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의 독립운동 이야기

장병하 생존 지사의 증언을 중심으로

등록 2020.04.27 13:29수정 2020.04.2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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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담은 <안동농림학교 학생 항일운동>의 표지 ⓒ 광복회 경북지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은 독립운동 시기였다. 1910년대는 박상진·우재룡·이병찬·채기중·김한종 등의 대한광복회가 당대를 대표하는 독립운동 단체였다. 1920년대는 김원봉·이종암·김익상·김시현·김상옥·류자명·윤세주 등의 의열단이 중심이었다. 1930년대는 김구·윤봉길·이봉창·김홍일·이화림 등의 한인애국단이 가장 두드러졌다.

1940년대는 학생운동이 여러 부문 운동 중에서 가장 활발했다. 대구사범학교의 다혁당, 대구상업학교의 태극단, 광주서중의 무등회, 경성제대 의학부의 협동당, 춘천사범학교의 백의동맹, 경복중학교의 흑백당 등 많은 학생 결사들이 일제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다.

안동농림 학생들, 비밀결사 조직해 무장투쟁 도모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의 비밀결사 조선독립회복연구단과 명성회도 그 중 하나였다. 안동농림 학생들의 결사 조직 움직임은 1942년에 태동되었다. 9회생 황병기·이갑룡·장병하 등은 상지회라는 면학 클럽을 만들어 독서와 토론 모임을 시작했고, 1943년부터는 비밀리에 외국 방송을 청취했다. 외국 방송은 일제가 곧 패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윽고 1944년 10월 학생들은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을 결성했다. 단원은 모두 51명으로, 안동농림학교 학생 41명, 교사 1명, 경주 중학교 학생 1명, 일반 사회인 8명으로 구성되었다. 단원들은 '잠자는 우리 민족을 깨우며 오직 조국의 독립 회복에 목적을 둔다'를 조직 창단의 목적으로 설정했다.
 

1945년 3월부터 10월까지 투옥된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원내는 생존 지사 장병하 선생) ⓒ 광복회 경북지부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은 8회생의 졸업날인 12월 22일 전후에 거사를 하기로 결의했다. 경찰서와 헌병 파견대에서 무기를 탈취한 후 안동의 우체국 교환대·읍사무소 등 일제 관공서를 파괴·장악하고, 악질 일본인을 처단하며, 교통과 통신을 마비시키기로 방침을 세웠다.

거사는 명성회와 함께 추진했다. 명성회는 사상 불온을 이유로 퇴학당한 뒤 일본 유학을 떠났던 안동농림 9회생 이정선이 안동으로 돌아와 1943년 4월에 조직한 비밀결사였다. 14명으로 구성된 명성회 회원들도 정세가 유리한 시점에 맞추어 무장 봉기를 일으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폭파 대상인 낙동강 철교의 교각 구조를 파악하여 그림으로 그려두고, 전신주에 오르내리는 연습을 하는 등 구체적인 준비에 몰두했다. 대구 계성학교에 다닐 때 유도를 배운 김우현은 안동경찰서 무덕전에 가서 일본인들과 유도를 하며 경찰서 내부 구조를 파악하기도 했다.

1945년 2월 17일 일제 요인 등 암살 계획

그 후 정세 변동으로 거사일은 1945년 2월 17일로 변경되었다. 8회생인 권영동과 윤동일은 이미 졸업을 하여 부임이 결정되어 있었지만 포기를 하고 거사 준비에 매달렸다. 동포들의 총궐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벽보를 만들고, 거사를 일으킨 직후에는 읍사무소와 경찰서의 확성기를 이용해 연합군의 승전 소식과 일제의 패망이 가까워오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릴 계획도 세웠다.

거사가 시작되면 대구에서 출동할 일본군 제 24부대의 공격도 대비해야 했다. 단원들 중 일부는 기차를 타고 의성에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적군과 전투를 벌이기로 했다. 그렇게 만사를 차근차근 다져가고 있는 중에 뜻밖의 일이 터졌다.

2월 5일, 수업 중에 이준택 단원이 일제 경찰에 연행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황해도 겸이포 제철소에 근무 중이던 이승태 단원도 곧 이어 피체되었다. 두 사람이 주고받던 서신이 일제에 포착된 결과였다.

마침내 3월 들어 70여 명의 단원들이 체포되고 말았다. 안동농림학교 일본인 교장 원구양책(原口良策)은 전교생을 모아놓고 "지금 경찰서에 투옥된 자들은 미국과 내통하여 B29가 신호를 보내면 그것을 기회로 무기고를 습격하여 안동 읍내에 있는 (일본인) 기관장들을 암살하려고 하였다. 이런 자들은 단호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위협하였다.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 18일에 찍은 '조선회복연구단 일동' 사진. 이들은 어제 감옥에서 풀려나왔다. ⓒ 광복회 경북지부

 
체포된 단원들의 대부분은 안동 경찰서와 형무소에 구금되어 고등계 형사 서영출·이대우·손대용, 형사부장 김피득·안야(岸野) 주임 등으로부터 6개월에 걸쳐 혹독한 고문과 심문을 당했다. 황해도로 압송된 일부 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8월 15일 독립이 되지 않았다면 상당수 단원들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해방이 되었지만 여전히 친일파가 준동

생존 지사 장병하 선생은 조선독립회복연구단과 명성회의 항일 투쟁을 담은 책 <안동농림학교 학생 항일운동>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해방된 뒤 경찰서에 가보니 우리를 취조하던 형사가 그대로 그 자리에 있고, 읍사무소나 어디를 가봐도 그때 사무 보던 사람 역시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전부 친일파가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어."

<안동농림학교 학생 항일운동>은 광복회 경상북도 지부와 안동시 지회가 공동으로 펴냈다. 2018년 11월에 발간된 이 책은 조선독립회복연구단과 명성회의 활동에 대해 상세히 증언해준다.

책은 신승훈의 논문 '해방 직전 안동농림학교 학생 항일운동 연구'와 장병하 지사의 '안동농림학교 75주년 기념 연설'과 '생애 구술'을 주축으로, 그 외 일제의 형사 사건 기록, 참여 학생 명단 및 관련 사진, 당시 학생들의 앨범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덧붙이는 글 광복회 경상북도 지부와 안동시 지회 공편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2018년 11월, 비매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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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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