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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좋은 북쪽 도시, 뭐든지 나쁜 남쪽 도시

[참소리-오마이뉴스 동시 연재] 두 도시 이야기, 띠후아나와 샌디에이고 ②

등록 2020.05.11 07:08수정 2020.05.11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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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수진 멕시코 콜리마주립대 교수의 '중앙아메리카 이주자 리포트'를 전북대안언론 참소리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동시 연재합니다. ☞ 참소리 페이지에서 보기 http://cham-sori.net/opinion/44857[편집자말]
천국과 지옥으로 견주어지는 두 도시를 가르는 장벽이 강화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94년 나프타(NAFTA)가 발효되면서 양국 간 국경에 대한 감시가 거론되었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2001년 9.11 사태였다. 국토를 방위하기 위한 대규모 국경수비대가 파견되었고 그들의 감시가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합법적인 서류와 절차를 갖추지 못한 자들이 통과할 수 있었던 수많은 '구멍'들이 점점 좁아졌다.

오직 운에 기대어 볼 수 있는 확률은 제로에 가깝게 수렴되었고, 이주 브로커인 '코요테'에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수직 상승하였다. 운과 돈을 갖추지 못한 자들이 건너야 하는 사막은 점점 더 사나워졌다. 국경을 감시하는 수비대의 판단으로 이런 곳이라면 감시와 수비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 여겨질 정도의 사나운 곳이래야 돈 없는 이주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신의 가호에 기대어 밀입국을 시도해볼 만했다.

사막 곳곳에서 목숨을 잃는 이주자들의 숫자가 빠르게 증가했고, 사막 어디쯤 초라하게 새워진 십자가는 미국을 향해 가다 목숨을 잃는 '합법적이지 못한 이주자'들의 상징이 되었다.  

9.11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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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후아나 해변가 국경. 철조망에 적힌 이름은 이주 과정에서 죽거나 실종된 사람들이다. ⓒ 림수진

 
들어오려는 자들을 막기 위한 국경의 감시가 촘촘해지는 상황만이 아니었다. 이미 미국에 들어가 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통제와 감시가 엄격해졌다. 어느 날 갑자기 수 년 혹은 수십 년 살아오던 터전과 가족, 그리고 직장으로부터 강제로 격리된 채 미국 밖으로 추방되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입국을 시도하다 거절되는 경우보다 미국 안에서 밖으로 추방되는 건 수가 훨씬 더 많아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두 도시를 가르는 장벽의 작은 문이 열리고, 미국에서 내몰린 추방자들이 띠후아나로 쏟아져 들어온다. 멕시코로 추방되는 이들은 멕시코 국적을 갖는 이들이어야 함이 원칙이지만, 그 중 상당수는 중앙아메리카 북부삼각지대라 불리는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3개국 출신이다.

이들에게는 추방이 되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자신의 국적을 멕시코로 위장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추방이 되더라도 미국 국경 바로 바깥쪽, 멕시코의 국경도시들로 추방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두고 온 삶의 터전과 가족이 있는 미국을 바로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비록 추방이 되더라도 다시 자신들의 본국에서 멕시코를 거쳐 지금 그들이 선 곳, 미국의 남쪽 국경에 이르러야 하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대부분의 중앙아메리카 출신 이주자들이 미국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멕시코를 남에서 북으로 관통하기 때문에 멕시코 지리 정보를 어느 정도 얻게 되고, 상당수는 추방을 대비하여 멕시코 내에서 멕시코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위조 증명서를 구입하기도 한다. 일단 본인이 멕시코 국적자라고 한다면, 추방 심사관 역시 그리 까다롭지 않은 질문 몇 가지로 국적 확인을 마치기 때문에 추방 과정에서 자신의 국적을 속이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혹 멕시코를 남에서 북으로 관통해가며 구입한 위조 신분증이 없더라도, 멕시코에 대한 단순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면 비교적 쉽게 멕시코인으로 간주된다. 특히 미국 이민국의 추방 심사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멕시코 남쪽 어느 작은 시골 마을 정도로 둘러댄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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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0km에 달하는 멕시코와 미국을 가르는 국경은 서쪽 끝에서 태평양과 만난다. 해안으로부터 100여 미터 더 국경이 이어진다. 오직 새들만이 자유롭게 오고 간다. ⓒ 림수진

