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방역의 조화, 우린 또 '세계 표준' 만들었다

‘코로나 총선’은 유권자의 승리... ‘사회적 거리두기’ ‘비대면 접촉선거’ ‘선거 역학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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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minifat)등록 2020.04.20 15:46
 

더불어민주당이 21대 총선 결과 대승을 거둔 가운데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이낙연, 이해찬 상임선대위원장, 이인영 공동선대위원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세계 대유행'(팬데믹) 속에서 치러진 대한민국 총선은 여당 압승으로 끝이 났다. 온 세계가 주목한 것은 의석수보다는 바이러스 공격에 맞선 담대한 실험의 결과였다. 봉쇄와 통제라는 전제적 방식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면서 전염병에 맞서 새로운 공식과 표준을 찾으려 했다.

여당은 투표를 마친 뒤 4~5시간 만에 승기를 굳혔지만 코로나19 잠복기는 4~5일 정도다. 따라서 아직 '방역 선거' 최종 성적표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바이러스 공포를 이긴 투표율은 새 패러다임으로의 전환 가능성을 보여줬다. 사실 이번 선거는 여당의 정치적 승리라기보다는 방역당국과 유권자의 승리였고, 세계인이 주목했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한국 유권자와 방역당국이 코로나19로 선거를 연기한 미국과 프랑스 등의 나라에게 제시한 세계 표준을 3가지로 정리해봤다.

[표준 1] 투표율 66.2%,방역 당국을 믿는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5일 오전 충북 진천군 진천읍 장관1차부영아파트 경로당에 마련된 투표소 앞에서 유권자들이 줄지어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2020.4.15. ⓒ 연합뉴스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총선을 2~3주 앞두고 투표율이 저조하리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특히 치명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70대 이상 고령층의 투표율이 낮으리라고 예측했다. 또 30~40대 유권자들도 아이들에게 전염될 우려가 있기에 투표를 꺼릴 수 있다는 추측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모두 부질없었다.

66.2%. 지난 1992년 총선 당시 71.9%를 기록한 이래 28년 만에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이를 위해 유권자들은 마스크를 낀 채 1m 간격을 유지하면서 줄지어 늘어섰다. 투표소 앞에서 체온을 쟀고, 섭씨 37.5도 이상 유권자는 별도의 기표소로 안내했다. 손세정제로 손을 씻고, 비닐장갑을 낀 뒤 기표소로 가서 한 표 행사를 했다.

통행금지까지 시행하는 나라들이 볼 때 기겁할 일이지만, 코로나19로 자가격리 중인 사람들도 투표를 했다. 총 5만9천918명의 자가격리자 중 22%인 1만1151명이 참여했다. 방역당국은 발열·기침 등 증상이 없는 자가격리자들을 선별해 오후 5시20분부터 오후 7시까지 투표를 위한 외출을 허락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지자체 공무원이 1:1로 안내를 하거나, 투표소 출발, 대기장소, 도착, 자택복귀 등의 각 과정을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이나 문자메시지로 전담 공무원에게 보고해야 했다. 또 격리장소에서 지정투표소까지 이동시간이 자차나 도보로 편도 30분 미만인 경우에만 외출이 허용됐다. 이들이 대기소에서 유지해야할 거리는 일반 유권자와는 달리 2m였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16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자가격리자 중 4건의 무단이탈 사례가 발생했다. 이중 1건은 당구장이나 PC방, 할인마트, 휴대폰 가게 등을 방문한 사례로 고발조치할 예정이다. 위반 사례가 경미한 나머지 3건은 추가 조사해 고발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이밖에도 마스크를 안 쓰고 투표장에 갔다가 제지당한 한 유권자가 난동을 부린 소동이 있었고, 너무 줄이 긴 나머지 1m 이내로 밀착한 투표소가 있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대체로 질서는 유지됐다. 방역당국이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해서 결정한 지침이 주효했지만, 유권자도 자기 건강을 지키는 일이었기에 기꺼이 따랐던 것이다.

투표율 66.2%는 코로나19 공포로 민주주의를 유보하거나 희생시켜서는 안된다고 유권자들이 자각한 결과물이다. 투표 과정에서 확진자가 발생해도 방역당국이 감염 경로를 추적해서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숫자이기도 했다. 

[표준 2] 비대면 접촉 선거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서울 광진구(을)에 출마한 오세훈 미래통합당 후보가 14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역 앞에서 유권자들과 주먹인사를 나누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유성호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하는 데 사용된 강력한 무기는 '조용한 질주'였다. 다른 전염병과 달리 증상이 없거나 가벼울 때에도 조용하게 전파됐다. 이 때문에 사스나 메르스 등 다른 전염병에 비해 전파 속도가 매우 빨랐다.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수 있는 코로나19 기초감염재생산지수(RO)를 5.7로 발표했다. 우리 질병관리본부는 각국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밝혔지만 그만큼 전파율이 높다. 식당, 카페 등 사람들이 모일 만한 곳을 폐쇄한 외국의 눈으로 볼 때 유권자 수 천만 명이 참여하는 21대 총선은 경이롭고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코로나19의 조용한 전파에 맞선 우리 선거 전략은 '조용한 선거'였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일명 비대면 접촉 선거였다. 우선 대중들을 모아놓고 벌이는 유세가 거의 없었다. 선거 때면 으레 등장하는 식당 접대와 선심 관광 등 돈이 많이 들어가는 선거행태도 언론 지면에 등장하지 않았다.

