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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코로나192311화

"퇴근하면 귀가 얼얼" 쉴 때도 마스크 못 벗는 버스기사들

[르포] 코로나 시대, 출근시간 이용 1위 152번 버스 차고지에 가다

등록 2020.04.29 11:41수정 2020.04.2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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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차고지 휴게실 내 게시판.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이겨낼 것입니다’가 적혀있다. ⓒ 한정연


지난 24일 오후 3시께 찾은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차고지 안. 퇴근 시간 배차를 준비하는 152번 버스 기사들이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마침 기자가 방문한 날은 새로운 커피 자판기가 들어오는 날이라 설치기사들이 왔다 갔다 하며 휴게실이 시끌벅적했다.
     
기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휴게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공통된 장면 하나.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거나 안마의자에 누워 쪽잠을 잘 때도 누구 하나 마스크는 벗지 않았다. 휴게실 문과 화장실, 알림판 곳곳에는 '회사 내부에서도 마스크 필히 착용하세요'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52번 버스는 2018년에 이어 2019년에도 출근 시간 이용객 수 전국 1위를 차지했다. 교통수단 발생량 기준으로 이 버스의 지난해 총 이용 건수는 약 1319만 건에 달했다.
     
마스크와의 싸움, 그보다 더 두려운 것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차고지 모습 ⓒ 한정연


152번 버스는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부터 경기도 안양시까지 운행하는 장거리 노선이다. 왕복 운행 거리만 64km에 달하고 왕복 회차하는 데 약 3~4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인지 '최근 코로나19 때문에 겪게 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기사는 '마스크 착용으로 인한 갑갑함'이라고 답했다. 긴 운행 시간 동안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후 4시 15분, 새벽부터 시작된 근무를 막 마치고 교대한 최용주씨는 "퇴근하면 귀 뒤가 당겨서 빨갛게 부어 있다"며 연신 귀를 만지작거렸다.
   
152번 버스만 7년 몰았다는 최씨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운행하려니 답답하다. 두어 시간만 지나도 피부가 따가울 때가 많다"며 "안경을 쓰는 운전사들은 시야 방해까지 겪는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마스크 때문에 승객들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커피믹스 상자의 손잡이를 이어 마스크를 착용한 기사. 장시간 마스크를 껴 귀가 아파서 유튜브 영상을 보고 고안한 방법이라며 웃어보였다. ⓒ 한정연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겪는 더 큰 고충은 '마스크를 끼지 않은 승객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함'이라고 기사들은 입을 모았다.

"아무리 조심해도 언제 어떻게 감염될지 모르니 불안하죠. 내가 걸리면 가족들은 물론이고 동료들까지 곧바로 피해를 보는 거니까 부담도 됩니다."

매일 수십, 수백 명을 태우는 버스는 밀착 접촉이 불가피한 공간이다. 운수종사자 중 확진자가 나온다면 해당 차고지 접촉자 모두 감염검사 및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한광선 동아운수 노무팀장은 "가장 신경 쓰는 지점은 노선에서 확진자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152번 버스는 하루 회차가 165회에 달하는데, 확진자가 나오면 그 시간에 휴게실에 있던 기사님들 전부 다 쉬어야 한다"며 "그렇게 되면 생계에 타격을 많이 받으시게 되니까 회차 때마다 방역을 꼼꼼히 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버스 회차 때마다 차고지에선 매번 방역을 실시한다. 전문 방역업체 직원이 사용하는 천막 모습. ⓒ 한정연

 
기사들은 '대부분의 승객이 마스크를 착용하지만, 간혹 마스크를 끼지 않고 타거나, 운전석 옆에서 지속적으로 기침을 하는 승객이 있으면 걱정이 된다'고도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미국의 한 버스 기사는 코로나19 사태 속 대중교통 종사자들이 처한 현실을 호소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마스크를 끼지 않고 기침을 하는 승객들과 매일 마주하며 늘 위험한 상황에 노출돼 있다는 것. 당국의 보호와 시민들의 에티켓을 호소하던 이 버스 기사는 지난 1일 코로나19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참고 :  [서울신문] "승객이 기침해대요" 열흘 만에 美 버스 기사 코로나19 사망).

운전 중 승객으로 인해 겪은 곤란한 점도 있었다. 운전기사들은 '승객끼리 마스크를 안 썼다고 싸울 때 힘들다' '코로나19 초기에는 마스크함을 버스 내에 비치했는데 이제는 무상지급하지 않으니 항의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또 한 운전기사는 '하차 직전에 손 소독제를 사용하기 위해 하차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손 소독제를 한 곳이 아니고 두 곳에 비치하면 좀 더 편리할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새벽 1시 55분 막차... 약 두 시간 뒤 다시 켜진 엔진
 

152번 막차에서 기사가 시동을 끌 준비를 하고 있다. ⓒ 한정연

 
152번 버스 막차가 밤 10시 20분에 출발해 안양 회차지를 돌고 수유동 차고지에 들어온 시각은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였다. 홑겹 바람막이를 입고 버스 요금통을 한 손으로 든 막차 기사는 시동을 끈 뒤 마지막으로 전광판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앞문 계단으로 걸어 내려왔다. 쌀쌀한 새벽, 서울 체감온도는 영하 5도였다.

