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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지닌 내 아이, 호주에서 코로나 겪어 보니

장애는 국가에 따라 차별 받는다... 한국의 특수교육은 안녕하십니까

등록 2020.05.03 11:47수정 2020.05.0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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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계획표 월요일마다 구글클래스룸을 통해 주간 계획표를 제공하고 과제별 담임 교사의 피드백 여부를 명확히 제시하여 학생과 학부모의 이해를 돕느다. ⓒ 이혜정

 
'먼저 행동하고 생각하는 아이'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를 지닌 내 아이를 설명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이 용어에는 익숙하지만, 이런 특성을 지닌 아이 한 명을 키워내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잘 알지 못한다. 이 분야를 공부한 사람들이거나 경험해 본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쉽게 구별도 못한다. 내 아이만 해도 지인들이나 교사도 내가 진단명을 말해줘야 안다. 특히 과잉 행동은 없으면서 집중력이 떨어지는ADD (주의력 결핍 장애, attention deficit disorder) 를 지닌 아이들은 발견이 더 어려워서 중요한 시기에 적절한 도움을 놓치기도 한다.

ADHD는 단순한 집중력의 문제로 귀결되지 않는다. 대다수가 감정조절의 어려움(emotional dysregulation), 사회성 문제, 한 과제에서 다음 과제로 전환의 어려움(transition), 행동조절 문제(behaviour issues), 실행 기능 (executive functioning) 등 다양한 부차적인 어려움들이 동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형인(Neuro Typical) 들이 단 한 명도 동일한 존재가 없듯 이 분야도 마찬가지다. ADHD를 지닌 한 아이를 만났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ADHD를 지닌 많은 아이들 중에서 한 명을 만난 것이다.

아들 세 명을 키워낸 언니도 내 아이랑 하루를 보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내 아이의 특성을 알지 못하는 지인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난 하루도 못 키울 거예요." 또는 "엄마가 너무 우유부단하거나 친절한 거 아니에요?" 세상의 편견과 오해 속을 헤집고 살아오다 보면  그런 득 없는 말엔 미소 한번 날려주는 여유도 생겼다.

얼마 전 배우자가 '성인 ADHD' 진단을 받은 한 지인은 나에게 이렇게 묘사했다.


"흥분한 말 한 마리가 하루 종일 미친 듯이 뛰어 다니는 느낌이에요."

사실 그렇다. 아이랑 하루를 보내다 보면 본인이 좋아하는 활동 몇 가지를 빼면 동기부여가 어렵고 수시로 산만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한다. 나도 모르게 "멈춤 버튼"을 눌러 보는 상상을 하곤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온라인 수업이 시작된 후 두통약은 나의 필수품이 되었다.
아이가 다니는 멜버른 초등학교에선 하루에 평균적으로 30분 정도면 끝낼 과제를 4~5개씩 부여한다. '정형인' 아이라면 20분 정도면 끝낼 과제도 내 아이에겐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되곤 한다. 그것도 엄마나 아빠가 찰거머리처럼 붙어서 "그만 멈춰!", "진정해!", "집중해 봐!"를 무한 반복 재생을 해야만 가능하다.

예를 들면, 쓰기 과제에서 짧은 한 문장을 완성하는데 다섯 번 이상은 일어났다 앉았다를 해대니 가끔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이 분출한다. 두통약이 필요한 순간이다.

호주의 일반학교가 갖는 '다양성'
 

Colour Wheel 미술 과제로 색상표를 만드는 데 반나절이 걸리는 아이 ⓒ 이혜정

 
"혹시 ADHD 진단 받은 아이 가르쳐 본 경험 있어요?"

새학기 첫날이면 담임에게 묻는 질문이다. 이곳 일반학교 대부분의 교사들은 경험이 없을 수가 없다. 특수학급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이곳의 학교에는 다양한 발달 장애를 지닌 아이들이 함께 살아간다.

일반 학교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고기능 자폐성 장애, ADHD, ADD, 지적장애, 불안장애 등을 지닌 아이들을 함께 교육하려면 교사들에게는 다양한 아이들(Neuro Diversity)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필수다. 교사들의 행정업무를 최소화하는 대신 개별화된 맞춤 교육에 전문가가 될 것을 사회가 요구한다.

