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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으로 가는 '생명책', 코로나로 사라졌다

[참소리-오마이뉴스 동시 연재] 림수진 교수의 중앙아메리카 이주자 리포트

등록 2020.05.11 21:21수정 2020.05.1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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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수진 멕시코 콜리마주립대 교수의 '중앙아메리카 이주자 리포트'를 전북대안언론 참소리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동시 연재합니다. ☞ 참소리 페이지에서 보기 http://cham-sori.net/opinion/44931[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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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6월22일 멕시코 국경수비대원이 티후아나와 미국 샌디에이고 접경의 보조 장벽을 따라 순찰하는 모습.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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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0일 멕시코 띠후아나의 여행자들이 미국 국경을 건너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미국-멕시코 국경 폐쇄를 발표했다. ⓒ EPA=연합뉴스

 
1년이면 40만 명 혹은 5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멕시코 남쪽 국경을 통과한다.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미국이다.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국경을 넘는 자들이다. 다만, 그들 모두가 미국에 닿을 수 없는 현실임은 너무도 자명하다. 어떻게든 우리나라 스무 배에 달하는 멕시코 국토를 남에서 북으로 통과해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치안이 불안정하기로 악명이 나 있는 멕시코를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통과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낙오한다. 낙오의 사유는 다양하다. 길 중간에 몸이 아파 못가는 경우도 있고, 돈이 떨어져 못 가는 경우도 있다. 더러는 지역 갱들 혹은 마피아 조직원들에게 납치가 되기도 하고 강간을 당하거나 살해되기도 한다.

반대로 더러는 운이 좋아 멕시코 어디쯤에서 '귀인'을 만나 그 곳에 정착하기도 한다. 그렇게 매년 40만 혹은 5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멕시코 남쪽 국경을 넘고, 그들 중 20만 명 정도는 멕시코를 남에서 북으로 관통하여 멕시코 북쪽 국경에 닿는다. 미국을 바로 너머에 둔 곳이다. 그리고 각자의 사정과 상황에 따라 미국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모색하고 시도한다.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코요테' 혹은 '닭장수'로 불리는 월경 전문 이주 브로커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미국 땅에 이를 것이고, 돈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사막이든 강이든 그들의 목숨을 걸고 그 곳을 건널 것이다. 그간의 추세라면 매년 대략 4만 명 정도가 어떻게든 미국 땅을 밟게 되었다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돈을 내는 자나 돈을 내지 못하는 자나 성공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게 수렴하고 있다.

국경은 촘촘해졌고, 설령 그 국경을 넘어선다 해도 최근 강화된 그 안쪽에서의 감시를 통과할 길이 없다. 하물며, 이미 그 곳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터를 닦고 수십 년 그 안에서 살아가던 자들도 어느 날 아무런 작별의 의례도 행하지 못한 채 미국 공권력의 행정 명령에 의해 국경 밖으로 내몰리는 와중이라니, 들어가기는 결코 쉽지 않다. 한때 누구라도 맘만 먹으면 그럭저럭 가능했던 일들이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메리칸드림의 열망이 저무는가 싶었다.

생명책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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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7월 26일 멕시코 출신의 한 여성이 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는 난민 신청 절차를 밟기 위해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 AP=연합뉴스

 
이러한 상황에서 뜻하지 않게 굿뉴스가 들려왔다. 어떻게든 멕시코 남쪽 국경을 통과하고, 다시 어떻게든 멕시코 북쪽 국경에 닿는다면, 그곳에 '생명책'이라 불릴 만 한 커다란 공책 한 권이 있다는 소식이었다. 

코요테나 닭장수에게 지불할 수 있는 돈이 없어도, 사막이나 강을 건너며 목숨을 걸지 않아도 어떻게든 그 공책에 이름을 올릴 수만 있다면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하는 소문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돈을 내지 않아도, 목숨을 걸고 사막이나 강을 건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분명히 굿뉴스였다. 누구든 그 곳에 닿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굿뉴스의 힘이었을까? 미국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한때 주춤하던 이주자들의 숫자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간 청장년층을 중심으로 주로 남자들만의 일로 여겨졌던 이주에 여성과 아동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개별적으로 행해지던 이주가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혼자 가면서 만날 수 있는 위험을 최대한 줄여보기 위한 방편이었다.

또한 은밀히 행해지던 이주가 공개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주를 SNS를 통해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자신들의 이주에 주목하는 한, 그간 이주 과정에서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납치, 강간, 약탈, 살해 등과 같은 위험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2018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수천 명 이상이 한꺼번에 모여 이주를 시도하는 '이주자 카라반'이 만들어졌다. 다시, '아메리칸 드림' 붐이 일기 시작했다.

