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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가 체질'이 시간이 지나도 사랑 받는 이유

[리뷰] 넷플릭스 '뜨는 콘텐츠'에 이름 올리며 인기 구가

20.04.23 13:34최종업데이트20.04.2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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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로가 체질 JTBC 금토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한 장면 ⓒ JTBC

  대학교 때 처음 만나 30살이 된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드라마 보조 작가 '진주(천우희)', 다큐멘터리 감독 '은정(전예빈)', 드라마 제작사 팀장 '한주(한지은)'. 평범하지만은 않은 자신들의 삶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찰나에 그들 앞에는 각각 드라마 PD '범수(안재홍)', CF 촬영 감독 '상수(손석구)', 신입 사원 '재훈(공명)'이 등장한다. 원한 듯 원하지 않게 이들과 함께 작업하는 사이 진주, 은정, 한주는 사랑과 인생의 새로운 장에 진입한다. 

<극한직업>으로 천만 영화에 이름을 올리며 코미디 장르에서 두각을 드러낸 이병헌 감독. 사실 그를 먼저 알린 영화는 막 20살 성인이 된 세 남자의 엉망진창 성장기를 신파가 아닌 찰진 웃음 포인트로 그려냈던 <스물>이었다. 꿈을 접은 주인공이 "왜 포기하는 사람은 욕먹어야 하는데!"라고 자조한 뒤 내뱉는 "하... 눈물이 안 난다"와 같은 대사는 너무나 직설적이고 현실적이라서, 진짜 공감을 해주는 듯해서 오히려 더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기에 인상적이었다. 

그런 그가 2019년 여름, JTBC에서 선보인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마치 전작인 <스물>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드라마였다. 웃음과 진지함 사이에서 기막힌 줄타기를 보여주면서도, 스무 살에서 서른 살이 된 주인공들을 내세워 현실에 한 발짝 더 깊숙이 들어온 이 드라마는 방영한 지 9개월 여가 지난 2020년 4월까지도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멜로가 체질>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멜로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멜로드라마'라고 하면 흔히들 진한 로맨스를 떠올린다. 물론 로맨스가 멜로드라마의 핵심인 것은 맞다. 작중 주인공들인 진주, 은정, 범수 등도 사별한 연인과의 가슴 아픈 사랑, 같은 가치관을 지닌 사람과의 마음이 통하는 사랑, 서로를 진정으로 배려해주는 사람과의 따뜻한 사랑 등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들의 미소와 눈물은 때로는 절절하게, 또 때로는 애틋하게 가슴을 울린다. 

하지만 이 작품이 멜로드라마인 데는 남녀 주인공들의 사랑을 다루는 것 외의 다른 이유도 있다.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멜로' 장르를 아주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주인공이 인간관계로 인해 갈등을 겪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정서적 과잉으로 그려내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그 인간관계가 꼭 남녀 간의 로맨스일 필요는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멜로가 체질>은 장르에 충실하다. 

드라마는 30대를 맞이한 여성과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회사에서 철저히 을로 살아가는 직장인들, 육아에 버거워하는 워킹맘, 화려한 삶을 살지만 외로움이 가득한 연예인, 항상 웃지만 아픔을 간직한 성소수자까지. 이렇게 드라마는 로맨스라는 중심에 묻힐 수도 있었던 사회적 현실을 놓치지 않으면서 장르의 지평을 넓혀나간다.  

위트 있는 대사들로 현실 풍자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한 장면 ⓒ JTBC

 
흥미로운 것은 <멜로가 체질>이 그들의 아픔을 정서적으로 과잉시키는 방법이 눈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멜로드라마면서 동시에 코미디를 표방하는 드라마답게 위트 있는 대사들로 현실을 풍자하며 아픔을 웃음으로 전환시킨다. 예를 들어 작중 광고 촬영 현장에서 갑을 관계를 앞세워 소민(이주빈)에게 폭언을 하는 광고 감독에게 은정은 시원하면서 틀린 말이 없는 욕들로 맞대응한다. 한주의 경우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부여된, 직무와 하등 관계가 없는 애교를 강요하는 다른 스태프들에게 호쾌한 역공을 날리며 부조리를 정면으로 돌파한다.

사실 이처럼 울분과 연민의 감정을 자아내는 인물들의 감정선을 굳이 신파로 빠지지 않은 채 거침없고 솔직한 코미디로 해결하는 것은 이병헌 감독의 장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멜로가 체질>은 <극한직업>에서 자영업의 현실과 퇴직자들의 현실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페이소스를 담아 그려내고, <스물>에서는 보통의 20대 남성들이 고민하는 연애, 진로, 군대 등의 문제들을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병맛 코드로 유쾌하게 풀어냈던 것의 연장선상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 드라마가 주인공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방식은 왜 이 작품이 전작들에 비해 현실로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처럼 느껴지는지를 알려준다. 드라마는 그들에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위로를 건넨다. 바로 집과 가족이다. 그런데 작중 가족은 보통 떠올리는 가족의 모습이 아니다. 드라마 속 가족은 피로 뭉친 가족이 아니다. 진주, 은정, 한주는 한 집에서 살고 같이 밥을 먹고 잔다. 그들은 서로 있었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고민하며, 듣고 놀리면서도 맥주 한 잔에 털어낸다. 

이러한 <멜로가 체질>의 위로는 일반적으로 인식되던 '가족'이 아닌 정으로 함께하는 '식구'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자취, 기숙사, 셰어 하우스 등 기존의 가족들 품을 떠나 새로운 형태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 20대, 30대 청년들에게 떨어져 있는 가족이 항상 그리운 존재라면 함께 밥을 먹으며 지내는 식구는 현재 누구보다도 중요한 존재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족의 개념이 변화하는 있는 현실까지도 보듬는 시의적절한 연출이자, 청년들의 판타지를 간접적으로 실현시켜주는 선택인 것이다. 그렇기에 비록 판타지의 내용이 언제나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판타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뜨는 콘텐츠'에 이름을 올린 <멜로가 체질>

방영 당시 1%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큰 반응을 유도하지 못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현재 <멜로가 체질>은 넷플릭스에서 꾸준히 '오늘 한국의 top 10 콘텐츠'를 비롯해서 '뜨는 콘텐츠'에 이름을 올리면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유튜브에서도 <멜로가 체질> 클립의 조회수는 작년 비슷한 시기에 히트했던 <동백꽃 필 무렵>과 <호텔 델루나> 클립의 조회수와 비슷한 수치를 기록 중이다. 

얼핏 보면 기묘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이 현상의 이유는 드라마를 보고 나면, 그리고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주 사용층이 어느 연령대인지를 생각해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익숙한 남녀의 로맨스에 머물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청년들의 아픔과 그들이 함께 이겨내는 모습을 따뜻한 대사와 시원한 웃음으로 그려내는 것. <멜로가 체질>이 시간이 지나도 사랑받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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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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