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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보내고 나서야 나를 보았구나

[나의 아버지, 나의 아들 8] 엄마한테 받은 상처, 고스란히 안고 살았을 아들

등록 2020.04.27 12:49수정 2020.04.27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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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6일, 방송계의 비인간적인 제작 환경에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생을 달리한 고 이한빛 PD를 향한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한빛에 대한 그리움과 한빛이 주고자 했던 메시지를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편집자말]
나는 아니 우리 형제들은 자라면서 아버지한테 야단이나 매를 맞은 기억이 거의 없다. 당시 대부분 안방에는 가느다란 회초리나 효자손같은 것이 벽에 걸려 있던 시절이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은 '사랑의 매'라고 말씀하시며 출석부와 함께 회초리를 가지고 다니셨다. 물론 나도 친구들도 잘못했을 때는 손바닥을 내밀거나 종아리를 걷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안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동시에 존재한다. 상담심리를 몰라도 학생들의 글쓰기 과제를 읽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에 민감하다. "아빠는 툭하면 때리셨다. 어떤 때는 장작으로 때리셨다. 나는 절대로 자식을 때리지 않는 아빠가 되겠다"라든가 "어른이 되어도 나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하며 '절대'를 강조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역기능을 주장하고 발버둥쳐도 결국 제자리라는 것을. 나역시 어느 날 엄마 아버지의 싫었던 행동을 나의 아이에게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학창시절 혐오했던 선생님한테 받았던 교수학습이나 생활지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재연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섬칫해서 최대한 역기능 환경을 애초에 만들지 말자고 결심했다.

지금은 이견이 거의 없지만 나는 2000년대 시행된 학생 체벌금지에 적극 찬성했다. 물론 학교현장에서는 요즘도 교사가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수없이 발생한다. 그동안 체벌 대체 방안과 학생들과의 갈등에서 교사가 받는 상처에 대해 깊은 고민이 없었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나도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벌없는 교실은 가능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이 역시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아버지도 당시에는 일상적으로 체벌을 한 교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집에서 아버지는 엄하게 키우지 않아도 무난하게 자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그랬기에 학생들도 어른이 되었을 때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이 더 영향을 줄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한테 맞은 기억은 한두 번? 초등학교 1학년때였다. 방과후 엄마한테 말하지 않고 곧바로 친구 집에 갔다. 숙제도 하고 고무줄놀이를 하다가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갔다. 밤중에 소란스러워 눈을 떴는데 오빠가 아버지한테 종아리를 맞고 있었다. 국민학교 4학년인 오빠는 축구공을 잃어버리고 한동안 속였다가 탄로가 나서 혼나는 중이었다. 잠에서 깬 나도 같이 종아리를 맞았다.

고등학교 한문시간에 배웠다. '무릇 자식된 자는 나갈 때 반드시 가는 곳을 말씀드리고 돌아오면 반드시 뵙고 인사를 드린다' <예기 禮記>에 나오는 말 '출필곡(出必告) 반필면(返必面)'에 대해. 나가고 들어올 때는 꼭 부모님께 고하라는 옛말을 내가 안 지킨 것이었다. 물론 아버지께서 이 구절을 인용하며 훈계하지는 않으셨다. 그런데 나에게는 암기한 것처럼 철저하게 박혔다.

만약 아버지가 일상적으로 야단치고 매를 댔다면 그렇게 깊이 내재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거짓말과 변명을 일삼으며 눈치보고 잔머리 굴리며 살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자녀교육철학과 체벌 없는 가정환경 속에 자란 것에 지금도 감사한다.

폭력에는 체벌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부끄럽지만 나는 한빛을 낳기 전까지 학생들을 체벌했다. 성적 관련으로 손바닥을 때리지는 않았지만 지켜야 할 규칙은 조금만 어긋나도 체벌을 했다. 어겼으니까 게으르니까 잘못했으니까 맞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이었다.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지우고 싶은 기억이고 그때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한빛을 낳고 기르면서 체벌을 일체 안 하게 된 것은 나로서도 놀라운 변화였다. 아이들이 한빛처럼 너무나 귀하고 사랑스런 자식임을 알게 되고는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를 놓쳤다. 폭력에는 체벌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언어 폭력이나 비언어적 표현으로도 체벌 이상의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생각 안 했다. 학교에서 분노할 일이 있거나 한빛 아빠와 싸웠을 때 그 감정을 어떻게 했나? 가장 가까이 있고 만만한 어린 한빛에게 퍼부었다. 한빛은 맏이라는 이유로 엄마의 열등감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좋은 부모가 되겠다고 계획하고 자식을 낳는 부모가 어디 있어. 다 그렇게 커가는 거지' 하고 싶지만 아닌 것은 아니다. 나는 내 감정을 더 우선했고 내 열등감대로 한빛을 끌고 다녔다. 미안하다. 그래서 나에게는 아버지가 위대한지도 모른다.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훌륭하셨다.

돌이켜 보니 나는 한빛에게 따뜻한 엄마도 아니었다. 나의 감정을 어린 한빛에게 쏟았다가 후회하고 미안하다고 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어떻게 보면 조울증 환자 같았다. 학부모 전화를 받을 때도 그랬다. "엄마, 이거~. 엄마, 밥"하며 어린 한빛 한솔이 달라붙으면 전화 속 목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교사이면서 얼굴 표정으로는 아이를 협박했다. 아무리 교사의 책임감이라고 합리화해도 철저히 이중적인 나는 한빛에게는 나쁜 엄마였다. 어리다고 만만하게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50대 초반. 몸과 마음이 다 힘든 혹독한 갱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그때는 한빛 한솔이가 컸기 때문에 내가 먼저 아이들 눈치를 살폈다. 아이들이 어릴 때도 이렇게 인격체로 봤어야 했다. 아이들 마음을 읽어주었어야 했다. 아이에게 집중했어야 했다.

한빛은 엄마한테 받은 상처를 고스란히 가지고 살았을 것이다. 정혜신님은 책 <당신이 옳다>에서 내 경계를 넘어오면 부모라도 끊어내야 한다고 했다. 한빛에게 도망가라고 했어야 했는데 나는 너무 정신없이 살았다.

한빛아, 엄마는 너가 없어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무슨 일을 해도 흥이 안 나고 희망도 없는데 때가 되면 밥도 꼬박꼬박 먹고 있더구나. 어제는 봄 햇살이 뭐라고 꾸역꾸역 잡으려고 허둥대더라.

너는 여전히 하늘나라에서 엄마 아빠 한솔을 위해 통공의 기도(죽은 자와 산자 간에 서로 교감하고 소통하는 기도)를 하고 있을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

한빛아, 이제는 엄마한테서 독립해라. 그래도 괜찮아.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너를 보내고 나를 보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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