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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조선인 만난 미국인의 궁금증

[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 미국인이 본 구한말 조선의 의복과 교육

등록 2020.04.10 16:56수정 2020.04.1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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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초기 조선의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위해 젊음을 바쳤으나, 청나라로부터는 모략당했고, 조선으로부터는 추방당했으며, 본국 정부로부터는 해임당했다. 어느 날 일본의 호젓한 산길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의인 조지 포크에 대한 이야기이다[편집자말]
(* 이 기사는 구한말 조선에 머문 미 해군 중위 조지 클레이턴 포크의 이야기를 사료와 학술 논문 등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이전 기사 : "조선 백성의 삶이 피폐한 이유는..." 어느 미국인의 보고서]


지난 번 이야기에서 마지막 부분을 기억하시오?

그 날 부산에서 난생처음 조선사람들을 보았을 때, 왜 내가 그토록 좋은 인상을 받았는지 모르겠소. 우리의 보고서가 1883년 미국 정부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으므로 그걸 얽어본 당시의 미국인들은 조선인들을 멋있는 사람들로 여겼을 게 아니겠소? 그러나 우리 미국인 중에는 아주 고약한 자들도 있었소. 다음 신문 기사를 읽어보면 얼굴이 달아오를 것이오.
 
"한국인들은 매력 없고 불쾌할 뿐 아니라, 보면 볼수록 게으르고, 지저분하고, 파렴치하고, 부정직하며, 상상을 초월할 만큼 무식하고, 개인의 힘과 가치를 자각하는 데서 오는 자존감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이들은 미개한 야만인 정도가 아니라, 쇠락한 동양 문명의 부패한 산물이다."

이 기사는 내가 세상을 뜬 후인 1905년 조지 케넌(George Kennan)이라는 유명한 기자가 쓴 것이라오. 케넌은 미국내에 폭넓은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었으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기사를 읽었을 것이오. 그로부터 115년이 지났소. 지금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에게 어떻게 보이고 있을까요? 아마도 한국인들만큼 그토록 짧은 기간에 멋지게 변한 집단은 현대 세계사에서 찾아 보기 어려울 듯하오. 내가  때 보았던 게 옳았다고 생각하오. 케넌이 틀렸단 말이오.

한문 또박또박 쓰는 소년들, 한글은...

이제 다시 1882년 6월 6일 부산으로 돌아가야 하겠소.

나는 부산 사람들을 최대한 세밀하게 관찰해 보았다오. 얼굴 색깔은 일본인이나 중국인보다 더 붉은 기운이 돌더군요. 머리칼은 검정색에서 연한 적황색(light-reddish brown)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어요. 눈동자 윤곽도 다채로웠고요. 이로 보아 코카시아족과 몽골족이 혼성된 유럽인 계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들이 장소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흰 무명옷을 입고 있는 게 무척이나 이색적이었어요. 산뜻하고 하얀 새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은 누추한 가옥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더군요. 한편 비단은 거의 중국에서 수입해오고 조선에서 생산되는 것은 매우 적었습니다. 비단옷은 매우 부유한 사람이나 직급이 있는 관리들만 입더군요. 그외의 옷 감으로는 삼베와 아마포(linen)가 있는데 거친 삼베는 빈민층이, 매끈한 아마포는 부유층이 입었습니다.

남자는 통이 엄청 큰 바지를 입더군요. 복송씨에서 댓님으로 묶는 바지 위에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짧은 흰색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다시 허리가 잘룩한 두루마기를 걸쳐 입더군요. 두루마기에는 많은 주름살이 접혀 있는데 발뒤꿈치 내려오고 옷 소매는 넓고 매우 길더군요. 여성 의복도 특이하고 난해했습니다. 

남자들의 모자는 독특했습니다. 말총으로 만든 모자를 쓰는데 모자의 가상자리는 넓고 낮더군요. 중류 및 상류 계급의 남자들은 원통형 모자를 쓰고 관리들은 각각의 계급에 따라 서로 다른 모자를 쓰더군요. 말총으로 되어 있는 모자도 있고 밀집 모자도 있으며 대나무로 만든 것도 있었구요. 남쪽 바다에 떠 있는 퀠파르트(Quelpart: 제주도)는 말총 모자 생산지로 유명했습니다. 

소년들은 댕기를 땋아 내려뜨리더군요. 결혼을 하면 더 이상 그런 패션으로 머리를 땋지 않는데 그걸 축하하는 잔치가 열린다 하더군요. 남자들은 머리를 뒤꼭지에 짧게 말아서 뻣뻣이 세우고 장식용 핀으로 그걸 고정시키는데 그걸 상투라고 부르더군요.

