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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유권자가 김종인을 두고 '충격적'이라고 한 이유

[아이들은 나의 스승 188] 사전 투표소에서 만난 제자들과 선거 이야기

등록 2020.04.13 20:29수정 2020.04.13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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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총선 사전투표 첫날인 10일 부산 동래구 사직동의 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 김보성


얼굴을 본 지 얼추 넉 달 만이다. 그것도 학교 교실이 아니라 '사전 투표소'에서 아이들을 만날 줄이야. 마스크를 끼고 모자까지 깊이 눌러 쓴 차림이었지만, 먼발치에서도 단박에 그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두리번두리번 쭈뼛거리는 모습이 누가 봐도 '새내기 유권자'임을 알겠다. 발열 체크를 하고 손 소독제를 바르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어야 했으니, 생애 첫 투표를 요란하게 경험한 셈이다. 더욱이 비까지 내려 입구에서부터 북새통이었다.

3층 투표소까지 줄이 길게 늘어섰다. 선거사무원들이 나와 줄 선 사람들의 간격을 맞추느라 진땀을 빼는 모습이었다. 바닥에 일정한 간격으로 종이테이프를 붙여놓고 그 자리에 서서 대기하도록 오르락내리락하며 안내하고 있었다.

그렇게 20분 넘게 줄을 섰다. 생애 첫 투표라는 설렘 탓일까. 아이들의 얼굴에는 힘들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주민등록증을 체크하는 기계도, 투표용지를 출력하는 프린터도, 인주 없이 기표하는 만년도장까지도 신기해 하는 눈빛이었다.

"누구 찍었니?"
"비밀선거인데, 말하면 처벌 받는 것 아닌가요? 하하하."


아이들은 기표하고 투표함에 넣는 데 채 1분도 안 걸려 허무했다는 반응이었다. 누구를 찍을까 며칠 동안 고민했는데, 정작 투표하는 데는 1분도 필요하지 않았다는 게 서운했다는 거다. 한 아이는 우편함에 꽂힌 선거홍보물을 시험 공부하듯 들여다봤단다.

아이들에게 정당은 중요하지 않았다
  

10일 충남 아산시 탕정면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선관위는 코로나19에 대비해 상황관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 지유석

 
그들이 말하는 인물과 정당의 선택 기준은 기성세대와는 사뭇 다른 듯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신뢰한다면서도 자신의 선택 기준은 '그것과 별개'라고 말했다. 매일 인터넷을 도배하다시피 하는 여론조사가 사람들에게 마치 양자택일하라며 유도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선생님은 선거홍보물을 꼼꼼히 읽어보셨어요?
"당연하지."


한 아이의 갑작스런 질문에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선거홍보물의 겉봉투도 뜯지도 않은 채 그대로 폐지함에 버렸다. 올해 만18살이 된 아들 녀석이 그걸 다시 가져와 꺼내 읽는 걸 보고 솔직히 민망하긴 했다.

아이들은 부모님에 대한 '뒷담화'를 늘어놓았다. 우편함에서 꺼내 집에 가져오기는커녕 아파트의 폐지 수집함에 바로 버리라고 했다며 어이없어했다. 막상 그곳에 가보니 개봉 안 된 선거홍보물이 수북했다면서, 자기 부모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빳빳한 고급 용지에다 컬러로 인쇄되어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을 텐데, 폐지 취급 받는 게 안타까웠다고 입을 모았다. 내용물도 적지 않고 전국의 모든 가정에 배달됐다고 하면, 엄청난 자원 낭비라는 거다. 아이들다운 감수성인데, 듣는 내내 뒤통수가 따가웠다.

나아가 거리마다 나붙은 선거벽보도 문제 삼았다. 길을 가다 멈춰 서서 읽는 사람을 지금껏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면서 불필요한 행정력의 낭비라고 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영향일 거라는 이야기는 핑계라면서 공약에 대한 무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에게 '선거 공탁금' 제도가 시행되는 이유라고 설명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홍보 효과는 높이고 비용을 줄이려는 정부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돌아올 뿐이었다. 도리어 선거 공탁금이 가난한 정치 지망생들의 출마 자체를 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미 누구를 찍을지, 어느 정당에 투표할지 결정했는데, 굳이 꺼내 읽을 필요가 있겠니?"

왜 선거홍보물을 챙겨 읽지 않느냐는 아이들의 반문에 부모님들은 이구동성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지지하는 후보자와 정당의 어떤 공약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더니, 공약은 대개 대동소이하다면서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단다. 공약도 모른 채 투표하는 셈이라고 놀라워했다.

생애 첫 투표에 임하는 자신이 부모님보다 후보자들의 면면을 더 잘 알고 있다고 단언했다. 한 아이는 스마트폰을 켜서 후보자별 공약을 담은 이미지 파일을 보여주기도 했다. 공약을 살피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없는 기성세대를 향한 '죽비'처럼 느껴졌다.

공약에 대한 기성세대의 무관심을 아이들은 여론조사를 앞세워 인터넷과 TV에서 하루 종일 반복해 틀어대는 선거 방송 탓으로 돌렸다. 오로지 승패에만 연연할 뿐, 공약에 대해 설명하는 매체는 못 봤다는 거다. 한 아이는 여론조사가 과연 알 권리인가를 반문하기도 했다.

