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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시험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 누구를 위하여 법조인 수는 통제되나

[주장] 또 하나의 사법적폐, ‘신규 법조인 배출 통제’ 타파를 위해서도 촛불이 필요합니다

등록 2020.04.29 12:08수정 2020.04.3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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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청와대 앞에서 저와 또다른 이는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과 괴로움, 슬픔' 속에서 1인시위를 시작했습니다. 보다 많은 이들의 동참, 시민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변호사 수 통제 타파, 그 역시 사법개혁의 한 모습입니다. ⓒ 박은선

 

28일 청와대 앞에서 저와 또다른 이는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과 괴로움, 슬픔' 속에서 1인시위를 시작했습니다. 보다 많은 이들의 동참, 시민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변호사 수 통제 타파, 그 역시 사법개혁의 한 모습입니다. ⓒ 박은선

  
몇 년 전 중국 장쑤성의 한 식당에서 '마약 마라탕'이 적발됐다. '중독성 있는 맛'의 마라탕이 아니다. '진짜 마약이 든' 마라탕이었다. 가게 내부에선 양귀비 분말 415g이 발견됐고 손님을 끌고자 마라탕에 양귀비 가루를 넣어 팔아온 식당 사장은 경찰에 체포돼 형사재판을 거쳐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만일 재판정에서 그 사장이, "장사가 안 될까봐 양귀비를 넣은 게 무슨 잘못이냐"라거나 "양귀비 안 넣게 나라에서 마라탕 가게 수를 통제해줬어야지!"라고 항변했다면 어떨까?

생존이 위협받는 극심한 불황 속에서 양귀비 가루를 넣었다면 그 항변이 아주 조금은 이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죄는 죄다. 더욱이, 생존 문제가 아닌 '일정 수익의 보장'을 위한 행동이었다면 그 벌은 결코 가벼울 수 없다. '이 정도는 누리며 살아야 하는데 그걸 못하게 하니 내가 괴물이 된 것'이란 주장은, 결코 괴물됨의 정당화 논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기존 업자들의 수익유지를 위해 신생업의 수를 통제하는 것은 직업의 자유 침해인 동시에 명백한 차별이다. 먼저 어떤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 그에 대한 독점적 특권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복잡한 법리도 필요 없이 '상식'의 눈으로만 바라봐도 그렇다. 그럼에도 이 같은 주장을 서슴없이 펼치는 이들이 있다. 다름 아닌 법조인들, 정확히는 변호사들의 단체인 '대한변협'이다. 이들은 말한다. '배고픈 사자보다 무서운 것은 배고픈 변호사'라고, 그러니 '(변호사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신규 변호사 수를 최대로 줄이도록 통제해야 한다'고.

'먼저' 그 자리에 올랐다고 하여 그것이 어떤 권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법조인으로서 누구보다 잘 알 텐데 그럼에도 사다리를 걷어차며 예비 법조인들의 꿈을 짓밟고 시민들이 누릴 보다 나은 법률서비스를 밟는 말을 어쩌면 저렇게도 당당히 할 수 걸까? 

그럼에도 대한변협은 공식적인 토론회나 심포지엄에서조차 이와 같은 말과 태도를 당당하게 또 자주 활용해왔다. 그리고 지난 24일 있은 제9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에서도 대한변협을 비롯한 법조계는 위헌적이고도 비상식적인 사다리 걷어차기와 협박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

'변호사시험'을 기네스북에 올리자


사법시혐이 폐지되며 현재 로스쿨과 변호사시험은 법조인 배출의 유일한 통로가 되어 왔다. 그런데 '변호사시험'은 면면에 비상식이 너무도 가득해 기네스북에 올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4박5일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치러지는 시험의 일정이 흡사 체력장과도 같을 뿐 아니라, 공법‧형사법‧민사법의 모든 세부과목과 모든 실체법‧절차법의 내용을 객관식‧사례형‧기록형 시험이라는 모든 가능한 형식으로 테스트한다. 스핑크스의 퀴즈, '어려서는 네 발, 젊어서는 두 발, 늙어서는 세 발인 동물'과 비슷하다. '오전에는 사법시험 1차(객관식 시험), 낮에는 사법시험 2차(사례 서술형 시험), 오후에는 연수원 시험(소장을 쓰는 시험)을 치르는 시험은?' 하고 물을 판이다.

