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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내성균, 코로나19보다 더 많은 생명 앗아갈 수 있다

[김창엽의 아하! 과학 56] 한번 내성 갖기 시작하면 다른 종류 항생제에도 내성 생기기 쉬워

등록 2020.04.29 13:32수정 2020.04.2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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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28일 (현지 시각) 101만 여명이고, 사망자는 5만8천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처럼 신속하게 대중들에게 알려진 건 아니지만,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에 감염되는 사람은 미국에서만 연간 평균 280만명 선에 이른다. 사망자 숫자는 코로나19 만큼은 아니지만 3만5천명 이상으로 역시 만만치 않다.

코로나19에 가려져 훨씬 덜 심각하게 인식될 뿐, 항생제 내성 세균은 인류에겐 상존하는 위협이다. 지난 10년간을 합산하면 미국서만 사망자가 35만 명이 넘는데,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는 말 그대로 '약도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코로나19가 당장은 인류에게 가장 큰 감염병이지만, 치명적 바이러스는 그 특성상 1가지 종류가 10년 넘게 기승을 부리기는 곤란하다. 그 사이 사회적 대처는 물론 제법 효과가 있는 백신이나 치료제가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장균 현미경 사진. ⓒ 미국 국립 앨러지 감염병 연구소

 
미국 워싱턴 주립대학과 아이다호 주립대학 공동연구팀이 최근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와 관련해  '좋지 않은 뉴스'를 내놨다. 1가지 항생제에 내성을 갖기 시작하면, 다른 항생제에도 내성이 생기기 쉽다는 연구결과가 그것이다. 속되게 표현하면 '고기도 먹어본 자가 잘 먹는다'는 말과 유사한 맥락이다.

박테리아가 내성을 갖는 건, 보통 박테리아 세포 내에 있는 '플라스미드'라는 DNA 유전물질 때문이다. 플라스미드는 박테리아 고유의 염색체와는 다른 것인데, 평상시 플라스미드는 박테리아 염색체의 기능이나 대사에 방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갖고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플라스미드는 박테리아의 생존과 번식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문제는 항생제 내성을 보이는 플라스미드를 박테리아가 자신의 세포 내에 한번 품기 시작하면, 다른 플라스미드를 받아들이기가 훨씬 쉽다는 것이다. 항생제 내성 플라스미드를 '먹어 본' 박테리아가 또 다른 항생제 내성 플라스미드를 '먹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페렴간균 현미경 사진. 뒤쪽 그물처럼 보이는 것은 인간의 호중구. ⓒ 미국 국립 앨러지 감염병 연구소

 
연구팀은 대장균과 폐렴간균, 이 두 가지 세균을 이용한 실험에서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의 유전 특성을 밝혀냈다. 항생제 종류에 따른 플라스미드는 테트라사이클린 내성 플라스미드와 클로람페니콜 내성 등 2가지가 이용됐다.

테트라사이클린이나 클로람페니콜 같은 항생제 성분이 없이 키우자 내성 대장균과 내성 폐렴간균은 둘 다 열흘도 안 돼 자신의 몸 속에 있던 플라스미드를 토해냈다. 9일 동안 배양 후 측정한 결과 폐렴간균 중에서 항생제 내성 플라스미드를 갖고 있는 비율은 50% 이하로 떨어졌다. 대장균은 더 낮아 20%에도 못미쳤다.

헌데 이번에는 실험 조건을 달리해, 즉 항생제를 주입한 배지에서 박테리아를 키우자 대장균이나 폐렴간균 모두 플라스미드를 토해 내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항생제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자신에게 꽤 불편한 플라스미드를 계속 세포 내에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려 400세대를 키워봤지만, 대대손손 항생제 내성 플라스미드를 물려주는 것으로 드러났다.

바이러스와 달리, 세균은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것만으로 인체 침투를 차단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특히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는 역설적으로 인간이 고안해 낸 항생제라는 문명의 이기에 맞서기 위해 박테리아가 스스로 진화를 통해 찾아낸 맞대응이라는 점에서 고약한 측면이 있다. 보다 강력한 항생제를 사람이 개발하면, 박테리아도 그에 걸맞는 수준으로 진화해 항생제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평상시 알게 모르게 이뤄지는 박테리아 감염의 대부분은 건강한 사람이라면 면역체계를 통해 이겨낼 수 있다. 하지만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감염자라면 상황은 다르다. 코로나19에서도 알 수 있지만, 바이러스나 세균이나 '약한 고리'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치타가 어리거나 늙은 영양, 부상당한 영양 등 약한 개체를 집중 공략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워싱턴 대학과 아이다호 대학의 이번 공동연구 결과는 '절제된' 문명이 박테리아나 세균과 같은 존재들로부터 위협을 벗어날 수 있는 한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새롭고 더 강력한 항생제 개발이 만능이 아니라, 항생제 남용을 막는 게 박테리아의 공격을 막는데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 생태계 차원에서 보면, 절제된 검찰권력이 사회 악과 독소를 일정 수준에서 다스릴 수 있는 것과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약을 만능으로 삼아, 무분별하게 사용해서는 약효를 제대로 거둘 수 없는 것과도 같은 이치다. 내성 박테리아에 대한 이번 연구결과는 이런 점에서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서도 함의가 적지 않다.
 
#항생제 #세균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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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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