상당수의 교사들은 이미 '개별 맞춤식 교육'은 장애아동을 넘어선 모든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개념이란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즉, 수학에 재능있는 아동에게 도전할 수 있는 맞춤 과제를 제공하듯, 장애를 지닌 아동도 조금 더 구체적이고 특화된 전략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이다. 아이의 담임만 하더라도 특별한 도움은 장애 아동에게만 해당되는 시혜나 온정이 아니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대신 사회는 교사에게 모든 책임과 의무를 떠넘기지도 않는다. 아이를 담당하는 전문가들(통합감각 치료사, 상담사, 언어치료사 등)은 부모나 교사의 요청이 있으면 학교로 직접 방문을 해서 교사를 훈련시킨다.

진단을 받지 않은 아이도 부모가 원하면 전문가와 교사의 만남을 요청할 수 있고, 진단 없이도 부모가 요청하면 학교는 IEP (개별화 교육 프로그램, Individualized Educational Programme) 를 작성해서 아이의 발달을 도와야 한다.

"내가 더 고마워. 덕분에 비슷한 특징을 가진 아이들을 이해하고 가르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

연말에 교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할 때마다 듣는 소리다. 부모가 미처 인지하지 못해 진단과 도움을 놓치는 아이들까지도 함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한국의 일반학급 교사들이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하여 당황하는 사이에, 이곳의 교사들은 아동들이 갖는 특성과 학교 생활에서 부딪히는 어려운 점들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이에 대한 대응 전략들을 실천하고 있다.

'교육받을 권리' 박탈당하는 특수학교 아동들
 

하루의 일과 하루에 보통 4-5개의 과제들이 구글클래스룸을 통해 제시된다. ⓒ 이혜정

 
온라인 수업이 시작된 후로 우리 가족은 모두 고달프다.

학교라도 가야 집중이 다소 높아지고 학습 모드가 장착되는 아이를 교사의 이해와 도움 없이 집에서 지도하기는 역부족이다.

아이의 담임은 아이가 얼마나 따라오고 있는지, 구체적인 어려움은 무엇인지, 본인이 도와줄 방법에 대해 묻는다. 장황한 설명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아이를 위해 짧고 단순한 언어로 학습 동영상을 만들고, 동기부여를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수업에 활용도 한다.

부모의 힘든 점을 고려해 본인이 근무를 하는 날에 학교에 보내도 된다고 배려해 준다. 교사의 지지와 응원 덕에 아이는 겨우겨우 과제를 완수해 내고 있다. 물론 주어진 과제의 반 정도만 하는 경우도 많다.

멜버른에 있는 특수학교는 코로나19 팬데믹 정국에서 예외적인 규정을 적용한다. 대부분의 기관과 시설들에 엄격한 봉쇄 조치가 내려졌지만, 요양원, 병원, 약국, 슈퍼마켓처럼 필수 시설은 예외를 두 듯, 일반 학교가 봉쇄된 상황에서도 특수학교는 운영되고 있다.

특수학교의 특성상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어도 특별한 케어와 안전과 위생이 필요하고 그에 맞춰 운영을 해 온 곳이다. 아동들의 특성상 온라인 수업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고, 계속적인 교육과 발달과 치료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가 원하면 아동을 학교에 보내지 않을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전세계를 차별없이 강타했다. 마찬가지로 장애도 국가나 인종, 계급 등을 차별하지 않는다. 코로나 정국에서 한국에서 전해지는 장애 분야의 뉴스를 들으면 참담하다.

제주도에서 발생한 발달 장애 학생과 엄마의 극단적 선택엔 사람들은 '불쌍하다,', '복지를 개선하라' 동정심을 보인다. 하지만 발달 장애 학부모들이 '제발 일주일에 한 번, 한두 시간만이라도 학교에서 교육받게 해달라', '아이들의 특성을 고려해서 융통성있게 정책을 운영해 달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우리 모두 힘드니 좀 참아라', '다들 어려운데 어쩌라는 거야'로 응답한다.

정형인 아이들은 학교가 봉쇄되어도 온라인 수업도 가능하고, 학원도 다닌다. 친구들과 피시방에 가서 스트레스도 날려 버린다. 반면에 온라인 수업조차 들을 수 없는 특수학교 아동들은 마땅히 누려야 할 '교육받을 권리'조차 박탈되는 상황을 야기한다. 지난겨울 방학부터 벌써 네 달째 가정보육이다.  

예고 없이 불청객으로 찾아온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장애도 한 가정에 예고없이 공포로 엄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점은, 사회 구성원들의 태도에 따라 당사자들이 체험하는 사회로부터의 차별은 판이하다.
덧붙이는 글 개인블로그나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호주 #특수교육 #원격교육 #온라인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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