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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한 주호영 '생지옥' 발언, 다시 이 꼴 안 보려면

[게릴라칼럼] 선거가 끝나도 여전한 '대구·경북 속앓이'

등록 2020.04.20 19:23수정 2020.04.2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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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영 미래통합당 수성갑 국회의원 당선인이 지난 14일 오후 신매광장에서 마지막 유세를 하고 있는 모습. ⓒ 조정훈


"대구의 경우에는 이 정권이 조기에 중국으로부터 입국을 막지 않아서 대구를 완전히 생지옥으로 만들었는데, 그러나 다른 지역은 상대적으로 '대구가 저렇게 큰 피해를 입었지만 우리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코로나 방역을 잘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 대구분들은 참 많이 억울하고 착잡한 그런 기분입니다."

총선이 있던 날(15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 인터뷰한 주호영 미래통합당 의원(대구 수성갑 당선)의 인터뷰를 들으며 형용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아무리 선거를 의식한 주장이라도 국가와 국민에 대한 일말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막말에 가까웠다. 코로나19로 인한 대구의 생지옥(?)이 중국 입국을 막지 않은 정부 탓이고, 그런 와중에서 선거에서 여당 우세가 억울하단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총리가 대구에서 상근하다시피 하고, 전국각지에서 의료진들이 두 팔 걷어붙이고 모여든 수고에 감사 인사는 못할망정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억지에 가까웠다.

이 발언의 주인공인 주호영 의원은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당선했다. 주 후보뿐만 아니라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전국 판세와는 정반대로 홍준표 무소속 후보만 제외한 모든 의석을 통합당이 싹쓸이했다.

개표 방송을 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통합당 대구·경북 후보들이 도덕적 검증됐다거나 정치적 능력이 상대 후보보다 특별히 뛰어난 것도 아닌데 압도적 표차로 1위를 차지한 기현상(?)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이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폭증한 탓에 전국적인 관심과 도움의 손길이 대구·경북에 몰렸고, 경기도·광주 등 몇몇 지자체도 환자를 분산 수용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번 선거에서는 '보수 텃밭'이라는 불명예를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선거 때마다 며칠은 속앓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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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 인정하는 김부겸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 수성갑 국회의원 후보가 15일 오후 9시 52분쯤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총선 패배를 선언했다. ⓒ 조정훈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산 지 한참 됐지만, 선거 때만 되면 나고 자란 대구·경북으로 눈길이 쏠린다. 지난 탄핵 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하나가 모교 선배라, 일면식도 없었지만 그가 TV에 나올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예천에서 군의원 외유 가이드 폭행사건이 터질 때도, 고향의 한 대학 총장이 반 년 가까이 소위 '조국 사태'의 중심 인물로 오르내릴 때도 유쾌하지 않았다. 이번 총선도 마찬가지였다. 총선 결과가 발표되자 "대구·경북은 안 돼" "일본으로 떠줘 버려" 등의 비난 댓글과 고향에서 낙선한 후보 그리고 운동원들의 절망에 찬 글들은 보는 것조차 괴로운 일이었다.

"변명은 찍은 본인들이 구차하게 해야 하는 건데, 타 지역 사는 출향인들만 분노하고 절망하고 변명해주면서 속상해하고... 그나마 거기서 열심히 사는 지인들 안쓰러워 욕도 삼켜야 하고... 이래저래 더 싫어지게 하는..."

동향 지인의 낙담 가득한 글과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온갖 구설에 오른 인물들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 사람들은 정작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데,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고향 소식에 절망하고, 속상해한다. 게다가 대구·경북에서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의 후보·운동원들은 전국에서 온갖 돌팔매를 맞아야 하는 모순도 발생한다.

선거 때마다 겪는 일이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아 며칠은 속앓이를 한다. 통합당의 '막말 인사'들이 대거 낙선하고, 민주당이 지역구 선거에서만 절반 이상의 의석을 얻었다. '이제는 개혁에 속도를 낼 수 있겠다'는 기대로 떠들썩한 며칠. 대구·경북에 살았거나, 살고 있으면서 조금이라도 바뀌길 원했던 사람들은 되레 잔치에 쫓겨난 사람처럼 낭패감에 젖어 있다.

