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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을 음지에서 노려 본 전두환

[대한민국 대통령 이야기 (35)] 제11-12대 대통령 전두환 ⑤

등록 2020.05.11 12:04수정 2020.05.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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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의 만남(1980. 왼쪽부터 김종필, 김대중, 김영삼) ⓒ 자료사진

 
개도 물고 가지 않는 돈이건만

2020년 4월 25일, 합천 황강이 환히 보이는 도로변에서 사진 촬영을 마친 뒤 다시 택시에 올랐다. 내가 전두환 생가 답사에 앞서 합천읍내에 '일해공원'이 있다고 들었다.

일몰 직후였지만 사진 촬영은 가능할 것 같아 택시기사에게 그 얘기를 하자 5000원을 더 요구했다. 출발 전에 분명히 일해공원도 들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웃돈을 따지면 서로 불편할 것 같았다. 추가비용에 흔쾌히 동의했다. 돌아가신 할머니께선 늘 내게 말씀하셨다.

"개도 물고 가지 않는 돈이다. 하지만 돈은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택시기사는 요즘 코로나19 여파로 손님이 없어 매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그날도 손님이 없어 오후에 출근한 뒤 해지기 직전에 차에 탄 내가 첫손님이라고 했다. 아무튼 답사자는 운전기사의 비위를 잘 맞춰야 한다. 

합천 택시기사는 내 흔쾌한 답변에 신이 났는지 돌아오면서 별별 이야기를 다 했다. 하지만 그 말을 이 연재기사에 그대로 옮기진 않겠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서울의 봄', 그 시절을 되새김질했다. 
  

비상계엄 선포 ⓒ 국가기록원

 
서울의 봄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박정희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한테 저격당하자 이듬해 1980년 봄은 민주화 열기로 가득했다. 언론은 그해 봄을 '서울의 봄'으로 명명했다. 당시 이 나라 시민들은 오랜 군사독재 정권에서 벗어난 새로운 민간인 정부의 탄생을 열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12.12 쿠데타로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 일당은 'K(King)공작'(전두환 대통령 만들기 공작)을 수립했다. 그런 뒤 그들이 떠오를 수 있는 명분을 찾고자 상당 기간 전면에 나서지 않고 관망자적인 자세를 취했다. 마치 낚시꾼들이 미끼를 던진 뒤 묵묵히 기다리는 꼴이었다. 
  

최규하 내각의 각료들 ⓒ 국가기록원

 
그 무렵 미국의 한 외교관은 겉으로 드러난 '서울의 봄'의 주역인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3김은 유력한 대통령 후보이지만, 그중 어느 누구도 이상적인 선택 같지는 않다. 김영삼은 능력이 부족하고(less than capable), 김대중은 너무나 급진적이고(regarded as too radical), 김종필은 너무 때 묻었다."

떡 줄 사람은 '3김에게 주고 싶지 않다'는, 은연 중 비토의 발언이었다. 그런데도 대부분 시민들은 '오너'(Owner)의 속마음을 읽지도 못한 채 먼저 김칫국을 마셨다. 우리만 일방으로 무르익는 '서울의 봄' 잔치를 마냥 즐기는 모양새였다.

최규하 정부는 겉으로는 1980년 2월 29일, 윤보선과 김대중 등 687명을 복권시켜 '서울의 봄'에 호응하는 듯했다. 허수아비 최 정권은 개헌을 통한 정치 일정을 밝혔다. 하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은 실세들의 원격 조정이었다. 시민들을 우롱하는 사탕발림이요, 신기루였다.

신군부는 수면 아래에서 불쑥 위로 솟아오를 명분을 찾고자 교활한 연막전술을 피웠다. '이원집정제'니 '신당 창당설'이니 계속 연기만 모락모락 피우면서 무서운 음모를 꾸몄다. 그런 가운데 그해 4월에 전두환이 중앙정보부장서리가 된 것은 대단히 불길한 조짐이었다.

