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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구민이 강남에서 당선된 이유... 아직 유효한 24년 전 전략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강남 3구 보수 성향 투표의 기원

등록 2020.04.20 07:49수정 2020.04.2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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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부르며 눈물 흘리는 태구민 후보 16일 서울 강남갑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태구민(태영호) 후보가 강남구 선거사무실에서 당선이 확실시 되자 애국가를 부르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미래통합당 태구민(태영호) 후보의 당선이 화제다. 탈북민(탈북자) 이미지가 강한 그는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 지역인 강남갑에서 58.4%의 득표를 거둬 사실상 압승을 거뒀다.
 
이 일이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그가 탈북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강남갑에서 당선됐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그간 이곳에서 당선된 역대 국회의원들과 비교할 때 그의 이미지는 확연히 다르다.

2015년 5월 가족과 함께 망명한 태구민은 그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격렬히 비난했다. '김정은은 비핵화 의지가 없다'며 북미정상회담에 도움이 안 되는 발언들도 쏟아냈다. 이번 선거운동 과정에서 부동산 세금 문제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표하기는 했지만, 그의 최대 관심사는 김정은 위원장 비판과 탈북민 지원에 맞춰져 있다.

당선이 유력시되던 16일 새벽 MBC와의 인터뷰 때 '국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라는 질문에 그가 가장 먼저 언급한 것도 탈북민 강제북송 금지다.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뒤 귀순한 북한 주민 2명을 북으로 추방한 작년 11월 사건이 재연되지 않도록 북한주민 추방 금지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가 탈북민 인권운동에 나서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또 북한 정권 비판 활동 역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강남갑 유권자들이 그런 활동을 중점 지원하고자 그에게 압도적 승리를 안겨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종부세 부과 등 이른바 '세금폭탄'을 반대하는 미래통합당 후보이기에 그를 뽑아줬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는 신사동·압구정동·청담동·논현동·역삼동 전체에서 58.4%를 득표했다. 그중에서도 압구정동 득표율은 78.3%다. 현대아파트가 밀집한 압구정동 1·3투표소의 경우는 각각 87.5%와 86.6%였다. 그가 보수정당 후보라는 점과 더불어 부동산 정책에 대한 반발이 그의 당선에 크게 기여했음을 추정케 하는 자료다.
 
처음부터 강남이 이러진 않았다... 야당 지지와 소신투표의 역사 
 

반포주공아파트 반포주공아파트는 동작대교 남단 한강변을 매립하여 조성한 16만7000평(55만여㎡)의 부지에 건설됐다. 242억원이 투입된 반포1단지는 초대형 아파트단지로 당시로서는 중대형 평수인 22평형, 42평형, 64평형으로 구성되었고, 중앙난방과 복층형이 처음 도입되어 주민들의 위화감을 조성하는 문제점이 제기됐다. 1978년 5월 20일 촬영 ⓒ 서울역사박물관 디지털 아카이브


태구민 후보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강남 3구는 보수 정당의 텃밭이다. 이곳에서 출마하는 보수 정당 후보는 결정적 하자만 없다면 상당한 당선 가능성을 안고 출발선에서 발을 뗀다. 북한 정권 비판과 탈북민 정책에 주력하는 태 후보가 당선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 가능하다.

그런데 부촌이 무조건 보수 정당을 찍는 것은 아니다. 부유한 지역이라고 해서 무조건 보수 정당을 찍는다면, 박정희·전두환 시절에 두드러졌던 여촌야도 현상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공업화정책의 결과로 도시가 훨씬 부유해졌는데도, 그 시절에는 보수 여당이 농촌의 지지를 받고 야당은 도시의 지지를 받았다.

과거에는 전국에서 가장 잘사는 서울 지역에서 민주 계열 정당이 강세를 보였다. 한마디로 서울은 '야성의 도시'였다. 이는 잘 산다고 해서 무조건 보수 정당을 찍는 게 아님을 잘 보여준다.

이 점은 강남 개발로 인해 강남권이 부자 동네가 된 이후 역대 선거에서도 드러난다. 1975년 10월 1일 성동구에서 강남구가 독립되면서부터 강남권 역사가 본격화됐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강남권은 야당 성향을 표출했다. 서울 시내 여타 지역들처럼 여촌야도 경향을 보였던 것이다.

