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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해리스 이임설, '인신공격'이 본질 아니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해리스의 근무 성적과 철학

등록 2020.04.15 11:05수정 2020.04.1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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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2018년 12월 4일 오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로 열린 주한 외교관 대상 정책설명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한국을 떠나고 싶어한다는 보도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임명권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11월 3일 대선 결과에 관계없이 11월까지만 근무하고 싶어한다고 보도되고 있다.

2018년 7월 7일 부임한 그가 이임하고 싶어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비판적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례로, 4월 9일자 <조선일보> 기사 '해리스 대사는 왜 굿바이 코리아를 원할까'는 그의 재임 중에 벌어진 한·미 마찰을 열거한 뒤 "하지만 해리스 대사는 이런 직무상의 부담보다는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인신공격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조선총독 같다', '콧수염이 일본 순사 같다'는 말들 때문에 속상해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이는 해리스가 자신의 근무성적을 냉정히 평가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역대 주한미국대사들과 비교할 때 그의 결정적 차이점은 외모나 혈통에 있지 않다. 바로 근무성적에 있다. 그런데도 그것에 대한 자평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한국인들에게 섭섭함을 표하고 있으니, 그가 자신의 성적을 잘 알고 있는 것인지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역대 미국대사와 공사의 임무들

미국대사나 공사가 한반도에 파견될 때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한국에 올 때 받는 특별한 임무 혹은 미션들이 있었다. 고종 임금 때인 1883년 부임한 루시어스 푸트 초대 미국공사의 최대 임무는 조·미 통상관계의 초석을 놓는 것이었다. 하지만 푸트 공사는 실패했다. 일본 및 청나라 기업들이 조선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859~1948년의 중국 세관 자료를 수록한 <중국 구(舊)해관사료>의 '조선 부록'에 따르면, 1885~1893년에 조선의 순무역액(재수출액 공제) 4670만 5213멕시코달러(은화) 중에서 미국과의 순무역액은 고작 159멕시코달러로 0.01%도 안 됐다. 일본과의 무역이 74.4%, 청나라와의 무역이 25.2%인 것과 대조를 이뤘다. 이 정도로 미국 기업들이 조선시장을 비집고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푸트는 결국 그 상태로 1885년에 조선을 떠났다.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하는 대한민국정부가 1948년에 수립된 뒤의 미국대사들도 각각의 미션이 있었다. 그들의 파견이 한국 정세변화와 거의 일치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각 시기 상황에 부합하는 대사들이 파견됐다. 1967년 5월 20일자 <동아일보> 기사 '한미관계 측면의 주역 주한미대사 7대'가 "해방 22년의 발자취를 한미관계의 측면에서 볼 때 미국대사의 임기는 공교롭게도 한국 정치의 터닝포인트(전환점)와 일치해 왔다"고 보도한 것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다.

미군정이 종결된 뒤인 1949년 4월 부임한 존 무초 대사의 임무는 <존 무초, 구술 역사 인터뷰, 1971년 2월 10일(John J. Muccio Oral History Interview, February 10, 1971>에 따르면 미군정청 사무를 대한민국정부에 성공적으로 이관하는 것이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대한민국정부의 사무가 미군정의 사무와 연속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한국전쟁 휴전을 추구하고 이승만 대통령은 북진통일을 추진하던 1952년 11월에 부임한 엘리스 브리그스의 임무는 어떻게든 이승만을 설득해 휴전협상을 성사시키는 것이었다. 1967년 5월 20일자 <동아일보>의 또 다른 기사인 '2대 브리그스 대사 종전 후 뒤처리 부심'은 "그는 한국에 부임하자마자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이 대통령과 빈번히 접촉하면서 휴전을 성립시키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해리 해리스의 미션은?

