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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야, n번방 터트리지마" 선거유세 중단시킨 전화

어느 페미니스트 후보의 21대 총선 보고서

등록 2020.04.20 19:24수정 2020.04.2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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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신민주 시민기자는 21대 총선 은평을 지역구에 기본소득당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편집자말]
'어머니 은평'

초선 의원, 현역 의원이자 21대 총선에서 재선을 달성한 강병원 의원의 슬로건을 유심히 본 하루가 있었다. 공보물과 벽보에 '어머니 은평'이라는 단어가 크게 쓰여 있었다. 어쩌면 그 슬로건을 발견한 날에 은평에서 출마를 결심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랫동안 여성은 가족의 일원으로서만 취급되었다. 임신-육아-출산만 있는 여성 정책은 여성을 독립적 인격이 아닌 가족의 일원으로서만 상상하게 만들었고, 아직도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삶 대신 가족을 위해 헌신할 것을 요구받는다.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딸로 불리는 동안 여성은 자신을 위한 시간과 자원, 이름을 잃었다. '어머니'라는 단어는 쉽게 포용적인 이미지의 묘사로서 사용되기 일쑤였고, 그만큼 여성에게만 강제되는 가족을 위한 희생은 당연한 것 혹은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되었다.
 
'어머니 은평'이라는 슬로건을 본 후, 자연스럽게 나의 슬로건도 생기게 되었다. "누군가의 어머니, 아내, 딸이 아닌 내 이름으로 불리는 세상". '어머니 은평'이라는 말 속에 담길 수 없었던, 대변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기본소득당이라는 작은 정당이 만들어지기도 전, 나는 출마를 결심했다.
 
억울하면 애 낳고 거대 정당 후보로 출마하라? 차별적 선거법
 

<부모 없고 자식 없으면 명함도 못 뿌린다? 차별적인 선거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 퍼포먼스 모습 ⓒ 기본소득당


본 선거 레이스에 돌입하기도 전, 난관에 봉착했다. 선거법이 나이가 어리고 비혼인 후보자에게 불리한 형태로 짜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행 선거법 60조 3 2항 1에는 예비후보자의 직계존비속이 명함을 시민들에게 교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 조항에 근거한 선거법 93조의 경우에도 본 선거 기간 후보자가 직계존비속과 명함을 시민들에게 교부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자식이 많거나 부모, 조부모가 존재하는 후보자들은 이러한 조항 때문에 그렇지 못한 후보자보다 더 많은 명함을 시민들에게 교부할 수 있다.
 
나이가 어리고, 결혼하지 않았으며, 부모가 아직 퇴직하지 않은 나와 같은 후보자들은 시작부터 명함을 교부할 수 있는 인원이 타 후보보다 적을 수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 제한된 선거운동원 수에 가족이 포함되지 않기에 직계존비속이 많은 후보자들은 타 후보자들에 비해 많은 선거운동원과 유세를 진행할 수도 있었다. 가족을 동원할 수 있는 기혼, 50대 이상 남성 후보자들만 상정하고 만들어진 선거법이었다. 가정폭력의 피해자, 동성인 파트너와 살며 입양을 선택하지 않은 후보자, 한 부모 가정에서 컸거나 부모가 사망한 후보자들은 명함을 뿌릴 수 있는 사람도 적고, 선거운동원도 적은 상황에서 출발선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3월 9일, 차별적인 선거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기자회견을 통해 많은 이들이 선거법의 문제를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차별적인 선거법 위에서 나는 선거운동을 진행해야 했다. 그래서 본 선거 때 두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 배우자를 동반하여 거대한 선거운동을 치르는 타 후보자의 선거 유세를 지켜보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차별적인 선거법은 기어코 본 선거 과정에서도 발목을 잡았다. 선거 기간 중, 가장 많은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는 TV 토론회였다. 그러나 TV 토론회에 참여할 수 있으려면 먼저 전체 후보자들 중 "추천 후보"로 선정되는 것이 필요했다. 나머지 후보들은 TV 토론회 참가가 박탈된 채 10분간의 연설 시간만 겨우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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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선거 후보 등록을 진행하며 했던 퍼포먼스 ⓒ 노서영

소속된 정당에 5인 이상의 의원이 없고, 돈이 없어 여론조사를 돌리지 못했으며 최연소 후보였기에 지난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TV 토론회에 출연할 수 있는 "추천 후보"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예비 후보 선거운동 기간 빠짐없이 'n번방 사건'에 대한 해결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었던 나는 TV 토론회에서 'n번방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그래서 TV 토론 출연은 나에게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다.
 
