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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서 49년 전 한 청년의 죽음을 떠올리다

[이한열이 기억해 준 한빛 ①] 기억한다는 것, 힘이 들어도 힘이 된다

등록 2020.04.21 11:16수정 2020.04.2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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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6일, 방송계의 비인간적인 제작 환경에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생을 달리한 고 이한빛 PD를 향한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한빛에 대한 그리움과 한빛이 주고자 했던 메시지를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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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 얼굴'을 주제로 열린 다섯 번째 전시회 ⓒ 이한열기념관

    
<보고 싶은 얼굴> 특별 기획전이 2019년 9월 26일부터 12월 31일까지 이한열기념관에서 열렸다. 2019년도 주제는 '일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 자리에 한빛을 불러주었다.

이한열기념사업회에서 2015년부터 시작한 <보고 싶은 얼굴> 전은 '평탄치 못한 죽음'을 맞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람들의 얼굴을 작가의 작업으로 소환하는 전시이다. 2019년 다섯 번째 <보고 싶은 얼굴>전은 열악한 노동 환경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다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1960년대 영등포 산업선교회를 통해 노동운동의 초석을 다진 조지송 목사, 1970년대 후반 노동자들을 위해 들불야학을 설립한 박기순 강학(강사), 1970~1980년대 원풍모방에서 민주노조를 결성한 이옥순 여성 노동자, 1980년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 활동에 참여하다 해직된 배주영 교사,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로 노동조합을 결성한 최종범 노동자 그리고 2016년 카메라 뒤에도 사람이 있다고 외치며 쓰러진 방송노동자 이한빛 PD를 통해 노동운동의 흐름을 살펴보는 기획이다.

한빛을 만나러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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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다섯 번째 < 보고 싶은 얼굴 >전은 열악한 노동 환경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다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한빛도 이중 한명으로 전시회에 그려졌다. ⓒ 유튜브 '이한열'

 
2019년 11월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식구들과 함께 공식적으로 <보고 싶은 얼굴>전을 방문했다. 사실 나는 혼자서 전시회를 몇 번 갔었다. 전시회가 열리기 전 한솔이가 한빛 방에서 전시할 형 유품들을 말없이 챙기는 것을 봤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죽은 다음에' 무슨 의미가 있으랴? 다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는 한빛이 보고 싶어 혼자 경의선을 타고 신촌에 갔다.

오랜만에 갔지만 쉽게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도 기념관이고 역사가 꽤 됐으니까. 이한열기념관은 주택과 상가 골목길 속에 있었다. 아니 비좁은 틈새에 안쓰럽게 작은 몸뚱아리로 끼어 있었다. '이한열 기념관'이란 작은 간판도 다른 간판에 눌려 잘 안 보였다.

이한열기념관이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개인 주택일 때 전교조 참실연수가 있어 몇번 간 적이 있다. 언덕 위에 있고 찾기도 힘들어 물어 가며 힘들게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지 않아 신촌에 대해 막연한 상상을 했던 나는 솔직히 실망했다.

그때 작은 방에는 신문과 TV에서 봐서 익숙한 이한열이 있었다. 시청광장을 가득 메웠던 시민들과 수많은 만장 사이에 있던 그 영정사진(초상화)이었다. 연수에 참석한 대부분의 교사는 먼저 그 방에 가서 추모했지만, 나는 서성거리다가 시간을 놓쳤다. 이유는 모르겠다. 30대 초반이었던 나는 젊음과 죽음이 동격인 현실이 무서웠다.

젊고 잘생긴 이한열의 눈빛이 너무나 강렬했다.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저 젊음이 죽었다고? 죽음이 예정되어 있어도 저렇게 푸르를 수가 있는가? 가슴이 아렸다.
   
2019년의 작가들은 영상, 사진, 회화, 판화, 조각 등 다양한 작품으로 역사가 된 '보고 싶은 얼굴'들을 소환하고 있었다. '보고 싶은 얼굴' 뒤에 숨어있는 인간적인 고뇌를 만나게 하지만 어떻게든 인간다움을 놓치지 않으려던 사랑의 몸짓을 작가들은 안간힘을 써서 붙잡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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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광 작가는 한빛을 '아름다운 청년들 2'로 형상화했다. ⓒ 유튜브 '이한열'

 
한빛은 '아름다운 청년들 2'로 이우광 작가가 형상화했다. 전태일과 한빛을 함께 엮었다. 전태일 동상에 환하게 웃고 있는 낯익은 한빛 얼굴, 한빛의 회색 후두 재킷을 입은 진지한 전태일 얼굴. 역사란 과거에 머문 것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일까?

