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순창 할미넴' 탄생시킨 로컬계 마이더스의 손

[로컬에서 길찾기⑤] 전북 순창의 로컬 크리에이터, 장재영 방랑싸롱 대표

등록 2020.05.02 20:04수정 2020.05.02 20:04
1
원고료로 응원
비로컬과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 함께 '로컬에서 길찾기'라는 기획을 마련했다.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과 출산율 감소로 로컬이 빠르게 활기를 잃어가는 가운데 코로나19 사태가 더해지면서 지금껏 우리가 추구해온 삶의 방식을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로컬을 되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로컬에 희망은 있을까. 이런 물음에 답을 얻고자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로컬 전문가들을 만났다. 앞으로 5~6회에 걸쳐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편집자말]
쇠락한 제조업 도시를 관광 산업으로 되살린 곳들이 있다. 스페인 빌바오가 늘 첫 손에 꼽힌다. 1997년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을 지어 전 세계로부터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정말 그럴까.

수백 년 동안 철강업으로 번영을 누려온 도시를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탈바꿈하기로 마음먹고 빌바오시가 처음 한 일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네르비욘 강과 그 주변을 되살리는 일이었다. 시뻘건 쇳물이 흘러들던 강을 정화하는 데 30년간 쏟아부은 돈이 어림잡아 1조7천억 원이다. 그리고 강을 따라 줄지어 늘어서 있던 제련소와 조선소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공원을 비롯한 공공시설들을 들여와 시민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산책로를 마련했다. 시민이 조금 더 쉽게 찾아올 수 있게 트램도 만들고 지하철도 늘렸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70%가 스페인 사람이라고 한다. 여기까지 오는 데 길게는 20년 가까이 걸렸다.

이런 노력을 보지 않고 구겐하임 빌바오만 쳐다보면 잘못된 해법에 이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긴 구름다리를 놓는다거나, 산꼭대기에 커다란 태권브이를 짓는다던가 하는 일들이다. 그게 다라면 정말 곤란하다.

<골목길 자본론>을 쓴 모종린 교수도 "해외 테마파크 등 지역 문화와 동떨어진 관광 시설 유치보다는 지역 자원 개발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감성과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고 색다른 체험과 공감을 찾아 떠나는 로컬 여행이 뜨고 있는 만큼 "지역의 생활 문화로 삶의 질을 높이고 인재와 여행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역 커뮤니티와 로컬 크리에이터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전북 순창에는 '방랑싸롱'이라는 곳이 있다. 부부가 함께 운영한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장재영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고 여행 가이드를 하며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지금까지 60여 개 나라를 다녔는데, 파리나 로마 같은 곳은 지하철 노선표를 보지 않고도 다닐 수 있을 정도다. 그런 그가 2016년 여름 순창의 작은 여관방 하나를 빌려 카페를 열었다. 벌써 3년째 동네 곳곳을 무대로 재즈 페스티벌을 여는가 하면 할머니들에게 랩을 가르쳐 랩 배틀을 벌이기도 했다.

전 세계를 누비다 대한민국 로컬에서 크리에이터로 살아온 지난 3년은 그에게 어떤 시간이었을까. 그는 정말 로컬에서 희망을 발견했을까. 4월 초 새롭게 단장한 방랑싸롱에서 2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눠봤다.

'홍대 록카페' 다니던 그가 '순창'에 자리잡은 이유
 

장재영 방랑싸롱 대표. ⓒ 윤찬영

   
- 어떻게 순창에 자리를 잡게 되었나.
"호주에서 살려던 계획이 틀어지고 2011년에 한국에 돌아와서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여행사 다니던 친구가 한국 여행 가이드를 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처음으로 해보게 됐다.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고가의 국내 여행 상품이었는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6박7일짜리 전국 일주가 일 인당 130만 원 정도 했다. 잠깐 할 생각이었는데 5년이나 했다.

그러면서 마음의 병도 치유가 됐고 우리나라에도 관심이 생겼다. 봄가을 성수기를 빼고는 안 가본 곳들을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좋은 데가 많구나 깨달았다. 순창은 여행 코스에 없던 곳이다. 그런데 재밌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고 해서 처음으로 와봤다. 오래된 한옥을 개조한 곳이었는데 주인이 친화력이 좋아서 며칠 머물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러다 카페를 해볼 생각 없냐고 제안을 해와서 주저앉게 됐다. 4평짜리 여관방 하나, 101호에 카페를 열었다. 그게 2016년이었다."
 
