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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온라인수업 서비스로 외국산 이기고파"

[인터뷰] 영상플랫폼 '구루미' 이랑혁 대표가 웃지 못하는 이유

등록 2020.04.19 19:48수정 2020.04.1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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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플랫폼 '구루미'의 온라인 독서실 서비스 장면. 하루 1만여명이 이용한다. ⓒ 구루미

 
"과거 현대나 삼성같은 대기업의 성장 과정에서는 정부가 받쳐주는 게 있었죠. 그런데 소프트웨어의 경우에는 정부가 계속 외국산만 추천하고 있어요. 정부가 지원해줘야 국내 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데, 좀 더 생각해줬으면 합니다."

지난 9일 서울 강남구의 한 공유오피스에서 만난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화상회의, 온라인 교육 등을 위한 영상플랫폼 업체 가운데 불과 10%만이 국내 기업인 배경에 대해 설명하던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허공을 바라봤다.

온라인 영상플랫폼 스타트업 '구루미'의 이랑혁 대표. 그는 지난 2015년 창업 이후 요즘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시간 가량의 인터뷰 중 그의 휴대전화가 쉴 틈 없이 울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근무 중 화상회의를 하거나, 온라인 독서실을 이용하거나, 온라인 강의를 듣기 위해 구루미의 제품들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표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았다. 최근 정부가 사상 최초로 전국 초중고 학교의 온라인 개학을 시행해 영상플랫폼 기업에는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지만, 국내 기업에게는 먼 얘기였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코로나19로 영상플랫폼 업계가 활황이라 해도 국내 기업이 학교 쪽과 비즈니스를 할 가능성은 적은, 아니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줌', '웹엑스' 등 외국계 기업들이 막대한 자금을 들여 무료에 가까운 가격에 서비스하는 상황인데, 예산이 한정적인 현장에서 외산보다 비싼 국산을 이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쌍방향 수업 시범 운영 때는 외산인 줌을 이용했지만 수업중 끊김 현상이 발생하여 실제 온라인 개학땐 구루미를 사용했다"고 했다.

그룹별 토론 등 온라인 교육용 플랫폼에 특화된 구루미였기에 이 대표의 아쉬움은 더했다. 또 구루미의 경우 암호화 데이터 등을 따로 보관하지 않고 통신 기반으로 구동되기 때문에 외국계 기업의 서비스보다 더욱 안전하다고 그는 강조하기도 했다. 


창업 후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매출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연구·개발에만 매진한 결과였다. 이 대표는 "회사를 설립했을 때 아내가 제시했던 빚의 최대금액이 있었는데, 이것저것 계산해보니 그 금액을 넘었다"며 "아직까지도 아내에게 회사 회계정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국산 온라인 영상플랫폼 서비스가 설 자리는 없는 것일까? 이 대표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봤다.

"어렵게 개발해놨더니 교육부는 여전히 외제만 선호"
  

지난 9일 서울 강남구의 한 공유오피스에서 만난 이랑혁 온라인 영상플랫폼 '구루미' 대표. ⓒ 조선혜

- 회사를 설립한 계기가 궁금하다. 
"중소기업에서 IT 개발자, PM(프로젝트 매니저) 등으로 일했었는데, 지방으로 미팅을 가면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됐다. 6~7시간을 오가는 길에서 보냈는데, 막상 미팅은 1시간이면 끝났다. 실시간 화상회의를 할 수 있다면 더 일찍 집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회사를 만들고 보니 오히려 더 집에 못 가고 있다.(웃음)"

- 구루미에는 '온라인 독서실'이라는 서비스가 있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서 공부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용자가 늘었겠다. 
"온라인 독서실은 사용자들끼리 실시간으로 자신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서로 공유하는 기능이다. 가입자 수는 두 달 전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은 아침 6시부터 온라인 독서실에 들어온다. 새벽 1~2시까지 공부하는 사람도 있다."

- 실제 독서실 같은 효과가 있을까.
"최근 노무사 시험에 합격한 사용자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10개월 만에 합격했다는데, 5개월은 학원을 다니고 5개월은 오로지 구루미의 온라인 독서실을 이용했다고 한다. 서로 공부하는 모습이 보이고, 몇 시간 공부했는지도 나오니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하더라. 같은 온라인 독서실 안에서 그 분을 포함해 5명이 공부했는데, 3명이 노무사에 합격했다고 한다."