1개 선거구에서 2명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로 치러진 1979년 10대 총선 때, 지금의 서초구까지 포괄했던 강남구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는 야당인 신민당의 정운갑 후보였다. 51.5%를 득표한 그는 28.4%를 기록한 2위 민주공화당(공화당) 이태섭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전두환 신군부의 12·12 및 5·17 쿠데타로 민주정의당(민정당)이 정권을 잡은 뒤에 치러진 1981년 11대 총선에서는, 민정당으로 당적을 바꾼 이태섭이 35.9%를 얻어 2위인 민주사회당 고정훈 후보(29.7%)와 동반 당선됐다. 하지만 이 시점은 상당수 정치인들이 정치규제 대상자로 묶인 데다가 민정당 2중대인 관제 야당들이 득세한 탓에 정통 야당이 힘을 쓰지 못할 때였다. 그렇기 때문에 11대 총선에서 민정당 후보가 당선된 것을 두고 이 지역에서 보수 정당이 강해졌다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이 점은 정통 야당이 정계에 복귀한 1985년 12대 총선에서 신한민주당 김형래 후보와 민한당 이중재 후보가 각각 1·2위를 차지하고 민정당 이태섭이 3위로 밀려난 데서도 확인된다.

강남권에서 민주 정당이 우세를 점하는 경향은 6월항쟁 이후의 소선거구제(1선거구 1인 선출) 하에서도 이어졌다. 1988년 13대 총선 때 강남권 6개 선거구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보수 정당 후보는 삼성동·대치동·개포동·전곡동·일원동이 포함된 강남을에서 출마한 이태섭뿐이었다.

동일한 경향이 3당 합당 뒤의 1992년 14대 총선 때도 연결됐다. 강남권 6곳에서 보수 정당이 당선된 곳은 민주자유당(민자당) 김덕룡 후보를 배출한 서초을뿐이었다. 이때 강남권 여타 지역에서는 야권 거물들이 대거 당선됐다. 서초갑에서는 신정치개혁당의 박찬종, 강남갑에서는 통일국민당의 김동길, 강남을에서는 민주당의 홍사덕이 당선됐다.

1981년 12월 29일자 <경향신문>에 강남 학군의 인기를 반영하는 '강남에 학생 위장전입 러시'라는 기사에 실린 데서도 느낄 수 있듯이, 강남권이 최고 부촌이 된 것은 1992년 14대 총선보다 훨씬 이전이다. 그런데도 1990년대 초반까지도 강남 유권자들은 보수 성향을 갖지 않았다.

14대 총선은 민정당 주도하에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이 3당 합당을 통해 민자당이라는 보수 대연합을 이룬 뒤에 치러진 첫 선거였다. 그런데도 강남권은 보수 대연합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야당 후보들에게 표를 던졌다.

1996년 1월 31일 자 <한겨레> 기사 '4·11 총선 판세 예비점검 3. 서울 강남권역'이 "서초에서 강남과 송파를 거쳐 강동까지 이어진 강남 지역은 특성상 서울에서 가장 지역적인 바람을 타지 않는 곳"이라며 "대체로 인물로 승부가 갈라지는 곳"이라고 높게 평가한 것은, 강남권 유권자들이 집권여당인 보수 정당에 무조건 표를 주지 않고 유능한 후보들에게 소신 투표를 했기 때문이다.

1996년 신한국당, '강남 벨트'를 묶다
 

1996년 15대 총선 홍준표 후보 선거벽보 ⓒ 선거정보도서관

 
이런 강남권의 정치성향을 보수 성향으로 바꾸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이 있다. 바로 신한국당의 1996년 총선 전략이다.
 
1988년 총선에서 299석 중 도합 230석을 차지한 민정당(125석), 통일민주당(70석), 신민주공화당(35석)이 민자당으로 뭉쳐 1992년 총선에 임했는데도, 민자당은 과반수 확보에 실패했다. 1988년 민정당 의석보다 약간 많은 149석을 얻는 데 그쳤다. 이로 인한 보수 진영의 위기감이 낳은 선거 전략 중 하나가, 야성의 도시인 서울에 보수 정당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서울 시내 최고 부촌들을 하나의 벨트로 묶는 것이 바로 그 전략이었다. 나란히 붙어있는 서초·강남·송파구를 강남 벨트로 묶고 이 지역의 연대감을 강화했다.

1996년 2월 4일자 <한겨레> 기사 '신한국, 강남벨트에 총선 사활'에 이런 대목이 있다.
 