무엇이 잘못 됐을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답은 얻어지지 않는다. 하기야 쉽게 찾아낼 수 있는 답이었다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이라는 오명은 진즉에 떼버렸을 텐데 말이다. 대구·경북이 보수적이라고? 맞다. 다른 지역보다 유교 문화가 강하고, 인구 분포도 젊은 이보다 나이 든 사람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런 것만으로 매번 보수정당이 압승하고,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이 고전하는 이유는 시원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대구·경북은 역대 대통령 중 상당수가 태어난 곳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모두 대구·경북 출신이다. 과거 대통령들은 정치적 위기 때마다 대구·경북에 지지를 호소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이 자행될 때 내가 자랐던 곳에서는 공공연하게 지역갈등 유언비어가 퍼졌다. '광주에 가면 경상도 사람에게는 기름도 안 넣어준다더라' '전라도 사람들이 경상도 사투리 쓰는 사람에게 몰매를 가했다' 등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심지어 학교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유포하는 것도 봤다. 신처럼 추앙받던 박정희의 자리를 전두환과 노태우가 이어받고, 얼마 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차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환갑을 넘겨서도 대구·경북에선 '부모를 잃은 불쌍한 사람' '도와줘야 할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것은 대통령 고향 사람으로서 특권의 향유나, 가해자의 권력이 아니라 또 다른 피해자 만들기였다. 대통령들의 출생지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그들의 옹호자가 되기를 강요받았던 수십 년의 세월. 지금도 지역 정치인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신격화하고, 학살자를 영웅시하는 건 어두운 역사가 남긴 그림자다. 

과거 대통령의 허상을 내세워 호가호위하는 정치인들이 지금도 대구·경북에 한둘이 아니다. '코로나19 창궐을 막지 않아 대구를 생지옥으로 만들었는데도 여당의 우세가 억울하다'는 주호영 의원의 주장은 여론을 비틀어서라도 대구 민심을 손아귀에 넣겠다는 악의적 발상의 결과다.

대구·경북도... 판갈이 할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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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총선일인 지난 15일 대구시 수성구 황금동 투표소에서 투표하는 모습. ⓒ 조정훈

 
물론 그런 정치인을 바꿔내지 못하는 건 유권자의 선택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을 선택하지 않아서 문제인 게 아니다. 결함투성이 정치인들을 자꾸 뽑아주는 게 문제다.

그래서 선거가 끝나면 대구·경북에 비난이 쏟아진다. 하지만 봇물 같은 비난은 화풀이일 뿐 아무런 효과가 없다. 오히려 과도한 비난은 고립을 만들고, 지역주의 심화라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무리 미워도 우리 땅을 일본에 떼어 줄 순 없는 일이잖나. 또 코로나19가 창궐한 지역에 모든 행정력과 의료인력을 쏟는 건 정부의 당연한 역할이고, 국민으로서의 의무기도 하다. 지역을 골라서 돕고 안 돕고 할 문제는 아니다.

그랬으면 좋겠다. 대구·경북을 조금 더 애정어린 시선으로 봐줬으면 한다. 정치를 바꿔보겠다고 승산도 적은 싸움에 번번이 매달리는 사람도 역시 대구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물은 100도씨가 돼야 끓지만 선거는 50%만 넘으면 판이 뒤집힌다. 가능성이 아직은 멀어 보이지만 영원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면 병아리와 어미의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했다. 과거 대통령의 신주단지를 깨고, 우상의 동굴에서 나올 수 있는 건 스스로의 노력과 국민의 응원이 필요한 일이다.

그보다 '코로나19 대구 창궐이 정부 탓'이라는 허위정보를 만드는 정치인을 응징 못한다면 성토라도 하면 좋겠다. 박근혜 국정농단을 옹호했던 의원들, 반문재인 가짜뉴스로 정치 권력을 유지하려는 의원들. 그들이 사회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어미닭'의 심정으로 응징하고 성토했으면 한다. 대구·경북이라는 엄혹한 정치 환경에서 독립 운동하듯 선거운동 한다는 낙선자와 운동원들, 그리고 그들에게 어려운 표를 줬던 유권자들에게 지지와 연대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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