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마침내 찾은 '저녁 있는 삶', 화목하지만 숨이 막혔다

[코로나19가 바꾼 것] '따로 또 같이' 할 수 있는 가족 문화 만들기

등록 2020.05.03 11:41수정 2020.05.03 11:4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 답답하다."

'코로나 사태'가 나의 일상에 들어온 후 처음 몇 주간,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 말을 내뱉었다. 마스크 때문이 아니었다.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이상하게도 자꾸만 이런 탄식이 흘러나왔다.

사춘기가 다가오는, 그래서 곧 내 품을 떠날 것만 같아 늘 애틋한 아들과 함께하고, 남편이 일찍 귀가해 식구들이 다 같이 모여 여유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 이는 코로나19가 발병하기 이전 내가 꿈꾸던 일상이었다.

코로나19는 내게 이런 일상을 허락했다.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생활하고 있고, 남편은 이전보다 일터에 훨씬 적게 머물며 매일 오후 5시면 집으로 돌아온다. 그토록 원했던 가족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그런데 웬걸. 막상 이런 일이 벌어지니 숨이 막혀왔다. 나의 숨막힘은 우리 가족이 지닌 역기능적인 모습의 한 단면이었다. 

두 달 넘게 함께하는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지금, 다행히도 우리 가족은 문제점을 발견하고 원인을 진단하며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다.

가족은 무엇이든 함께해야 한다는 착각 
 
a

책을 읽어도 거실에서 함께 앉아 읽었고, 영화를 다운받아도 함께 봤으며, 보드게임도 셋이 다 같이 했다. ⓒ unsplash

 
"우리는 왜 방이 여러 개 있는데 맨날 한 공간에 셋이 다 같이 있는 거지?"

지난 겨울까지만 해도 나와 남편은 종종 이렇게 말하며 웃음을 주고받곤 했다. 사실 그랬다. 코로나19가 발병하기 이전까지 우리 가족은 각자의 일터와 학교에서 돌아온 후에는 늘 같은 공간에 머물렀다. 책을 읽어도 거실에서 함께 앉아 읽었고, 영화를 다운받아도 함께 봤으며, 보드게임도 셋이 다 같이 했다. 산책도, 외출도 당연히 셋이 함께했다.

각자의 방에서 무언가를 하더라도 방문을 모두 활짝 열어놓고 마치 한 공간에 있는 듯 생활했다. 나는 이런 것들이 우리 가족의 '화목'을 증명하는 것이라 여겨왔다.

우리가 사는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해 '반 자가격리' 생활이 시작됐을 때, 우리 가족은 자연스레 '함께 있을 땐 함께 해야 한다'는 이 암묵적인 규칙을 지켜나갔다. 그런데 이번엔 너무나 느낌이 달랐다.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그것도 매일 매일을 이런 식으로 지내다 보니 숨이 턱턱 막혀왔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일에도 집중이 잘 되고 글도 잘 써지는 편이다. 그런데 식구들이 다 같이 있는 가운데 방문을 열어둔 채 일을 하자니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았다. 방문을 닫아 보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도 함께 있는 식구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외식을 가급적 피해야 하는 상황에서 삼시 세끼를 집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도 커다란 압박으로 다가왔다.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 메뉴가 걱정되고, 점심을 먹고 나면 저녁 메뉴 고민이 시작됐다. 동시에 힘든 시기에 식구들의 기분을 배려해야 한다는 '감정노동자'로서의 정체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혹시 마음 상한 건 없는지, 집에만 있어서 답답해 짜증이 난 건 아닌지, 나는 자꾸만 식구들의 눈치를 봤다.
     
작은 다툼이 깨닫게 한 것

그렇게 2주 정도 지냈을 무렵이었다. 남편은 며칠 만에 출근을 했고 아들과 둘이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날이었다. 기분을 살필 사람이 한 사람 줄어서인지, 아들 입맛만 맞춰 점심을 준비하면 되어서인지, 셋이 있다 둘이 있으니 조금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현관문 번호키 소리가 나더니 저녁에 퇴근한다던 남편이 갑작스레 돌아왔다. "오랜만에 나갔는데도 일이 별로 없네. 굳이 회사에 앉아 있을 필요 없을 것 같아서." 남편은 밝게 이야기했지만, 나는 조금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다시 긴장된 마음을 숨기기 위해 남편에게 시시콜콜한 질문들을 던졌다. "바깥에 사람들 많이 다녀? 다들 마스크 쓰고 다니지? 회사에 사람들은 얼마나 나왔어?"

그런데 아무 대답이 없었다. 점심준비를 하다 돌아보니, 남편은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순간, 나는 속으로 삭이던 말을 내뱉고 말았다. "스마트폰 중독이야, 중독." 이 말을 들은 남편은 화가 난 듯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갔다. 하지만 곧 되돌아왔다.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으로 밖에 나가도 홀로 갈 곳이 없었을 터였다.

