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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아이들은 교과서를 믿지 않는다

[아이들은 나의 스승 189] '교과서에 나와 있다'는 게 정답일 수 없는 세상이 왔다

등록 2020.05.04 10:48수정 2020.05.0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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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된 서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 3학년 교실이 텅 비어 있다. 개학이 연기되면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수시·정시모집 등 대학 입시 일정도 12월 3일로 2주 연기됐다. ⓒ 연합뉴스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방역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예언'이다. 감염 예방을 위한 방역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일 테지만, 우리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앞으로 닥쳐올 미지의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 이대론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코로나의 확산을 막아내고 인명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끝은 아니라는 거다. 정치인들과 학자들은 지금부터가 진짜 위기라고 이구동성 말한다. 미래를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조처하지 않으면 더 큰 고통이 찾아올 것이라는 이야기다. 당장 눈앞의 경제 위기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그럼 학교는 어떻게 될까. 원격수업에 지친 아이들은 하루빨리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아우성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출석을 위해 종일 스마트폰과 노트북 화면을 쳐다봐야 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노는 건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예전의 일상'은 다시 오지 않을 성싶다. 건물이야 지난 겨울방학 이전의 모습 그대로지만, 학교생활은 그때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일과 중에 정부의 권고대로 '생활 방역'이 작동되는 학교 풍경은 오랜만에 등교한 아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게 틀림없다.

코로나 이후의 학교

등교 개학을 앞두고, 학교는 감염병 관리를 위한 훈련을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발생 감시, 예방 관리, 학사 관리, 상담 지원 등 감염병 관리를 위한 교사 조직이 꾸려졌고, 확진자 발생 시 세부 대처 요령이 마련되었다. 가상 시나리오에 따른 방역 훈련까지 마쳤다.

정부도 여러 차례 밝혔듯, 코로나의 근절은 사실상 요원하다고 한다. 당장 올해 가을과 겨울에 2차 대규모 확산이 우려된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의 확산이 상수라면, 집합 교육이 불가피한 학교에서 감염병 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한 교육 목표일 수밖에 없다.

일단 2학기로 죄다 미뤄뒀지만, 올해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등 단체 활동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밀집된 버스와 숙소를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천만한 일이다. 하긴 마스크를 낀 채 실시하는 단체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도 싶다.

학교가 교육과정과 학사일정의 변화만으로 그칠 것 같진 않다. 이미 수업일수가 조정되었고, 사상 최초로 온라인 개학까지 한 마당이니, 앞으로 맞닥뜨릴 전인미답의 변화가 예측할 수 없어 더욱 두렵다. 코로나가 학교 교육의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 올 거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당장 감염병 관리의 일상화처럼 외압에 따른 변화부터 시작됐지만, 코로나로 드러난 내재적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자성이 뒤따를 것이다. 교사도 학생도 코로나로 인해 여태껏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는 교육의 본령을 성찰하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그저 교실과 급식소 등에 손 소독제를 비치하는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방역을 넘어, 기성세대는 학교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미래 사회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인류에게 22세기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자못 염세적 예언까지 나오는 터다.

우선, 수업 방식의 변화에 직면해 있다. 교실을 벗어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피시 등을 활용한 비대면 원격수업이 보편화되는 건 이미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 앞으로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조롱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이젠 교직원 회의 때 교무수첩을 들고 가는 교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젊은 교사들을 중심으로 태블릿 피시와 전자펜이 교무수첩과 볼펜을 대신하고 있다. 지난 두 달 간의 휴업과 온라인 개학 기간 동안 태블릿 피시를 마련해 수업과 업무에 활용하는 교사가 부쩍 늘었다.

조만간 정근이나 개근상도 무의미해질 듯하다. 교육부의 코로나 대응 매뉴얼에 의하면, 열이 나거나 아프면 출근이나 등교는 금지된다. 연가는커녕 병가를 신청하는 것조차 눈치를 보고, 웬만해선 학교 수업을 빠지지 않는 걸 미덕으로 여겨온 문화도 이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결석해도 교과 진도는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비대면 수업으로 얼마든지 벌충할 수 있다. 교사의 수업과 업무도 재택근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전국의 교사들과 아이들이 지난 두 달 동안 충분히 경험했고, 학교와 가정의 IT 인프라와 교육 플랫폼 역시 서둘러 갖춰졌다.