그래도 이런 형식적 문제는 약과다. 진짜 경악스러운 것은 이 시험과 관련한 수많은 '통제' 장치들이다.

일단 변호사시험에 아무나 응시할 수 없다는, '입구의 통제'가 놀랍다. 로스쿨 설립을 원하는 대학들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로스쿨 입학정원은 2천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교육공급자와 교육수요자가 모두 충분한데 어떤 힘이 입학정원을 제한해버린 것이다. 또 의대, 교육대 등 다른 전문적인 직업인 양성교육기관과 달리 현 로스쿨은 일종의 고시학원이란 것은 이미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곳을 거치지 않은 이들은 그 시험기술이 얼마나 뛰어나든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 오직 입학정원이 2천명으로 통제된 전국 25개 로스쿨을 졸업한 이들만이 이 시험에 응시하게 된다.

로스쿨의 교육과정을 제아무리 정상적으로 밟았대도 졸업년도 시기에 치르는 (본래 변호사시험의 적응력을 위해 탄생했던!) 변호사시험 모의시험의 성적에 따라 졸업장을 받을 수 없고 그래서 변호사시험장에 들어갈 수 없는 '미졸업자' 문제도 있다. 의대에서 의사국가고시 모의고사 점수가 낮아 합격가능성이 낮게 점쳐진다고, 또 교대에서 임용고사와 관련해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해당자들에게 졸업장을 주지 않는 경우는 없는 것과 대조적이다.

졸업의 자격은 해당 교육기관의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했는가 하는 것으로 판단되어야지 어떤 시험의 합격가능성 여부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 후자의 경우, 이는 그 교육기관의 교육자 스스로 우리 교육기관은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이 아닌 '해당 시험 대비 훈련'을 하는 곳임을 인정하는 게 된다. 그런데 로스쿨은 이런 반(反)교육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비상식적인 것은, 로스쿨 졸업년도부터 5년이 지난 이는 그 시험에 다시는 응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두 아이를 출산하고 길렀어도, 암에 걸려 치료를 받았어도 졸업년도부터 시한폭탄의 시계가 움직이다 5년째에 펑 터지며 법조계로의 문을 닫아버린다 (군 복무는 예외). 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이 들어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이른바 '오탈제도'라 불리는 평생응시금지제도는 당연히 헌법에 있는 직업의 자유, 평등권, 인격권 등을 침해하는 위헌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법조계는 이 제도의 위헌성에 분노하지 않는다.

예측가능성이 1도 없는, 변호사시험의 합격자 결정

끝판왕은 '출구의 문'에 있다. 저 모든 관문들을 거쳐 변호사시험에 응시하게 된 수험생들은 시험이 있기 1년 전 즈음의 시행 공고를 접할 때도, 시험 응시원서를 접수할 때도, 심지어 시험장에 들어설 때도 '모른다'. 대체 이 시험에서 내가 몇 점을 받아야, 또는 내가 몇 등을 해야 합격하게 되는 것인지를 당최 알 수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1월에 변호사시험을 치르고 나면 4월의 어느날 법무부에 15인이 모인다. 이 중 변호사들의 이익단체인 대한변협의 변호사들과 판사, 검사가 8인이다. 우리나라의 판사, 검사는 옷을 벗은 뒤 전관예우의 특혜 속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즉 8인이 전현직 변호사인 이상 이들이 무엇을 주장할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만큼 실질적으로 변호사시험의 합격자를 결정하는 해당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는 그야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기울어진 그곳에서 협의를 통해 15인은 그 해 배출가능한 신규 법조인의 수를 결정한다.

어떤 자격을 부여한다는 것은, 관련 교육과 상식의 눈으로 볼 때 당연히 그 자격을 받을 만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는가 오직 그 하나로만 판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위 협의에서 주요하게 논의되는 것은 '기존 법조인들의 특권을 흔들지 않으려면 신규 법조인을 어느 선까지 배출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물론 전현직 법조인들은 '법조인의 수를 무턱대로 늘리면 법조인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에둘러 표현하는 그 말 뒤에는 '그만 뽑아. 이거 이상 뽑아서 우리의 특권이 흔들리면 우리는 굶주린 사자보다 무서워질꺼야!', '먼저 들어온 우리의 기득권을 위해 신참들은 딱 여기까지만 들어와' 하는 식의 협박이 담겨있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이것이 신규 변호사 배출 수 통제의 거의 유일한 논거란 사실이다.

