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지자 보이는 것들

4월 22일 지구의 날 전기 끄기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등록 2020.04.24 14:27수정 2020.04.2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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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보아오던 밤의 풍경을 오늘 다시 바라보니 검은 밤이 참으로 경이롭군요."
"불이 환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불이 꺼지니까 많이 보여요."
"불을 다 껐는데 5분쯤 뒤에 아들이 귀가해서 다시 불을 켜서 아쉽네요."


4월 22일 지구의 날 전기 끄기 행사에 참여한 지인들의 소감들이다. 그날 오후 8시 정각부터 10분간 자신이 있는 장소의 전등을 꺼서 지구환경을 살피자는 행사였는데 환경부에서는 별도의 안내까지 공지했다(http://www.climateweek.kr/board/lights-out).

교황까지 나서서 이 행사를 독려했는데 가장 인상적인 언급은 '신은 항상 용서하시고, 인간들은 때때로 용서하지만 자연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는 스페인 격언이었다. 맞다. 자연은 때론 참혹한 응답을 한다.

내가 이 지구의 날 행사를 여러 단체에서 추동한 것은 지난달 호주의 대형 산불과 코로나19는 같은 뿌리여서다. 둘 다 생태계 파괴와 기후 위기의 산물들이다. 바이러스와 산불이 같은 뿌리의 다른 형상이라는 데에 누구도 이론이 없을 것이다.

지구의 날 행사를 중요하게 여긴 것은 내일이면 쓰레기가 될 물건들을 엄청나게 만들어내서 성장만 외치는 사회여서다. 인류는 소비의 노예가 되어 있어서다. 소비병, 풍요병, 부자병, 소유병 등 모든 문제들은 에너지에 의존하는데 에너지의 상징은 전기여서다.

전기는 역학 에너지, 열에너지, 빛 에너지 등 어느 것으로든 쉽게 전환이 된다. 보관도 쉽고 이동도 쉬우며 청결하기까지 하다. 지구의 날 전기 끄기 행사는 우리 문명의 반성 위에 기획된 것이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지구의 날에 온실가스 감축과 저탄소 생활 실천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전국적으로 소등행사를 진행한 것인데 시민들이 호응이 영 형편없었나 보다.

다음 날인 4월 23일, 경향신문 1면에 실린 사진이 그걸 말해 주고 있다. 서울 중심가 사진인데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들이 그대로였다. 그러나 내가 추동한 단체들은 제법 불 끄기 참여를 하고서 산발적인 소감문들이 올라왔다.

나이 60대 중반의 한 여성의 소감문은 김치 냉장고 없이 살기로 했다는 것이다. 김치냉장고가 고장 나서 새로 신청해 놨는데 지구의 날 행사 안내를 보고 주문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나의) 냉장고 주문은 습관에서 온 자동 반응이었습니다. 나의 영적 비전은 삶을 진귀하게 사는 것이며 그 행동이 냉장고 하나 줄이기였습니다~ 지구가 웃겠습니다."

그분의 소감은 이렇게 이어졌다.

"... 자동 반응으로 만들어 내는 나의 분주함이나 버거움 들. 이런 삶의 거품들을 빼기 시작합니다."

너무 익숙해서 상투적인 얘기로 들릴 수 있지만, 지구는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우리를 지탱해 주는 사랑의 어머니이며 우리가 죽은 뒤에도 우리의 육체를 그녀의 가슴에 품어주는 진정한 어머니다. 지구는 또한 여러 해침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우리의 아이이기도 하다.

냉장고 코드까지 뽑았다는 어떤 이의 소감문을 하나 더 소개한다. 냉장고는 코드를 뽑으면 고장의 원인이 된다고 어느 분이 조언을 하자 그분이 한 말이다.

"아... 잘 됐다. 냉장고 없이 살려고 하는데 오래됐지만(2007년 구입. 240리터) 잘 돌아가서 차마 버리지 못했는데 코드 뺐으니 이번에 고장날 수도 있겠네요?"

냉장고는 놀랍게도 신선한 음식을 먹게 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음식을 너무 오래 보관하게 하는 폐단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사람은 물론 동식물 등 세상 만물은 서로 혈족 관계에 있다"(<현대 생태사상의 이해> 65쪽)는 말을 인용한 사람도 있었다. 지구의 날 행사를 통해 많은 각성과 헤아림을 서로 주고받는 밤이었다.

코로나19의 극복이 전등 하나 끄는 것과 연결됨을 알아채는 사람들을 만나는 밤이었다. 불이 꺼져야 비로소 보이더라는 말이 귀에 맴돈다. '자동 반응'도 그렇다. 이제 습관된 자기를 넘어서 창조적 자기로 돌아갈 때다. 코로나19가 계속 속삭이는 잠언들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함양신문>에도 다음 주 초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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