 
하루에 많게는 3백 명 가량의 추방자들이 띠후아나로 쏟아져 들어온다. 설령 그들 중 멕시코 국적자가 상당수라 할지라도,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고향으로 가지 못한 채 띠후아나 국경 근처를 표류한다.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넘어간 지 오래된 추방자들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오래 전 떠나온 고향보다 저 장벽 너머 그들이 수 년 혹은 수 십년 살아온 삶의 터전과 갑작스레 헤어져 두고 왔을 가족들이 더욱 절실하기 때문이다. 표류하는 이들의 삶이 그 곳에 사는 이들에게 반가울 리 없다. 설령 그 곳에서 사는 대부분 사람들 역시 어떤 형태로든 이주자의 모습으로 이 도시에 도착하여 뿌리를 내린 경우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로부터 내려오는 추방자들에 대해서는 관대함을 유지했지만, 아래로부터 끊임없이 밀려오는 이주자들이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띠후아나 시민들의 '불편한 감정'이 폭발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2018년 11월 중앙아메리카 북부삼각지대에서 시작된 대규모 이주자 카라반이 띠후아나를 향해 올라오면서 시 정부 뿐 아니라 시민들도 이들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표출하였고, 도시 내에서 시민과 이주자들 사이의 물리적 충돌로 이어졌다.

환대가 혐오로 바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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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와 미국을 가르는 국경. “그 어떤 장애물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꿈을 이룰 것이다. 우리는 멕시칸이다.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 림수진

 
역사적으로 멕시코는 미국 내 이주자들 중 월등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인만큼 단 한 번도 자국 내 이주자들에 대해 차별과 혐오를 보인 적이 없다. 게다가, 띠후아나라는 도시의 형성과 발전 자체가 20세기 내내 미국을 향해 오고 가던 이주자들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이주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 도시에서는 그간 새로 들어오는 이주자들에 관대할 수밖에 없었다(관련기사: 이주자 카라반이 온다, 솥을 걸고 음식을 만들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1~2년 사이 이주자들에 대한 혐오 수준이 물리적 충돌까지 번진 이면에는 '장벽'이라 할 만큼 점점 엄격해지고 또한 촘촘해진 미국의 국경이 있다. 멕시코와 미국을 가르는 장벽의 엄격함이 지금과 같지 않고 북쪽으로의 밀입국이 비교적 쉬웠을 때는 남쪽으로부터 올라온 이주자 대부분이 '통과'하는 이주자들이었기에 큰 문제가 유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장벽이 높아지고 그 장벽 곳곳에 존재하던 구멍이 좁아지면서, 결국 남쪽으로부터 올라오던 이주자들이 장벽을 넘지 못한 채 띠후아나에 정체되면서 출구 없이 지속적으로 압력만 가해지는 형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결국 2018년 11월을 기점으로 띠후아나에서 남쪽의 이주자들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이 가감없이 폭발한 것이다(관련기사: 돌변한 구세주의 도시, 그들은 다시 '코요테'에게 돈을 바친다).

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띠후아나는 오직 '순전한 띠후아나 시민들'을 위한 도시임을 강조하였고, 시 정부는 즉각적으로 시 예산의 아주 작은 부분도 이주자들을 위해 쓸 수 없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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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후아나 해변가로 이어지는 국경에 '우정의 장벽(Mural Hermandad)'이 있다. 이 문을 통해 멕시코와 미국 정부가 일년에 한 번(매년 5월 10일 어머니의 날 즈음) 미국에서 합법적인 지위를 얻지 못하여 미국 입국 후 멕시코로 오지 못하는 가족들과 멕시코측 가족들의 상봉을 허락한다. ⓒ 림수진

 
장벽의 '남쪽'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장벽 '북쪽'의 사람들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아무리 장벽이 높아지고 강화된다 한들, 그들은 언제라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장벽의 '남쪽'으로 내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천국에서 즐기지 못하던 '지옥의 짜릿함'을 즐기면서 천국에 사는 자의 특권을 향유한다.

