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암 완치판정은 지나간 이정표일 뿐

자연에서 숨은 길 찾기

등록 2020.04.16 14:14수정 2020.04.1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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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23일, 담당 의사는 수술 이후 암의 재발이나 전이가 없었기에 앞으로 특별한 증상이 없다면 3년 후에 종합적인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비록 '완치'라는 의사의 말은 없었지만 나는 일단 '완치판정'으로 이해했고 또 아내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2020년 1월 1일, 암 진단을 받은 환자에게 국가에서 고가의 진료비 부담을 덜어주던 산정특례지원도 종료되었다.

그러나 암이란 사람 간에 감염되는 질병은 아니지만, 수술한 환자의 경우 일반인보다 전이와 재발률이 높다고 한다. 때문에 완치판정을 받았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관찰하고 주의해야 하는 질병이다. 또 방사선과 항암 또 수술 후유증이 커서 평생 회복하기 어려운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꾸준히 관리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병이다.

특히 항문을 잃은 직장암 환자의 경우, 완치판정 후에도 더러는 복부에 인공항문인 영구장루를 달고 살아야하는 경우도 없지 않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평생 배변의 문제를 안고 가는 경우도 많다.

나는 어렵게 영구장루는 피했지만 대신 비정상적인 배변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누구에게 말하기 어려운 나만의 불편함을 간직한 채, 장애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실상 장애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처지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완치판정'이란 일단 암의 재발과 전이의 불안에서 위급한 고비를 넘겼을 뿐, 그보다는 내 인생에서 하나의 이정표라는 생각을 한다.
 

복수초 눈 속에서 피는 복수초는 봄의 전령사와 같은 꽃이다. ⓒ 홍광석

 
뒤늦은 고백이지만, 암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먹으면 배설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맛으로 먹는 음식만 중요하다고 생각했지 먹는 음식과 암의 관계, 또 배설의 관계를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음식에 대한 조심성도 약했고 절제도 부족했다. 지금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암을 유발한다고 알려진 음식도 가리지 않았다.

가끔 배탈이 나는 경우도 없지 않았으나 직장의 기능이나 인체에서 대장과 항문의 역할과 기능이 중요함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직장암이라는 진단을 받고도 완치 후 배변 때문에 고통을 받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뒤늦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만 어쩌면 나의 무관심과 무지 속에서 직장암을 키웠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완치판정 후 4개월째 접어들었다. 지금도 나는 아무리 보기 좋고 귀한 음식, 설사 먹어서 탈이 없다는 음식일지라도 재발이 우려되는 음식을 식탁에서 과감하게 배제한다. 또 맛있는 음식, 영양가 있는 음식,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 우선 내 몸에 해가 되지 않는 음식과 여러 질병의 면역력을 기르는 데 좋다는 유익한 음식을 찾아 선택하고 나에게 탈이 없는지 시험하는 일을 중요한 과제로 삼는다.

이제 젊은 날 즐기던 반주와 완전히 멀어졌으며 맵고 짠 음식은 피하고, 또 유제품의 직접 섭취를 금하고 붉은 고기를 멀리할 것 등을 명심하고 있다. 탄수화물을 소식하고 제철 과일과 채소를 거르지 않으며 부드러운 음식, 생선과 해조류를 중시하는 식습관을 정착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얻어진 체험을 통해 맵고 짠 음식, 시중에서 판매하는 유제품을 섭취하였을 경우 속에서 즉각 장이 반응하고 항문이 괴로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의로 권하는 경우도 사양하고 있다. 아마 음식 조심과 절제와 균형유지는 평생 마음에서 내려놓아서 안 되고, 또 양 손바닥에 새기고 가야 할 화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돌발변수만 없으면 배변 횟수는 하루 5회 정도로 줄었다. 나를 민망하게 했던 변의 지림과 잦은 배변으로 남몰래 눈물을 찔끔거렸던 시간도 거의 잊고 산다. 그러면서 병의 치료와 정신적인 아픔의 치유에는 개인의 의지와 노력도 중요하지만 시간의 기다림도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리라는 긍정하는 자세, 새로 먹는 음식과 배변의 상관관계를 관찰하는 자세도 중요하다고 여긴다(조금은 궁상맞은 이야기지만 나는 지난 3년간 매일 변의 횟수와 시간을 실험의 결과처럼 기록하고 있다).
  