"신한국당은 서울의 강남 지역을 '김영삼 벨트'라고 부른다. 신한국당이 15대 총선에서 서초·강남·송파로 이어지는 이 지역을 그만큼 중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2일 뚜껑을 연 공천에서도 이 지역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가 확인됐다. 신한국당은 서울 어디에 내놓아도 당선을 자신했던 최병렬 전 서울시장을 전격적으로 발탁해 서초갑에 배치했다. 뿐만 아니라 홍준표 변호사(송파갑)와 최한수 건국대 교수(송파병) 등 인사를 차출했다."
 
신한국당이 강남권에 공을 들이는 이유에 관해 이 기사는 "47개 의석이 걸린 서울에서 22석을 목표로 삼고 있는 신한국당으로서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도 이 지역에 사활을 걸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한 뒤 "신한국당이 이 지역에서 승리할 경우 중산층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신한국당은 단순히 유력 후보들을 강남권에 배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강남권 후보들의 상호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이 지역 유권자들이 보수 후보들을 매개로 연대감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해 3월 21일 자 <한겨레> 기사 '뭉쳐야 이긴다, 인접지역 공동전선 달라지는 선거문화'는 이렇게 말한다.
 
"신한국당 서울 강남 갑·을, 서초 갑·을 등 4개 선거구 후보들은 지난달 말 '강남·서초 윈·윈 벨트'를 발족했다. 강남·서초 지역이 동일 생활권에 속하고 지난해 서울시 구청장 선거에서 유일하게 여당이 승리한 곳이란 점 등에 착안해 공동 선거운동을 생각해낸 것이다. 이들은 앞으로 4개 지역 공통공약 설정, 합동정당연설회·공동공명선거실천결의대회 개최, 공동 지역순방, 홍보물에 사진 같이 싣기, 공동 영상물 제작 등을 할 계획이다."

1992년 대선 직전의 초원 복국집 사건 당시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은 부산 지역 기관장들을 복국집에 모아놓고 "우리가 남이가?"라며 김영삼 당선을 위해 영남의 단결을 촉진하자고 열변을 토했다. 이 발언의 유출로 인해 민자당이 타격을 입는 듯했지만, 도리어 영남 지역감정에 불이 붙으면서 김영삼이 순조롭게 당선될 수 있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전략의 응용판이 1996년 총선의 강남벨트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강남 3구 유권자들에게 서울 부촌 주민이라는 일체감을 심어주고, 이들의 보수 성향을 자극한 신한국당의 총선 전략이 강남권 보수화를 자극한 계기였다고 볼 수 있다.
 
2016년에 <한국행정학회 학술발표 논문집>에 수록된 오성택 선관위 연구관의 논문 '보수지역주의의 추세에 관한 연구 - 제10대~제20대 국회의원선거의 강남3구 선거구를 중심으로'는 "1996년 4월 11일 실시한 제15대 국회의원선거의 강남 3구 전체 7개 선거구에서 송파구병 선거구를 제외하고 나머지 6개 선거구에서 보수지역주의 정당이 당선된 후 실시된 선거에서도 보수지역주의 현상이 심화되었다"고 설명한다.
 
위기에 처한 신한국당이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강남벨트 전략을 내놓은 게 뜻밖에도 주효함에 따라 1996년부터 강남권의 보수화가 나타나고, 이런 분위기가 태구민 후보의 당선이라는 지금의 현상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016년 20대 총선에서 이 철통에 살짝 금이 갔다. 강남을에서 민주당 전현희 후보가 당선되고, 송파병에서 민주당 남인순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송파을에서는 민주당 최재성 후보가 2018년 재보선 때 당선됐다. 이번 21대 총선에서는 전현희 후보와 최재성 후보는 낙선했지만 남인순 의원은 재선에 성공했다.
 
강남권이 부촌이 된 것은 박정희식 경제개발의 결과였다. 하지만 이런 경제개발에 대해 계속 향수를 갖는 것은 강남권의 미래에 결코 이롭지 않다. 코로나19와 관련해 국민 대부분이 기본소득제를 말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데서도 나타나듯이, 지금 한국 경제는 기존 경제체제와는 다른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식 경제개발로는 더 이상 적응할 수 없는 4차 산업혁명으로 한국 사회가 접어드는 현상은, 강남권의 보수 성향에도 중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1996년 이후의 '강남권 투표 스타일'도 고정불변은 아니게 될 거라는 이야기다.
#강남3구 #태구민 #태영호 #강남갑구 #강남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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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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