집에 온 남편은 노트북에 영화를 다운받더니 이어폰을 낀 채 보기 시작했다. 아마도 '함께하는 공간' 속에서 '홀로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었으리라. 아이는 '싸한' 분위기가 싫었는지 책을 집어 들고 아빠 옆이 아닌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상한 기분을 가라앉히고자 남편을 따라 했다. 내 방에 들어와 앉아 이어폰을 끼고 보고 싶었던 드라마를 봤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 내 방에서 문을 닫고, 귀도 막은 채, 나만의 세계에 집중했던 건 처음이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홀로 시간을 보내면서 진정 편안함이 느껴졌다. 어느덧 나는 드라마에 몰입해 짜증스러운 마음을 잊어가고 있었다. 약 2시간 후, 영화 한 편을 다 본 남편 역시 기분이 좋아진 상태였다. 방에서 홀로 시간을 보낸 아이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
 
따로 또 같이

 
a

정한 친밀감은 각자의 개별성을 존중할 때 가능하다는 것. 우리 가족이 코로나19의 여파를 겪어내면서 깨달은 중요한 메시지였다. ⓒ unsplash

 
함께 있으면서 각자 시간을 보냈던 그 날. 우리 가족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함께'하는 것만큼 '홀로 있는 것', 그러니까 각자의 개별성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서야 떠올랐다. 구조적 가족치료를 창시한 미누친(Salvador Minuchin)이 강조했던 것도 바로 이런 것이었음을.

미누친은 가족 내부에도 경계선이 있다며 이를 세 가지(명확한 경계선, 모호한 경계선, 경직된 경계선)로 나누었다. '명확한 경계선'이란 가족 구성원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되면서 동시에 상호교류와 친밀성이 조화되는 것을 말한다. 함께함과 홀로 있음이 모두 허용되는 건강한 가족들이 갖는 경계선이다.

'모호한 경계선'을 가진 가족은 지나치게 친밀성만 강조한 나머지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독립성을 존중하지 않는다. 이런 가족의 구성원들은 가족의 역동에 휘말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다. 

반대로 '경직된 경계선'을 가진 가족의 경우, 친밀감이 부족하다. 이들은 가족이긴 하지만, 각자 생활을 할 뿐 서로 의지하거나 정서적으로 교류하지 않는다.

그의 구분에 따르면 우리 가족은 '모호한 경계선'을 가진 가족이었다. 때문에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각자의 '독립성'이 사라져 가족 안에서 숨막힘을 느껴왔던 것이다. 또한, 각자의 몫인 서로의 기분에까지 관여해 눈치를 살피는 패턴이 굳어지고 있었다. 

코로나 사태는 우리 가족의 이런 건강하지 않은 움직임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친한 척하면서 서로를 존중하지는 못했던' 움직임에서 빠져나올 계기를 제공했다.

남편과 신경전을 벌였던 그 날 이후, 우리 가족은 함께 하면서도 홀로 시간을 보내는 법을 익혀가고 있다. 이제 나는 내 방에서 문을 닫고 무엇을 하는데 편안해졌고, 남편과 아이 역시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데 익숙해져 가고 있다.

여전히 남편은 일찍 귀가하고, 아이는 온라인 수업을 하며 하루종일 집에 머문다. 하지만, 이젠 예전만큼 답답하지 않다. 진정한 친밀감은 각자의 개별성을 존중할 때 가능하다는 것. 우리 가족이 코로나19의 여파를 겪어내면서 깨달은 중요한 메시지였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한국이 코로나19 극복 모범사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따로 또 같이'를 잘 실천했기 때문 아닌가 싶다. 감염 방지를 위해 타인과 적당히 거리두기를 하면서 독립적으로 생활하고, 동시에 '함께하는' 마음으로 연대했기에 지금의 극복단계까지 올 수 있지 않았을까.

각자의 독립된 영역을 존중하면서 연대하는 것. '코로나 시대' 속에서 우리 가족이 배운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이런 태도가 사회 전반으로 퍼져간다면, 서로의 개별성을 인정하면서 친밀감을 유지하는 보다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그럴 때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진정으로 편안하게 숨 쉬며(마스크 사용 여부에 상관없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가족이 그랬듯이.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AD

AD

인기기사

  1. 1 아베 정부의 이상징후... "한국의 양해가 왜 필요하죠?"
  2. 2 의사 수 증가율 OECD 1위? 그들이 말하지 않는 진실
  3. 3 은마 아파트 주민의 언론 인터뷰 유감
  4. 4 류호정 '원피스'와 장혜영의 '지적', 왜 표적이 됐나
  5. 5 폭우 이재민 80%가 이주노동자, 이유가 기막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