- 무슨 생각이었나.

"카페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지금껏 여행 다니면서 보고 배운 것들이 많은데 여기에서 이러이러한 것들을 해보면 정말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에 10개도 넘는 구상들이 있었다. 또 순창은 처음 와봤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는 백지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뭐라도 하면 금방 드러날 것 같았다. 6월에 제안받고 7월에 내려왔다."
 
- 홍대에서 나고 자라서 문화 기획자로서의 역량이 자연스레 길러진 건가.

"마포에서 학교를 나온 덕분에 록카페를 엄청나게 다녔다. 몸으로 자연스럽게 익히긴 했지만 정식으로 문화를 공부한 건 아니라서 문화 기획자라고 불리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도 기회가 될 때마다 배우러 다닌다. 지금 하는 일도 문화로 접근한다기보다는 사람들이 여행을 올 수 있도록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서 있는 곳에 따라 나를 다르게 부른다. 문화관광부는 문화 기획자라고 하고 국토부에선 도시재생 전문가라고 하고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는 지역 혁신가라고 한다. 나는 여행업이 맞다. 이 모든 걸 다 아우르는 여행 콘텐츠가 핵심이다."
 

최근 새롭게 단장한 '방랑싸롱' 모습. 작은 공연장과 벽화가 눈에 띈다. ⓒ 방랑싸롱

   
- 여관방을 나와서 새로 널찍한 카페를 열었다. 확장 이전인가.
"여관 주인장과 뜻하는 바가 달랐다. 이곳은 고추장 저장고로 쓰이다 꽤 오래 비어있던 곳이다. 순창군 창업지원금 공모 사업에 지원해서 뽑혔다. 공간을 쉽게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결국 장소를 못 구해서 군에 찾아가서 지원금 포기하겠다고 했다. 네 번이나 했는데 군에서는 계속 더 찾아보라면서 안 받아줬다. 결국 군수를 만났을 때 얘기를 꺼냈더니 같이 찾아보자면서 이곳을 소개해줬다. 버리지 못한 고추장이 가득 쌓여 있었다."
 
- 널찍하고 좋아 보인다. 계약 조건은 어땠나.

"월세 50만 원에 8년 계약했다. 어차피 나 말고는 쓸 사람도 없으니 장기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주인은 바로 옆 건물도 사서 식당을 열었는데 시너지 효과도 기대했던 것 같다.

리모델링에는 시행착오를 좀 겪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으니까. 건물주한테 업자를 소개 받았는데 뜻대로 잘 안 됐다. 그래서 결국 큰 창문을 새로 내고 2층 공간을 만드는 것까지만 하고 손 떼라고 했다. 혼자 해보려고 했던 건데 그 뒤로 더는 손 못 대고 방치해두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다시 제대로 마무리했다. 한 달 반을 매달려서 끝낸 지 이제 일주일 됐다."
 
- 수입은 어떤가.

"사실은 카페 외의 개인 수입이 좀 있어서 카페가 잘 안 돌아가도 큰 타격은 없다. 아직은 다른 데서 돈 벌어서 카페를 돌리는 상황이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아내랑 역할을 나눠서 아내가 카페를 전담하면서 아르바이트를 쓸 수 있을 정도로 운영해볼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 나는 조금 더 자유롭게 다른 일들을 해볼 수 있게. 그래서 인테리어도 새로 한 거다.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여기에만 매달릴 생각은 없다."
 
- 명함엔 관광두레 PD라고 돼 있던데 다른 데서 돈을 번다는 건 이 일인가.

"그것도 하나다. 문화관광부가 8년째 해오는 사업인데, 지역 자원을 활용해 창업하려는 주민공동체를 발굴하고 인큐베이팅하는 일이다. 나는 2년째 PD를 맡고 있다. 한해동안 4~5개 공동체를 발굴한다. 선정이 되면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할 때마다 지원금을 준다. 그렇게 3년을 지원해주고 나면 자립하는 게 목표다."

