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고 페미니스트인 내가 정착할 체육관을 찾았습니다

[릴레이 회원에세이: 운동하는 여자들Ⅱ] 체육관에서 느끼는 행복

등록 2020.04.08 10:10수정 2020.04.0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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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회원에세이: 운동하는 여자들Ⅱ] 평생 정착 체육관을 찾았습니다. ⓒ 한국여성민우회

 


지난 세월 스쳐온 운동을 돌아보자면 수영은 좋아하지만 여성 강사가 너무 없고, 헬스장에 가면 여기저기 쳐다보는 시선이 거슬리고, 요가원에 가면 내 기준에 너무 달라붙는 운동복이 부담스럽고, 크로스핏 짐에 가니 강사들이 여성회원들에게 힙업이니 S라인이니 다이어트나 외모 관련된 얘기를 해서 불편하고…. 그 불편함을 상쇄할 정도로 운동 자체가 매력적이라거나 내가 운동을 이어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진 것도 아니라서 늘 하다 말다 하는 것이 운동이었다.

어제의 나보다 강해진다는 확신

하지만 지금 3년째 다니고 있는 체육관은 여성이고 페미니스트인 내가 정말 즐겁고 편안하게,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왜냐면 관장님이 압도적으로 뛰어난 여성 지도자이고, 회원 중 여성의 비율이 높고, 언제나 안전하게 확실히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존잘'인 여성 지도자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되고, '존잘'이 시키는 대로 프로그램을 하기만 하면 무조건 어제의 나보다 강해진다는 확신이 있다. 함께 수업을 듣는 여성회원들이 그 증명이고 나도 예외가 아니다. 다 같이 그리고 각자 강해지며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달라진 나의 몸이 좋다

또한 체육관에 거울이 없고, 각자 편한 운동복을 입고 운동을 하며, 운동을 배울 땐 몸의 기능과 원리 등에 집중하기 때문에 내 몸에 대해 쓸데없는 판단을 하거나 보이는 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지금껏 계속 사회가 나에게 주입한 내 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나 체화된 감각 같은 것이 사라져 정신건강에도 매우 도움이 된다.


운동을 하다 보면 어깨가 더 광활해져서 재킷이 작아지고, 바지가 안 들어가고, 이두 삼두에 근육이 잡히고 온순한 엉덩이가 늘 성이 나있게 되는 등 체형이 전체적으로 달라지는데, 신기하고 뿌듯하다. 내가 운동해서 달라진 나의 몸이 참 좋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여성스러운 몸과는 상당히 다른데, 이 점도 마음에 든다.

내가 힘쓰는 것도 즐겁고 다른 여성이 힘쓰는 걸 보는 것도 좋다
 

체육관에선 케틀벨, 바벨, 풀업을 중심으로 한 근력 운동으로 그룹 수업을 진행하는데, 힘을 쓰는 것도 짜릿하다. 내가 힘쓰는 것도 즐겁고 다른 여성이 힘쓰는 걸 보는 것도 좋다. 지난 분기엔 못 들던 100킬로그램 넘는 바벨을 들고, 양팔에 30킬로그램 넘는 케틀벨을 얹고 스쿼트를 할 때의 원초적인 즐거움이 있다.

힘을 기르는 즐거움이 있고 힘을 쓰는 희열이 있다. 여성이라서 드는 무게의 기대치가 낮게 설정되어 있지 않다. 들 수 있으면 드는 거고, 훈련하다 보면 무조건 지난번 보다는 많이 들게 되어 있다. 누군가와의 대결이 아니라 나 자신의 발전에만 신경 쓰면 되어 마음도 편하다.
  
느슨한 체육관 커뮤니티의 행복

다들 한마음으로 운동에 빠지고 체육관에 빠지고 관장님에게 빠지면서 일종의 느슨한 체육관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 가끔 빡세게 힘쓴 수업을 마치고 시원한 맥주 한잔 하러 가기도 하고, 서로 필요한 물건을 공구하기도 하고, 같이 낙태죄 반대 집회에 가거나 안희정 무죄 규탄(1심) 집회에 가기도 했다. 체육관을 더 편하게 다니기 위해 이사 오는 회원도 늘어났다.

온갖 운동과 체육관을 거쳐 지금에 정착하기까지 불편하고 신경 쓰이고 화나는 일이 많았는데, 여성 관장과 여성 회원들이 안전하게 구축한 곳에서 편안하고 즐겁게 운동하니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눈에 띄게 건강해졌다. 슬프고 화나는 일이 생겨도 운동하고 땀 뻘뻘 흘린 후 회원들과 맥주 한잔 하고 잘 자고 나면 뭐 어때 싶어지는 것이다.

여성이고 페미니스트인 나에게 딱 맞는 운동과 체육관을 만나서 건강과 재미와 근육과 친구까지 다 얻었으니 앞으로의 시간은 또 얼마나 행복할지 기대가 된다.


글/들통(민우회 회원)
노화를 절감중인 노동자. 합정 ***체육관러.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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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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