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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이긴 허영, '아쉽다' 말한 이유

[당선자와의 대화] "기본소득 실현이 꿈이다, 12년 전부터 말해왔다"

등록 2020.04.22 11:23수정 2020.04.2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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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거리인사를 하지 않나. 보통 차 10대 지나가면 한 대 정도 손을 흔들어준다. 그런데 사전 투표 이후엔 거의 10대 중 7대가 해주셨다. '완전 뒤집었다' 싶더라. 유권자 표심은 원래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다. 투표 후엔 남녀노소 불문하고 적극적으로 표현해주시더라." 더불어민주당 허영 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갑 당선자. ⓒ 이희훈


김진태 심판론과 코로나19 사태가 일으킨 '강한 여당'에 대한 요구. 허영 춘천·철원·화천·양구 갑 당선자가 스스로 분석한 당선 요인은 두 가지로 압축됐다. 거기에 "서울에서 일할 때도 12년 내내 매일 지역구로 출퇴근했다"는 자신의 노력도 한 줄 보탰다.

허 당선자는 20일 서울 목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승리를 예감한 순간을 지난 11일 사전 투표 직후라고 설명했다. 상황을 묘사할 땐 그 당시가 떠오르는 듯 들뜬 얼굴이었다. 그로부터 나흘 뒤, 허 당선자는 70여 년만에 처음 이 지역구에 민주당 깃발을 꽂았다.

21대 국회에서의 포부를 물었더니 '할 말 하는 초선'이 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1970년생인 그는 "또래 의원과 함께 당내에서 개혁적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 동안에도 위성정당 창당을 비롯한 개정 선거법의 후퇴와, 강원 지역 공천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에 쓴소리를 냈다. 12년 전부터 '밀고 있다'는 기본소득제 실현에 대해서도 한참 이야기했다.

허 당선자가 '정치적 아버지'라고 칭하는 고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당선자가 고향을 지역구로 선택하게 된 결정적 계기이기도 했다. 허 당선자는 김 의장의 운전 수행비서로 3년간 일한 경험을 "최측근보다 가까운 '차 측근'으로 따라다니며 많이 배웠다"고 회고했다.

김 의장은 생전 허 당선자에게 "다들 서울에서 쉽게 하려고 하는데, 고향에서 10년을 내다보고 준비하면 기회를 얻을 것"이라며 강원 지역 출마를 권했다. 당선자는 "유언같은 말이었다. 말이 10년이지, 정말 긴 시간이었다"며 웃었다.

아래는 그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180석 확보 발언과 공천 잡음 없었다면... 아쉽지만 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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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허영 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갑 당선자. ⓒ 이희훈


- 김진태 미래통합당 후보와의 재대결에서 승리했다. 2016년 총선과 2020년 총선, 어떻게 달랐나.
"4년 전엔 준비가 덜 됐다. 김진태 후보와 대결해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 방향성도 부족했다. 뒷받침할 세력도 준비가 안 됐다. 상대 후보는 초선에서 재선으로 힘을 발휘할 시기였다. 저는 보수의 깊이가 강고한 지역구의 민주당 원외 지역위원장이었고, 시대정신도 다 피지 않았다. 모든 면에서 계기가 없었던 것 같다."


- 올해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김진태 후보는 보수의 아이콘이다. 춘천이 보수와 진보의 대결장이라는 상징적 지역이 되어 버렸다. 코로나19라는 전무후무한 상황에서 강한 정부가 필요하다는 국민적 인식에 대한 유권자들의 깊은 공감대도 있었다. 상대적이지만, 김 후보가 막말과 망동의 아이콘으로 정치 품격을 떨어뜨린 것에 대해서 '제발 좀!' 하는 것이 있었던 것 같다. 국회에서 막말하지 말고 제대로 된 일꾼의 모습을 보여달라는 준엄한 선택이 반영된 선거라고 생각한다."

