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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직장서 죽은 아들, 민주당이 지켜야 할 약속

[김용균재단이 바라본 세상4] 누군가의 삶이 바스러지지 않기를 바라는 하루

등록 2020.04.21 19:33수정 2020.04.21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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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생전 사진. ⓒ 오마이뉴스

시도 때도 없이 아들의 부재에 피가 마르고 속이 타는 요즘이다. 꿈속에서조차 보이지 않는 아들을 찾아 헤매었다. 대답 없는 아들의 이름을 목 놓아 소리쳐 울부짖다가 잠에서 깨면 터질 듯한 아픔이 가슴속을 파고든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내 아들이었다. 생애 첫 직장에서 그렇게 열악하게 일했고 죽음조차 너무 험해서 부모로서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다. 아들이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는 한 이 아픔은 지속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어찌 살아내야 될 지 막막하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한 맘으로 구차한 목숨을 오늘도 연명하고 있다.

사람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사회

아들 용균이는 회사를 다니기 전에는 2년제 전문대 학생이었다. 취업률 1위라고 해서 들어간 곳이었다. 졸업 시즌이 다가오면서 교사의 취업 알선으로 현장실습생 추천이 있었고 아들도 추천이 되어 며칠 동안 현장 교육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불산을 다루는 위험한 현장이라고 하여 바로 집으로 오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런 일을 시작으로 교수는 계속 직업을 알선해주려고 했다. 부모로서 처음에는 그런 교수의 노력을 좋게 봤는데 정작 아들은 싫다고 했다. 아들이 그런 의사를 분명히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교수는 취업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노골적이고 강압적으로 취업을 요구하는 교수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 가족은 저절로 기분이 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고등학교나 전문대의 현장실습이나 취업률은 학교와 기업 모두 필요한 거였다.

학교는 학생들을 취업시키면 국가보조금을 받을 수 있고 학교 선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니 좋았다. 또 기업은 값싼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학생들도 취업하니 좋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문제는 소개해준 회사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는지 학교가 아예 확인조차 안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학교도, 회사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다수의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특수고용직으로 고용 자체가 불안하다. 언제라도 해고가 가능하기에 부당한 처우, 목숨조차 위태로운 지시도 따를 수밖에 없다. 특히 용균이처럼 말 잘 듣고 순한 청년들은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약자다. 생애 첫 회사니까 당연하듯 열심히 하려고 했을 것이고, 윗사람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애썼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 속에 묵직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아들 용균이는 자신의 부당한 처우를 피켓을 통해 알리려 했고, 나 또한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구의역 김군 사건처럼 아들이 다닌 회사는 죽음으로 말 못하는 피해당사자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그러면서도 사측은 털끝만큼의 가책조차 없었다. 이런 납득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만행은 이 사건들에만 국한한 게 아니었다. 거의 모든 기업에서 돈을 벌려고 사람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파렴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일이 일상이 되어있다.

사회적 타살의 아픔...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이런 끔찍한 아픔이 어찌 나만이 느끼는 감정이겠는가. 우리 사회에는 여기저기 피고름으로 아파하는 유족들이 넘쳐난다. 5.18민주화운동, 제주4.3항쟁, 4.19혁명, 삼풍백화점참사, 대구지하철참사, 삼성 반도체 백혈병, 가습기살균제 참사, 석면피해, 4.16세월호참사 등 아픈 사건들이 너무나 많다.

이들 모두 가족들의 삶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잘못된 구조 속에 안전을 방치해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산재 사건들이 있다. 집계로 나타나는 사망만 해도 2142명(가장 최근 통계인 2018년 기준)이다. 산재 은폐가 만연하니 드러나지 않는 죽음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우정사업소와 택배노동자들처럼 쉴 틈 없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잃은 과로사가 있지만 산재사망 집계에서 빠져 있다. 회사의 갑질과 부당한 처우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끊는 사람이 늘어나는데 이들도 산업재해대상에서 빠져 있다. 이 모든 사건은 기업이나 정부가 안전을 책임지지 않아 생긴 일로 명백한 인재다. 이러한 과로사나 자살도 모두 잘못된 사회 구조에서 비롯한 사회적 타살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목숨을 내던진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지 50년이 지났다. 그래도 사회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특히 세월호참사로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국민 모두가 생명의 가치와 존엄을 배웠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매해 일터에서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산재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다. 두 번 다시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하는 방법이 그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난리가 났다. 다행히 우리 정부가 발 빠르게 대처해 요 며칠 확진자가 현저하게 줄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뼈아픈 학습효과가 있었고, 국민들이 안전을 중시하게 되면서 4.15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을 여당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여당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기업과 공공기관이 안전을 방치해서 노동자와 시민이 사망에 이를 때는 기업과 기업주가 강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 또 관련된 공무원이 직무유기를 했을 때도 강한 법적 제재가 꼭 필요하다. 이제는 야당에 발목 잡혀서 못한다는 명분은 없어졌다. 기업을 살리는 것보다 앞서야 할 것이 국민의 안전이다.

4월 28일은 세계 산재추방의 날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말했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지켜질 수 있도록' 국가가 앞장서서 보장해 주겠다던 약속을 꼭 지켜주길 바란다.
#김용균재단 #김미숙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약속을 지켜달라 #비정규직 죽음
댓글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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