'생명책'이라 불리는 공책은 미국으로 들어가기 위한 난민 신청을 하는자들에 대해 미국 이민 당국이 하루하루 응대할 수 있는 숫자를 제한하면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대기자 명단'이다. 등장은 2017년 즈음이다. 당시는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들어가는 이주자들 중에 기존 중앙아메리카 북부삼각지대라 불리는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사람들과 별도로 아이티인들이 급증하던 시기였다.

이들 대부분이 2010년 아이티 대지진과 콜레라 상황을 겪으면서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을 앞두고 건설노동자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던 브라질로 흡수된 사람들이었다. 다만, 올림픽 이후 브라질을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각 국의 경제가 침체되면서 결국 어쩔 수 없이 여느 라틴아메리카 이주자들처럼 이들 역시 유일한 대안으로 미국을 선택하게 된다.

당시 미국행 비자를 얻을 수 없었던 1만 명 정도의 아이티인들이 입국시 비자가 필요 없는 에콰도르로 들어갔고, 그곳으로부터 계속하여 라틴아메리카 각 국에 인도주의적 차원의 통과허가를 요구하며 멕시코 북쪽 국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국 측에서 난민 심사를 진행할 수 있는 쿼터를 정하면서 결국 멕시코 북쪽 국경에 이들이 정체되기 시작했고, 그 곳에서 누군가 공책 한 권을 가져와 대기 순서를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명책'이 탄생되었다.

누구든 이름을 올릴 수만 있다면 '합법적'으로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이어 미국 내에서 난민 심사가 진행된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자 아이티인들에 이어 곧 수만 명의 중앙아메리카 이주자들이 그곳에 닿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수천 킬로미터의 힘든 여정을 마다하지 않고 생명책이 있는 곳을 향해 몰려오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한 시라도 빨리 가서 그 곳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는 일념이 수천 명의 이주자들이 풍찬노숙을 마다치 않으며 북쪽을 향해 올라가는 이유이자 원동력이었다. 국경이 아무리 촘촘해진다 한들, 국경이 아무리 높아진다 한들 그들에게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생명책'이 있는 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생명책' 자체가 곧, 희망의 관문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생명책'이라 불리는 대기자 명단이 미국이나 멕시코 이민 당국의 개입 없이 그곳에 모인 이주자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관리된다는 점이다. 국경을 넘고, 난민 신청을 하고, 다시 또 난민 심사를 받게 되는 일련의 일들이 서로 국경을 맞댄 두 나라 이민국의 공조 하에 진행되는 지극히 공적인 영역의 일이지만, 그 절차에 들어가는 순서를 정하는 것만큼은 전적으로 이주자들 스스로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 아이티인들이 관리하던 대기자 명단 공책은 곧 뒤를 이어 온 중앙아메리카 출신 이주자들에게 넘겨졌고 현재는 멕시코,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에서 각각 대표 두 명씩을 뽑아 총 8명이 이를 관리하고 있다. 초기 몇천 명 수준이던 대기자 명단이 한때 4만 명 가까이 불어나면서 '생명책'의 두께 또한 더욱 두꺼워졌다. 공책에 이름을 적어 둔 후 짧게는 서너 달, 길게는 1~2년이 훌쩍 넘어가는 기다림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그 공책에 이름이 올라가기만 한다면, 언젠가 미국으로 들어가 난민 심사를 받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는 한, 기다림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하루 20명만, 천국에 가는 심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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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1일 멕시코 타파출라에 도착한 이주자 카라반 참가자 남성이 자신의 아들을 안고 어디론가로 가고 있다. 그는 트럭 운전사가 무료로 태워줬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AP

 
상황이 이러하니, '생명책'에 이름을 올리는 것 또한 하나의 종교적 의례처럼 진행된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남쪽으로부터 올라온 이주자들 상당수가 멕시코 남쪽 국경으로부터 비교적 가까운 대서양 연안 루트 대신 가장 먼 태평양 연안 루트를 기꺼이 선택하고 띠후아나에 이르는 것도 '생명책'의 본산이 바로 이곳, 띠후아나이기 때문이다.