양반들은 이런 상투위에 말총으로 된 망건이라는 걸 쓰고 그 위에 또 특이한 모자를 쓰더군요. 부산의 한 관리가 쓴 모자는 약 1인치 가량 간격이 나 있는 두 개의 테두리가 있다는 점이 특이했어요. 그 관리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모자를 벗어서 우리에게 보여주더군요. 앞으로 내려뜨린 끈에는 호박(琥珀)이 장식물로 붙어 있었는데 그건 관리의 신분을 나타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부산에서 쓰는 말은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였습니다. 많은 면에서 일본어와 흡사했어요. 일본어를 술술 말하는 부산 사람들이 많은 건 그 때문일 겁니다. 일본도 그렇지만 이곳의 식자들은 아주 많은 수의 한자를 쓰고 읽더군요.

교육이 상당히 일반화돼 있어 여자를 제외하고는 한문을 사용하고 있었어요. 조선인들은 한자를 약자나 흘림체 혹은 초서('grass hand' letters)로 쓰지 않고 인쇄체로 또박또박 쓰더군요. 내가 한문을 써서 질문을 해 보았더니 소년들이 금방 읽고서 한문으로 대답하지 않겠어요? 나는 아마도 조선인과 최초로 필담을 나눈 미국인이었을 겁니다. 

모든 고을의 서당에서 소년들이 천자문을 읽고 쓰는 것을 배운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기본 교육인 셈이죠. 조선 고유의 문자(한글)는 식자들에게 천시받고 있었다오.  무식자나 부녀자들만 사용할 뿐이었어요.

조선 여인들은 집안에 꼭 갇혀 있어서 방문자의 눈에 뜨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듣곤 했지요. 얼마 전에 우리 미국의 함선 스와타라호(Swatara)가 제물포에서 수교 교섭하며 머물렀던 동안에 미국 사관들은 단 한 명의 여인도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또 여성들의 바깥 출입이 허용되는 시간대가 아니면 현지인들도 밖에서 여성을 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런 상황은 서울을 포함한 서부 지역에 해당되는 이야기인 것 같았어요. 부산 일대의 노상에서 많은 여자들을 보았으니까요. 길을 지나가는 우리들을 집 앞에 서서 빤히 바라다 보는 여성들도 많았다오. 

다른 동아시아인들에 비하여 조선 남자들은 여성을 보다 정중하고 사려 깊게 대한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못 배운 촌 사람이라도 여성 곁을 지나갈 때에는 망아지에서 내린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여성에게 무례를 저질렀기 때문에 다른 남자들이 그를 회초리는 때리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는군요.

미국인들이 수집한 조선의 문물

부산 견문록은 이것으로 그칠까 하오. 사실 우리의 보고서는 보다 상세했어요. 참고로 조선에서 우리 미국인들이 수집했던 문물을 감상해 봅시다. 지금 미국의 스미소니언 협회에 소장돼 있는 이 물건들을 우리가 어떻게 수집했는지, 그 경위를 이야기 하려면 길어 질 것 같소. 그건 나중으로 미루어야겠소, 암튼 이것들은 내가 조선에 첫 발을 들였을 때 조선인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이오.
   

망건 19세기 후기 수집 ⓒ 미국 스미소니언 협회

 
 

모자 19세기 후기 수집 ⓒ 미국 스미소니언 협회

 

 

한글 기독교 교리 문답 19세기 후기 ⓒ 미국 스미소니언 협회

   

남자 옷 19세기 후기 ⓒ 미국 스미소니언 협회


  

짚신 19세기 후기 ⓒ 미국 스미소니언 협회

  

저고리 19세기 후반 ⓒ 미국 스미소니언 협회


하룻밤을 부산항에서 보낸 후 날이 밝자 우리는 제2의 일본인 거주지인 원산을 향해 북상했다오. 동해에서 우리는 저 멀리 오른쪽에 떠 있는 섬들을 보았지요. 망원경으로 울릉도도 보았고 독도도 보았다오. 독도는 우산도라고 불리고 있더군요.

이 대목에서 한 마디 안 하고 지나칠 수 없구려. 지금 일본인들이 독도가 자기네 것이라고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소? 아래 지도를 보면 맨 오른쪽에 독도(우산도)가 뚜렷이 그려져 있고 영자로 'Usan do'라 표기되어 있소. 영자 표기는 물론 모두 내 손글씨라오. 지금 이 지도는 지금 미국지리협회에 잠들어 있는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 같소. 
  

여지도 조지 포크 수집 ⓒ 미국 지리협회

 
(* 다음 회에 계속)
#조지 포크 #부산 #독도 #천자문 #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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