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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논쟁 "29세 이하 사망 확률 제로... 봉쇄를 풀어라"

[런던아이 LondonEye ⑥] 사망자 2만 명 넘었는데... '생명이냐 경제냐' 씁쓸한 논쟁

등록 2020.04.30 20:28수정 2020.04.3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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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이후 영국 런던의 봉쇄(Lockdown) 조치가 한달이 넘었다. 이전보다 길거리에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고, 일부 상점들은 테이크어웨이(포장판매) 중심으로 영업을 시작한 곳도 눈에 띄었다. ⓒ 김종철

 
"자, 받아요. 오랫만에 보니까 너무 반갑네요."

그는 웃으면서 세탁물을 건넸다. 지난 25일 오후, 동네 세탁소를 찾았다. 지난달 맡겨 놓은 아이 교복을 찾기 위해서였다. 헬렌씨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그는 "가게 문을 열고, 사람들을 만나니까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또 당분간 아침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가게 문을 열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봉쇄(Lockdown) 조치가 내려지기 전에는 오후 7시까지였다.   

길거리에도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장을 보러 나온 사람부터 간단한 산책이나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다. 주변 공원에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카페와 음식점 주변에는 1~2미터 간격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물론 모든 음식은 테이크어웨이(takeaway, 포장판매용 음식을 일컫는 말)만 가능했다.  

영국의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인 레옹(Leon)은 아예 매장 일부 공간에 휴지를 비롯해 우유와 달걀, 채소 등을 갖다 놓았다. 슈퍼마켓에서 매일 품절돼 구입하기 어려운 필수품을 이곳 카페에서 살 수 있게 한 것. 나 역시 가끔 이곳에서 달걀을 사기도 했다. 6개 달걀을 넣을 수 있는 조그마한 종이박스 1개에 1.75파운드(약 2500원). 이곳 직원은 "고객들 반응이 생각보다 좋다"고 했다. 

물론 영국의 봉쇄 조치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지난달 23일 이후 슈퍼마켓과 약국 등 일부 필수 영업장을 제외한 모든 가게의 영업은 중단됐다. 또 하루에 한번 장을 보러가는 등 필수적인 경우를 빼고는 이동도 자유롭지 못하다.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 운행도 크게 줄었고, 대부분 기업들도 문을 닫거나, 일부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부활절 방학을 마친 학교들도 지난 22일부터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더 타임스>, "50세 이하, 건강한 사람들 일터로" 봉쇄 완화 압박

봉쇄 조치가 한달을 넘어서자, 역시나 이곳 저곳서 '피로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영국 일간신문 <더 타임스>를 비롯해 보수적 성향의 언론들은 연일 봉쇄조치 완화를 압박하고 있다. 요지는 로크다운 출구전략을 늦출수록 경제 악화에 따른 장기 침체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것이다.


<더 타임스>는 지난 25일치 사설을 통해 "정부가 봉쇄조치의 출구전략을 놓고 고민중이지만, 이미 많은 나라에서 봉쇄 완화를 시작했다"면서, 지난 23일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에서 내놓은 봉쇄 완화 가이드라인의 예를 들기도 했다. 

또 신문은 코로나19의 확진자와 사망자 비율 등의 통계를 제시하면서, "아주 드물게 젊은 층의 희생자가 있더라도, 코로나19의 사망자는 대부분 노년층이거나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썼다. 이어 "29세 이하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망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고, 산술적으로 50세 이하 사람들 가운데에도 2000명 중에 한 명 미만 꼴로 사망하는 정도"라고 강조했다.

신문은 이어 "정부는 50세 이하, 심지어 건강한 60세 이하 사람들도 일터로 돌아가는 데 위험이 거의 없다는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면서 "물리적 거리를 유지한다면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도 낮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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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프랜차이즈 카페인 레옹(LEON). 지난달 봉쇄조치이후 매장 내부 한켠에 화장실용 휴지를 비롯해 사과와 달걀 등 야채와 과일 등 필수 식료품을 함께 팔고 있다. ⓒ 김종철

 
이에 앞서 이 신문의 일요판인 <더 선데이타임스>도 지난 19일 영국 정부의 3단계 봉쇄조치 완화 내용을 입수했다면서, "1단계로 5월께 초중등학교 등교를 시작으로 일반 가게 영업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2단계는 몇주가 지난 후 나머지 대부분의 가게와 기업 등도 문을 열 예정이며, 여름까지 모든 펍(pub)과 레스토랑 등도 포함될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마지막 3단계는 바이러스 백신이 개발된 이후로 예상했으며, 70세 이상 노령층과 심신 취약계층은 내년까지 봉쇄 조치가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문은 사설에서도 "정부의 계획은 의회에서 충분히 토론할 수 있으며, 우리는 독재국가나 대통령제 국가가 아니다"면서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으며, 총리와 내각은 (봉쇄 완화 계획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원 사망자만 2만명 넘어... 고개 숙인 존슨 총리 "아직 봉쇄 완화는 아냐"

<더 타임스>뿐 아니다. 또 다른 보수성향의 신문 <더 텔레그래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진보성향의 <가디언> 정도만 의료전문가들의 말을 통해 "코로나19의 사망자와 치명률이 여전히 높으며, 섣부른 봉쇄 완화로 인해 더 큰 희생이 따를 수 있다"고 경고하는 정도다. 