그 논거가 법리에 어긋남을 법조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한의사의 면허가 '특허 아닌 허가'라고 함으로써 (한)의사가 소수로만 존재함으로써 일정 수익 이상을 보장받고 명예를 누려온 것은 '반사적 이익', 즉 우연한 행운일뿐 그것이 법률적인 정당한 권리가 아님을 분명히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조인들은 그 법리는 모로는 척 그저 '사자'를 앞세운다.

희망은 오직 '시민'의 손에 달렸다

평생을 교사로 살 줄 알았던 나는 늦은 나이에 교단을 떠나 로스쿨에 들어왔고 그곳에서 다시금 교육의 붕괴를 마주쳐야 했다. '선생님'으로 '교육'을 하고 싶었지만 왜곡된 우리 교육구조를 유지‧존속시키는 톱니바퀴 역할을 하며 사는 것이 힘겨웠던 내게, 교육은 없고 시험만 있는 로스쿨이라는 기형적인 교육기관과 그 교육기관을 그저 침묵하며 견디려고만 하는 대부분의 교육주체들을 지켜보는 일은 괴로웠다.  또 나 역시 눈감고 귀닫고 그저 고시생으로 견뎌야만 했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없고 시험만 있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인가. 그저 빨리 탈출하면 된다, 어차피 내가 모르고 들어온 것도 아니다, 일단 내 가족만 생각해 빨리 시험부터 붙자 생각했다. 하지만, 교육기관의 교육자가 또 법무부의 수장이 침묵하고 외면하는 모습, 사회문제들엔 그리도 정의로운 법조인이라 하여도 정작 자신이 발 딛고 선 법조계의 문제는 외면하는 이들의 모습에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참을 수 없었던 건 나만이 아니었다. 내가 이 문제에 눈을 뜨기 훨씬 이전부터 목소리 내고 싸워온 이들도 적지 않았다.

2019년 2월 18일, 수많은 로스쿨생들이 청와대 앞에 모여 '이것이 고 노무현 대통령이 꿈꾸던 사법개혁의 한 모습으로서의 로스쿨이냐'고, '로스쿨다운 교육은 못받고 사법시험 공부와 똑같은 시험공부만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로스쿨에 등록금을 내고 왜 공부는 수험학원에서 해야 하느냐'고 소리쳤다. 기득권자의 지위에 오른 현직 변호사 수백 명이 그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으며 이름을 드러내며 '변호사시험 자격시험화'를 위해 서명했고, 몇몇은 아예 얼굴까지 드러내며 더 이상 신규 변호사 수를 통제하지 말라고 외쳤다.

그해 4월, 민변‧참여연대‧경실련이 시민적 목소리를 대변해 지금의 변호사시험은 로스쿨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대국민 법률서비스 문턱은 전혀 낮아지지 않았다고 개혁해야만 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법무부는 제8회 변호사시험은 (어쩔수없이) 종전과 같이 합격자 수 통제를 하지만 제9회 변호사시험부터 적용할 '장기적인 기준'을 새로이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법무부의 그 발표에 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절반의 성공은 있다고 믿었다. 정작 나는 제8회 변호사시험에서 불합격했으나, 괜찮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으니, 법조계의 새싹들과 국민들을 기만하는 신규 법조인 배출 통제 문제 해결의 물꼬가 트였으니 좀더 수험생활을 견뎌야 한 대도 기쁘고 씩씩하게 잘 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법무부를 믿고 수험서에만 집중하려 해도, 법무부가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꾸린다는 '소위원회'에서 교육을 대변할 인사가 법조계 기득권을 대변할 변호사로 교체됐다는 소식은 '설마'하며 불안하게 했다. 소위원회의 연구 결과가 나왔으나 도무지 공개되지 않은 채 법무부의 발표, 입장표명 그 어떤 것도 없이 제9회 변호사시험 응시 접수가 진행되는 것은 불안을 더욱 짙게 했다. 결국 나는 이번에도 대체 내가 몇 점을 받아야, 또는 몇 등을 해야 변호사의 자격을 취득하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로 지난 1월 변호사시험장에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3개월 이상이 지난 4월 24일, 법무부는 '종합적인 고려'를 하여 올해엔 1768명이 변호사의 자격을 취득함이 적정하다며 그 수만큼의 합격자 명단을 발표했다. 지난해에 비해 77명의 합격자가 늘었으니 무언가 개선된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사법시험 폐지로 줄어드는 연수원 출신 신규 법조인의 수를 감안한 것일 뿐 '변호사 자격의 절대적인 기준'은 전혀 마련되지 않은 채 종전의 기준대로 결정된 합격자 수였다. 또 법무부는, 다음해의 제10회 변호사시험을 치를 응시생들이 '예측가능성을 보장' 하도록 이번의 기준을 내년에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한 언론은 이를 두고 '법무부, 장기적인 기준 마련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정확하다. 종전의 법무부의 배반이 반복됐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는 것이다.