그러다 보면 학교에서 공부보다 건강과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6년 전 세월호 참사로 인해 교육과정에 안전교육이 의무화되었듯이, 이번 일로 감염병과 개인위생 교육이 강화될 공산이 크다. 그동안 보건 교과는 사실상 '자습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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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둥성 광저우 거리에 '지구의 날'인 22일 마스크가 씌워진 지구본이 놓여 있다. ⓒ 연합뉴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지 않으려면, 교과서의 내용 또한 수정이 불가피하다. 경제와 사회 교과서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시장 경제에 대한 내용은 말 그대로 찬양 일색이었다. 시장 경제가 성장과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는 최선의 경제 시스템인 양 서술하고 있다.

적자 운영으로 세금을 축낸다며 손가락질 당한 공공병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번 일로 아이들조차 분명히 깨닫게 됐다. 모든 걸 시장에 맡기는 것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다. 이젠 시장 경제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게 자칫 시대착오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

위기 상황일수록 국가의 역할이 시장을 대신해야 하고, 정치가 우리 삶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다는 인식이 보편화된 건 덤이다. 얼마 전 생애 첫 투표를 한 고3 아이들도 선거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정치적 효능감'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셈이다.

그런가 하면, 세계화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에도 균열이 생길 전망이다. 한낱 마스크 한 장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세계 여러 나라의 상황을 보며, 세계화를 '빚 좋은 개살구'라고 표현했다. 수업시간 국제 무역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배운 '비교우위론'을 조롱하기도 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멈추면, 전 세계가 멈춘다는 걸 똑똑히 봤어요."

한 아이는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꼴'이라면서도, 이번 일로 중국의 위력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해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 공장을 이전시킨 서방 세계의 자승자박이라고 평했다. 나아가 코로나는 G2라는 미국과 중국의 순위가 바뀌는 변곡점일 거라고 단언했다.

사실상 교과서 속 세계화는 곧 '미국화'를 의미했다. 노동집약적 산업과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장치산업 등이 개발도상국으로 이전되는 걸 당연시하며 가르쳐온 게 사실이다. '산업구조의 고도화'라고 그럴듯하게 이름 붙여가며,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과정이라고 상찬했다.

이젠 아이들이 '아이폰은 발명해도, 마스크는 못 만드는 나라'라며 미국을 조롱하는 지경이다.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허울 뿐, 코로나에 감염돼도 가난하면 검진조차 받을 수 없는 미개한 나라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덩달아 서양을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꺾였다.

일본에 대한 인식도 확연히 달라졌다. '위안부'와 독도 문제 등 과거의 침략 행위를 부인하는 극우 집권 세력에 대한 증오심이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일본인에 대한 연민으로 바뀌는 모양새다.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는 모습에,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건 착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쌤통'이라는 표현은 자제해야 한다면서도, 일본인들은 지금 선거 때 정치인을 잘못 선택한 죗값을 치르는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얼마 전 불매운동 때 보여준 역사의식에다 정부에 대한 신뢰와 이타적 시민의식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상대가 못 된다고 말했다.

교과서를 반박하는 아이들

아이들이 마치 성서 속 진리처럼 여겨온 교과서 내용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학교의 혁명적 변화를 예고한다. 그들의 날선 질문은 이어질 것이고, 교사는 그들이 납득할 만한 대답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교과서에 나와 있다'는 게 정답일 수 없는 세상이 왔다.

아이들의 질문이 아직 여기까지 미치진 않았지만, 육식 위주의 학교 급식도 머지않아 도마 위에 오르게 될 것이다. 멀리 페스트부터 최근 코로나까지 주기적으로 인수 공통 감염병이 유행하는 건 동물과 인간의 접촉면이 넓어진 탓이다. 곧, 동물 서식지 파괴가 원인이라는 뜻이다.

공교롭게도,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이 최대의 육류 공급지로 탈바꿈되려는 순간 경고하듯 코로나가 인류를 급습한 셈이다. 그렇잖아도 무시로 구제역과 조류독감, 돼지 열병 등이 발생하고, 우리는 한결같이 살처분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비위생적이고 밀집된 사육 환경, 곧 '공장식 축산'에서 비롯된 '연례행사'다. 변이를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 그들도 코로나처럼 인류를 공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인간과 동물이 공존을 모색해야 할 때임을 알려주는 신호다. 그러자면,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이 의미 있는 실천일 수 있다. 나아가 학교에 채식 문화가 확산된다면, 에너지 과잉 소비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등 환경에 대한 감수성을 키울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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