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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한다, 나는 아들에게 집중하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들 9] 속상한 마음 감춘 자식, 헤아리지 못한 부모

등록 2020.04.28 11:56수정 2020.04.2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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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6일, 방송계의 비인간적인 제작 환경에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생을 달리한 고 이한빛 PD를 향한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한빛에 대한 그리움과 한빛이 주고자 했던 메시지를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편집자말]
초등학교 교사라서 더 그러셨는지 모르겠으나 아버지는 늘 기본생활습관을 강조하셨다. 안방 벽에 생활습관 체크리스트를 붙여 놓고 동그라미와 가위표로 스스로 점검하게 했다. 세 언니는 서울로 나가 있을 때였지만, 네 형제가 있다 보니 벽은 실천표로 차고 넘쳐 항상 지저분했다.

아버지는 기본이 되어 있으면 다음 단계는 스스로 쌓아나갈 수 있다고 하셨고 모두가 기본을 갖춰 상식이 통하면 세상은 저절로 좋아진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새해 첫날이면 머리맡에는 어김없이 일기장이 있었다. 일기를 공책에 쓰는 것조차도 사치일 만큼 문구용품이 귀하던 시절이었는데 아버지는 과감하셨다. 학교 앞 문방구가 아닌 읍내 서점에서 일기장을 직접 사 오셨는데 표지도 멋지고 완전 책이었다. 참, 지퍼도 있고 작은 열쇠도 매달려 있었다. '안전 일기장'이란 이름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우리는 새해 첫날이 부담스러웠다. 나와 여동생들은 그런대로 쓰고 그렸지만, 오빠는 지옥이었을 것 같다. 내가 일기를 열심히 썼는지는 모르나 다락방 구석에는 연도별로 일기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쌓여있었다. 이런 기억 때문에 나는 새해가 되면 반듯한 수첩에 집착하는 것 같다. 매일 뭐라도 끄적거려야 하루를 마감했다고 생각하는 습관도 이때 생긴 것 같다.

실천적인 삶을 사셨기 때문일까? 아버지는 요즘 말하는 체험학습을 중요시했다. 고1 때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고향인 포천 일대를 체험학습처럼 돌아다녔다. 50CC 작은 오토바이로 포천의 유적지와 인근 철원까지 다녔으니 참 위험한 일이었다. 반월성터, 왕방산, 구읍 향교, 백노주, 산정호수, 명성산, 고석정, 삼부연 폭포,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 6.25 전적지도 찾아갔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얽혀있는 전설과 민담을 역사처럼 이야기하셨다. 다른 친구들은 전혀 경험해 볼 수 없는 역사 기행이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고1 여고생한테 '마을'을 강조했다. 훗날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에 대한 확신이 이미 아버지한테 있었나? 2010년대 들어와 학교와 마을(지역사회) 네트워크가 강조될 때 아버지가 생각났다. 천천히, 생활 속에서 체험하도록 던져주셨기에 자연스럽게 배움이 일어났던 것 같다.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엄마

그런데 나는 성급했다. 한빛은 나의 조급함이 버거웠을 거다. 현장체험학습이란 말이 막 나올 때 한겨레 교육문화센터도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체험비는 비쌌지만 내용이 알찼다. 제도권 밖이지만 현장에서 묵묵히 한 길을 걸어 온 강사진 구성도 좋았다. 그래서 한빛 한솔 두 명의 체험비가 부담됐지만 우선순위로 두었다.

한빛은 싫었을 것이다. 양재역까지 가려면 의정부에서 새벽에 출발해야 했으니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그러나 나는 신문에 프로그램이 홍보될 때마다 설득했다. 어차피 학습(공부)은 고등학교 가서 지겨워지도록 하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시켜서 뭐 하나? 체험이나 많이 하는 게 자산이지 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나의 욕심이었다. 부모가 해줄 수 없으니까 슬쩍 떠맡긴 거다. 학원 보내고 엄마 임무 끝. 하는 것을 혐오했는데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1998.7.23.~8.11) 한빛은 국토횡단을 했다. 인천에서 울릉도(독도)까지 국토를 20일간 걸어서 횡단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때도 나는 한빛과 충분히 대화하고 결정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역시 나는 좋은 점만 얘기하며 설득했을 것이다.

중간에 부모님의 편지와 과자선물을 받는 일정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중요한 것을 놓쳤다. 당연히 한빛은 아무것도 못 받아 서럽고 슬퍼서 울었다는 것을 나중에 들었다. 엄마의 사랑에 감동해 울면서 간식을 먹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한빛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한빛은 군대 가기 전에 이 얘기를 두 번인가 했다. 한번은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철저하게 체크하고 메모하는 내가 그렇게 큰 실수를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중요한 것을 놓쳤다. 그렇게 살았다. 너무 많은 것을 움켜쥐려고 했으니 놓치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한빛아. 미안하다. 엄마는 정말 몰랐단다. 엄마는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진단다. 평소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하며 엄마를 배려하는 네가 스무 살 너머까지 그 외로움을 갖고 있었으니 그 상처가 얼마나 컸을지 알기 때문이다.

나는 왜 그렇게 몰랐을까? 돌이킬 수 없게 되어서야 깨달으니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억울해서가 아니다. 한빛에게 미안하다고 충분히 사과하지 못해서이다. 아니 엄마한테 화내고 얼마나 슬펐는지 아냐고 소리 지르지. 원망하거나 징징대기라도 했으면 그때라도 엄마가 정신 차렸을 텐데.

나의 아버지는 딸을 설득하지도 않으셨고 역사도 설화로 각색해 시나브로 스며들게 했다. 온몸으로 배우게 하면서도 한 단계 한 단계 천천히 이끌어주셨다. 그런데도 나는 하나만 생각했고 조급했다. 특히 어리다는 이유로 한빛과 충분한 대화 없이 엄마 기준으로 밀고 나갔다.

인정한다. 나는 한빛에게 집중하지 않았다. 한빛의 마음을 읽는 데 소홀했다. 인정한다는 것은 여기서 멈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아무리 나를 인정하고 수정하려 한들 한빛은 이미 내 곁에 없다. 한빛이 외롭게 울고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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