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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50대 교사의 온라인 교육 분투기

[아이들은 나의 스승 187] 천신만고 끝에 펼쳐진 신세계, 온라인 개학 준비

등록 2020.04.07 20:35수정 2020.04.07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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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코로나19 확산으로 개학을 4월 9일 이후로 연기하면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수시·정시모집 등 대학 입시 일정도 2주 연기한 3월 31일 오후 원격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된 서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에서 한 교사가 원격 교육을 위한 수업 영상을 녹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불안하고 조바심 나는 마음을 달래 줄 사람은 동료 교사뿐이다. 스마트 기기 조작에 능숙한 젊은 교사들의 준비 모습을 커닝하는 것도 좋고, 호주머니 속 스마트폰 사용법조차 몰라 전전긍긍하는 선배 교사들의 모습을 보는 것조차 위로가 된다. 좌충우돌 원격수업 이야기다.

고백하건대, 나이 50줄에 갓 들어선 젊은 나이지만 손 안의 컴퓨터라는 스마트폰을 2G폰처럼 사용하는 '후진' 사람이다. 말 그대로, 스마트폰으로 전화 걸고 문자 보내고 사진 찍고 이따금 인터넷에 접속해 뉴스를 읽는 게 다다. KTX와 카톡 택시 앱도 최근에야 깔았다.

다들 스마트폰으로 TV와 영화를 보고 아이들은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고 하지만, 손바닥보다 작은 화면의 자막은커녕 사람 얼굴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때마다 주섬주섬 돋보기를 꺼내 쓰기도 뭣하다. 대놓고 '셀프 디스'하려니 조금 비참한 느낌이다.

"온라인 개학을 앞둔 지금, 스마트폰이 없는 교사는 아무것도 준비할 수가 없어."
"아니, 최신형 스마트폰이 있다 해도 기능을 모르면 무용지물일 뿐이야. 원격수업 운운하기 전에, 당장 우리가 아이들에게 스마트 기기 사용법을 먼저 배워야 하는 상황인 거지."


한 동료 교사와 나눈 대화 한 꼭지다. 학교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연수는 큰 도움이 안 된다. 어느 정도의 기기 활용 능력이 있다는 전제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연수 내내 하품을 하는 사람도 있고, 전혀 알아듣지 못해 쩔쩔매는 경우도 있다. 천차만별의 수준 탓이다.

그래선지 집에 있는 자녀의 도움을 받아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교사도 적지 않다. 실제로 나 또한 퇴근 후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가며 하나둘 기능을 익혀가는 중이다. 때론 그들의 입에서 무시로 튀어나오는 온갖 인터넷 용어들로 언뜻 낯선 외국어로 대화하는 기분이다.

아이들의 날카로운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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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김수한 교수가 26일 오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교수 연구실에서 코로나 19로 인해 교내 강의가 중단되어 대학원 학생들과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업은 스마트폰과 PC를 통해 들을 수 있으며 교내 구축된 온라인 강의 시스템으로 참여자가 모두 대화를 할 수 있다. ⓒ 이희훈

  
교육부에서 권장하는 EBS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의 장단점을 아이들은 몇 차례의 클릭으로 이미 간파해버렸다. 현장 교사들의 건의를 받아 시스템을 지속해서 보완하고 있다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이다. 그들의 도움을 받으려다 마치 극비사항을 누설한 느낌이다.


아이들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강의 유형으로 미루어 대부분의 교사가 EBS에서 과목별로 개설한 강좌를 끌어오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럴 거면 바로 EBS의 라이브 강의를 듣게 내버려 두지, 왜 굳이 번거롭게 온라인 클래스를 거치도록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학교마다 교과서가 다르고 교사마다 나름의 수업과 평가 계획이 있을 텐데, 똑같은 수업을 들어야 한다면 교사의 역할은 대체 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EBS 온라인 클래스의 유일한 기능은 출결 확인뿐이라고 했다. 나아가 교사에 대한 불신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고도 지적했다.

대강 살펴보더니, 아이들이 충실히 수업에 임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확신했다. 하긴, 연수 때마다 진행자가 푸념처럼 되뇌는 말이 있다. 학습 효과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자는 것. 법정 수업일수를 맞추기 위해 당장 원격수업을 개설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나마 학습 효과를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실시간 화상 수업이 낫다고 말했다. 적어도 정해진 시간에 접속해야 하고, 그 시간 동안 딴짓은 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시중의 웹캠 가격이 크게 올랐다는데, 실시간 화상 수업의 효과를 많은 교사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일 테다.

또다시 창피한 고백 하나. 요 며칠간 온라인 개학을 준비하며, 스스로 '컴맹'으로 살아왔음을 뼈아프게 되돌아보게 됐다. 한 동료교사는 실시간 화상 수업을 하려면 노트북에 '줌'을 깔아야 한다고 했다. 이미 설치되어 있다고 했더니, 보낸 메일 주소를 열면 바로 접속된다는 거다.

말대로 되지 않았다. 아뿔싸. 그가 말한 '줌'과 내가 답한 '줌'이 다른 거였다. 그는 실시간 화상 애플리케이션을 말하는 것이었고, 나는 특정 포털 사이트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왜 갑자기 포털에 접속하라고 하는지 의아하다고 했더니, 그는 말문이 막힌다는 듯 웃기만 할 뿐이었다.

