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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6주기... 먹먹한 마음 달래줄 '생일' 전도연의 위로

[리뷰] 세월호 참사 소재로 한 영화 <생일>

20.04.16 11:14최종업데이트20.04.1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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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일> 스틸 컷 ⓒ (주)NEW

 
'정일(설경구)'과 '순남(전도연)'의 가족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 '수호(윤찬영)'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다. 어김없이 찾아온 수호의 생일을 앞두고, 가족들의 그리움은 더욱 커져만 간다. 사고를 떠올리기만 해도 치를 떠는 순남과 정일은 수호 친구들의 설득에 수호 없는 생일 파티를 여는데 동의하고, 이에 수호의 친구들은 함께 모여 서로가 간직했던 특별한 기억을 선물하기로 한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는 집단적 아픔 혹은 트라우마가 존재한다. 한국인들이 가장 최근에 경험하고, 또 가장 강력하게 기억하는 공동체의 아픔은 아마도 올해로 6주기를 맞이하는 세월호 참사일 것이다. 2019년 봄에 개봉했던 <생일>은 이러한 공동체의 상실, 아픔, 슬픔의 기억을 위로해주고 보듬어 주는 역할이 두드러지는 영화다.

<생일>의 첫인상은 '신중함'이다. 소재를 다루는 방식과 주제를 드러내는 방법 모두 굉장히 조심스럽다. 사실 세월호 사건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어두운 일면과 부조리들이 곪아 터진 재앙이라는 점, 단순한 인재가 아니라 언젠가 발생할 줄 알았던 예정된 일이라는 점은 대부분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사건이라는 소재가 촉발시킬 수 있는 논란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소재로부터 발생 가능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영화는 희생자가 아닌 생존자들에게 포커스를 맞추며 피해 간다. 사고 당시에도 언급이 많이 되었던 <타이타닉>과는 정반대의 선택이다. <타이타닉>은 침몰하는 배, 탑승자들의 분투 및 사망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 극적인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러나 <생일>은 배를 단 한 척도 등장시키지 않는 등 직접적인 묘사를 피한다. 

대신 영화는 생존자들과 유족들의 심리 묘사에 집중한다.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여러 단면을 단순히 옳고 그름의 이분법이 아닌, '수호'라는 단원고등학교 학생의 부재를 여러 인물의 시점에서 보여주며 다층적인 형태로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남은 자들의 슬픔, 상실감, 죄책감, 트라우마를 온전히, 함께 느낄 수 있다.

영화의 감정선은 후반부 수호의 생일파티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 생일파티는 해준 게 없어서, 해주고 싶은 게 있어서, 도와주지 못해서, 도움을 받아서 미안하고 죄스러운 이들이 아픔을 나누고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며 치유받는 카타르시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픔의 공유와 치유의 마법
 

영화 <생일> 스틸 컷 ⓒ (주)NEW


답답할 정도로 느리고, 비슷하고, 담담하게 쌓아 올린 모든 인물들의 감정선이 만들어내는 아픔의 공유와 치유의 마법인 셈이다. 동시에 영화 속 단 한 인물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 시퀀스가 이 생일파티 장면이기도 한데, 세월호 사건의 트라우마가 단지 보이는 사람 외에도 많은 이들에게 남아있다는 의미를 담은 연출로 보인다.

이처럼 인물들의 감정선을 충실히 따라가다 보니 <생일>은 그 감정을 전달할 배우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설경구와 전도연의 캐스팅은 제격처럼 보인다.

두 배우는 서로 다른 형태로 감정을 표출한다. 설경구가 맡은 정일은 억누른 감정이 새어 나오는 느낌으로, 전도연이 연기한 순남은 감정을 터뜨리면서 각자의 아픔을 전달하는 식이다. 이러한 대조적인 감정의 표출은 극의 흐름을 조절해주는 것은 물론,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에 대해 느끼는 차마 말하기 힘든 미안함과 참을 수 없는 분노의 감정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배우의 연기와는 별개로 인물을 구축하는 방식은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정일의 경우, 특정 사건 외의 시간에 행적이 모호하다 보니 특정 사건의 전개를 위한 도구적인 인물로 사용되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사실 영화는 한 사회의, 공동체적 트라우마를 위로하는 여러 방법 중 특히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영화는 현실의 아픔에 위안을 주고, 다가오는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종교의 역할을 일부 담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영화의 기능이 마냥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작품 내에서 판타지적으로 가슴 아픈 사건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영화들의 경우, 순간적인 위안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화 밖의 현실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데는 큰 힘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일>은 이러한 함정마저 피해 간다. 실제로 영화는 상실의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개인이 혼자서는 잊을 수 없을 때 공동체가 어떻게 인정하면서 극복해 나갈 수 있는지 그 과정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위로가 더욱 필요하고 털어놓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덤덤하게 안아주는 따뜻한 영화, 바로 <생일>이다.
영화리뷰 세월호 설경구 전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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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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