타 후보들을 찾아다니며 하루 종일 내가 TV 토론회에 참여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사인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모든 후보들이 동의하는 조건으로 TV 토론회 참여를 허가하겠다는 선관위의 결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타 후보들에게 'n번방 사건'을 비롯한 디지털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질의서를 전달했다. 그런데 곧 선관위에서 어떤 후보자 한 명이 반대를 표명하여 TV 토론회에 출연할 수 없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은평(을)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허용석 후보와 정의당 김종민 후보자에게 달려가서 TV 토론회 참여 동의서를 받아본 결과, 반대를 표명한 후보가 현역 의원인 강병원 후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병원 후보자 측에 거듭 찾아가서 동의서를 써 달라고 요청했으나 "우리가 알아서 선관위에 뜻을 전하겠다"라는 말로 거절했다. 거절한 사유도 알려주지 않았고, 'n번방 사건'에 대한 정책 질의서는 전달 자체를 거부당했다. "우리도 정책이 있으니 안 받겠다"는 이유였다.
 
본 선거가 끝나는 날까지, 어떠한 후보자들도 'n번방 사건'에 대한 정책 질의서에 답변하지 않았다. 'n번방 사건'을 TV 토론회의 공통 주제로 설정해 달라는 요구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거절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주어진 것은 가장 인기가 없는 10분 정도의 연설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n번방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대부분을 사용했다. 오기가 생겼다. 어떠한 후보자들도 관심이 없는, 유세 때 이야기하지 않는 'n번방 사건'에 대해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월 중순부터 선거가 끝나는 날까지 'n번방 사건'에 대한 피켓을 들고 시민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때는 몰랐다. 본 선거운동 기간, 'n번방 사건'을 희화화하고 무시하는 반응을 마주하게 되리라고는.
 
두 번의 벽보 테러
 
'n번방 사건'에 대한 해결을 요구하는 것, 함께 선거운동을 준비하는 동료들의 염원이자 나의 염원, 그리고 국민들의 염원이었다. 국회 앞에서 매일 일주일간 1인 시위를 했고, "청원한다고 법 다 만듭니까?" 등 n번방 사건에 대한 망언을 쏟아냈던 국회의원들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3월 23일 진행했다. 생판 모르는 시민 분들이 찾아와서 1인 시위와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주요 가해자인 조주빈이 종로경찰서에서 나오는 날에는 아침 선거운동을 포기한 채 경찰서 앞에 가서 소리를 질렀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n번방 사건'에 대해 피켓을 들고 선거운동을 하는 나와 나의 동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슬로건으로 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까. 혹은 그냥 20대 여성이 정치를 하겠다며 설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하루 하루 선거운동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4월 7일 오후 2시 30분 경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벽보 훼손"이라는 말이 얼핏 들렸다. 급하게 차를 타고 달려간 그곳에는 난도질 되어 있는 내 얼굴 사진이 걸려 있었다.
   

4월 7일에 발생했던 벽보 테러 사건 ⓒ 신민주


CCTV가 없는 장소에서, 지문도 발견되지 않은 사건. 타 남성 후보자들의 벽보는 흠집 없이 깨끗한데 나의 얼굴만 이리저리 난도질 되어 있다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명백히 계획적이고 여성혐오적인 범죄였다.
 