최소 5000km 이상의 거리를 육로로 이동해야 도착할 수 있는 띠후아나에서 사람들이 그간 누적된 피로와 상관없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멕시코와 미국 양국 이민국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차파랄(Chaparal) 광장으로 가서 '생명책'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다. 마치 성지 순례자들이 신앙의 본연을 찾아가는 것과 다름 아니다. 차파랄 광장 북쪽 끝에는 멕시코 이민국이 있고 그곳 바로 너머 미국측 이민국이 있다. 일단 이름을 올리지만, 불과 10여 미터 거리에 불과한 저 건너편 미국 이민국에 난민 심사 신청을 위해 닿기까지는 다시 또 수개월 혹은 수년이 결릴지도 모를 일이다.

하루에 몇 명이 미국 이민국을 통해 난민심사를 받으러 들어가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당일 업무 시작과 함께 미국 이민국에서 멕시코 이민국으로 당일 해당 쿼터에 대한 정보를 통보하면 멕시코 이민국 담당자가 대기자 명단 공책 담당자에게 다시 정보를 통보한다. 지난 해 상반기까지 대략 하루 평균  80여 명의 대기자들이 순서에 따라 난민심사를 받기 위해 미국 이민국으로 들어갔지만, 하반기 이후 그 숫자는 급격히 감소해왔다. 최근에는 겨우 20여 명 정도가 하루에 난민 심사 대상이 되었다.

언제 자기 이름이 불려질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대기자 명단 공책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매일 아침 고유번호와 함께 호명되는 자기 이름을 혹시나 놓칠까 싶어 그 곳을 떠날 수가 없다. 처음 도착하게 되면 띠후아나에서 이주자들의 숙식을 위해 제공되는 알베르게에 머물기도 하지만, 그 곳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은 최장 보름 정도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시내 곳곳에서 숙소를 구하게 된다. 물론 이들이 구할 수 있는 숙소의 수준이라면 풍찬노숙을 겨우 면할 정도일 뿐이다. 그마저 주거비를 줄이기 위해 한 방에 여러 명이 집단으로 기숙하거나, 노숙인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흔하다.

2019년 6월까지는 일단 미국 이민국에 난민 신청을 하기 위해 들어가기만 하면, 난민 심사가 마무리 될 때까지 미국 내 보호소에 머물렀다. 경우에 따라 수 개월 혹은 수 년이 걸리기 때문에, 난민 신청이 접수된 것만으로도 일단 미국에 합법적으로 머물 수 있는 허가를 받음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취임 이후 줄곧 중앙아메리카 이주자 혹은 난민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던 트럼프 정부가 2019년 6월 이후 더 이상 자국 내 난민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발표와 함께 '안전한 제 3국' 정책을 적용하면서 미국에 들어가 난민 심사 신청을 하더라도 난민 심사가 진행되는 기간에는 '안전한 제 3국'에 머물러야 하는 법안이 발효되었다. '안전한 제 3국'은 멕시코로 지정되었다.

물론 멕시코에서 절대로 달가울 리 없는 방안이었지만, 관세를 무기로 압박하는 미국에 맞설 수 없었다. 현재 멕시코의 치안 상황, 특히 띠후아나의 치안 상황을 생각한다면 멕시코가 결코 '안전한 제 3국'이 될 수 없는 현실이 자명하지만, 관세 부과 압박 앞에 미국과 맞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세계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 멕시코라도, 난민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자국 내 그들을 보호하지 않겠다는 미국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안전한 제 3국'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미국 내 가장 많은 불법 이주자를 보낸 나라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였다.

사실, 난민 심사를 받는다 해도,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는 확률은 10%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북쪽 국경을 향해 올라오는 이주자들에게는 그간의 불법 이주가 아니라 난민 신청이라는 합리적 틀 안에서 뭔가를 시도해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희망이었을 것이다. 누구든 수천 킬로미터의 힘든 여정을 거쳐 이곳 멕시코 북쪽 미국과 맞닿은 국경에 있다고 하는 대기자 명단을 적어나가는 공책에 이름만 올릴 수 있다면,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아메리칸 드림'을 다시 꿈꿔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꿈을 좇아 지난 2~3년 사이  매년 수만명의 이주자들이 '생명책'이 있는 도시 띠후아나를 향해 몰려들었다. 그들 중 하루 20명만 난민 심사 신청자 쿼터에 들어 미국 이민국으로 들어가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다지만, 그들의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생명책'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희망이었다. 안전한 제3국 멕시코에서 몇 년을 기다리더라도, 그들에게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란 믿음이 곧 희망이었다.

코로나가 덮친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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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4일 한 여성이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와 멕시코 티후아나 사이의 국경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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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1일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 띠후아나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는 여행자가 거의 없어서 산 이시드로(San Ysidro) 입국 국경 건널목이 비어 있다. ⓒ EPA=연합뉴스

 
그러나 2020년 3월 이후, 모든 것이 중단되었다. 미국 내 코로나19에 의한 감염자가 급증하면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먼저 닫은 곳은 그들의 남서쪽 국경(멕시코와 닿은 국경)이었다. 합법적 서류를 갖춘 멕시코인들의 이동마저 제한되는 와중에 난민들에 대한 행정 서비스가 제공될 리 만무하다.

