇 미터밖에 되지 않는 방문까지 가득한 어둠을 환한 불빛으로 갈라버리고 싶었다. 간절하게 노려보았지만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눈으로 전해지는 정보가 없었음에도 심장은 이상하게 쿵쾅 거리고 있었다. 

이 나이에 유령 따위에 겁을 먹을 수 있는 걸까. 도대체 뭘 느끼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워하던 그 순간, 나무 발이 서로 부딪히며 딸각거리는 소리가 은밀하지만 선명하게 들렸다.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튕겨져 나오며 비명을 있는 대로 질러대었던 것 같다. 


나무 발을 넘어서 방안으로 그림자를 드리운 정체모를 남자가 황급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고, 비명소리에 놀라서 잠을 깬 남편 또한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평생 처음으로 도둑과 대면한 순간이었다.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사회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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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에게 외출 사유 설명하는 페루 리마 시민 페루 국가 비상상태 선포 3일째인 3월 18일(현지시간) 수도 리마에서 한 시민이 군인들에게 외출 사유를 설명하고 있다. 마르틴 비스카라 페루 대통령은 지난 1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향후 2주간 강제적인 사회적 격리를 포함한 조치가 취해짐에 따라 헌법에 보장된 권리에 제약이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 연합뉴스


캠핑카로 아르헨티나에서 여행을 시작한 우리 가족은 두 달 전 파나마에 도착했다.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일들을 겪었고, 갖가지 변수와 다양한 사건들을 예상해 보기도 했었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변수는 결코 머릿속에 그려본 적도 없었던, 막무가내로 경기장에 투입된 심판관 같은 것이었다. 더 이상 경기를 이어갈 수도, 거역할 수도 없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심판관. 

지금쯤 코스타리카를 지나고 있어야 할 우리가 발이 묶인 곳은 다비드(David)라는 도시였는데, 엔진 문제로 정비소에서 머물고 있던 차였다. 3월 9일, 첫 확진자가 나온 지 14일만에 파나마 정부는 개인 간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전 국민 외출금지'라는 초강수 정책을 발표하게 된다. 사람은 물론 차량 이동도 금지되는 상황이라 우리 가족을 포함해서 캠핑카로 여행 중이었던 많은 여행자들은 당장 정박할 곳을 찾느라 분주했다.  

그러던 차에 클라우디아라는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혹시 머물 곳이 필요하지 않냐고, 자신이 혼자 사는 집 이층이 비어 있으니 와서 얼마든지 있어도 좋다는 이야기였다. 남편과 나는 위급한 상황에서 천사를 만난 듯 기뻐하며 클라우디아 아주머니의 집으로 향했다. 

클라우디아는 우리가 와준 것이 너무 고맙다고 했다. 이 넓은 집에 혼자 있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는 이야기였다. '적적했다'가 아니라 '무서웠다'라는 말이 좀 지나친 것 아닌가 했지만,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는 것은 정말로 무서운 일이겠구나 생각했다. 

지난밤 도둑 사건을 겪고 나니 그 말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다. 클라우디아는 코로나19에 혹시 걸리게 되면 보살펴줄 사람이 없었던 것도 걱정이었지만,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좀도둑과 강도가 들끓게 되는 상황에 혼자 있는 것이 더욱 두려웠던 것이다. 

우리가 자던 방에 들어온 도둑은 말하자면 전혀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도둑이었다. 아무도 없었던 일층 거실에 노트북과 카메라가 몇 대씩 널브러져 있었지만 전혀 손을 대지 않았고, 클라우디아 아주머니의 핸드백만 뒤진 흔적이 있었다. 무리해서 방까지 들어온 것도 아마 현금을 찾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놀라서 달아나던 도둑은 자신의 모자까지 떨어뜨렸고, 아랫층 바닥에는 소변을 흘린 자국까지 있었다. 