다만, 장벽 '남쪽' 사람들은 갈수록 장벽 너머의 '북쪽'에 이르는 일이 요원할 뿐이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추방자들과 남쪽에서 올라오는 이주자들과, 그리고 한때 이주자였으나 지금은 띠후아나 시민이 된 자들이 서로 얽혀 언제 터질지 모를 압력을 견디고 있다.

공교롭게도 장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두 도시 모두 대략 140만 명 정도의 인구 규모를 가지고 있지만, 각각 도시에서의 삶은 확연히 다르다. 천국이라 불리는, 위쪽 도시는 미국 내에서도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되어, 매년 그 나라의 많은 이들이 은퇴 후 그 곳에서 살기 원하는 도시로서 단연 1위에 랭킹된다.

반면, 그 도시 바로 아래 붙은 도시는 이미 수년째 멕시코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도시로서 단연 1위에 랭킹된다. 2018년 위쪽의 도시에 30여 명이 살해된 반면, 아랫쪽의 도시에서는 2640명이 살해되었다. 물론 공식적인 수치가 그러하니 이래저래 통계에 잡히지 않은 '비공식' 살해까지 합쳐진다면 두 도시 사이의 차이는 더욱 확연해질 것이다.

거기에 더해 살인 사건에 대한 공권력의 조사가 이루어지는 비율의 차이까지 더해진다면, 가히 천국과 지옥의 차이라 할 만하다. 그뿐이겠는가. 위쪽의 도시에서는 한 시간 일하게 될 때 받을 수 있는 최저 임금이 12달러에 달하지만, 아래쪽 도시에서는 60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루 종일 일을 해도, 위쪽 도시에서 한 시간 일한 만큼의 절반도 벌지 못한다. 많은 이들에게는 목숨을 걸어도 될 만한 차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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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영토의 최북단임을 알리는 기념비가 있는 곳에서 한 여성이 국경을 사이에 두고 그 너머 가족 혹은 지인과 대화하고 있다. 국경 철조망 위쪽에 미국측 감시 카메라가 보인다. ⓒ 림수진

 
살인율이나 최저임금이나, 그런 것들이야 장벽을 사이에 두고 나뉘는 서로의 국가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치자. 다만, 서로 붙은 두 도시에서 바람과 공기와 햇살과 또한 냄새마저도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샌디에이고가 온화할 때 띠후아나는 여지없이 덥고, 샌디에이고가 서늘할 때 띠후아나는 여지없이 추운 상황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기온의 차이만이 아니라, 샌디에이고에 단비가 내릴 때 띠후아나에 폭우가 쏟아지고, 샌디에이고에 살랑살랑 훈풍이 불 때 띠후아나에 칼바람이 부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뭐든지 좋은 샌디에이고와, 뭐든지 나쁜 띠후아나는 어쩌자고 둘이 서로 붙어 있는 것일까? 샌디에이고에서 띠후아나에 이르든, 그 반대로 띠후아나에서 샌디에이고에 이르든, 둘 사이를 구분하는 국경을 넘는 순간 느끼게 되는 엄청난 변화는 어찌 설명할 길이 없으니, 이쯤 되면 도대체 이 국경이 어떤 마술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게 된다.

이주자의 필수품, 핸드폰과 와이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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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철조망에 이주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 림수진

 
영화 <기생충>에서 반지하에 사는 오누이가 윗집의 무선 인터넷을 도용하기 위해 집안 구석구석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흡사 최근 몇 년 사이 띠후아나를 향해 몰려드는 이주자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이 지원되는 핸드폰은 띠후아나를 향해 밀려오는 이주자들의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핸드폰에 연결된 SNS가 아니고서는 지금과 같은 대규모 카라반 형태의 이주는 애시당초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국의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매일매일 그들의 SNS에 도착하는 메시지를 좇아 '북쪽'을 향해 이동한다. 메시지에는 이주자 카라반이 지나는 루트에서부터 각각의 구간에서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받을 수 있는 장소가 매우 상세히 공개된다. 그 메시지야말로 오직 그들이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을 위해 기댈 수 있는 등대와 같은 존재다.