재즈패스티벌부터 할미넴 프로젝트까지
 

지난해 순창에서 열린 재즈 페스티벌. 해외 뮤지션들도 참여했다. ⓒ 방랑싸롱

   
- 그동안 순창에서 어떤 일들을 했나.
"정말 많은 일들을 했다. 어떻게 보면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다. 콘텐츠 만드는 일이 너무 재밌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찾아와주니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가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재즈 페스티벌이 있는데, 지역이 흥하고 재미있어지려면 동네 여기저기서 재즈 공연이 펼쳐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터에서도 하고, 주차장에서도 하고, 식당 앞에서도 하고. 그러면 구경 온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맞는 공연을 만나면 잠시 멈춰 서서 듣고. 자연스럽게 지역 경제도 활성화될 거라고 봤다. 얼마나 신나고 재밌겠나.

시골에 와서 보니 자꾸 어설프게 서울을 따라 하려고 하더라. 도시를 따라 하는 걸 굳이 왜 여기까지 와서 보겠나. 시골은 철저하게 시골스럽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찾는다. 또 시골이니까 가능한 것들이 있다.

실제로 일본에 그런 모델이 있다. 내가 이런 구상을 하고 있다고 하니까 아는 사람이 일본 '타카츠키 재즈 스트릿'이라는 축제가 있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일본에 보러 갔다. 매년 5월 3~4일에 오사카 타카츠키에서 열린다. 그해 행사가 18회째였던 걸로 기억한다. 한해에 30만 명이 찾는다고 한다."
 
- 구상했던 것과 비슷했나.

"상상했던 것의 결정판이었다. 공연장이 69번까지 있었는데, 찾아다녀 보니 카페, 학교 운동장, 술집, 공터 다 이런 곳들이었다. 물론 큰 무대도 있었다. 공연팀 번호는 700번이 넘어갔다. 그러니까 한 시간 단위로 지역 곳곳에서 700개가 넘는 공연이 이어지는 거다. 또 골목마다 번호 없는 애들이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고깃집 앞에 간이 테이블을 깔아놓고 휴대용 버너로 고기를 계속 구워대면서 종이컵에 고기를 담아서 팔았다. 지역 경제 활성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재밌는 건 외국인들도 엄청 많은데 외국인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팸플릿에 영어가 한 줄도 없더라."
 
- 순창에서 진행한 재즈 페스티벌은 어땠나.

"처음엔 크게 못 하고 여관 안에서 두 번을 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찾아와서 즐겼다. 2018년 세 번째 페스티벌부터는 몇 군데에서 나눠서 했다. 카페와 식당 한 군데씩 그리고 군청 앞마당 이렇게 세 군데서 공연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야외 공연은 망쳤다.

굿네이버스, 조선일보, 한국타이어가 지원하는 드림위드라는 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그래도 반응이 좋아서 2019년에 또 지원하라고 하더라. '순창 바이브(VIBE)'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9월 장날에 맞춰서 열었다. 이번엔 해외 뮤지션도 불렀다. 이날 장은 역대 최고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열린 '쇼 미더 순창' 경연 모습 ⓒ 방랑싸롱

   
- 할미넴 프로젝트도 유명하더라.
"청년들과 어르신들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었다. 랩은 청년들이 좋아하는 장르고 어르신들은 말씀을 참 잘하시지 않나. 어르신들 말씀에 비트를 씌워보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 전라북도농어촌종합지원센터 농촌 활력 리빙랩 공모에 지원해서 뽑혔다.

래퍼를 모은다는 공고를 크게 냈더니 실력이 쟁쟁한 래퍼들 수십 명이 지원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하고 적어도 10번은 만나야 하고, 만날 때마다 20만 원씩 준다고 했다. 청년들과 지역 어르신들이 만나서 함께 랩을 하는 모습이 얼마나 멋지냐. 지난해 11월에 '쇼 미 더 순창'이란 경연도 열었다. 한 달 넘게 연습해서 풍산면과 구림면 할머님들이 랩 배틀을 벌였다. 영상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고 30분짜리 독립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서 영화제에 보내 놨다."
 
- 지원사업으로 수익을 남기긴 어렵지 않나.

