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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저마다 반짝반짝 빛나던 학교가 그립다

청소년 둘과 집에서 지낸 지 석 달째... '학교의 기능'을 생각하다

등록 2020.04.08 11:56수정 2020.04.08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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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애와의 일이다. 중학생이던 아이가 하교하고 현관에 들어서는데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 뭔가 말하고 싶어 못 견디겠다는 듯 활짝 웃으며 "엄마"를 불렀다. 들어보니 체육시간에 발야구를 했는데, 자기가 찬 공이 생전 처음 멀리 날아가서 아웃당하지 않고 1루까지 무사히 뛰어 나가 아이들의 환호를 받았다는 이야기다.

'흠... 그래, 잘했네. 그런데 그게 뭐 그렇게까지 기쁜가...' 듣는 나는 심드렁한데, 정작 아이는 하늘을 나는 양탄자라도 탄 양 황홀경이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자신의 빛나는 순간이 더없이 행복한가 보다.

초, 중, 고 학창 시절 운 좋게도 상을 몇 번 받았더랬다. 지금 기억나는 건 상장의 내용도, 상 받은 이유도 아닌, 내 이름이 전교생 앞에 호명될 때 느꼈던 설레는 멋쩍음과 약간의 우쭐함이다.

학창 시절 그런 우쭐함의 기억을 가져서 손해 볼 건 없었지만, 아쉽게도 전교생 앞에 호명받는 상을 매번 탈 수는 없었기에 그보다 작은 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주 스스로를 못났다고 여겼던 것 같다. 마치 올림픽에 나가 은메달을 딴 것도 장한 일인데, 금메달을 못 받았다고 엉엉 울고불고하느라 은메달의 기쁨과 행복을 스스로 저버리듯이 말이다.

진즉에, 빛나는 순간을 일생에 몇 번 받기 어려운 큰 상이나 타인의 인정 같은 거창한 것에 한정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공 한 번 잘 찼다고 환호받은 걸 마냥 행복해하던 작은 애처럼 나도 일상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순간들에 더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아이마다 빛날 때는 따로 있나 보다. 딸아이에 따르면,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감탄스럽지만, 내내 존재감이 없던 아이가 반 대항 농구 경기에서 연거푸 결정적인 활약을 펼칠 때 "오, 쟤가 농구를 저렇게 잘했어?" 관중석 아이들의 감탄이 절로 터진단다. 언젠가는 모둠활동으로 율동을 짜는데, 평상시에 보여주지 않던 앞구르기를 대뜸 해서 갑작스러운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아이도 멋졌단다. 모두 그 아이만의 빛나는 때인 거다. 

또 한 번은 한 남학생이 한 여학생의 볼을 손으로 살짝 꼬집으며 무슨 말을 했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 여학생은 그 남학생의 말과 손길이 불쾌했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문제 삼지는 못했단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기는 어려웠던지 그 여학생은 같은 반 여자 아이들에게 속상하다고 토로했고, 이야기를 들은 한 아이가 벌떡 일어나 교실 뒤편에 서성이던 남자아이를 불러 세우고 "너, 왜 그랬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눈을 부릅뜨고 따졌단다.

평상시에는 조용하기만 하던 아이의 갑작스러운 그 당당한 행동에 주변 아이들이 깜짝 놀랐단다. 옆에서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던 우리 애는 자기 일처럼 따질 건 따지고 드는 그 조용하던 친구가 너무나 멋져 보였다고 한다. 그 남학생도 용기 있었단다. 장난이었다고 별 것 아니라며 뻗댈 수도 있는데 바로 "미안했어. 나쁜 의도는 아니었어" 하며 진지하게 사과를 했다 하니 말이다.

전해 듣는데 아이들이 모두 너무 이쁘다. 기분 나빴던 걸 그냥 넘기지 않고 아이들과 상의한 아이도 예쁘고, 대신 나서서 옳고 그름을 따져 사과를 요구하는 아이도 너무 예쁘다. 실수를 순순히 인정하고 부끄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게 사과를 하는 아이도 너무너무 이쁘다. 이런 순간이 아이들이 진짜로 빛나는 순간, 성장하는 순간이지 않을까? 서로 보고 배우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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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 우려로 개학일이 미뤄진 3월 30일 서울의 한 학교 교실 책상에 학습지가 올려져 있다. ⓒ 연합뉴스

 
청소년 아이 둘과 집에서 함께 지낸 지 벌써 꼬박이 석 달 째다. 아이들과 집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문득 '학교의 기능'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실 공부는 맘만 먹으면 인터넷 강의든 문제집 풀이든 독학하려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스스로 의지가 약해서 문제지만 말이다.

그럼 공부 말고 무엇을 위해 학교를 가는지 따져보다가 아이들이 빛나는 순간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아이들은 또래들과 이런저런 활동들을 함께 하며 서로 배우고 돌아본다. 그 안에서 관계를, 삶을 배우며 성장 중인 것이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스스로 빛나지 못해, 빛나는 또래들을 너무 오래 보지 못해 생기를 잃어가는 작은 녀석을 물끄러미 보다 안쓰러워진다. 아이들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힘차게 퍼덕거리며 학교 다닐 그 날이 절절히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브런치 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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