영국 정부도 공식적으로는 봉쇄 조치를 풀기에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또 정부 차원의 봉쇄 해제를 위한 5가지 조건도 밝힌 바 있다. 우선 영국 의료보장체제인 국민보건서비스(NHS) 능력이 바이러스 확산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며, 코로나19 치명률이 꾸준히 감소하고, 감염률이 관리가능한 수준으로 하락하고, 의료진의 보호장비 공급과 코로나19 검사역량을 갖춰야 하며, 제2의 바이러스 파동 위험이 없을 경우 등이다. 

보리스 존슨 총리도 비슷한 입장이다. 지난달 27일 세계 주요국 정상 가운데 유일하게 코로나19 확진 판정과 함께 한때 병세가 악화돼 집중치료실로 옮겼던 그다. 한달여 만에 총리 업무에 복귀한 그는 대국민 성명을 통해 "당장 봉쇄 조치 완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존슨 총리는 이날 특유의 거침없는 말투로 코로나19는 영국이 세계 대전이후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라면서 "지금이 최대 위기의 정점에 있으며 그 흐름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업인들의 어려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조금만 더 인내심을 발휘해달라"고 했다. 이어 "서둘러 봉쇄조치를 풀었다가 더 많은 희생이 따를 것이며, 경제도 재앙이 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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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 27일 대국민 성명을 통해 "아직 봉쇄조치를 완화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세계 주요 정상 가운데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한때 병세가 악화돼 병원에서 집중치료를 받기도 했다. 사진은 영국 총리실 중계 화면 갈무리. ⓒ 김종철

 
그가 성명을 발표했던 27일, 영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이미 2만 명을 훨씬 넘었다. 29일 현재 사망자는 2만1678명이다. 이 숫자는 병원에서 숨진 희생자만 따진 것이다. 영국 노인 대부분이 머물고 있는 요양원 등에서 운명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가디언>은 최근 "이들 요양원에서 코로나19로 의심돼 숨진 사람들이 수천여 명에 달하지만 정부는 제대로 집계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영국 정부도 뉘늦게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맷 행콕 영국 보건부장관은 28일 "요양원 등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가족과 요양 관리사 등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면서 "병원에서 하던 방식에 따라 코로나19 환자에 대한 추적과 관리를 해 나갈 것이며, 통계에도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명이냐 경제냐, 의미없는 논쟁

수잔 무어(Suzanne Moore) <가디언> 칼럼니스트는 같은날 신문 칼럼을 통해 "보수성향의 우파 언론은 항상 익명의 보수당 고위층 인사를 인용해 봉쇄조치의 해제를 주장하고 있다"면서 "(언론에 등장하는) 인사는 오랜 기간의 경제봉쇄가 바이러스보다 더 많은 생명을 잃게 할 것이라고 주장해 온 백만장자 기부자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지금, 국민들은 정치엘리트보다 앞서 있다"면서 "봉쇄조치로 개인들의 삶이 곤경에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많은 암 환자들의 치료가 중단됐고, 가정 폭력과 아동 학대 역시 과거보다 증가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봉쇄 조치가 완화되더라도 코로나19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우리는 어쨌든 죽음과 그 위험을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존슨 총리의 언급으로, 봉쇄 완화를 둘러싼 논란은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여전히 보수 우파 진영에선 소셜네트워크 등을 통해 봉쇄 해제를 계속 퍼나르고 있다. 경제를 살려야한다는 명목이다. 극장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수많은 뮤지컬 배우, 그라운드에서 뛰지 못하는 프리미어리그 선수들 등등… 그리고, 실제 현실에선 예전처럼 엄격한 봉쇄를 따르는 시민들도 줄고 있다. 

게다가 영국 정부는 마스크 착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손 씻기만 강조할 뿐이다. 그 사이 영국의 코로나19를 둘러싼 수치들은 계속 오르고 있다.

사실 봉쇄조치는 언젠가는 풀릴 것이다. 하지만 어찌보면, '생명이냐, 경제냐' 라는 이분법 자체가 의미없는 논쟁이기도 하다. 사람이 건강해야, 직장에서, 공장에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배우가 건강해야 무대에서 제대로 된 공연을 펼쳐 보일 수 있지 않을까. 또 축구든, 럭비든 선수가 건강해야 경기장에서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것이고, 안전이 담보돼야 시민들도 편하게 경기장을 찾을 것이 아닌가. 그게 보수 우파들이 그렇게 바라는 경제 활성화가 아닐까. 

수잔 무어 칼럼니스트도 "사람이 죽으면 영원히 로크다운 된다"면서 "건강이 곧 부를 가져온다(Health is wealth)"라고 했다. 우리가 어렸을 적부터 자주 듣던 말이다.

"건강이 밥 먹여 준다(Health is w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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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코로나 19 사망자 수가 29일 기준으로 2만1678명이다. 하지만 이 숫자는 영국 노년층 대부분이 머물고 있는 요양시설 등에서의 코로나 19 사망자 수는 빠져있다. <가디언> 등 언론의 지적이 계속되자, 영국 정부도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빠르면 이번주부터 영국 내 요양시설의 코로나 확진 환자에 대한 관리를 높여나가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영국 런던의 한 요양원. ⓒ 김종철

 
#영국 런던 #런던 아이 #보리스 존슨 #코로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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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이 기사는 연재 코로나19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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