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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무시한 경찰, 이주노동자 상 준 LG

인권감수성, 시민 의식 못 따라가는 공권력

등록 2020.04.29 14:06수정 2020.04.2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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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10월 발생한 '고양 저유소 화재' 실화 혐의 피의자인 스리랑카 출신 외국인 노동자 D씨가 작년 8월 재판을 받기 위해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 김성욱

 
# 장면 1 너네 나라에 인터넷 있니

2018년 10월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시설 화재사고는 110억 원의 재산피해를 낸 대형 화재였다. 사고 직후 경찰은 풍등을 날린 한 이주노동자를 중실화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풍등이 저유시설 잔디에 떨어졌고 그 불씨에 의해 저유탱크가 폭발했다는 경찰의 발 빠른 발표와 피의자 체포에 칭찬 대신 조롱과 야유가 쏟아졌다.  

결국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은 인과관계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검찰에서 두 번이나 기각돼 피의자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화재 단초를 제공했던 이주노동자에게 자백을 강요하며 고압적으로 수사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여기에다 지난 22일 MBC는 경찰이 조사 과정에서 피의자와 같은 나라 출신인 통역인에게 해당 국가를 무시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MBC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통역인에게 '경찰서나 소방서가 있는지', '집집마다 인터넷은 되는지' 등을 물었다고 한다.

이런 경찰의 태도는 박범신 장편소설 <나마스테>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과장님은 어제도 오늘도 물어봐요. 네팔도 해가 뜨냐. 너네 나라에도 달이 뜨냐. 너네  나라 여자들도 애를 낳느냐."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예방을 위한 인권포스터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그래픽 디자이너 안상수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로 이런 질문을 들었다고 한다. 

"너의 나라에도 해가 뜨냐." 
"너희 나라에도 냉장고가 있냐"
"너희 나라에도 자동차가 있냐"

경찰은 화재 방지 시스템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던 대한송유관공사의 관리 부실을 먼저 따졌어야 했는데 이주노동자를 추궁하기에 바빴다. 경찰은 혐오와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며 통역인까지 압박해 자백을 강요했다.
 

LG복지재단은 22일 알리에게 'LG 의인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 LG복지재단

 
# 장면 2 불법체류 알려질 수 있는데도 


지난 3월 23일 밤 강원도 양양군에 있는 한 다세대주택 건물에서 불이 났다. 당시 이웃을 구하려고 불길 속으로 뛰어든 사람이 있었다. 카자흐스탄 출신 이주노동자 알리(27)씨였다. 그는 거센 불길 속에서 "불이야, 불이야"를 외쳐서 10여 명의 이웃들을 대피시켰다. 이 과정에서 알리는 목과 손 등에 2~3도 화상을 입고 현재 화상전문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치료 과정에서 알리가 체류 기간을 넘긴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강제 추방될 처지에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영주권을 주자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미등록자여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데도 사람을 살린 알리의 의로운 행동이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고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에 LG복지재단은 22일 알리에게 'LG 의인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LG는 "불법체류 사실이 알려지고 다칠 수 있는데도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의로운 행동을 한 알리씨 덕에 더 큰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의인상 시상 취지를 설명했다. 불법체류자를 옹호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어 기업으로서는 부담스러웠을 점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의인상 선정이다. LG는 2017년에도 스리랑카 국적 불법체류자 니말(41)씨에게 의인상을 수여한 바 있다. 

시민의식 못 따라가는 공권력

영주권을 주자며 국민청원을 올린 시민들이나 불법체류자지만 그의 의로운 행동을 포상한 기업과 비교해 보면 경찰의 인권 의식은 아직도 낮다. 법무부의 대응도 아쉽다. 

여론이 비등해지자 법무부는 화재 발생 한 달 뒤인 4월 24일 알리에게 6개월간 체류할 수 있는 임시 체류 비자(G-1)를 발급해 주었다. 향후 치료가 길어질 경우 연장이 가능하고 보건복지부가 의상자로 지정하면 영주권 신청 자격도 주어진다(다만 의상자 지정이 엄격해 영주권 신청이 가능할지 미지수고 G1비자로는 취업할 수 없다).

법무부장관은 외국인에게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특별 체류 허가를 할 수 있고 취업이 가능한 전문 취업 비자도 발급할 수 있다. 

특별체류 허가 사례는 이미 2007년 3월에 사망 1명, 부상 60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던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화재사고에서도 있었다. 당시 지상 30층, 지하 5층으로 된 주상복합 건물 신축공사장에 불이 나자 전직 소방관 출신 몽골인과 그 동료들은 연기와 유독가스에 쓰러진 사람들을 업어 옥상으로 옮겼다. 현장 진화에 나선 소방대원들은 몽골인들이 아니었으면 사망자가 20명이 넘었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구조 과정 중 유독 가스를 흡입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행방을 감췄던 그들에게 체류 자격을 줘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고, 법무부는 그들의 특별한 공로를 인정하여 최초로 특별 체류 허가를 부여했다. 시민들은 특별 체류 허가를 받은 네 명을 '몽골인 의인'이라고 불렀다. 

법무부는 특별 체류 허가 전례와 LG 의인상을 고려해 임시 체류 비자(G-1)에서 그치지 말고 알리에게 특별 체류 자격을 부여함이 마땅하다.
덧붙이는 글 고기복 기자는 용인에서 이주노동자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LG의인상 #경찰 #인권 #이주노동자 #G-1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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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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