수선화밭의 쉼터 마당 한켠의 수선화밭 풍경이다. ⓒ 홍광석

 
이제 가끔 찾아오는 지인들로부터 살은 빠졌으나 건강하게 보인다는 말도 듣는다. 실제로 텃밭 일이나 정원 가꾸는 일에 지장을 받지 않을 만큼 체력이 좋아졌으며 몇 년째 일정한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에는 수술 후 처음으로 1박 2일 모임에 다녀온 적이 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여행 전에 음식 조절은 기본이고 여행에 대비하여 여벌 속옷을 챙기는 등 몇 가지 사항을 준비하였으나 다행히 탈은 없었다.

현재도 가끔 장시간 드라이브를 하면서 적응력을 기르는 시험 훈련을 하고 있으나 아직도 불시에 닥치는 감당할 수 없는 돌발상황 여전히 부담이다. 만약 단체로 장거리 여행을 갔다가 예상할 수 없는 사태를 당해 10분 혹은 30분 간격으로 화장실을 찾아야 할 경우를 상상하면 난감해지리라 생각한다.

더구나 화장실 여건이 나쁜 외국에라도 나가서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여행은 망설이게 된다.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의 원인을 추적하고 묘책을 찾는 중이지만 아직 보이지 않는다.
 

동백꽃 겨울에도 싱싱한 푸른 잎과 붉은 꽃은 기다림의 미학을 가르쳐준다. ⓒ 홍광석

 
정원의 수선화는 이제 색이 바래는 중이고 붉은 동백꽃도 나른하게 지는 중이다. 할미꽃 진 꽃밭에 아이페리온, 물망초, 무스카리, 오점네모필라, 비올라, 베로니카, 미니마가렛 등 작고 귀여운 꽃들이 땅바닥에 올망졸망 주저앉아 생의 찬가를 부른다.
라일락 향기 진하고 철쭉이 꽃망울이 터지면 봄은 절정에 이르리라. 심은 지 10년이 지나 꽃이 핀다는 말이 맞는 것인지, 올해는 처음으로 모란의 꽃봉오리도 보인다.

나는 한겨울의 매운 추위에 인내하며 긴 기다림 끝에 존재감을 드러낸 그런 꽃을 보고 성찰하며 삶의 의미를 새긴다. 그리고 움직임 자체가 생존의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천천히 일하고 있다.

밭을 갈아 두둑을 치고 고추와 옥수수 심을 자리도 정했다. 호박을 심을 구덩이에는 밑거름을 많이 주어 숙성시키는 중이다. 오이는 하우스 안에 심었고 생강을 심은 두둑에는 마른 짚과 솔잎을 섞어 덮었다.

8년 전, 대문에서 현관까지 들어오는 길에 디딤돌로 깔아놓은 멧돌이 잔디에 묻혔기에 얼마 전에는 그걸 들어 올리는 일도 했다. 어제는 조팝나무 포기 나눔도 하고, 서부해당화 뿌리에서 덧나온 가지를 잘라 묘목을 만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텃밭 농사와 정원 일을 통해 치유의 감동과 보람을 느끼고 또 변화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일상에 거듭 감사한다.

온 세계에 코로나19로 인한 불안과 공포가 커지는 양상이다. 실시간 확진자와 사망자를 중계방송하듯 매시간 알려주는 언론의 뉴스를 보면 가난한 이들과 나처럼 기저질환을 가진 노인들이 많이 사망하고 있다. 그런 소식을 들으면 마치 악령의 손짓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온다.

바이러스에 신음하는 지구인들을 생각하면 정원의 꽃향기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말을 꺼내기 어렵고, 그냥 잘 먹고 잘 지낸다는 글조차 쓰는 것이 미안해진다. 어서 코로나19를 잡을 백신과 치료 약이 나오기만 기원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동안 고마웠던 벗들을 봄볕 가득한 꽃의 정원에 초대하여 정이 담긴 따뜻한 차 한 잔 나누겠다고 벼르던 아내의 소박한 희망이 멀어져 조금 아쉽다.
덧붙이는 글 다음카페 암싸사와 대직방에도 실을 예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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