- 4년 전이나, 후나 보수세가 센 지역이긴 매한가지다.
"춘천이 왜 보수적이냐 하면, 도청 소재지로서의 자존심이 있기 때문이다. 수부도시다. 그 상태로 발전이 쭉 안 돼 왔다. 현역 국회의원이 당권, 대권 놀음하느라 지역 현안을 외면했다. 거기에 대한 심판이 작용한 것이다. 개인의 정치적 욕망을 채우느라 막말하고 타인의 고통을 파고 도려내고... 그러면서 현안도 챙기지 못했다. 이런 것들이 겹쳐 제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 같다."

- 어떤 노력들을 했나.
"3번의 도전 과정에서 하루 한 번도 거르지 않은 것이 있다. 12년 내내, 서울시장 비서실장을 할 때도 지역구로 매일 출퇴근했다. 패배를 거듭했던 시간들이었다. 이번에는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이제 할 때 됐다'고 인정해주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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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허영 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갑 당선자. ⓒ 이희훈


- 승리를 체감했던 순간이 있다면?
"아침에 거리인사를 하지 않나. 보통 차 10대 지나가면 한 대 정도 손을 흔들어준다. 그런데 사전 투표 이후엔 거의 10대 중 7대가 해주셨다. '완전 뒤집었다' 싶더라. 유권자 표심은 원래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다. 투표 후엔 남녀노소 불문하고 적극적으로 표현해주시더라. 그런데 개표 과정에서 열세 지역부터 공개되니, 새벽 1시까지 뒤처져 있었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받은 느낌이라면 이겨야 하는데... 다른 작용이 있나...' 생각이 스쳤을 때, 새벽 1시 5분에 딱 뒤집혔다."

- 이근형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등 당 내부의 분석에 따르면, 총선 막판 강원이 '어닝 서프라이즈(기대 이상의 실적)' 지역이 될 것이라고 봤다. 실제로 그러했나?
"저는 더 이길 수 있었다고 본다. 1 대 7에서 지금은 4 대 3 대 1(미래통합당 4, 민주당 3, 무소속1)로 균형을 이뤄주셨다. 이것만으로도 약진이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막판에 견제 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 언론에 '180석 이상' (발언이) 막 나오고 이러면서... 특히 강원도 표심은 견제 심리가 많이 작용한다.

공천 과정에서도 잡음이 있었다. 내부 경선을 통해 공천 승복 효과를 끌어내고 원팀으로 가야 했는데, 일부 지역의 전략공천으로 후보 간 룰을 조정하는 데 실패했다. 막판 누더기 선거구 조정도 한 요인이다. 4 대 4 정도나 5 대 3 정도로 역전할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지역구였나.
"강원 홍천·횡성·영월·평창의 경우 원경환 후보가 전략공천 됐다. 조일현 전 의원이 준비하고 있었는데, 경선을 치르지 못하면서 승복 효과가 사라졌다. 조 전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또 원 후보가 (조 후보가 얻은) 딱 그만큼 졌다. 그런 게 좀 아쉽다."

- 분구 시점이 너무 늦었다는 평가도 있다.
"춘천도 자체 분구를 했다면 2석 다 얻었을 것이다. 그런데 춘천 북부 지역을 철원, 화천, 양구로 합쳐 버렸다. 이런 부분들이 견제 심리로 작동했을 것이다. 떨어져 나가는 상실감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의 결과도 큰 약진이다. 원주권과 춘천권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민주당 후보가 선출됐고, 춘천은 특히 70년 만에 처음으로 당선됐기 때문이다."

"유학 직전 이인영 손 붙들려 만난 김근태... 유언처럼 남긴 '고향 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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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 당선자의 팔목에는 '문재인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 이희훈


- '품격 있는 정치'를 약속했다. 마침 민주당이 준비 중인 '일하는 국회'의 취지와도 맞닿아 있다. 품격 있는 정치, 정책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개혁 입법 중 가장 시급한 건 민생 개혁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 회복에 올인해야 한다. 3차 추가경정예산안 등 추경을 몇 번 해서라도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 일하는 국회를 위해선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는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면책 특권의 예외 조항도 필요하다. 면책 뒤에 숨어 허위 사실로 정치적 공격을 하는 것은 철저히 막아야 한다. 망동을 하는 국회의원의 경우 국민 소환제나 윤리위 차원의 처벌을 강화해 단호하게 처분해야 한다."

