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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은 사면령을 내릴 때도 용서하지 않았다

조선 시대에는 성폭력 범죄 어떻게 처리했을까?

등록 2020.04.02 10:05수정 2020.04.0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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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은 죄질에 따라 60-100대까지 죄인의 둔부를 길이 약 100cm에 두께 약 1cm의 큰 가시나무 가지, 즉 장으로 내리치는 형벌이다. 그림의 매는 장보다 강력한 치도곤이다. ⓒ 문화재청

 
2017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미투 운동은 성범죄에 대한 재인식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장자연 사건, 김학의 사건, 버닝썬 사건, 다크웹 아동 음란물 사건, 그리고 최근 n번방 성착취 사건 등 잔악한 성범죄가 연이어 나오지만 그에 대한 수사와 처벌은 미진합니다.

대체로 피해자가 여성인 가운데, 남성적 시각으로 법체계와 사회인식이 형성된 탓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남성 중심의 씨족 사회라 평가받는 조선에서는 성범죄를 어떻게 다루었을까요? 세종 시대의 강간 및 성추행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형조刑曹(지금의 법무부)에서 "평해平海(현재의 울진군 평해읍)에 있는 죄수 김잉읍화는 여덟 살 난 여아를 강간하여, 법률 상 교수형에 해당합니다." 라고 아뢰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실록 8년 11월 17일)
성균관 생원(현재의 서울대학교 학생과 유사) 최한경과 정신석이 (성균관 앞에 흐르는) 반수泮水에서 목욕하고 있었다. 한 앳된 여성이 평상복 차림으로 여종 둘을 거느리고 반수의 길을 걸어서 건너는데, 최한경이 홀딱 벗은 채 갑자기 뛰어나가 앳된 여성을 어루만지고 희롱하며 욕보였다. 여성은 완강히 저항하고, 그의 계집종이 "저희 안주인이에요." 라며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정신석이 두 여종을 때려서 쫓아버리고는 최한경을 도와 힘으로 여성을 억눌렀다. 뒤이어 여성의 쓰개를 빼앗아서 성균관의 재실(지금의 기숙사)로 돌아왔다 ...... 최한경·정신석 두 사람이 함께 자백하기를 "우리는 (강간이 아니라) 희롱만 했을 뿐입니다." ...... 최한경에게 장형 80대를 시행하도록 명하였다. (세종실록 20년 8월 1일)
      
조선시대에 통용된 명나라의 형법전 <대명률>에 따르면, 강간범은 교수형에 처하고, 강간 미수범은 장 100대를 친 후 삼천리(약 1200km) 떨어진 먼 지방으로 귀양을 보냅니다. 위의 실록 기사에서 성추행을 자행한 '바바리맨' 최한경은 장 80대의 처벌을 받는데요. 강간 미수범보다 다소 약한 처벌을 받았지만, 장 80대를 맞으면 집행 도중 사망에 이를 수도 있으므로, 낮은 형벌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적 경사나 천재지변 등과 같은 큰 사건이 있을 때, 임금이 죄인에 대한 사면령을 내립니다. 그런데 이때 '십악'이라 하여, 사면에서 제외되는 열 가지 범죄가 있습니다. 역모나 존속살인 등과 같은 국가의 기강을 위태롭게 하는 대역죄를 말하는데, 강간죄는 십악이 아님에도 사면에서 제외됩니다.
 
강간은 보통 사면령을 내릴 때에도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종실록 12년 10월 25일)
 
성폭력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다는 시각
 

형벌에 사용되는 매의 규격.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장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조선시대보다 현재가 오히려 약해 보입니다. 그런가 하면 성폭력의 피해자에 대한 법과 사회의 시선은 예나 지금이나 곱지만은 않습니다.
 
형조에서 "칠원(현재의 함안군 칠원면) 사람인 정경이 선군(지금의 해군) 안승로의 딸인 처녀 연이를 강간하려고 밤새도록 때렸으나, 연이가 완강히 저항하다 죽었습니다. 법률에 따라 정경은 교수형에 처하고, 연이의 정문旌門을 세워 그 정절을 표창하소서." 라고 아뢰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실록 11년 11월 27일)
 
위의 피해 여성은 강간을 피하려다 장시간 폭행당해 사망했습니다. 그 후속책으로 국가는 열녀문을 세워줍니다. '정절>목숨', 즉 당시 여성에게만 강요된 개념인 정절은 목숨보다 귀하기 때문이지요. 국가가 성폭력 피해자의 집이나 마을 앞에 붉은 문을 세워주며 '열녀'라 칭송하는 열녀문은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피해자의 보호나 범죄의 재발 방지보다, 정절을 잃거나 잃을 위기에 자신을 빠뜨린 여성에게 책임을 돌려, 스스로 죽게 함으로써 사건을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가문의 한 부속인 여성의 재화적 가치인 여성성 훼손을 열녀문으로 보상해, 남성중심 가문의 명예·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당시의 윤리적 인식이었습니다.

성폭력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다는 시각은 지금도 만연합니다. 최근  n번방 성착취 사건에 대해 <반일종족주의> 공저자인 이우연씨는 자신의 SNS에 '내 딸이 지금 그 피해자라면, 내 딸의 행동과 내 교육을 반성하겠다', '거래를 통해 양자 모두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 범죄의 피해자도 악을 범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피해자에게 잘못을 돌렸습니다. 이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이며, 우리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또한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육도 필요하지만, 처벌을 강화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담화에 의하면 성범죄는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잔인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인간의 삶을 살리는 법, 인간의 얼굴을 한 법을 위해 우리 함께 행동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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