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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 해방 뒤 남북한에서 한글 지킴이로

[김삼웅의 '한글운동의 선구자 한힌샘 주시경선생' / 43회] 북쪽으로 간 수제자가 김두봉이었다면 남쪽의 수제자는 최현배였다

등록 2020.04.10 18:38수정 2020.04.1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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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덕수궁에서 열린 한글날 기념식을 마치고 1945년 8월 17일 함흥감옥에서 풀려난 최현배와 이극로가 주도하여 한글날 행사를 거행하였는데, 2만여 명에 달하는 많은 시민이 참여하여 국경일을 빛냈다. ⓒ 한글학회

학자의 본분은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이다.

아무리 훌륭한 연구를 많이 했더라도 스승의 학문을 계승하는 제자를 두지 못했다면 유능한 학자라고 치기 어려울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공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를 꼽는다.

주시경의 곁에는 유능한 제자들이 모여 들었다. 한글운동은 그런 제자들에 의해 엄혹한 일제강점기에도 맥과 숨결이 이어지고, 해방 뒤 분단된 남북한에서도 '한글 지키기'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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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솔 최현배 선생과 기념비 ⓒ 외솔회

 
북쪽으로 간 수제자가 김두봉이었다면 남쪽의 수제자는 최현배일 것이다. 남대문 안 상동 예배당에서 열린 조선어 강습회와 보성학교 안에 있는 조선어 강습원 등에서 주시경의 강의를 들었던 최현배의 증언을 들어보자.

내가 이렇게 열심히 조선어를 공부하고 저 스승님의 강연(講筵)에 빠지지 아니하였음은 오로지 스승님의 열렬한 조선어 연구 및 애호의 대지(大志)와 그 몰아적 교육정신과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인격의 감화의 소원(所願)이라 생각한다.

스승님은 일찍 갑오경장 이후의 정치운동에도 뜻한 적이 없지 아니하였으나, 그 보다도 말과 글을 닦아서 조선 어문화(語文化)의 기초를 벼르며 청년을 교육하여 장래 발전의 원동력을 지음이 결망(結網)의 근본책이 됨을 깨치고자 아침부터 밤까지 조선말의 연구와 교수에 전력을 다하셨다. (주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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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배 책 외솔 최현배 선생이 펴낸 <한글바로적기공부>와 <우리말본> 그리고 외솔회에서 펴낸 <나라사랑> 제114집 ⓒ 외솔회

 
나라 잃은 국망치주에 애국하는 방법이 여러 갈래였을 즈음, 그는 오로지 '장래 발전의 원동력'인 청년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고 민족혼을 심어주는 데 진력하였다. 그런 노력과 정성이 결코 헛되지 않아서 유능한 제자들이 분단 뒤에도 남북에서 한글운동의 첨병이 되었다.

주시경의 배제학당 제자로서 한글운동과 광문회에서 『붉은 저고리』, 『청춘』 등을 편집하고 대종교에서도 활약했던 김두봉은 중국으로 망명, 상하이에서 『깁더 조선말본』을 출판하고 임시정부 산하 임시사료 편찬회 편찬위원, 김구 등이 설립한 상하이 인성학교 교장, 민족혁명당 결성, 연안으로 옮겨서 무장항일투쟁, 해방 뒤 북한에서 한글운동을 전개하고 조선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1958년 반당종파분자로 지명되어 축출되었다.
  

상하이 영경방 골목에서 살면서 백범은 둘째아들을 얻은 대신 아내를 잃었다. 동지들은 의연금을 모아 장례를 치르고 묘비까지 세워 주었다. 순 한글로 쓴 묘비는 한글학자 김두봉이 쓴 것이다. ⓒ 자료사진

 
김두봉을 연구해온 심지연 교수는 그의 한글연구는 스승 주시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1913년부터 한글 연구에 몰두했는데, 이에는 스승인 주시경의 영향이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다. 주시경은 교육자요 한글학자이기 이전에 우국지사로서 독립협회에서 진보세력의 중추로서 보수세력에 대항했으며 독립신문의 간행을 도맡기도했다. 스승인 주시경이 우리말본을 짓고 가르치는 일에 온 정성을 다하는 동안 김두봉은 사전 만드는 일에 모든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스승이 1914년 7월 27일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는 스승이 못다한 일을 이어받아 그것을 더 넓히고 더 열어서 우리의 말과 글과 얼이 묻히지 않고 영원히 자랄 수 있는 기틀을 다지기 위해 『조선말본』을 저술했다. (주석 7)

 

한글학자 히못 김두봉 한힌샘 주시경 선생의 수제자이자 항일독립운동가 히못 김두봉은 부산시 동래 기장 출신으로 박차정의 어머니 김맹련 여사의 고종사촌 동생이자 박차정의 외당숙이다. ⓒ 위키백과

 
김두봉은 『조선말본』의 머리말에서 스승의 위업을 기리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이 말본을 이렇게 빠르게 만들라고는 아니하였고 다만 '말모이' 만들기에만 얼을 바치었더니 슬프다 꿈도 생각도 밖에 지난 여름에 우리 한힌샘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이답지 못한 사람이 말본까지 짓기에 이르렀도다. 스승님이 계실 때 이미 박아낸 『조선 말글본』이 있었으나 이는 지은지 너무 오랜 것이므로 늘 고쳐 만드시려다가 가르치시는 일에 너무 바빠 마침내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므로 이제 말본이 매우 아쉬울뿐더러…이에 작은 힘을 돌아보지 않고…힘자라는 데까지는 조금조금씩이라도 더 열어가면서 이 다음에 참 훌륭한 사람이 나시기를 기다리는 뜻이로다. (주석 8)


주석
6> 최현배, 「겨레의 스승」, 『나라 사랑』 제4집, 183쪽.
7> 심지연, 『김두봉』, 23~24쪽, 동아일보사, 1992.
8> 김두봉, 『조선말본』, 1~2쪽, 신문관, 1916.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한글운동의 선구자 한힌샘 주시경선생‘]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힌샘 #한힌샘_주시경 #한글 #김두봉 #최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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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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