물론, 난민들이라면, 국제법 상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보호를 받아야 함이 당연하지만, 그간 중앙아메리카 이주자들에 대해 보여준 지금의 미국 행정부의 입장이라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3월 18일 이후, 더 이상 미국측 이민국으로부터 당일 진행될 난민 심사 신청에 대한 쿼터가 넘어오지 않았고, 생명책도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희망이 정지되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이 영구히 중앙 아메리카 이주자들에 대한 난민 심사를 진행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스러운 전망까지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안전한 제 3국' 멕시코 안에서도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그간 수용이 허용된 인원의 4~5배를 너끈히 수용하던 이주자들을 위한 알베르게들이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수용 인원을 조절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수많은 이주자들에게 퇴거 명령을 내렸다. 이들을 위해 제공되던 무료급식마저도 중단되었다.

'생명책'에 이름을 올린 후 차례를 기다리며 공식 혹은 비공식 경제활동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던 수많은 이주자들이 멕시코 정부 명령에 의한 작업장 폐쇄로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막히고 닫혀버렸다. 그렇다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과테말라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목적으로 멕시코와 닿은 국경을 완전히 봉쇄했다.

'생명책'에 이름을 올리고 하루하루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길 간절히 희망하며 살아가던 수만 명의 이주자들이 잘 곳과, 먹을 것과, 일할 곳과 돌아갈 곳을 잃었다. 

더욱 암담한 것은 이제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뉴욕과 플로리다에 이어 가장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내고 있는 캘리포니아와 바로 맞닿은 띠후아나에서 수만 명의 이주자들이 그들의 존재와 목소리를 드러내지도 못한 채,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세계에서 치안이 가장 열악한, 세계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도시에서 말이다. 미국이 일관되게 주장하고 강제로 규정한 '안전한 제3국'에서 말이다. 혹 코로나19에 감염이 되거나 그로 인해 사망하더라도, 그 어떤 공식적인 통계에도 잡히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상황이라면, 미국이나 멕시코나 그 어떤 나라도 이들의 안녕까지 챙길 여력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다시, 한 순간에 잘 곳과 먹을 것과 일할 곳과 돌아갈 곳을 잃은 자들에게 오직 남겨진 것은 단 하나, 그들의 목숨뿐이다. 다시 '생명책'이 열리지 않는 이상, 이곳으로도, 저곳으로도 가지 못한 채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를 유령처럼 배회하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하나, 사막이나 강을 건너 그들이 그토록 닿기를 염원했던 미국행을 시도하는 것뿐일 것이다. 그들이 가진 유일한 것, 그들 목숨을 걸고 말이다.
 
저자 소개
림수진(Lim, Su Jin),
멕시코 콜리마주립대학교 정치사회과학대학
(Facultad de Ciencias Políticas y Sociales, Universidad de Colima)
 
일곱 살 먹던 해 겨울, 할머니를 따라 서울에 갔습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서울역 광장에 단아하게 선,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서울역사 앞에서 짜릿한 흥분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각인이었습니다. 이후 늘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였습니다. 결국, 이다음에 크면 반드시 관광버스 운전수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진 못하였습니다. 대신, 지리학을 공부했습니다. 공부를 핑계 삼아 원없이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만 서른 살이 되던 2001년, 코스타리카로 갔습니다. 19세기 말 파나마 운하 건설에 동원된 중국인 노동자의 증손자 쯤으로 신분을 둘러대고 커피밭에 '위장취업'을 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커피를 따면서 3년을 보냈습니다. 하루 1달러도 벌지 못하는 저 '불량노동자'를 걱정하며 자신들이 딴 커피와 음식과 마음을 나눠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대부분이 니카라과에서 건너온 불법 이주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들의 삶을 좇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2006년 이후 현재, 멕시코 콜리마주립대학교 정치사회과학대학에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이주', '국제분쟁', '지정학'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2010년 이후 멕시코 연방정부 고등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국가연구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커피밭 사람들: 라틴아메리카 커피 노동자, 그들 삶의 기록>, <21세기 중앙아메리카의 단면들:내전과 독재의 상흔>, <세계의 분쟁(공저)>, <디코딩라틴아메리카: 20개의 코드(공저)>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오마이뉴스 제휴사인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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