하지민 전두환 신군부는 정국을 장악하고자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그들은 4.19 혁명 20주기를 맞아 학생들의 시위가 격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그 시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그 즈음 '서울의 봄'은 불안했다.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이란 말이 적절했다. 야권의 김영삼·김대중 두 지도자는 단합된 힘을 보여주지 못했고, 대권 경쟁에 골몰했다.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 ⓒ 국가기록원

 
5.18 비상계엄 전국 확대
 
1980년 4월 21일 사북사태가 일어났다. 어용노동조합 집행부에 불만이 많았던 동원탄좌 광부들은 21일 오후부터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과 충돌했다. 22일 시위에는 광부 부인 500여 명이 합세했다. 23일 시위군중은 3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시위 기간 내내 지서를 점령하고 한때 사북역과 철도가 점거되는 등, 공권력이 마비되다시피 한 사북사태는 권력이 노동문제를 억압 일변도로만 대처할 때 얼마나 무서운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었다.

4월 24일 서울의 14개 대학교수 361명은 학원사태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고 학원의 민주화를 요구했다. 1960년 4월 25일 대학교수단의 시위 이후 최대 규모였다.

그해 학생운동은 4월 말에서 5월 초에 전방교육 거부 투쟁 등을 통해 활성화 됐다. 5월 10일, 23개 대학 총학생회장들은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했다. 이들은 비폭력 교내 시위 원칙을 다짐했다. 군부쿠데타 발발의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5월 13일에는 서울지역 총학생회장단이 가두투쟁을 결정하고 연세대 등 6개 대학 학생들이 가두시위에 나섰다. 14일에는 전국에서 6만여 명이 시위를 벌였고, 다음 날 시위는 절정에 이르렀다.

5월 15일 서울역 앞에는 학생 10만여 명과 시민 다수가 모여 계엄 해제와 조기 개헌을 요구했다. 서울역 집회에서 각 대학 총학생회장단은 우리의 뜻을 알렸으므로 학교로 돌아간다는 회군 결정을 내렸다.

이날(5월 15일) 서울역 집결은 계엄군이 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때 왜 계엄군은 소극적으로 나왔을까. 5월 16일 전국 총학생회장단은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파악하고 시위 일시 중단을 결의했다. 그러나 이미 군대가 이동하고 있었다.

5월 17일 계엄사령부는 김종필과 이후락 등을 부정축재 혐의로, 김대중과 문익환 등을 소요 조종 혐의로 연행했다. 이날 밤 국무회의는 찬반 토론 없이 18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 선포지역을 전국 일원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그와 함께 정치활동 정치, 언론, 출판, 방송 등의 사전검열, 각 대학 휴교를 골자로 한 계엄포고 10호를 발표했다. '서울의 봄'을 침몰시킨 5.17 군부쿠데타가 계획한 대로 일어난 것이다.

-서중석 지음 <한국현대사> 307~309쪽 정리
  

최규하 대통령의 특별 담화문 발표 ⓒ 국가기록원

 
정치 발전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다

1980년 5월 18일 최규하 대통령은 정치 발전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다는 특별성명을 발표했다.
 
김종필·김대중씨 연행 ... 계엄사 발표 부정축재·소요조종 혐의
최규하 대통령은 18일 "지난해 대통령 취임사를 비롯, 기회 있을 때마다 천명해온 정치발전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으며 이를 계속 착실히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 대통령은 이날 하오 4시, 서기원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특별성명을 발표, 이 같이 말하고, "정부는 국가를 보위하고 3천7백만 국민의 생존권을 수호하며, 안정 속에 성장과 발전을 바라고 있는 대다수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여 단안을 내리게 된 것"이라고, 5.17 전국 비상계엄 선포 이유를 밝혔다.

최 대통령은 "북한 공산집단은 우리 학원 소요사태를 고무 찬양 선동함으로써 남침의 결정적 시기조성을 획책하고 있다"고 지적, "이같은 중요한 시기에 일부 정치인 학생 및 근로자의 무책임한 경거망동은 사회를 혼란 과 무질서 선동과 파괴가 난무하는 무법지대로 만들고 있으며, 수출부진과 경기침체를 심화시키면서 노사분규와 실업이 증가하여 사회불안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어 우리 국가는 중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후략)

-<경향신문> 1980. 5. 18. 호외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두환 회고록> / 강준식 <대한민국의 대통령> / 서중석 <한국현대사> / <경향신문> 호외 등, 수십 권의 참고자료와 그 시대 신문, 동시대에 살았던 여러 사람들의 증언으로 쓴 기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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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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