게임에 죽고 못 사는 아이들이지만, 정작 선거판을 게임처럼 보도하는 현실을 지적한 셈이다. 어느 곳에선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 된다는 '불문율'도, 선거를 이기고 지는 게임인 양 부추기는 매체 탓이 크다고 했다. 지역 갈등도 그들에게 부화뇌동한 결과라고 단언했다.

적어도 아이들에겐 '진영 논리'도 '대세론'도 먹히지 않는 듯했다. 결과적으로 누가 당선되고 어느 정당이 다수의 비례 의석을 차지하게 될지는 빤하다면서도, 그것이 자신들의 선택 기준은 아니라고 명토 박았다. 아이들은 이른바 '전략 투표'라는 말을 쉬이 납득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한사코 어차피 될 사람과 정당을 밀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건 여론조사 결과를 수용하라는 뜻이잖아요. 그럼 소수 정당은 영원히 소수 정당일 수밖에 없어요. 선거는 국회의원을 뽑는 절차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드러내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두 거대 정당에 투표하지 않은 것만큼은 분명해졌다. 투표소를 나오며 내친 김에 새내기 유권자인 그들의 후보자와 정당의 선택 기준을 캐물어봤다. 누구를 찍고 어느 정당에 표를 줬는지 알고 싶어서라기보다 10대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 정치판의 모습이 궁금해서다.

어른보다 나은 아이들

역시나 '위성 정당' 이야기가 가장 먼저 도마에 올랐다. 이를 아이들은 선거를 순식간에 양극단의 전쟁터로 만들어 모든 공약을 무력화시킨 주범으로 꼽았다. 한 아이는 두 거대 정당이 유권자들을 향해 양자택일하라며 협박을 한 것에 다름 아니라고 거듭 비판했다.

선거법 개정의 취지를 스스로 훼손했는데도 언론이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게 놀랍다고도 했다. 한쪽이 편법을 썼으니 우리도 가만히 당할 수만은 없다는 주장을 두고도 '샘샘'이라고 눙칠 수 있는지 황당해했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들이 가엾다고 표현했다.

공약이 없다고 공공연히 밝힌 정당에 투표하는 건 그 자체로 불법 아니냐며 되묻기도 했다. 비례대표제란 인물이 아닌 정당에 투표하는 방식이고, 정당은 정권 획득을 위해 정견을 같이하는 이들이 모인 단체인데, 공약이 없다는 건 정견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거다.

또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인물과 정당은 미리 배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국민 모두에게 수억 원을 지급하겠다는 정당도 있고,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기괴한 행적을 뽐내는 후보자들도 많다는 거다. 자칫 선거를 희화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었다.

속는 셈 치고 그들에게 투표하겠다는 친구들이 없지 않다면서 실질적인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투표를 장난처럼 여기는 아이들을 나무라기 전에, 후보자와 정당의 황당무계한 공약을 합법적으로 통제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짜 사표는 그들에게서 나온다면서.

비슷한 이름의 이름의 정당이 너무 많아 투표용지를 받아들고 잠깐 당황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오래 전에 사라진 정당이 등장하는가 하면, 긴가민가하며 헷갈리는 이름이 즐비하다. 공약도 밝히지 않은 채 오로지 유권자들의 착각을 바라는 '요행 정당'도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선택 기준 중에 으뜸은 단연 '의리'였다. 철새처럼 당적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정치인에 대한 혐오는 기성세대의 그것을 넘어선 듯 보였다. 정당의 이름이 조변석개하는 우리나라의 정치 풍토 탓이라고 했더니, 도리어 그들을 두둔하려들지 말라는 면박만 당했다.
  
아이들 입에서 김종인이 나온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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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총선 서울 종로구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가 11일 오후 대학로 혜화역 부근에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에게 '정권심판'이 적힌 머리띠를 묶어주고 있다. ⓒ 권우성


그들의 입에서 순간 튀어나온 이름은 '김종인'이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를 전혀 알지 못했다고 했다. 그를 야당에서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는 과정에서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다 보니 이름이 익숙해졌다면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 찾아보게 됐다고 한다.

그가 경제민주화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거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에 수훈갑이었다는 사실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국회의원을 다섯 차례나 역임한 화려한 정치 이력도 아이들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1960년대 당시 드물게 독일에서 유학한 지식인이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그가 가인 김병로의 손자로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점마저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가인 김병로가 누군가.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목숨 걸고 변호한 초대 대법원장이다. 하지만 내로라하는 가문과 정치 이력이 철새라는 그의 이미지를 지워내기에는 역부족인 듯했다.

아이들이 놀라워한 건 이것이다. 그가 1980년 광주 학살로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에 협력했다는 것과 계절마다 옷 바꿔 입듯 여당과 야당을 수시로 오갔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그런 그를 영입하려 안달하고, 그를 보고 표를 주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고 했다.

"그 분은 우리 같은 새내기 유권자들이 알면 안 되는 인물 같아요. 정치에 참여하는 생애 첫 투표인데, 냉소부터 배우게 될 테니까요. 이번 선거의 결과에 따라 과거 어느 기업가가 조롱했다는 '정치는 3류' 발언을 사실인 양 그대로 믿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한 아이는 그가 찍은 후보자는 낙선할 것이라고 했다. 선택한 정당의 지지율 역시 미미할 거라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첫 투표는 기성세대의 그것보다 더 당당하고 훌륭한 선택이었으리라 확신한다. 오히려 선거 연령을 낮추는 문제로 갑론을박했던 걸 반성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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