벽보 테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4월 15일, 투표 당일 벽보 훼손 사건이 다시 일어났다. SNS에 훼손된 나의 벽보 사진이 올라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곧바로 벽보가 훼손된 장소로 택시를 타고 갔고, 4월 16일 새벽 1시경 나는 다시 찢어져 있는 내 벽보를 마주하게 되었다. 크게 웃고 있는 내 입이 보기가 싫었던 것일까, 입 주변과 볼을 거칠게 찢어버린 채 벽보는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투표소 바로 앞에 벽보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첫 번째 벽보 훼손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벽보를 보며 지나다녔을 것이었다. SNS에 벽보 사진이 올라간 시간을 기준으로 생각해볼 때, 최소 11시간 이상 훼손된 내 벽보가 투표소로 향하는 시민들에게, 그리고 길을 걸어다니는 시민들에게 노출되어 있었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새벽에 보도자료를 쓰는데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 11시간 동안 투표소 앞에 벽보가 훼손되어 있었는데 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는지, 다른 남성 후보자들의 벽보는 훼손되지 않았는데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지, 그리고 벽보를 훼손한 사람은 도대체 왜 그랬는지. 궁금해 봐야 소용이 없는 뒤늦은 질문들이 머리에 떠돌았다.
 

4월 15일 발생했던 벽보 테러 사건 ⓒ 신민주


페미니스트, 여성 후보자들에 대한 공격이 난무했던 21대 총선. 나의 첫 선거는 선거 벽보 훼손으로 마감하게 되었다.
 
"나는 2번방인데"
 
첫 번째 벽보 훼손이 있었던 이틀 후, 'n번방 사건'과 관련된 피켓을 들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던 동료에게 미래통합당 허용석 후보가 다가왔다. 그 전까지 갈등 상황이나 마찰 없이 선거 운동을 함께 하던 관계였기 때문에 허용석 후보는 나의 동료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그가 떠나기 전, 부적절한 '농담'을 나의 동료에게 건넸다고 한다. 그는 피켓에 쓰여 있던 'n번방'이라는 글씨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n번방. 허허, 나는 2번방인데. 2번 허용석." 동료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아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후 허용석 후보 캠프 관계자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후보는 2번방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공식 입장 등을 발표할 게 없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 신민주 기본소득당 후보 "허용석 후보, N번방 사건 희화화" 사과 요구).
 
비슷한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n번방 사건' 관련 청원이 200만 명의 청와대 국민 청원 동의를 받았던 날, 나는 예비후보로서 허용석 후보와 비슷한 장소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목청껏 "n번방 사건, 함께 해결합시다"를 외치는 나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후보님 덕분에 n번방 사건이 무엇인지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 말이 전혀 감사하지 않았기에 화를 내며 그 일을 지금 알았다는 것이 자랑이냐고 답했다. 나의 분노에 그는 웃으며 "쏘리!"라고 응답했다. 그 이후로 나는 그가 'n번방 사건'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하고 찾아보길 바랐다. 그러지 않았던 걸까.
 
상황을 SNS를 통해 알렸고, 기자들이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증거"를 요구했다. 그러나 미처 영상을 찍지 못한 우리에게는 그 '증거'가 없었다. 허용석 후보는 이 일에 대한 모든 것을 부인했다. 한 순간, 우리는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다. 당사자인 동료는 충격과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허용석 후보를 직접 찾아가서 사과를 요구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4월 10일 오전 8시 경 허용석 후보를 찾아간 사진 ⓒ 김현탁


공교롭게도 바로 다음날인 4월 10일, 동료가 선거운동을 하던 도중 허용석 후보를 만났다. 우리는 함께 요구했다. 대국민 사과와 당사자인 동료에게 사과해줄 것을.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당사자인 동료를 만난 것 자체를 부인했던 허용석 후보는 곧 "만나기는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말을 바꾸었다. 답답한 대화가 이어졌다. 또 다른 허용석 선거 캠프의 사람은 "만난 것은 기억이 나지만 후보님과 멀리 있어서 잘 못 들었다"라고 내용을 다시 부정했다. 쳇바퀴같은 대화를 이어나가다가 허용석 후보 측은 "공식적으로 가서 입장을 밝히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그 말을 믿고 다시 돌아갔다.
 