막차를 담당한 기사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이전보다 더 힘들진 않느냐는 질문에 '마스크 때문에 답답한 면은 있죠'라면서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래도 코로나19 이후로 차내에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큰 소리로 전화하는 승객이 많이 줄었어요. 그런 승객이 있으면 민원이 생기기도 하거든요(웃음). 그런 부분은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좋아요"라고 덧붙였다.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가 좋다는 기사의 말을 마지막으로 차고지의 모든 버스도 고단한 눈을 감았다.
 

새벽 1시 50분 마지막 152번 버스가 통과하고, 1시 55분에서야 모든 버스의 시동이 꺼졌다. ⓒ 한정연

  

새벽 4시 4분 첫차가 출발하기 위해 시동을 켰다. ⓒ 한정연

    
약 2시간 뒤 차고지엔 다시 버스 엔진소리가 울렸다.

새벽 4시 첫차 기사는 마스크를 낀 채 출근했다. 차에 올라 손 소독제 잔여량을 확인하고 바닥을 한 번 더 쓸었다.
 

한 기사가 요금통을 들고 새벽 버스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한정연

 
토요일 새벽 버스를 담당한 기사들은 차고지 휴게실에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셨다. 어제 드디어 재난기본소득이 들어왔다는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기자님은 재난기본소득 신청하셨어요?" 한 운전기사가 카메라 가방을 정리하던 기자에게 물었다.

아직 안 했다고 답하자 "어이구, 그거 놓치면 너무 아깝잖아. 오늘 집 가자마자 신청해요. 우리 아들이 해줬는데 젊은 친구들은 곧잘 금방 하던데" 하며 어제 새로 들어온 자판기에서 코코아 한 잔을 뽑아주었다.

"수고하십니다" 한 마디가 고맙습니다
 

152번 버스를 운행하는 박상화씨. 다 마신 자판기 커피를 채 내려놓기 전 카메라에 담았다. ⓒ 한정연

 
200원짜리 코코아를 마시며 어떤 시간대 버스가 가장 힘드냐고 물었다. 152번 버스를 운행하는 박상화씨는 한참 고민하다 '출근 시간대가 가장 힘들다'고 답했다.

특히 출근 버스를 몰 때 급하게 뛰어와 무리하게 뒷문으로 승차하는 승객분들이 많다고. 버스 뒷문은 내리는 사람은 동작 감지가 되지만, 승차하는 사람은 감지를 잘 못 해 안전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혹시라도 제가 못 본 승객분이 차 문에 끼일까 봐 가끔 무섭기도 합니다. 그래서 늘 신경을 곤두세우는 편이에요."

자판기 커피를 거의 다 마시고 출발하려는 그에게 승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질문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운전기사들은 항상 보이지 않는 노력을 많이 기울입니다. 운전사로서 당연한 의무이지만, 그래도 이런 숨은 고충을 승객분들이 조금이라도 알아주신다면 좋겠어요." 

박상화씨는 "코코아 맛있죠?" 하며 미소짓고는 새벽 버스에 올랐다.
       

기자가 동아운수 버스기사들에게 받은 '코로나19 현황 조사 설문지'. 밤늦게 근무할 때 늦게까지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가 고맙다는 버스기사의 글. ⓒ 한정연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와중 그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인사'였다. 많은 기사가 '수고 많으시다며 따뜻하게 인사해주실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최근 운행 도중 갑자기 마스크 끈 한쪽이 끊어져 당황하던 기사에게 한 승객이 선뜻 자신의 여유분 마스크를 건네줘 감동했다는 미담도 이어졌다.
     
152번 버스를 포함해 시내버스만 15년 몰았다는 한 기사는 "코로나19로 다들 어려운 시국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시민의식이 한층 높아졌다고 느낍니다. 비록 그게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일지라도, 그런 마음이 모여 서로 질서를 지키고 폐 끼치지 않는 건전한 모습으로 이어진다는 건 좋은 현상이라고 봐요"라고 말했다.     

버스 기사들은 서로 배려하고 조심하는 승객들의 모습에서 성숙한 대중교통 문화가 정착할 수 있다는 희망을 엿봤다고 입을 모았다.

언젠가 코로나19 사태는 마무리될 것이고,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도 끝날 것이다. 그러나 캠페인이 끝난 뒤에도 시민들 스스로 타인을 배려하는 '건강한' 거리를 둘 때, 비로소 대중교통은 시민의 '안전한' 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152번 첫차가 첫 정류장인 ‘수유중학교혜화여고’에서 기다리는 승객들을 태우려 정차 중이다. 승객들도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 ⓒ 한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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