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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 아이들이 캐나다 이웃을 위해 한 일

연대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고립감도 이겨낼 수 있다

등록 2020.04.09 09:54수정 2020.04.0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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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었던 땅이 노곤노곤 녹으니 숨어 있던 싹들이 고개를 내밀어 꽃을 피우고, 겨우내 숨어 있던 새들이 마음껏 지저귀고, 찬기운 가신 바람이 머리카락을 날리운다. 또다시 봄이다.

자연은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봄이 왔으니 활짝 열어젖히라 한다. 변한 건 사람뿐인가 보다. 봄이 왔건만, 마스크로 얼굴 가리고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서지도 말고 대문 꼭꼭 걸어잠그라 한다. 태어나 한번도 겪어본 적 없는 기이한 봄을 지나고 있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취소' 전화를 받았던지, 학교는 물론이고 아이들의 방과후 활동들이 모두 중단되었다. 친구 집에 놀러갈 수도, 놀이터에서 놀이기구를 탈 수도 없다. 그러니 평일에 유일하게 허락되는 야외활동은 산책뿐이고, 이를 잘 아는 아이들은 매일같이 산책가자 졸라댄다.

산책을 하다보면 아이들 친구 가족과 마주칠 때가 있는데, 평소라면 이름 부르며 서로에게 달려갔을 아이들이 주눅 든 강아지마냥 부모 옆에 바짝 붙어서 살짝 웃기만 한다. 어른들도 멀찍이 떨어져서 간단한 인삿말을 주고 받는 것이 전부다.

앞에서 다가오는 사람이 보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길을 비켜주거나 아예 건너편으로 피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에티켓'이 되어버린 이상한 시절이다. 간혹 피하는 것이 미안한 듯 눈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에게서 그나마 위로를 찾곤 한다.

며칠 전에도 씁쓸한 기분을 삼키며 길을 걷던 중, 어느 집 창문에 붙어 있는 '하트'를 보게 되었다. 호기심에 다가가보니 최전선에서 코로나19에 맞서는 의료진들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기사에서 읽었던 'Hearts in the window(창문에 하트 붙이기)' 운동에 동참한 모양이었다.

각자의 집에 고립된 사람들이 창문에 하트 모양을 붙여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이웃에게 속삭이고 있다. 뉴브런스윅 주에서 대대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창문에 무지개 그리기' 또한 같은 취지의 운동이다. 희망을 상징하는 무지개 그림을 창문에 그려서 '우리는 괜찮을 거예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 운동은 그래서 'We will be okay' 운동이라 불리기도 한다.

며칠 후, '탕, 탕' 하는 소리가 우리집에 울려퍼졌다. 지하에 내려가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나무 조각들을 찾아냈다. 남편이 무언가 만들고 남은, 땔감으로나 쓰여질 것들이었다. 그중 평평하고 깨끗한 것을 골라내 긴 나무 막대에 못으로 이어붙였다. 내 손에 망치가 다 들리다니 코로나19가 참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는구나 싶었다.
 

아이들이 이웃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자고 만든 표지판. ⓒ 김수진

나무 조각들을 이리저리 이어붙인 요상한 물건을 들고오니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우리 가족 다섯이 하나씩 나무 조각을 골라 이웃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자고 말했다. 첫째 아이는 하트와 치어리더 그림을 그린 다음 'We can get through this'(우리는 이겨낼 수 있어요)라 적는다. 둘째 아이는 말풍선에 'Keep up the good work'(계속 잘해주세요)라고 쓴다.

따라쟁이 막내는 오빠의 메시지를 따라 적더니 그 뒤에 'Gavin's family'를 덧붙인다. 같은 동네에 사는 학교 친구가 떠올랐나보다. 나는 'Stay healthy and happy'(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세요)라고, 남편은 'Cheer up'(힘내세요)라고 꾹꾹 눌러 썼다. 마지막으로 꼭대기에 포옹하는 인형 두 개를 매달아 메시지 막대를 완성했다.

끝을 뾰족하게 깎아 앞마당에 세우는 건 남편 몫이었다. 아이들의 밝은 그림과 서툴지만 귀여운 글씨체가 햇살 아래 반짝 빛났다. 다음날 아침 차 한 대가 우리집 마당 앞에 잠시 멈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집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이 메시지를 보며 힘을 얻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막내아이 친구 게빈이 가족들과 산책하다가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고 활짝 웃는 모습도 보고 싶다.

육체를 병들이는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고자 고육지책으로 택한 '거리두기'가 고립과 소외, 우울과 같이 마음을 병들이는 매개체로 작용한다면, 바이러스를 잠재운다 한들 과연 옳은 선택이었다 말할 수 있을까?

사회적 거리두기란 애당초 성립이 불가능한 두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회'란 '공동생활을 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 집단', '같은 무리끼리 모여 이루는 집단'이란 뜻이다. '공동생활'이나 '모여'라는 말과 '거리두기'는 양극단에 위치해서 만날 일이 없는 단어들이 아닌가. 그런데 이 두 단어를 모아 바이러스를 퇴치해보자 한다.

그렇다면, 거꾸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거리를 두되 '사회'라는 의미를 잃지 않는 말 그대로의 '사회적' '거리두기' 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피한 이 상황에서도 분명 답은 있다고 믿는다. 집 안에 갇힌 것이 혼자뿐이라 생각한다면 외로움과 우울함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창문에 하트를 붙이든 무지개를 그리든 앞마당에 응원의 메시지를 심든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함께 지나고 있다는 연대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서로 얼굴 맞대고 지난 얘기 할 그날을 기대하며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

잃어봐야 소중함을 알고 없어봐야 값어치를 아는 우리들이다. 이제 우리는 아무때고 이웃집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자유를 잃어봤고, 주말에 지인들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의 기회를 잃어봤고, 친구들과 놀이터에 모여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잃어봤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갈 날이 있을 터이니, 그날에 가서 잊지 말 일이다. 이웃의 소중함을, 함께함의 가치를.

여름이 오기 전 어느 날,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집에 튤립이 만발했노라고, 와서 차 한 잔 함께 기울이자고.
덧붙이는 글 필자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에서 남편과 함께 세 아이들을 키우며 살고 있습니다
첨부파일 20200406_17404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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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째 손 맞잡고 함께 걷는 한 남자, 그리고 꽃같고 별같은 세 아이들과 함께 캐나다 런던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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