해리 해리스 역시 특유의 미션을 받았다고 해석할 만한 유력한 징표들이 있다. 2017년 12월 인도·태평양전략 공식화를 계기로 미국이 제1주적을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변경하는 한편, 북한과의 대결을 자제하고 북한을 회담 테이블에 묶어두는 전략을 개시한 직후에 태평양함대사령관 출신이자 대북·대중국 강경론자인 그가 한국에 발을 디뎠다.

이는 백악관이 그를 파견한 의도가 한미동맹을 인도·태평양 전략에 맞게 재조정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그가 이 전략의 주요 파트너인 호주로 파견될 뻔했다가 한국에 파견된 것은 한국과 호주에서 그가 할 역할이 비슷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북·미 대화 국면이 시작된 뒤에 대북 강경론자인 그를 서울에 두는 것은, 한반도 냉전구도로부터 이익을 누려온 미국 군산복합체를 안심시키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트럼프의 과도한 애정표현과 달리 북미관계가 실제로는 급진전되지 않을 거라는 메시지를 미국 보수세력에 전달하는 효과도 도출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대북평화 메시지를, 자국 내 매파에 대해서는 대북강경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하는 트럼프의 이중전략에 해리스의 이미지가 활용되는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파견 시기를 감안할 때 '부자 나라' 한국한테서 방위비 분담금을 더 많이 받아내는 것도 그의 미션에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그가 부임 후에 보여준 행적에서도 잘 드러난다.

위와 같은 임무들을 전반적으로 고려할 때, 그의 성과는 성공보다는 실패에 훨씬 가깝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맞춰 한미동맹을 강화하기는커녕 도리어 미국에 대한 거부감을 부추기는 우를 범했다. "문 대통령이 종북 좌파에 둘러싸여 있다는 보도가 있다"라는 부적절한 발언을 하거나, 내정간섭 논란을 자초함으로써 한국에서 미국의 이미지를 크게 떨어트렸다.

인도·태평양 전략과 관련해 그에게는 불운도 있었다. 미국이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려면, 중국의 태평양 출구에 있는 한국과 일본을 이 전략의 틀 속으로 잘 묶어야 한다. 그런데 아베 신조 총리와 극우세력이 경제보복으로 한국을 자극하고 한국 국민과 문재인 정부가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뜻밖에도 기존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 좌초 위기에 빠졌다. 그의 능력 밖에서 벌어진 일이기는 하지만, 재임 중에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인도·태평양전략에 차질이 빚어졌으니 그로서는 당연히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미국 국방부 기관지인 4월 8일자 <성조지> 기사 "주한미국대사 해리 해리스가 이임을 숙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와(US ambassador to South Korea Harry Harris mulls departure, report says)" 역시 로이터 통신을 인용해 해리 해리스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논란 때문에 좌절감을 토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역대 주한미국대사들이 한미동맹 못지않게 한일관계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한일관계 악화를 막지 못한 그로서는 당연히 그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의 강경 이미지 역시 미국의 대북전략에 기여하지 못했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손잡고 환하게 웃는 상황이 지속돼야만, 그와 대비되는 해리스의 강경 이미지가 미국 보수층에게 안도감을 주고 트럼프의 대북정책도 균형의 이미지를 띨 수 있다. 지금처럼 김정은과 트럼프가 서로 사랑한다고만 말할 뿐 실제로는 만나지도 못하고 도리어 미국의 대북제재가 강화되는 듯한 상황에서는 해리스의 이미지가 의미 없이 묻힐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 한국에 온 20세기 미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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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장관 '코로나19' 대응 설명회 참석한 주한 미대사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등 주한 외교단이 3월 6일 오후 외교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한국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및 방역 노력 등에 대한 설명회를 듣고 있다. 이날 강 장관은 입국 제한 조치 등을 자제할 것도 당부했다. 이날까지 코로나19와 관련해 한국 전역 및 대구 경북 등 입국을 제한하거나 격리하는 나라와 지역이 100곳을 넘긴 상태다. ⓒ 공동취재사진


위와 같은 저조한 성적를 일거에 바꿀 수 있는 게 있었다.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인상에 성공하고 해리스가 거기에 기여했다면, 위와 같은 실적 부진이 묻혔을 수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의도대로 방위비가 인상될 가능성은 이제 희박해졌다. 해리스가 부진을 만회할 수단이 거의 없어진 것이다.

