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위 진달래는 여전히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봄의 끝자락이라도 잡고 싶어 찾은 도봉산

등록 2020.05.04 11:44수정 2020.05.0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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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의 선인봉 선인봉을 보자 나의 등산 코스는 이미 정해졌다. ⓒ CHUNG JONGIN

 
원래 계획은 그동안 집 근처를 벗어나지 못했던 답답함을 풀 겸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을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지하철로 다녀올 수 있는 도봉산을 택했고 망월사역에서 내려 포대 능선을 거쳐 희룡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잡았다.

그렇게 해서 지난 4월 28일 망월사역을 가기 위해 1호선을 탔는데 타고 보니 급행이었다. 아무런 정보가 없던 나는 창동역을 지나서야 급행은 망월사역에 정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에라, 모르겠다. 도봉산으로 가니까 도봉산역에서 내리지 뭐. 코스야 가서 정하기로 하고.'

도봉산역에 내리자 선인봉이 눈 안으로 들어왔고, 그 순간 나의 등산 코스는 이미 도봉산의 최고봉을 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사실 나는 도봉산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나 보다. 그저 젊은 시절 등산을 간다고 하면 북한산이나 도봉산 중 한 곳을 택했고 버스로 다니던 시절이기에 북한산은 백운대, 도봉산은 계곡이나 이름 모를 능선길을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면 일반 등산객이 다니는 코스가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던 거 같다. 하긴 거의 40년 전 기억이다.
 

봄이 무르익어가는 도봉산 도봉산의 봄 빛깔은 연녹색에서 짙은 녹색을 달려가고 있었다. ⓒ CHUNG JONGIN

 
도봉산 입구에 도착하니 도봉산에는 봄빛이 가득했다. 동네 산책길에서 봄 내음을 맛보았지만 산에서 맞이하는 봄은 맛이 달랐다. 이미 봄 빛깔은 연녹색에서 짙은 녹색을 달려가고 있었다. 

산에는 예상외로 사람들이 제법 있었고 달리 놀 곳이 없어서 그런지 젊은 친구들도 여럿 보였다.

도봉 탐방지원센터의 지도를 바라보며 마당바위를 거쳐 자운봉을 향하는 거로 일단 코스를 정했다. 어디로 내려오느냐는 시간을 보며 정해도 될 것 같았다. 


쉬엄쉬엄 가기로 작정했지만, 산을 향한 발걸음이 바빠졌다. 얼마만의 산행인가? 얼마만의 집 밖을 벗어난 외출이던가?

마당바위까지 가려면 수많은 목책 계단과 돌층계를 올라가야 했다. 가는 길에 있는 천축사의 연등 행렬이 나타났으나 석가탄신일을 이틀 앞둔 날치고는 무척 소박하였다. 석가탄신일 행사를 한 달 미뤄서일 게다. 

마당바위에서 다시 자운봉으로 향했다. 자운봉은 일반 등산객은 올라갈 수 없는 곳이다. 일반인이 올라갈 수 있는 도봉산 최고봉은 신선대다.
 

자운봉 신선대에서 바라본 자운봉. 도봉산의 최고봉이나 일반 등산객은 쳐다만 봐야 한다. ⓒ CHUNG JONGIN

 
신선대까지 올라가는 길 역시 만만한 길은 아니다. 곳곳이 쇠봉에 의지해 두 팔과 두 발에 힘을 주어야 하는 곳이다. 등산 스틱이 방해물로 전락했다. 긴장하며 올라가느라 머리를 들면 보이는 선인봉도 놓쳤다.

넓지 않은 신선대 정상에는 정상까지 도달한 스스로를 축하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신선대에 올라서니 자운봉이 눈앞에 있었다. 자운봉은 분명히 알겠는데, 지형에 어두운 눈으로는 다른 유명 봉들을 구분할 수 없었다.
 

도봉산의 암봉 트리오: 선인봉, 자운봉, 만장봉 Y 계곡으로 가기 전에 멋모르고 찍은 사진에 세 개의 봉이 나타났다. ⓒ CHUNG JONGIN

 
신선대에서 내려가니 Y 계곡 안전 초소가 나오며 두 가지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험하고 위험하다는 Y 계곡과 우회로. 이제까지도 꽤 위험했으니 우회로를 택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쉴 자리를 찾아 점심을 먹었다. 쉬면서 옆을 올려다보니 바위가 병풍을 이루고 있었다. 저 뒤가 Y 계곡인가?

다시 길을 나섰다. Y 계곡 안전요원인 분들을 만났는데, 그분들 말이 Y 계곡 코스는 주말과 휴일에는 포대 능선 쪽에서 신선대 쪽으로 갈 수 있는 일방통행 코스라고 했다. 

'어라, 오늘은 화요일이니 신선대에서 포대 능선으로도 갈 수 있다는 말인 거네.'

결국 발길은 Y 계곡으로 향하고 있었다. Y 계곡 코스는 바위 가장자리에 쇠봉을 박고 쇠줄을 연결하여 만든 길이다. 20m의 직벽을 쇠줄을 타고 내려갔다가 건너편 절벽을 올라야 했다. 다리보다 팔 힘에 의지해야 했고 쇠줄을 잡고 발을 아래 쇠 파이프에 놓은 상태에서 미끄러지는 식으로 내려가는 구간도 있었다. 아래를 보면 뻥 뚫어진 허공으로 아찔했다. 

살아 건너야 한다는 절박함에 사진을 찍을 겨를도 없었다. Y 계곡 시작점에서 만났던 안전요원분들을 다시 만나니 Y 계곡을 완주했다는 만족감과 함께 안도감이 밀려왔다. 
 

포대 능선에서 본 진달래 진달래는 여전히 산 위에서 사람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 CHUNG JONGIN

 
비로소 진달래가 눈에 들어왔다. 산 아래에서는 이미 사라진 진달래가 산 위쪽에서는 등산객들을 반기고 있었다. 집안에 갇혀 있느라 올해는 볼 기회를 놓친 줄 알았던 진달래를 도봉산에서 만끽했다. 
 

자운봉과 신선대 Y 계곡을 통과한 후 위를 쳐다보니 마주하고 있는 자운봉과 신선대가 보였다. ⓒ CHUNG JONGIN

 
포대 능선으로 향했다. 포대 정상을 통과한 것까지는 알겠는데 어쩌다 보니 포대 능선을 길게 못 가고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하산길 역시 곳곳에 쇠봉을 잡고 좁은 바위틈을 통과해야 했다.

조심조심 열심히 내려오긴 했는데, 지형에 밝지 않고 길눈도 어두운 데다 켜놓은 줄 알았던 GPS까지 꺼져 있던 탓에 어느 길로 왔는지 알 수가 없다.
 

도봉산의 암봉들 다시 찾아간다고 암봉의 이름을 구분할 수 있을까? ⓒ CHUNG JONGIN

 
어쨌든 도봉탐방지원센터로 다시 내려왔고 그동안 굶주렸던 산 기운을 듬뿍 받았다. 

우리가 집안에만 박혀 있던 동안 자연은 갈색에서 녹색으로 변하고 진달래가 사라진 자리에는 철쭉이 만발해 있었다. 그리고 도봉산의 암봉들은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변해가는 색깔에 맞추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또 찾아갈 것이다. 다음에는 여유 있게, 각 봉의 이름도 확인하고 모습을 눈과 카메라에 담으면서.
#도봉산 #자운봉 #신선대 #포대 능선 #Y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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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반 동안 대한민국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다시 엘에이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도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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