- 코로나19 확산으로 결국 온라인 개학이 시행됐다. 교육부와 함께 진행하게 된 사업이 있나.
"없다. 외국계 기업의 서비스가 정말 저렴하다. 우리 서비스가 사용자 1명당 1개월에 2000원이라고 하면, 외국계의 경우 불과 200원 가량이다. 구루미가 이렇게 제공하려면 적자를 감당해야 한다. 외국계 회사는 막대한 자본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 그럴수록 정부에서 국산을 이용해줘야 할 것 같은데.
"제조업인 현대나 삼성에는 정부가 예전에 보조금을 엄청나게 주지 않았나. 그런데 소프트웨어는 그런 인식이 없다. 여전히 소프트웨어는 무료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지원해줘야만 국산 소프트웨어 시장이 성장할 수 있지 않겠나. 

다행히 중소벤처기업부에서는 계속 '국산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해준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도 온라인 IR(기업공개) 때 구루미를 이용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국산에 대해 신경 써주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최근 1주일 사이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렇지만 교육 쪽은 계속 외국계 제품을 이용하고 있다."

"현장 목소리 빠르게 반영하며 글로벌 기업과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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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미 온라인 독서실 서비스의 모바일 버전. ⓒ 구루미

  
- 구루미만의 또 다른 차별점이 있다면?
"구루미는 일 대 다, 다 대 다 수업이 가능한 것으로 유명하다. 30명까지 온라인 강의실에 들어올 수 있다. 4~5명씩 그룹별로 토론할 때는 학생들이 다른 그룹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하면서도 선생님은 모든 그룹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능도 있다. 말 그대로 교실을 온라인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앱이나 다른 프로그램을 내려받을 필요 없이 URL(인터넷주소)만 입력하면 즉시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스마트폰으로도 바로 사용할 수 있다. 선생님이 실시간으로 퀴즈를 내고 학생들이 곧바로 풀 수 있는 기능도 있고, 파일 공유, 출석 확인도 가능하다. 출석 확인의 경우 다른 기업의 서비스에서는 찾기 어려운 기능이다."

"5년 내 상장이 목표... 투자 받으면 가격 더 낮추겠다"

- 온라인 강의 플랫폼으로 구루미를 사용하고 있는 학교나 학원이 있나. 
"경희사이버대에서 예전부터 이용했고, 최근에는 서울대 대학원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웅진씽크빅과 '공단기'로 유명한 에스티유니타스도 고객사다. 강남 대치동에 있는 온라인 과외 업체도 구루미를 이용 중이다. 개인과외 때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 코로나19를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 같다. 
"문화 자체가 달라졌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언택트'라는 시대적 배경이 굉장히 빨리 오게 됐다. 그 중심에 구루미가 들어가버린 것이다. 함께 언급되는 곳이 구글, MS, 라인 등 글로벌 기업들이다. 구루미가 가장 작은 회사다. 체력이 안 돼 튕겨져 나갈까 걱정이다. 

구루미의 기술력은 어느 정도 인정 받았다. 은행권 청년 창업재단에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해 육성하는 '디캠프'가 개최한 경진대회에서 지난해 우승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벤처캐피탈(VC), 투자자들에게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청중상도 받았다."

-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구루미를 잘 모른다.
"지금은 홍보가 너무 잘돼도 어려운 상황이다. 저를 포함해 직원이 10명 정도인데, 이용이 늘면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채용을 늘려야 하는데, 우선 돈을 벌어야 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유료고객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무료 사용자로 광고수익을 올리기에는 고객이 더 많아져야 한다. 현재 구루미 접속자 수는 80만 명 정도다.

2018년에 투자를 받기도 했는데, 이후에는 제 돈도 많이 들어갔다. 최근 투자자들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조만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5년 안에는 주식시장에 상장했으면 한다. 투자를 받는다면 가격도 지금보다 좀 더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앞으로의 꿈은?
"평소 구름을 좋아해 회사 이름을 구루미로 지었다. 또 인도어로 '구루'는 어떤 분야의 최고 전문가, 신적인 존재로 알려진 사람을 뜻한다. 사명에는 앞으로 클라우드 세상에서 구루미가 최고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다. 제 미래의 꿈은 학교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실현하고 싶다."
#구루미 #영상플랫폼 #온라인교육 #온라인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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