- 국민과 권한을 나누는 일이다.
"입법 발의제도 필요하다. 국민도 일정 정도의 개헌을 발의할 수 있도록, 국민에게 입법권을 돌려주는 문제를 검토해봐야 한다. 그뿐 아니라, 21대 총선 과정에서 발생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인한 위성정당 문제도 손봐야 한다.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의 기능을 되살리기 위해서다.

- 선거법은 어떤 방식으로 조정해야 할까? 
"위성정당을 못 만들게 해야겠지. 헌법 정신은 정당 정치이다. 하나의 정당으로서 비례대표 또한 동시에 평가받도록 해야 한다. 일만 잘한다면야 국민이 인구변화와, 남북 평화시대에 대비한 국회 시스템을 허용해주지 않겠나. 의원 정수든 뭐든 일만 잘한다면야... 정수 문제에 얽매여 있어 발생한 문제일 수도 있다."

- 고 김근태 전 의장의 비서로 처음 정치에 입문한 것으로 안다.
"정치적 아버지라고 늘 말한다. 이 분을 만난 계기가 이인영 원내대표 때문이다. 처음엔 벤처기업을 하다가 유학을 준비했다. 유학 전 국회에 있는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러 갔는데, 제일 처음 만난 분이 이 원내대표였다. '정치를 해서 대한민국을 바꿔야지 왜 유학으로 도망가느냐'며 내 손을 잡고 어딜 데려갔다. 김근태 당시 원내대표실이었다. 그날 바로 면접을 했다. '내일부터 나오지' 하시더라."

- 갑작스러운 전개다.
"비서관으로 바로 일을 시작했다. 3년간 운전대만 잡았다. 고달픈 일이었지만, 정치에선 '최측근보다 차측근'이라고 하지 않나. 차에서 많이 배웠다. 의장을 수행하며 각 현장의 행위들을 보면서 정치인이 가져야 할 기본과 철학, 원칙을 알게 됐다."

- 그게 뭔가.
"나한테는 정치적 좌우명이 된, '희망은 힘이 세다'이다. 의장께서 고문의 고통을 이기는 방법이기도 했다. 인간의 가치는 품고 있는 희망의 크기로 결정된다는 정치적 잠언을 남기셨다. 정치인은 희망을 주는 직업이 돼야 한다. 모든 사람이 품고 있는 희망을 더 크게 만들게끔 역할하는 것이 정치인이라고 하셨다."

- 지역구 선택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안다.
"'허영은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라 학교 주변에서 정치하면 빨리 될 수 있지만, 고향에 내려가 10년을 내다보고 준비한다면 더 기회를 얻을 것'이라는 유언 같은 말을 남기셨다. '다들 서울에서 쉽게 하려고 하는데, 지역에서 고생해야 정치가 발전한다'고도 했다. 그 말끝에 바로 춘천에 내려갔다. 그리고 12년 만에 당선됐다. 그동안 버틸 수 있었던 힘은 그런 유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양구중앙시장 '허씨 상회'를 운영 중이라고 들었다. 선거 기간 바닥 민심을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
"어머님이 50년 가까이 그곳에서 장사를 하셨다. 시장은 민심 집결 지역이다. 코로나19로 타격받은 시장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춘천은 자영업자들이 지역경제의 83%를 차지한다. 춘천 지역 경제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단계다. 

시장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막말만 하고 일도 안 하면서 세비 받지 말라는 것이었다. 제발 일하는 사람이 돼 달라는 것. '품격의 정치'라는 선거 슬로건도 제 말이 아니라 사람들의 말에서 나온 것이다. '춘천 정치인 때문에 민망스럽다'는 말을 가슴에 응어리처럼 안고 있다가 선거 기간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제가 유세나 TV토론에 나가서 그 이야기만 했던 이유다."