이 같은 상황들을 종합할 때, 해리스는 성공한 미국대사라고 보기 어렵다. 임명권자의 미션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 자국의 이미지를 크게 떨어트렸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도 외모 지적이나 혈통 논란 때문에 한국을 떠나는 듯이 알려지는 것은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든지 일이 꼬이다 보면 소소한 비평에도 민감해지기 마련이다. 해리스 대사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그 같은 실패를 부추겨온 요인이 그의 내부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에 부임한 주한미국대사이면서도 마치 20세기에 부임한 미국대사처럼 행동한 것이 그의 성적 부진을 부추긴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이승만·장면·박정희 때의 미국대사들은 국무부 부차관보급에 불과했지만, 한국에서는 사실상 대통령급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한국 대통령과 자주 만나며 사실상 대등하게 대화했다. 무초 대사는 이승만과 언쟁한 것으로 유명하고, 브리그스 대사는 이승만과 흥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레이시 대사도 이승만과 불화를 겪었고, 4·19 혁명 때의 매카너기 대사는 이승만에게 하야권고까지 했다. 박정희 쿠데타 이후의 버거 대사도 청와대를 빈번이 출입했다. 그들은 미국총독을 연상케 할 만큼 한국 내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랬던 미국대사들이 기가 죽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다. 한국의 경제력이 상승하는 데다가 한·미 양국이 핵개발이나 주한미군 철수 등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면서부터 그들의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1978년 6월 3일자 <경향신문> 기사 '주한 미대사 (1) 무초서 스나이더까지'의 첫 문장은 아래와 같다.
 
"한미관계 30년을 통해 요즈음처럼 한·미 수평협력관계의 필요성이 강조된 적은 없다. 이미 미국은 종래에 서슴없이 들춰온 큰형(빅브라더), 후견인의 위치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그것은 냉전시대에 맺어진 한미관계가 그동안의 국제적 상황 변동과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의 국제적 지위 향상 등에 따라 필연적으로 나타난 길인지도 모른다."
 
위 기사의 끝부분은 인상적이다. "이 같은 변화가 국력의 신장에 따른 외교채널의 정상화라고 한다면, 언젠가는 일반적 외교관례대로 주한미대사도 외무부의 해당 국장을 주로 상대하게 될 날이 있음직하다"는 게 결론 문장이다.

지금으로 치면 외교부 미주국장이 주한미국대사의 카운터파트가 될 날을 전망한다는 이런 기사가 나왔을 정도로, 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주한미국대사의 근무 환경이 바뀌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1980년대 이후의 민주화운동과 반미감정이 미국대사들을 더욱 더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해리 해리스의 모습은 1970년대 후반 이전의 미국대사들을 연상케 할 만하다. 미국대사가 한국 내정에 간여하고 대통령한테 훈수도 하던 시절을 보는 듯하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해리스는 주한미국대사 매뉴얼을 '역사책'에서만 찾고 '신문 기사'에서는 찾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옛날 일만 알고 요즘 일은 모르는 사람처럼, 구시대 한미관계의 늪에 빠져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그가 미션에 실패한 원인이 객관적 국제정세뿐 아니라 그 자신의 근무철학과도 관련된 것임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는 21세기 대한민국에 와서 20세기 한미관계를 살다 가는, 타임머신 여행에 심취했다가 귀환하는 미국대사라고 말할 수 있다. 객관적 성적표에 더해 그 같은 개인적 특성이 그의 실패를 자초한 것이지, 그의 혈통이나 콧수염이 그의 실패를 조장한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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