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에 얽힌 세계 역사, 새롭다

[서평] 리처드 W. 불리엣 지음 '바퀴, 세계를 굴리다'

등록 2020.04.23 16:51수정 2020.04.2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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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이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아메리카에 도착하기 전, 아메리카에는 수레가 발달하지 못했다. 아시아와 유럽에는 자동차 발명 이전에도 바퀴를 이용한 탈 것이 많이 있었던 반면에, 아메리카에는 없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기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이를 설명하기 위한 학설이 발전했다.
 
<총, 균, 쇠>, <문명의 붕괴>를 비롯한 다양한 저작으로 유명한 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아메리카에 짐승이 끄는 수레가 없던 이유로 가축의 부족을 꼽는다. 유라시아 대륙에는 소와 말같은 동물이 운반을 도왔지만, 아메리카 대륙에는 이런 용도에 적절한 가축이 없었기 때문에 바퀴를 활용한 문명 발달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그의 책을 읽고 그것이 맞는 이론이라고 생각했다. 동물이 있어야 바퀴가 달린 탈 것을 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이 있어야 마차를 끌 수 있고 소가 있어야 우마차를 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한 책을 읽고, 이에 관한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바퀴세계를굴리다 ⓒ 리처드불리엣

 
 <바퀴, 세계를 굴리다>는 바퀴와 문명의 관계를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바퀴의 기원, 바퀴가 특정 지역에서 퍼지지 않은 이유, 각 국가에 퍼진 바퀴의 유형 등을 고찰해 바퀴의 역사를 설명한다. 저자인 리처드 W. 불리엣은 중동과 기술의 역사에 대한 전문가로, 운송수단에 대해 많은 글을 써왔다.
 
그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바퀴에 대한 이론을 비판하며, 자신 나름의 이론을 전개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동물이 없어서 수레가 아메리카에서 발달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이상한 주장이다. 반드시 동물만이 수레를 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레를 사람이 끄는 것은 너무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레를 이용하지 않으면 인간이 등에 짐을 짊어져야 하는데, 당연히 바퀴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다이아몬드가 놓친 부분은 수레를 꼭 동물이 끌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등에 짐을 지고 나르는 것만큼 쉽게 수레를 밀거나 끌 수 있다. 바퀴 달린 이동수단의 가치는 짐의 무게를 인간의 등이 아닌 수레의 바퀴가 받친다는 것에 있다. 또한 바퀴는 트레보이스나 짐썰매처럼 높은 마찰력을 가지지 않는다. -본문에서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끄는 인력거는 주로 일본에서 활발하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를 보고 근대 유럽인들은 너무 인간에게 잔인한 짓이라며 혀를 찼다. 그렇지만 저자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인간은 절대 바퀴 달린 탈 것을 끌 수 없고, 동물만이 끌 수 있다는 사고의 틀은 편협하다고 본다. 이런 닫힌 사고로는 문명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뉘앙스다.
 
또한 그는 바퀴와 수레에 대한 나름의 이론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바퀴가 달린 이동수단이 처음 발명된 곳은 동유럽 카르파티아 산맥이다. 이 지역의 광부들은 직접 손으로 미는 광차를 만들어서 자원을 운반했다.
 
그런데, 바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몇몇 학자들과 달리, 저자는 역사적으로 바퀴가 널리 쓰이지 않은 지역이 많다고 본다. 가축들이 바퀴 없이도 육로로 물자를 운반하는 수단을 제공했기에, 돌이나 나무를 치워야만 지나갈 수 있는 바퀴달린 운송수단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페르시아, 일본 등에서는 바퀴를 이용한 운송수단이 잘 사용되지 않았다.
 
기원전 3,000년 즈음에 이륜수레와 사륜 전투용 우마차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중동에서는, 바퀴 달린 운송수단이 기원후 첫 5세기 동안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 건조한 기후가 이 지역의 도로에 진흙과 눈이 생기지 않게 했고, 고대에 시행한 벌목 작업으로 도로건설업자들이 나무를 벨 필요마저 없었는데도 말이다.

중세 유럽인들은 바퀴와 말을 이용해서 마차를 만들어 타고 다녔다. 자동차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마차가 주요한 운송수단의 하나였다. 저자에 따르면, 원래 유럽인 남성은 말을 타고, 유럽인 귀족 여성이나 노약자는 마차를 이용했다. 이런 구분은 15세기와 16세기를 지나면서 사라져 남성도 마차를 타게 되었다.
 
저자는 이런 변화가 심리적인 이유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중세 유럽의 보헤미아(오늘날의 체코)에서는 사륜수레를 이용한 군사 진법이 자주 사용되었다. 사륜수레를 원형으로 배치하여 포대로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보헤미아에 이웃했던 헝가리 왕은 이들을 용병으로 고용하기도 했다.
 
유럽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말을 타고 적과 싸우는 일이 남성적이고 권장되는 일이었다. 굳이 마차가 멋있게 여겨질 이유가 없었다. 반면 유럽에서는 마차를 활용한 전투 문화로 인하여 마차를 바라보는 나름의 역사적, 문화적 전통이 생겼다. 바퀴에 대한 귀족 남성의 태도가 호감을 보이는 쪽으로 변하는 현상은 유럽 중부에서 서쪽으로 퍼졌다고 한다.
 
때문에 남성이 마차를 이용하는 일도 부정적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차가 전 유럽에 퍼져나갔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유럽 귀족 남성의 사고 변화에는 보헤미아의 전쟁이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바퀴가 발명되고 바로 전 세계를 주름잡게 된 것이 아니라, 경제적, 심리적인 이유로 바퀴의 쓰임도 흥망성쇠를 거듭했다고 본다. 완벽한 발명품이 모두의 수요를 맞추어 탄생한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서는 버려지고, 특정 지역에서는 한정적인 용도에 쓰이는 방식으로 도입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문명 발달에 있어서의 문화적, 심리적 요인을 설명하면서, 어떤 발명품을 채택하는 데에는 경제, 군사, 사회, 성별, 미학, 종교 등 광범위한 요소가 영향을 준다고 결론 내린다. 역사와 인류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주는 책이다.

바퀴, 세계를 굴리다 - 바퀴의 탄생, 몰락, 그리고 부활

리처드 불리엣 (지은이), 소슬기 (옮긴이),
Mid(엠아이디), 2016


#바퀴 #문명 #역사 #수레 #문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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