"수익 구조를 보면 관광두레 PD로 받는 월급을 빼면 주 수입은 용역이다. 지역 농가를 SNS와 유튜브로 홍보하는 용역을 계속하고 있다. 팜파티도 한다.

말했다시피 공모로 받는 지원금은 남는 게 없다. 그래서 정말 해보고 싶은 기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만 참여한다. 내실도 다지고 맷집도 키우고 다양한 팀들과 손발도 맞춰보는 거다. 재즈 페스티벌도 지역의 영농조합이나 농가연합, 농부 요리사 팀들이랑 같이 협업한 결과다. 올해도 재즈 페스티벌을 하려면 공모에 지원해야 한다."
 
- 본인을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하나.

"<비로컬> 김혁주 대표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데, 문화 기획을 하다가 영상 작업이 필요하면 영상 일을 하게 되고, 그러다 다시 건축 작업이 필요해지면 건축 일도 하게 되고 그렇게 필요한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면 마치 로컬을 되살리는 일처럼 돼버린다는 거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딱 그렇다. 그게 로컬 크리에이터라면 나도 로컬 크리에이터가 맞다.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계속 필요한 일들을 해나가고 있고, 지금은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 다른 인터뷰를 보니 어느 지역이든 청년들이 없는 게 아니라는 얘기를 했던데 무슨 뜻인가.
"처음 카페를 열었더니 동내 청년들이 찾아오더라. 청년들 없다고 하는데 다양한 청년들이 있었다. 그래서 재작년에 청년모임을 제안했다. '순창 청년들 모여라' 했더니 30명 넘게 모였다. 다들 놀랐다. 귀농한 청년들도 있었는데 뭔가 재밌는 일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하필 그 해에 지방선거가 있었다. 청년들을 모으는 걸 보고 군수랑 친해서 선거용 조직을 꾸리는 것처럼 반대쪽에서 몰고 갔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래서 모임이 흐지부지됐다.

선거 끝나고 나서 다시 시도했다. 지역 청년들이 다양한 사례를 알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전북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을 다 모아 사례를 공유하는 '청년 허브 콘퍼런스'를 열었다. 70명 정도 모여서 3시간 정도 서로 사례 발표하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왁자하게 놀았다. 서울에서도 지역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찾아왔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지 않는다
 

장재영 방랑싸롱 대표. ⓒ 윤찬영

   
- 로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고 있다. 부담이나 책임감도 생길 것 같다.
"사람들을 모으면 지역 경제는 자연스럽게 활성화될 거다. 청년이 늘고 인구도 늘고, 모든 것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걸 목표로 시작한 일은 아니다. 그냥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는 정말 단순한 꿈이다. 그렇게 콘텐츠를 만들다 보니까 페스티벌도 하게 된 거다. 이게 핵심이라고 본다. 그래서 플랫폼으로 만들어서 이걸 다른 곳으로 확산시켜 보고 싶다.

다른 지역에서도 요청이 많다. 공간은 있는데 운영할 사람이 없다거나, 어떤 지원을 받게 됐는데 운영할 사람이 없다거나 하는 요청들이다. 최근 몇 년간 해온 일들이 레퍼런스가 되는 거다. 지역에서 꼭 뭘 해봐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지금 하는 작업이 플랫폼이 되고 모델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도 참고로 활용했으면 한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성이다. 어떻게 보면 다른 지역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다.

하지만 돈 받고 대신 일을 해주는 용병이나 업자 마인드는 아니다. 돈 받은 만큼만 일해주고 오는 건 못하겠더라. 순창에 애정을 가지고 했던 것처럼 그 지역에선 어떤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지, 같이 일해 볼 청년들은 없는지를 자꾸 찾게 된다. 관광두레 경험을 살려서 가능한 만큼 지역에서 청년들을 발굴하고 교육하려고 노력한다."
 
- 다른 지역에서 스카우트 제안도 오겠다.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는 생각은 아직 없다. '저것들도 언젠가는 떠날 거다', 이러면서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기도 하는데, 어디나 다 비슷하다고 본다. 지역 토박이들이 내 맘처럼 나를 봐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순창을 기반으로, 순창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 순창에 어마어마하게 애정이 있다는 식으로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다. 애정은 혼자서 노력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서로 애정을 쌓아갈 수 있게 노력했으면 한다.