선거기간에 '입'을 최대한 풀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해왔던 후보자들은 마스크로 입을 가렸고 피켓을 들었다. 후보자들은 유권자들과 악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가벼운 주먹 악수로 대체했고 방역당국은 이조차도 자제를 요청했다. 번호판을 등에 붙인 선거운동원들도 마스크를 쓴 채 눈빛만을 교환하면서 명함을 돌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후보자들은 유권자들과의 접촉면이 줄어들었지만, 사실 총선은 선거운동 2주간의 성적표는 아니다. 지난 4년간 후보자뿐만 아니라 소속 정당의 정치 활동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이다. 따라서 비대면 접촉선거는 비용을 줄이고 유권자들에게 객관적 심판의 거리를 제공했을 수 있다.

[표준 3. 역학조사] '깜깜이 정보'에 휘둘리지 않는 깐깐한 유권자
 

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각 지자체에서 나온 공무원들이 방역복을 입은 채 외국에서 입국한 승객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대비 안전한 귀가를 위한 교통편을 안내하고 있다. 1일부터 모든 해외입국자들은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하며, 위반시 정부는 무관용원칙으로 처벌할 것이라 밝혔다. ⓒ 권우성

 

조용한 바이러스 전파에 맞서는 방역당국의 위력적인 무기는 진단 키트와 빠른 검사였다. 16일 0시 기준으로 53만 8775명이 검사를 받았다. 이중 음성으로 판정된 인원은 51만 3894명이다. 이 수치에는 요양병원 등의 전수검사와 환자를 대상으로 여러 번 실시되는 검사는 제외돼 있기에 실제 검사 건수만 보면 100만 건에 육박한다.

방역당국이 집단감염을 막는 데 사용한 또 다른 무기는 역학조사였다. 휴대폰 위치추적, 카드 내역, CCTV 등 IT 기술이 활용됐다. 확진자의 이틀 전 동선까지 파악해 접촉자를 가려내고 자가격리를 실시했다. 최근 2주간 발생한 환자 중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소위 '깜깜이 환자' 비율을 2~3%대로 묶어둘 수 있었던 것도 역학조사의 효과였다.

과거 우리 선거판은 '깜깜이 정보'에 휘둘리는 일이 많았다. 각 정당이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 프레임을 짜면 일부 언론이 이를 받아 자사에 유리한 보도를 하면서 선거판을 흔들어왔다. 상대 정당을 향해 퍼붓는 마타도어도 검증없이 퍼나르면서 선거판을 과열시키기도 했다.

이번 총선에서는 어땠을까? 조용하게 치러진 선거였기에 대형 이슈가 터지지는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사사건건 발목 잡는 야당심판을 제기했고, 미래통합당은 문재인 정권 심판을 내걸었지만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애초부터 선거 프레임이 코로나19에 대한 방역당국의 평가를 놓고 벌이는 '코로나 선거'로 짜여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기억되는 사건이 있다면 미래통합당 차명진 후보의 막말 파문이다. 그의 제명을 놓고 당 지도부가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혼란만 가중시켰다. 긴급재난지원금과 관련해서도 미래통합당의 지도부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자중지란의 모습을 보였다. 또 <중앙>이 보도하고,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선거 전날 받은 방역당국의 '코로나19 검사 축소' 의혹도 있었다.

하지만 선거 결과 미래통합당은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이를 굳이 방역당국 전략과 비교하자면, 유권자들의 선거 역학조사 능력의 신장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후보자 발언과 행동을 검색할 휴대전화를 지녔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시간도 많아졌다. 또 단톡방과 유튜브, 이메일을 통해 필터링된 정보도 받아보고 있다. 정당과 후보자들의 발언과 행동을 깐깐하게 검증하면서 따질 수 있는 유권자가 많아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유권자들이 이번 총선을 통해 해외에 전하는 또 다른 메시지는 '신뢰'이다. 국민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하는 리더십이 선택받는다는 점이다. 선거 다음 날인 오늘은 세월호 6주기다. 차명진 후보는 예외이지만 이번 선거에서 세월호가 많이 언급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최근 방역당국을 보면서 박근혜 정권을 끊임없이 상기했을 것이다.

여당 압승이라기보다 방역당국 압승인 이번 선거의 가장 큰 무기는 국민들의 신뢰였다. 사실상 이번 총선의 승자라고 할 수 있는 방역당국에게 '방역 총선' 평가를 부탁했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16일 정례브리핑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금 상황(코로나19 세계대유행)에서 세계 최초로 국가적 차원의 선거를 치른 나라가 됐습니다. 국민들의 참정권을 철저히 보장하면서도 방역에 관한 안전을 고려하는 이 두 가지의 목표가 조화를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은 숙제였습니다. 선거 관련기관과 해당 부처들이 함께 지혜를 모았고, 국민들께서 잘 이해하고 따라주셨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염전파 우려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의 사전적인 조치들, 방역적 측면에서 예방할 수 있는 적정한 조치들을 현장에서 강구했고, 국민들의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투표율이 높았다고 평가합니다. 다만, 코로나19의 특성상 잠복기 등을 고려할 때 1~2주일 정도는 지켜봐야 방역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김 총괄조정관의 말처럼 1~2주가 지나야만 최종 방역 성적표가 나오고, 아직까지 코로나19와의 전쟁이 끝이 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유권자들은 이미 또 다른 세계 표준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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