최종 목적지 미국을 바로 앞에 두고 띠후아나에 도착한 이후로도, 이들은 매일매일 자신의 SNS에 도착하는 정보를 좇아 움직인다. 국경의 어디쯤이 감시가 느슨한지, 혹은 미국에 망명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그런 결정적 정보들이 이주자들 사이에 SNS 메시지를 통해 공유된다. 그러니 띠후아나에 정체된 이주자들에게는 어디든 무료로 무선인터넷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는 곳이 매우 중요하다. 띠후아나에서라면, 어디서든 무료 와이파이 신호를 찾아 떠도는 이주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아무리 이들이 무료 와이파이를 찾아 최신의 정보를 수신받는다 해도 그들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수개월의 풍찬노숙과 약탈, 강간, 살인의 위협을 마다 않고 이곳까지 올라왔지만, 아마도 이들 대부분은 이곳, 띠후아나에 그대로 머물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잠시 이곳 띠후아나의 짜릿한 스릴을 즐기기 위해 '북쪽' 샌디에이고에서 내려온 이들의 동정심에 기대어 두둑한 팁이라도 기대하며 구두를 닦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매춘이 허락된 다운타운 '관용의 구역'에서 웃음과 춤과 몸을 팔 것이다. '성인 디에고(샌디에이고)'의 도시 바로 아래 '후아나 아줌마(띠아 후아나Tia Juana)'의 농장이 있던 자리에 생긴 도시라 하여 띠후아나(Tijuana)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데, 그런 역사적 유래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포주의 대명사로 불리는 '후아나 아줌마'의 도시로 전락해버린 곳.

슬픈 사실은,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정체된 이곳 띠후아나에서 출신 국가와 도착한 시점에 따라 다시 등급이 나뉘어지고, 그들끼리 서로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높은 곳을 차지하기 위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그토록 바라 마지 않았던 바로 위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말이다.
 
저자 소개
림수진(Lim, Su Jin),
멕시코 콜리마주립대학교 정치사회과학대학
(Facultad de Ciencias Políticas y Sociales, Universidad de Colima)
 
일곱 살 먹던 해 겨울, 할머니를 따라 서울에 갔습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서울역 광장에 단아하게 선,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서울역사 앞에서 짜릿한 흥분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각인이었습니다. 이후 늘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였습니다. 결국, 이다음에 크면 반드시 관광버스 운전수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진 못하였습니다. 대신, 지리학을 공부했습니다. 공부를 핑계 삼아 원없이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만 서른 살이 되던 2001년, 코스타리카로 갔습니다. 19세기 말 파나마 운하 건설에 동원된 중국인 노동자의 증손자 쯤으로 신분을 둘러대고 커피밭에 '위장취업'을 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커피를 따면서 3년을 보냈습니다. 하루 1달러도 벌지 못하는 저 '불량노동자'를 걱정하며 자신들이 딴 커피와 음식과 마음을 나눠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대부분이 니카라과에서 건너온 불법 이주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들의 삶을 좇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2006년 이후 현재, 멕시코 콜리마주립대학교 정치사회과학대학에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이주', '국제분쟁', '지정학'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2010년 이후 멕시코 연방정부 고등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국가연구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커피밭 사람들: 라틴아메리카 커피 노동자, 그들 삶의 기록>, <21세기 중앙아메리카의 단면들:내전과 독재의 상흔>, <세계의 분쟁(공저)>, <디코딩라틴아메리카: 20개의 코드(공저)>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오마이뉴스 제휴사인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띠후아나 #샌디에이고 #중앙아메리카 #림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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