민망함을 뒤로한 채, 가르쳐준 대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했다. 설치하기가 까다롭진 않았으나 여러 번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무조건 설치하고, 동의해야만 다음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고민의 여지는 없었다. 찬찬히 읽어봐야 무슨 내용인지 알기도 힘든 것들이 태반이었다.

설치됐다고 끝은 아니다. 어떻게 시작하는지 몰라, 다시 아이들을 불러 도움을 청했다. 활용법이 인터넷 포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고 했지만, 이 또한 어느 정도의 활용 수준을 전제한 것이어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문자보다 통화가 익숙한 세대의 한계다.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신세계가 펼쳐졌다. 아이의 얼굴이 보이고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그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도 화면을 통해 드러났다. 동료교사의 메일 주소를 입력해 하나둘씩 초대를 하니, 동시에 여러 사람의 얼굴이 화면을 꽉 채웠다. 그렇게 열 사람이 모였다.

촌놈 서울 구경하듯 신기했지만, 그것이 학습 효과를 보장해주긴 힘들 듯했다. 동영상 버퍼링처럼 도중 끊길 때가 있었고, 화상과 말이 전송되는 속도가 조금씩 차이가 나 집중력을 흐트러뜨렸다. 특히 게임에 익숙한 아이들에게는 참을성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부의 복안대로 서둘러 환경을 개선하면 해결될 문제이긴 할 테지만, 현재로선 만만치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당장 도농 간의 지역 편차와 학교 간 격차를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가정환경의 차이까지 감안한다면, 섣불리 도입하기는 힘든 대안이다.

그들의 예측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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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 서울 용산고등학교 3학년 교무실에서 출근한 교사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업무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아닌 게 아니라, 농어촌 지역 학교에서 근무하는 후배 교사는 여건 미비를 이유로 원격수업 자체를 반대했다. 학생 수가 적어 밀집 우려도 없는데, 차라리 등교해서 수업하는 게 낫다는 거다. 무선 공유기 설치하랴, 기기 대여하랴, 시골 학교일수록 어수선할 수밖에 없다.

교육부도 실시간 화상 수업을 권하진 않는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다. 아무리 비상 상황이라고 하지만, 대놓고 사기업을 홍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의 경우 EBS 온라인 클래스가 사실상 의무화되어 있지만, 눈치 빠른 교사들은 구글 등에서 제공하는 플랫폼을 더 선호한다.

아예 EBS 온라인 클래스 대신 구글 플랫폼을 활용하겠다는 학교도 있다. 실시간 화상 수업은 물론, 유튜브 등 다른 프로그램과의 연동이 편리하다는 이유를 댄다. 이를 잘 알고 있다는 듯, 교육부도 구글 플랫폼을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모양새다.

그러다 보니 발생하는 역기능도 우려할 만하다. 대표적으로 플랫폼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구글에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정보 활용 동의를 하지 않으면 아예 프로그램도 설치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선택 항목을 제외하는 것뿐이다.

온라인 개학을 준비하는 모든 교사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구글에 제공했을 것으로 본다. 오로지 EBS 온라인 클래스만 쓰겠다는 교사도 이를 피하긴 어렵다. 직접 제작한 강의 영상 하나를 탑재하려고 해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EBS 온라인 클래스에 탑재할 수 있는 용량은 400MB로 제한되어 있다. 20여 분짜리 강의 영상만 해도 얼추 3GB에 육박하는 마당에, 유튜브의 도움이 불가피하다. 각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강의 영상을 올린 뒤 EBS 온라인 클래스에 링크시키는 게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온라인 개학을 준비하며 절감한 거지만, 어떤 방식의 원격수업을 하든 '기-승-전-구글'이다. 구글을 통하지 않고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이번 온라인 개학의 가장 큰 수혜자가 구글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미 세계는 '구글 공화국'이 됐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많은 미래학자가 디지털 혁명 운운하며 이렇게 예언했다. 중앙에 집중된 권력이 지방으로 분산되고, 변방의 작은 목소리에도 힘이 실릴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의 영향력은 차츰 줄어들고, 창의성과 기술력을 갖춘 스타트업들이 나타나 세상을 이끌어갈 것이라고도 했다.

적어도 지금 그들의 예측은 빗나간 듯하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촌,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정보의 독점을 통한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는 모양새다. 그런데도 학교 교육이 이에 맞서기는커녕 외려 방조하거나 부추기는 꼴이라 안타깝기만 하다.

코로나19의 확산이 우리 학교 교육에 혁명적 변화를 몰고 오는 중이다. 다만, 그것이 교육적으로 올바른 방향인지는 선뜻 동의하긴 어렵다. 유튜브로 세상을 바라보는 요즘 아이들을 가르치자면, 모든 교사는 기꺼이 유튜버가 되어야 한다는 식의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교사의 스마트 기기 활용 능력이 시나브로 경륜과 전공 지식 등의 역량을 압도하고 있다. 온라인 개학이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모양새다. 하긴 이런 이야기를 꺼냈더니, 이 와중에 그런 걸 걱정할 때냐며 그럴 시간에 수업 준비나 하라고 면박만 당했다.

이제 이틀 남았다.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싶긴 하지만 고민은 사치다. 오늘도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삼각대 위 스마트폰 렌즈를 아이들 눈빛 삼아 수업을 녹화하고 있다.
#온라인 개학 #실시간 화상 수업 #구글 #EBS 온라인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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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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