지난 24일 제9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과 관련해, 어쨌든 지난해보다 합격자의 수가 소폭은 올랐고, 눈에 보이는 합격률은 52% 가량이니 무언가 개선이 있었다고 보는 이도 있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 2천 명의 입학정원 통제와 3년의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하고도 변호사시험 합격가능성이 낮은 이들을 배제하는 모의시험을 활용한 졸업단계에서의 통제, 졸업 시부터 5년이 지나면 평생 변호사시험장에 들어서지도 못하게 하는 평생응시금지제도 등 수많은 통제장치 속에서 걸러지고 걸러진 이들 중 52%를 변호사로 선발해놓고, 그래도 과반수는 자격을 취득했으니 합리적이지 않느냐고 한다면 이를 두고 과연 '합리적' 평가라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문제는 합격자 결정일 당일에야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흥정'을 통해 합격자의 수가 결정된다는 점이다. 이번 제9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일인 24일 대한변협의 변호사들은 신규 변호사 수 통제를 고집하며 회의장 출석을 거부하는 '보이콧'을 벌였다. 그리고 '배고프면 사자보다 무서워질 거다', '우리가 먼저 왔으니 새로 들어오는 이들을 통제해라'며 몽니를 부리는 그들에게 굴복해 법무부는 그저 지난해보다 줄어든 사법연수원생들의 수를 고려한 1768명으로 신규 변호사 배출 수를 통제해 버렸다.

희망은 없다. 대한변협을 비롯한 법조계, 법무부에 법과 상식에 기반한 합리적 사고, 공익적 사고를 기대한다는 것은, 인사청문회 당시 로스쿨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사법개혁 의지를 다진 추미애 법무장관을 믿어본다는 것은, 고 노무현 정부 시절 민정수석으로서 로스쿨 설립에 동참한 문재인 대통령이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완전히 왜곡된 로스쿨 제도를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라 꿈꾸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희망고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밖에 없다. 보다 다양하고 전문적인 법률서비스를 보다 가깝게 받고 싶다는 시민적 목소리, 우리에게 희망은 그것이 유일하다. 삼례슈퍼 살인사건, 익산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등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경찰 수사 단계부터 피의자들이 제대로 된 변호를 받았더라면 경찰의 위법수사 속에서 거짓자백을 하여 억울한 옥살이를 하지는 않았을 거란 사실이다.

이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필요한 것은 어느 특별히 선량한 변호사의 무료변호가 아니다. 모든 이들이 피의자 단계에서부터 변호사의 변호를 받을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답이다. 그것이 형사공공변호인 제도(피의자 국선)이고 이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자 조국 전 법무장관이 후보자 시절 약속한 사항이기도 했다.

