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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은 언제,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전라남도 나주 출신 과학자, 발명가, 조선기술자 체암 나대용

등록 2020.04.28 11:14수정 2020.04.2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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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용 장군 동상과 거북선 조형물. 나대용의 태 자리인 전남 나주시 문평면에 세워져 있다. ⓒ 이돈삼

 
4월 28일은 이순신이 태어난 날이다. 이순신은 1545년 한양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은 428년 전인 1592년 4월 13일에 일어났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주역 가운데 하나가 거북선이다.

거북선은 언제,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 1592년 4월 12일 자에 거북선이 언급돼 있다. '거북선을 타고 화포발사 훈련을 했다'는 내용이다. 임진왜란 발발 하루 전에 거북선이 완성됐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의 근거다.


거북선을 처음 만든 사람은 나대용(1556~1612)이다. 나대용은 지금의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에서 태어났다. 이곳에서 10여 년간 거북선에 대한 설계와 제작과정을 연구했다. 거북선을 직접 만들고, 마을 앞 방죽골에서 시험까지 끝냈다.

나대용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 이순신을 찾아가 거북선 제작을 건의했다. 나대용의 건의를 받아들인 이순신이 거북선 제작을 지휘하고, 임진왜란 하루 전에 시험운항을 마쳤다.
 

체암 나대용의 초상. 나대용의 태 자리에 있는 소충사에 모셔져 있다. ⓒ 이돈삼

 

나대용의 생가.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나대용은 거북선을 만든 과학자이자 발명가다. 거북선과 판옥선의 단점을 보완해 칼과 창을 빽빽이 꽂을 수 있는 창선도 만들었다. 해추선이라는 쾌속정까지 만들어낸 조선 기술자였다.

나대용은 임진왜란에도 참전해 큰 공을 세웠다. 사천해전에서는 탄환을 맞았다는 사실이 난중일기에 기록돼 있다. 우리 정부도 나대용의 업적을 기려 해군이 운용하고 있는 잠수함 한 선단의 이름을 나대용함으로 붙였다.

나대용함은 최첨단의 잠수함이다. 1200t급에 길이 56m, 폭 6m에 이른다. 물속에서 음향까지 탐지해 표적을 찾아내고 추적까지 하는 잠수함이다. 유도탄 미사일을 쏴 수십 마일 떨어진 표적을 명중시킨다.
 

나대용의 초상과 위패를 모신 소충사. 나대용의 태 자리인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에 나대용의 생가가 있다. 생가에서 3㎞ 떨어진 대도리 산기슭에 묘소도 있다. 생가에서 가까운 사당 소충사(昭忠祠)에는 나대용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조그마한 거북선과 함께 동상도 세워져 있다.

나대용의 호는 체암(遞菴). 나주와 광주를 잇는 도로 체암로가 나대용의 호를 따서 이름 붙인 도로다. 나대용의 태 자리 나주 문평을 지난다. 고막원역 앞 삼거리에서 광주 광산구 양동까지 18.6㎞를 잇는다.


소충사에서 해마다 과학의 날에 나대용 장군 추모제가 열린다. 거북선 발명을 기념해 과학의 날에 추모제를 열고 있다. 나대용함의 해군 승조원들도 참석한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추모식이 취소돼 열리지 않았다.

소충사 앞에 방죽골을 복원하고 대형 거북선이라도 한 척 띄우면 좋겠다. 현재 나대용 동상과 함께 세워져 있는 거북선 조형물은 너무 작다. 동상 주변을 파 물을 담아둔 건 좋지만, 나대용과 거북선의 무대가 드넓은 바다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또한 개울에 지나지 않는다.
 

나대용 사당 소충사 그리고 나대용의 동상과 거북선 조형물. 그가 거북선을 만들어 시험했다는 방죽골도 조그맣게 만들어져 있다. ⓒ 이돈삼

 
나대용 생가에서 멀지 않는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에 조선을 설계한 삼봉 정도전(1342∼1398)의 유배지도 있다. 정도전은 백성이 먼저라는 민본정치의 주창자였다. 나라도, 임금도 백성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논리다. 민본정치는 요즘의 혁신, 개혁과 상통한다.

고려 공민왕이 죽으면서 신흥사대부들의 개혁정치가 좌절됐다. 다시 보수세력이 고개를 쳐들 때다. 정도전은 원나라를 가까이하고 명나라를 멀리하는 친원반명(親元反明)을 거부했다. 정도전이 원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영접사로 임명됐다.

정도전은 '사신을 접대하느니 차라리 그 놈의 목을 베어버리겠다'며 거절했다. 유배길에 올랐다. 불 같은 성격 그대로다. 그는 34살 때부터 36살 때까지 3년 동안 나주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정도전이 유배돼 살았던 초가. 정도전은 갈대를 엮어 울타리를 만들고, 두 칸 초가를 지어 생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이돈삼

 
정도전에게 민본사상을 뼛속 깊이 심어준 곳이 나주였다. 정도전은 유배기간 백성들의 처절한 삶을 마주했다. 백성을 위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성계와 손을 잡고 조선왕조시대를 열었다.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고, 경복궁의 이름에도 민본을 담았다.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에 정도전이 살았던 초가가 복원돼 있다. 정도전은 당시 '풀도 베지 않고, 나무도 깎지 않은 채 흙을 쌓아 마당을 만들고, 갈대를 엮어 울타리를 만들고, 두 칸 초가에 살며 저술에 전념했다'고 전해진다.

정도전이 살았던 그대로, 산속에 두 칸 초가집이 복원돼 있다. 집앞에는 유적비가 세워져 있다. 도올 김용옥이 "(경북 봉화 출신의) 정도전이야말로 경상도와 전라도 양 날개의 기를 결집해서 경기와 온누리를 혁신한 혁명가이면서 대사상가"라면서 "그의 사상이 동학과 의병, 독립운동, 광주민중항쟁을 거쳐 오늘 우리 사회의 개혁정신에까지 이르는 우리 민족의 끊임없는 혁명의 샘물"이라고 일갈했던 그였다.
 

삼봉 정도전의 나주유배지로 가는 길. 그의 유배지는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거북선 #나대용 #임진왜란 #정도전 #나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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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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