단풍잎이 빨갛게 타고 있던 가을날, 늦게 도착한 이한열기념관에는 나 혼자였다. 팸플릿에는 연필로 스케치한 한빛 얼굴 옆에 '이한빛 방송노동자 1989-2016'이라고 쓰여 있었다. 여전히 낯설었다. 한참 한빛 앞에 서 있었다. 후두 재킷 앞부분이 헤벌린 것을 보니 오래도 입었나 보다. 언제 샀는지, 언제 입었는지도 이젠 기억이 안 난다. 별것 아니지만 물어보고 싶다. 한빛과 전태일이 내 마음을 왔다 갔다 하며 소용돌이쳤다.

이우광 작가는 작가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내가 받은 자료 중엔 한빛PD의 책장을 찍은 사진이 한 장 있었다. 책장 속 책 중에 한 권의 책이 눈길을 끌었다. 바로 <전태일 평전>이었다. 한빛PD의 모습에서 49년 전 한 청년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어떤 기시감일까? 이렇게 우리의 노동 현실은 40여 년간 변한 것이 없었다. 전태일과 이한빛 PD, 여기에 '구의역'과 '태안화력발전소' 사고까지,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의 반복이며 '한국 노동사라는 드라마'의 슬픈 장면이다."

한솔은 형과 마지막으로 작별할 때 가슴에 품고 있던 책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형에게 주었다. 형의 영정사진을 가지러 집에 갔을 때 형의 책꽂이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도 지금도 나에겐 그런 모습들이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한빛의 죽음이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 한빛은 매일 매일 내 삶의 전부인 아들로 살아있는 것 같다.

보고싶은 얼굴, 큰 수혜자는 '나'
 

< 2020 보고 싶은 얼굴 >은 '기억속의 노동자'로 4월 21일부터 8월 16일까지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다. ⓒ 김혜영



이한열기념관 이경란 관장님에게 "이한열기념관도 후원금으로 운영해 여유롭지 않을 텐데 왜 이런 전시회까지 해요?"하고 따지듯이 물었다. 이한열이란 한 젊음이 죽은 것도 억울한데, 그것도 공권력에 의한 희생이었는데 무슨 너그러움이 남아있다고? 이런다고 사회가 변할까? 고마워할까? 혼자 삭히고 있던 나의 막연한 분노가 담겨있었던 것 같다.

이경란 관장님은 차분히 말씀하셨다. 이한열기념관을 '이한열만을 기억하는 공간'이 아니라 보다 많은, 먼저 가신 분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만들기 위해서 전시를 한다고. 특히 <보고 싶은 얼굴> 전은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몇몇 유명한 열사들만 기억되기 때문에 이한열기념사업회에서 책임지고 다양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하기에 재정도 열악하고 힘들지만 이런 기획을 멈출 수는 없다고 했다. 다행히 많은 시민이 협조해주시고 후원자들의 격려에 힘을 얻는다고 했다.

큰 예산과 지원으로 펼쳐지는 각종 전시회에서도 이런 고민을 할까? '변화되어 가는 노동 흐름을 따라간 노동자'들을 기억해준다는 것.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 큰일을 이한열기념관이 하고 있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결국 가장 큰 수혜자는 한빛 엄마인 나였다.

게다가 올해 개관 1주기이자 전태일 50주기를 맞는 전태일기념관이 <보고 싶은 얼굴> 전을 이어간다고 한다(4.21~8.16/ 코로나19로 개막일 추후 공지). 이한열기념관에서 지난 5년 동안 전시했던 30여 분의 인물 가운데 노동운동과 관련된 13분을 소환하는 전시를 한다. 부제는 '기억 속의 노동자'로 노동자 전태일과 노동운동사의 흐름을 함께 엿볼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 고맙다.

슬프지만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장면들이 있다. 그래서 기억한다는 것이 힘이 들어도 동시에 힘이 되기 때문에 기억을 붙잡게 된다. 한빛을 기억해 주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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