건강·의료문제를 넘어 사회·정치문제로 확대된 코로나19

외출 금지령이 장기화되면서 파나마를 비롯한 중남미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 문제가 비단 중남미 사람들만의 걱정은 아닐 테지만, 사회안전망이 아시아나 유럽의 선진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한 이 지역의 사람들은 정말로 바이러스에 걸려 죽지 않으면 '굶어 죽는' 상황에 처한다. 

하루 벌어 먹고사는 일용직과 길거리에서 소소한 음식이나 물건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멕시코 같은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너무 불안해 하지 말고 외출을 중단하지 마라'는 발언을 할 정도로, 팬더믹 상황을 막아내는 것보다 시민들 생계 문제에 방점을 찍은 모습이었다. 

지난 3월 31일, 확진자만 5717명, 사망자도 200명을 넘어서 중남미에서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크게 번지고 있는 브라질 대통령은 '코로나는 감기 같은 것이다, 일터로 나가라'는 주문을 해서 국민들이 냄비 시위를 벌일 정도로 정치적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상황이다. 바이러스가 건강 문제를 넘어서서 경제, 정치 위기를 대동하고 진격 중인 이 상황은 정말로 두려움의 도가니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23일 파나마의 지방 도시인 치트레(Chitré)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시위를 조직하다가 결국 상점을 약탈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크고 작은 식료품 약탈이 이어지고 있다. 취약 계층 지원을 위해 파나마 정부는 4월 중 80달러 상당의 쿠폰을 지급한다는 정책과 기본 식료품 지원 정책을 발표했지만, 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주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파나마에서 십 년 넘게 이민 생활을 하고 있는 스페인 출신 루벤씨는 현재 상황을 이렇게 비유했다.

"사람들이 전부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었어요. 수입은 전혀 없는데 집 안에서 꼼짝도 못하게 하니 먹을 것을 살 돈이 어디서 나오겠어요. 물론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도둑질을 하러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식료품 가게를 터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먹을 것이 없어서 그랬다고 봐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그나마 버틸 만하지만 여기 파나마 사람들 중에는 정말로 힘든 사람이 많아요."

지난 3월 17일에는 브라질에서 1300여 명의 죄수들이 탈옥하는 사건도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가족들의 방문이 제한되는 것에 대해 시위하던 수백 명의 죄수들이 탈옥에 성공해서 길에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 SNS를 통해 전해졌고 시민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파나마

여행 중에 코로나19가 시작되어 파나마에서 발이 묶였다고 하면 '그냥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남들처럼 지내면 되지 않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가 이렇게까지 일상을 마비시킬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국경이 폐쇄되고 비행기조차 탈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쉬운 선택은 아니다.

사람들이 사재기를 해서 식료품을 구할 수 없으면 어쩌지, 보험도 없고 의료시설도 열악한 외국에서 혹시라도 바이러스에 걸리기라도 하면 어쩌지, 관광 비자가 만료되어 불법 체류를 하는 상황이 되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이 물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되어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서로를 물어뜯는 일들이 혹시라도 벌어질까 그것이 훨씬 더 두렵다. 

파나마에서는 현재 본인 신분증 끝자리 숫자에 따라 하루에 두 시간 정도만 식료품 구입을 위한 외출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다. 그마저도 여자는 월, 수, 금에 남자는 화, 목, 토에만 나갈 수 있도록 축소되었다. 건강 등의 위급한 문제가 아닌 이유로 외출을 했다가는 범법자로 취급 당하기 십상이다. 

말 그대로 생존이라는 단어나 어울릴 법한 환경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로 가족들과의 시간이나 개인의 여유가 회복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한 긍정적인 변화는 그나마 식료품을 구입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나 해당하는 것이다. 이곳 파나마에는 하루하루의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어둠이 짙어 출구가 보이지 않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불안하고 두렵다. 
#중남미 코로나19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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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캠핑카 여행을 마치고, 아르헨티나로 돌아왔습니다. 라틴아메리카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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