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저녁이 있는 삶'을 가져온 코로나19

코로나19가 바꾼 학교의 모습

등록 2020.05.03 13:48수정 2020.05.0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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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그 한가운데 학교가 있다. 모든 수업이 학교가 아닌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수학 교사인 나도 4월 9일부터 원격 수업을 이어가고 있다. 번거롭고 힘들지만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하고 있다. 비록 작은 화면이지만 그래도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서 혼자서 수업을 하는 일이 어색하기만 했지만 이젠 농담도 섞어가며 화면 속 아이의 반응을 살피기도 한다. 코로나 19가 만든 변화를 살펴보자.

새로운 세대에게 맞는 새로운 수업
 

머그잔 ⓒ 박영호

인강에 익숙한 세대답게 학생들은 교사보다 더 쉽게 적응하고 있다. 화면 속에서 편안한 옷을 입고 머그잔에 있는 커피나 음료를 마시며 공부하는 학생들 모습이 보기 좋다. 공부방이 없는 학생에 관한 안타까운 뉴스도 있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훨씬 편하게 공부하고 있다. 체육처럼 등교를 해야만 제대로 할 수 있는 수업도 있지만 수학은 오히려 온라인 수업이 장점도 많다.

요즘 학생들이 다시 보기를 할 수 있도록 수업을 녹화해서 올려두고 있다. 아무래도 기록으로 남는다고 생각하니 실수를 줄이기 위해 미리 교재를 살펴보는 시간이 늘었다. 수업 시작 5분 전부터 미리 방에서 기다리는 학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요즘 시대는 해상도가 좋은 웹캠과 스마트폰이 있어서 질문하는 학생과 소통하기도 아주 간단하다. 등교한 다음에도 온라인 학습 공간인 구글 클래스룸을 유지하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학교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학교에 가지고 올 수 없다.

학생들이 매크로를 써서 출석을 조작하자 교육부는 이를 잡아내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출석을 둘러싼 공방은 부질없는 일이다. 과연 출석의 의미는 무엇인가? 수업 내용을 모두 빠짐없이 들어야만 출석이라면 등교해서 이루어지는 수업에서도 출석과 결석을 구별하기 어렵다. 인터넷 강의는 출결을 확인하지 않아도 학생들은 스스로 알아서 수강한다. 빠지면 자기만 손해이기 때문이다. 학교 수업도 '수업을 듣지 않으면 자기만 손해'임이 확실하다면 출결을 조작하는 학생은 크게 줄어들거나 사라질 것이다.

이제는 학교에서 배우는 거의 모든 지식이 유튜브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유튜브 시대에 꼼짝없이 자리에 앉아 정해진 시간을 흘려보내길 강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 출석만으로 얻는 졸업장과 학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꼼꼼하게 따져볼 때가 되었다.

저녁이 있는 삶 
 

피아노가 있는 거실 ⓒ 박영호

우리 학교 학생과 교사는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 온라인 개학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정규 수업이 끝나면 방과 후 학교 수업을 2시간 동안 하고, 저녁을 먹고 24시까지 독서실에서 탐구학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이름만 바뀌었지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방과 후 학교는 보충 수업이고 탐구학습은 야간 자율학습(야자)다.

코로나19 대책으로 일과표를 바꿨다. 50분이던 점심시간을 10분 늘려서 1시간으로 만들었다. 전교조와 도교육청이 맺은 단체 협약에 '점심시간 한 시간 이상 확보'가 있었는데 이제야 지키게 되었다. 우리 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서 점심시간 50분은 밥 먹는 시간만 따지면 충분하지만 쉬는 시간을 고려하면 좀 짧은 시간이다. 

요즘 보충 수업이 없으니 본 수업에 더 힘을 쏟을 수 있고 야자 감독도 없으니 야근도 없다. 자율학습인데 감독이 있는 모순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가 이제까지 누구도 하지 못한 개혁을 단숨에 만들어 냈다. 지난주에 온라인으로 수업이 가능한 학교는 방과 후 학교를 운영해도 된다는 공문을 보았다. 관련 업무 담당자라 아주 잠깐 고민은 했지만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개학이 멀지 않았으니 그때까지는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만간 등교 개학을 하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는 다를 것으로 예상하지만 우리나라 학교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시기만 달라졌을 뿐 수학능력시험을 비롯한 대학 입시 과정이 당분간은 그대로 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고등학교 학생과 교사들도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https://suhak.tistory.com/1033 [수학 이야기]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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