나는 전 세계를 다니면서 버텼던 사람이라서 어디서든 버틸 만한 맷집이 있다. 아내는 다르다. 많은 것들이 상처로 남는다. 그래도 우리가 순창에서 만나서 결혼도 하고, 이렇게 자리도 잡은 걸 축복이라고 여기자고 말하면서 달랜다.

할 수 있는 만큼은 다 해보고 다 보여주고 싶다. 아직은 순창을 핫(hot)하게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해서 떠나고 싶지 않다. 첫발은 뗐지만 아직은 뭔가를 더 보여주고 싶다."
 
- 뭔가 보여주려면 필요한 게 뭔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려면 디자이너도 필요하고, 공연 기획자도 필요하고, 필요한 사람들이 조직화가 돼있어야 하는데 지역 사정은 아직 그렇지가 못하다. 그게 너무 힘들다. 지역에서 필요한 사람을 찾기도 어렵고, 필요한 사람은 멀다고 잘 오려 하지 않는다. 여러 번 시도했는데 그럴 때마다 굉장히 힘들었다.

-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
"조직화가 가장 급하다.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공연과 문화 기획 그리고 관광, 이렇게 파트를 나눠서 팀이나 체계를 꾸리고 싶다. 자체 콘텐츠를 생산하려면 일단 디자이너가 필요하다. 비주얼한 콘텐츠를 끌어낼 수 있는 디자이너. 지금은 사람이 없어서 혼자서 매일 새벽 서너 시까지 작업실에 앉아서 일한다. 휴일도 없다. 체력도 슬슬 달린다. 법인화도 준비하고 있다."
 
- 미래의 로컬 크리에이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역에서 뭔가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면 만만치 않은 암초들을 만나게 된다. 지역 공무원일 수도 있고 토박이들일 수도 있다. 나는 외국에서도 살아봤으니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왔는데, 사람들은 의외로 잘 모르는 것 같다. 순창에도 귀농 귀촌한 청년들이 많은데 어려움이 닥칠 거라는 걸 전혀 예상 못 했는지 너무 힘들어한다. 그래서 대부분 못 버티고 돌아간다. 아니, 농촌에서 농사짓는 게 안 힘들다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당연히 어렵지. 왜 안 어렵겠나.

지방이 기회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회가 누구에게나 오진 않는다. 기회의 여신 오카시오처럼 그녀를 알아볼 혜안과 잡아챌 찬스, 따라갈 용기와 맷집이 두루 갖추어져야 한다."

[기획 / 로컬에서 길찾기]
① "로컬에서 글로벌 기업 나와야 의미 있는 생태계 된다" http://omn.kr/1n5z1
② "로컬 크리에이터에겐 성장 만큼 균형도 중요" http://omn.kr/1n7a4
③ "로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건물·콘텐츠 아니라 실력·열정 갖춘 운영자" http://omn.kr/1n818
④ "로컬 생태계가 건강하려면 돈 버는 사람이 필요하다" http://omn.kr/1ndls

[참고한 글]
"녹슨 쇳물 걷어낸 자리에 '구겐하임 빌바오'…문화가 흐른다", <한겨레>, 2019.11.12.
"쇠락한 탄광 도시는 어떻게 살아났나, 빌바오에서 배우는 도시 재생의 3원칙", <중앙일보>, 2020.1.27.
"[모종린의 로컬리즘] 해외여행 대신 '2박 3일'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조선일보>, 2020.4.24.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윤찬영 기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현장연구센터장입니다. 이 기사는 비로컬(http://belocal.kr), 시사N라이프, 새사연(http://saesayon.org)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새사연은 현장 중심의 연구를 추구합니다. http://saesayon.org과 페이스북(www.facebook.com/saesayon.org)에서 더 많은 대안을 만나보세요.

AD

AD

인기기사

  1. 1 조국이 이렇게 반격할 줄은 몰랐을 거다
  2. 2 윤석열 총장은 우선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3. 3 상속세 폭탄? 이재용에게 오히려 기회다
  4. 4 '박근혜 7시간' 기자 뭐하나 했더니... 아베의 질투
  5. 5 [오마이포토] 류호정 의원 1인시위 바라보는 문재인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