그러나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는 변협의 극렬한 반대 속에서 희미해진지 오래다. 이번 4.15 총선에선 집권여당은 민주당은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어째서 대한변협은 시민이 누릴 보편적인 법률서비스, 변호받을 권리를 가로막을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공공의 영역 아닌 시장에 자유로이 놓일 때, 상품이 보다 비싼 값으로 팔릴 수 있기 때문임을. 법률서비스 공급자들이 소수로만 존재하고, 시장에서 최대로 비싼 값으로 상품을 팔기 위한 이윤추구의 사익도모를 도모하도록 내버려둘 때 그 속에서 시민이 진정으로 체감할 수 있는 법률서비스 차원의 사법개혁은 존재할 수가 없다.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만 얘기했지만 그 외에도 우리사회엔 시민들의 삶에 직접 영향미칠 더 많은 사법개혁, 즉 보편적 법률복지 장치들이 필요하다. 아직 우리사회에선 법조인이 이웃처럼 가까운 이, 문턱 낮은 친절한 서비스직이 아니다. 젊은 판검사들이 과로사하는 일이 벌어지고, 누군가의 인생이 걸린 소장이 단 몇 분 읽지도 않고 처리되는 일들이 벌어져도 법원과 검찰은 신규 판사‧검사 임용 수를 결코 늘리려 하지 않는다. 특권은 '소수'일 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인의 수를 늘리고, 법률서비스의 문턱을 낮추겠다고 도입한 로스쿨과 변호사시험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힘은 너무도 강력하다. 그 힘을 현 법무장관과 대통령이 도무지 꺾을 생각이 없는 듯하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시민의 목소리를 모아 법률서비스 확충, 보편적 법률복지 장치 확대를 위한 사법개혁의 촛불을 드는 것밖엔 없다.

지난해 우리는 조국 사건을 겪으며 교육개혁과 사법개혁이 얼마나 중대한 과제인지를 체감했다. 시민들은 내 소중한 일상을 잠시 멈추어두고 기꺼이 광장으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그러나 교육개혁의 답이 그저 정시확대를 의미하는 게 아니고, 공수처 설치가 사법개혁의 전부는 아니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개혁들을 시작해야만 한다. 침묵하고 외면하고 그저 맡겨두면 힘있는 자가 약한 자를 밟으려고 드는 '사자의 본성'을 결코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저는 제9회 변호사시험에서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행복하게 웃을 수 없습니다. 제도의 모순을 온몸으로 느껴왔음에도, 저의 합격이 얼마나 많은 위헌적 눈물들을 희생시킨 대가인지 알면서도, 그 비열한 합격증을 찢거나 변호사의 길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무엇보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합격의 기쁨 때문이 아니라 죄책감에 눈물이 납니다. 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몇 기수 선배인 엄마 로스쿨 졸업생이 이번 시험의 불합격으로 이른바 '오탈자'가 되었습니다. '엄마'도 꿈이 있기에 이 길을 포기할 수 없던 저희는 함께 의지하며 아이들에 대한 미안한 만큼 더 열심히 공부하자 의지를 다지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더 이상은 법조인의 꿈조차 꿀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가 무엇을 잘못했을까요. 로스쿨을 졸업한 5년 내에 두 아이를 지우지 않고 낳고 키운 것이 잘못이었을까요.

늦은 나이에 가족들의 희생을 뒤로 하고 수험 준비를 한 만큼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이 제 가슴 속 한편엔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부끄러움과 괴로움이 저의 새로운 시작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저는 사법개혁의 한 영역인 대국민 법률서비스 문턱 낮추기의 실현을 위한 단체,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이경수‧박천우‧박은선 공동대표,
http://www.lawlowyer.net/)의 공동대표직을 맡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단 어제부터 매주 화요일 청와대, 대한변협 앞 등에서 '신규 변호사 수 통제하는 사법개혁 적폐, 대한변협을 해체하라'는 내용의 1인시위를 뜻을 함께 하는 분들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사법개혁이 시민의 삶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양승태‧우병우와 같은 법조엘리트가 아닌 인권감수성 충만한 진정한 법조인을 양성하려면 로스쿨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관한 활동의 한 모습으로써, 최근의 교육과 계층 그리고 법조계의 개혁 관련 연재(
http://omn.kr/1nbd4)에 이어 앞으로도 계속 관련한 얘기들을 이곳 오마이뉴스를 통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모쪼록 시민 여러분이 함께 해주시기를, 사법개혁과 교육개혁의 촛불들이 아직 더 많이 필요함을 알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변호사시험 #로스쿨 #법조문턱낮추기 #사법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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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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