횡단보도를 건너 허용석 후보에게 조금 멀어졌을 때, 동료가 울기 시작했다. 자존심이 상해 꾹꾹 눈물을 참고 있다가 허용석 후보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가서 울기 시작한 것이다. 울음소리는 점차 커졌고, 그가 오열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나도 눈물이 났다. 우리는 마주 보고 서로를 껴안은 채 거리 한복판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허용석 후보의 말이 나에게 상처가 되었기 때문에 운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살아가고 있을 'n번방 사건'의 피해자들, 그리고 그들과 연대했던 많은 이들이 사과받지 못했다는 것이 슬펐다. 
 
허용석 후보는 선거가 끝나는 날까지 어떠한 입장도 내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일이 벌어졌다. 한 허용석 후보 지지자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민주야, n번방 좀 터트리지 말고 조용히 있어"라고 반말을 했다. 그의 고성과 위협으로 인해 방송차 위 유세가 중단되었다.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14일, 삿대질과 고성을 지르며 나의 동료를 위협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나의 동료들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할까봐 무서웠다. 대부분 20대, 여성으로 이루어진 우리 선본에게 가해지는 보복이 너무도 쉬워서 자존심 상했다.

길거리에서 펑펑 울고 있는 나를 보고 그동안 우리를 늘 구경하고 있던 야구르트 영업 직원분이 다가와 안아주었다. "말을 아무렇게 내뱉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저렇게 말을 막 하는 나쁜 사람들이 있네. 울지 말고. 기운 내고." 그가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다시 페미니즘 정치
 
2600명의 투표, 1.9%의 득표율. 수치상으로만 말한다면 나의 총선 성적표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치만으로 표현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사표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누군가는 페미니스트 정치인에게 투표했다.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밝히는 순간 위협에 노출되는 세상임에도 많은 이들은 페미니스트 정치인에게 지지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이 득표율만큼 많이 기록되어야할 필요성을 느낀다.
 

선거기간 내내 선물과 편지, 응원의 메시지를 건네는 시민들이 있었다. ⓒ 노서영


"출마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거 기간 중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어떤 이들은 음료수 같은 작은 선물을 건넸고, 어떤 이들은 그 말을 하며 울었다. 편지를 써서 주신 분들도 많았다. 처음 보는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나는 그간 그들의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정치인이 너무도 희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많은 여성들은 아직까지 자신의 정치인이라 불릴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을 가지지 못했다.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적은 까닭이었다.
  
선거 기간 중, 외로움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벽보 테러가 발생한 당일 다시 거리에 서서 선거운동을 진행하는 것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허용석 후보에게 사과받기 위해 다시 찾아가는 것에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막상 거리에 서면 방금까지의 고민을 모두 잊어버릴 만큼 많은 이들이 찾아와서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를 건넸다. "'n번방 사건', 이제 함께 해결해봅시다"라고 외칠 때 사람들의 눈이 빛나는 것을 목격했다. 매일 매일 선거운동에 함께했던 페미니스트 동료들이 쏟아냈던 아이디어와 격려의 말들을 들으며 우리가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페미니스트 선거는 누군가의 특별한 용기가 만든 것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의 노력과 염원, 응원과 지지가 페미니스트 정치인을 만들어냈다. 쏟아지는 지지의 편지와 응원의 말, 반짝이는 눈빛들 속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 열망들이 만들어 낸 것들을 보았다. 우리는 함께 여성 문제에 관심이 없는 정치인들에게 용감하게 대응했고, 페미니스트 정치인들에 대한 위협에 당당히 맞섰다. 페미니스트에게 주어지는 낙인에도 불과하고 서로를 지지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
 
2018년 지방선거, 페미니스트 정치인 신지예씨의 도전 이후 수많은 페미니스트 정치인들이 21대 총선에 도전했다.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 페미니즘은 곧, 시대정신이 될 것이다. "당신의 페미니스트 국회의원" 신민주의 선거는 끝났지만, 페미니즘 정치의 시작은 이제부터 진행될 것을 믿는다. 손을 내밀어주었던 2600명의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나는 그 길로 뛰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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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연신내역에서 진행한 낙선인사 ⓒ 김현탁

덧붙이는 글 신민주는 21대 총선 은평(을)에 기본소득당 후보로 출마한 당사자입니다. 현재 서울 기본소득당 상임위원장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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