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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엄마의 봄 "코로나19 세 달이 삼년 같아"

[팔순의 내엄마] 장 담그기 계획도 무산되고, 기력도 평소같지 않네

등록 2020.04.07 08:08수정 2020.05.2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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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팔십 평생 자식들 밥 지어 먹이는 일밖에 몰랐다.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았을 뿐, 마음대로 사는 것을 애당초 몰랐다. 어느날 엄마가 "그때 내가 어땠는 줄 아니?" 하고 물었다. 그제서야 엄마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뒤늦게 알게 된, 엄마의 저렸던 마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편집자말]
"엄마, 올 봄에 장 담근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근데 세월이 이래서. 이모한테 메주 부탁도 안 했어."

  

엄마의 장 담그기 해마다 3월이면 엄마는 장을 담궜다. ⓒ 변영숙

 
봄이 오면 엄마는 햇살 좋은 '말날'을 골라 장을 담갔다. "메주는 할머니가 꼬박꼬박 갖다 주셨어. 그땐 장도 많이 먹었지. 그런데 이상하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장도 밀리더라. 그래서 한 해 걸러 담그다가 나중엔 장 떨어지면 담그고 그랬지 뭐."


마당 안쪽 텃밭 옆에 있던 장독대에는 엄마가 해마다 담근 크고 작은 고추장, 된장, 간장 항아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항아리들은 늘 반질반질 윤이 났다. 엄마는 장을 담그고 나면 일년 농사를 다 지은 농부처럼 홀가분해 했고, 쌀과 장만 있으면 든든하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코로나19 정국에서도 장과 쌀이 있으니 일 년을 자가격리해도 끄덕없다고도 했다. 
  

엄마의 장독대 마당 한 켠에 있던 장독대 위의 항아리들은 늘 반질반질 윤이 났었다. 엄마는 4년전 마지막으로 장을 담그고 항아리들은 2-3개만 남기고 모두 시골로 내려버냈다. ⓒ 변영숙

 
엄마는 4년 전에 마지막으로 장을 담갔다. 나와 동생들까지 나서서 엄마를 도왔다. 가슴께까지 오는 커다란 항아리를 씻는 일을 빼면 장 담그는 일은 의외로 간단했다. 물기가 마른 항아리에 메주를 넣고 메주가 잠길 정도로 소금물을 부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문제는 소금물의 염도를 맞추는 일이었는데, 엄마는 '메주 한 말에 물동이로 두 동이 정도로 물을 잡으면 된다'는 심박한 팁을 알려주었다. 

소금물이 너무 짜면 메주가 단단해져서 메주를 치대기가 힘들고 싱거우면 장맛이 없다는 것도 그때 배웠다. 마지막으로 메주를 돌멩이로 눌러주고 참숯, 고추, 대추 등을 넣어주고 항아리 뚜껑을 덮어주면 장 담그는 일은 끝난다. 그 다음은 40일 동안 뚜껑을 열어 놓기만 하면 된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아침 먹고 나면 장독대 올라가서 뚜껑 열어주고, 해 지면 또 올라가서 뚜껑 닫아주고 했지. 그것도 일이었지." 
"정말 그랬어?"


나는 그날에서야 엄마가 장독 뚜껑을 열어주고 닫아주느라 40일 동안 매일같이 아침저녁으로 장독대를 오르내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장독대를 정리하는 엄마 이사를 갈 때 엄마는 항아리의 장들을 모두 통에 담아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항아리는 시골로 내려보냈다. ⓒ 변영숙


일년 뒤 아파트로 이사를 앞두고 엄마는 항아리 안에 남아 있던 장들을 통에 담아 아들 딸들에게 나눠주고 빈 항아리들은 모두 시골집으로 내려 보냈다. 당신은 베란다에 둘 데가 없다며 자그마한 항아리 두 개만 챙겼다. 고사 때마다 떡과 술을 올리고, 해마다 의식을 치르듯 오르내렸던 엄마의 장독대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 후로 엄마는 한번도 장을 담그지 않다가 간장도 떨어지고 우리들의 성화도 있고해서 올해 큰 맘 먹고 장을 담그려했던 것인데, 코로나19로 마음을 접은 것이다.  


"엄마 간장 떨어졌잖아요?"
"사먹지 뭐. 요즘 힘이 드니까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귀찮아. 세월도 이렇고." 


요새 통 집 안에만 있어서 그런지 엄마가 부쩍 노쇠해 보였다. '귀찮다', '너무 오래 살았다', '이만큼 살았으면 됐지'라는 말을 하는 횟수도 많아졌다. 며칠 전 산책길에서는 "작년에는 여기까지 한번에 왔는데. 이젠 다리 힘이 없어서 백 걸음도 못 걷겠어. 체험관 매일 나갈 때랑 확실히 달라"라며 벤치를 찾아 앉는 모습이 참 쓸쓸해 보였다.
  

산책나온 노인들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어르신들 ⓒ 변영숙

 
우리 앞으로 하얀 마스크를 쓴 노인들이 지나쳐갔다. 혼자 산책을 나온 노인들이 많았다. 늙는다는 것이 쓸쓸한 일임을 알지만 내 엄마가 늙어가는 모습은 더 아프고 쓸쓸하다. 절대로 늙지 않을 것 같았던 엄마가, 늘 짱짱할 것만 같았던 엄마가 기운이 다해가는 모습이 참 슬프다. 

"코로나19로 죽은 사람들은 장례도 못치르고 그냥 바로 화장한다지 않니?"
"그러게 말야. 그분들 심정이 어떨까. 엄마, 코로나19도 이제 곧 잡힐 거야. 기운 내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내년에는 꽃 구경도 가고 장도 담그자."
"그래."

  

시골 장독대 시골장독대에는 할머니와 엄마가 쓰던 항아리들이 지금도 그대로 있다. 내년에는 여기서 꼭 새로 장을 담글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변영숙

 
올해는 꽃을 좋아하는 엄마를 모시고 꼭 꽃구경을 가고 싶었다. 매년 나섰던 꽃놀이지만 올해는 더 간절했다. 꽃구경 얘기가 나오면 엄마도 유난히 반색을 하며 좋아했다. 그런데 올해는 집 앞 뚝방길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서고 있다. 엄마에게 꽃 색깔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었다.

"음, 노란꽃은 노랗게, 빨간꽃은 빨갛게 보여."

언제 백내장 수술을 해야할지 모르는 엄마의 눈이 언제까지 버텨줄지 모르겠다. 하늘을 하얗게 덮은 벚나무 아래 마스크를 쓰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엄마가 오늘 따라 유난히 작아 보인다.

눈 깜짝할 사이 '하루'가 다 간다고 하니 엄마는 '한 달'이 간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멈춘 지 세 달째로 접어들고 있다. 엄마에게는 3년째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에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답답하기만 하다. 남의 속도 모르고 벚꽃들은 주책맞게 활짝 피어 있다.
 

산책나온 노인들 노인분들의 얼굴에 씌어진 마스크가 유난히 서글퍼 보인다. ⓒ 변영숙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팔순의 내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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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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