- 선거 막판 김 후보로부터 조직적 선거방해 의혹을 받기도 했다. 쌍방 고발도 이어졌는데. 상대측 네거티브에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다시는 그런 일을 못하게 법적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 제 개인으로 고발한 게 아니라, 당의 이름으로 했다. 얼토당토한 네거티브였다. 사실에 기반했다면 수용했겠지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허위 조작이었다. 그래서 용납할 수 없다. 일부에선 선거도 끝났으니 넘어가라고 하는데, 그러면 구태정치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정치를 20년 했지만, 처음으로 고발해 봤다."

- 선거 중반에는 김 후보의 역주행 논란 등 네거티브를 할 만한 소재가 있었다.
"일부러 안 했다. 전 국민이 다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쉬운 것은 본인이 잘못했다, 취지는 이랬다, 인정하면 될 텐데, 사실을 왜곡해 해명한 것이 안타깝다."

"기본소득법은 12년 전부터 간판 공약... 당내서 개혁적 목소리 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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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허영 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갑 당선자. ⓒ 이희훈

 
- 국회 입성 시 꼭 실현해보고 싶은 과제가 있었다면?
"기본소득법. 12년 전부터 말해왔다. 첫 출마부터 제 간판 공약이었다. 이미 그러한 방향으로 가고 있기도 하다. 재난기본소득뿐 아니라, 출생부터 노년까지 현재 생애주기별 수당 체계를 기본소득화 해서 촘촘한 소득망을 생애 주기별로 만드는 입법을 하고 싶다."

- 어떻게 가능할까?
"코로나19 사태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하고 있다. 생애주기별 수당들이 좀 더 효율적으로 집행되기 위해선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 세원을 발굴하되, 일부 불필요한 세원도 줄여야 한다. 이번에 코로나19 사태로 어쩔 수 없이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높이는 정책을 피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없애거나 낮춰야 한다. 그만큼 세원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걸 기본소득 세원으로 활용하는 거다. 오히려 현금성 지원이라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사람도 혜택을 볼 수 있다."

- 선별적 지급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보면, 소득 분위별로 일정 기준 잘라 추출하는 행정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 오히려 공평하게 나눠주고, 연말에 소득 높은 사람을 기준으로 세원 징수를 하면 된다. 그럼 행정 비용도 줄어들고, 얼마든지 기본 소득이 실현 가능하다. 기본소득은 결국 국민의 기본권과 행복권을 위한 제도다."

- 지역 1호 공약으로는 춘천 호수 '국가정원'을 내걸었다.
"춘천은 호반의 도시다. 늘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이중 삼중 규제를 받은 지역이다. 난개발로 물을 이용하자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순천만은 국가정원 1호가 된 후 1000만 명의 관광객이 유입됐고 1조 원의 생산효과가 생겼다. 2호 국가정원인 울산 태화강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이 되면 국가정원 조성에 관한 법률을 만들려고 한다. 춘천만 만드는 게 아니라, 광역 단위로 각 지역별 자연 자원을 활용해 국가 정원에 국비를 투자하는 것이다. 이런 의정 활동을 통해 국가 균형발전이 일어나도록 해보고 싶다."

- 거대 여당에 입성한 초선 의원이다. 가장 내고 싶은 목소리는 어떤 것인가.
"180석이라는 강한 여당 체제에서도 제가 비교적 어린 축에 속하더라. 제가 1970년생인데, 당선자 평균 나이가 54.5세 쯤 된다. 제 또래의 국회의원을 모아 내부에서 조금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젊은 정치인이 가질 수 있는 용기와 행동력을 가지고, 당내에서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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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허영 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갑 당선자. ⓒ 이희훈

 
#허영 #김진태 #춘천 #강원도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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