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유정회 국회의원이 되었으나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 / 16회] 김재규는 유정회 국회의원의 신분이 부끄러웠다

등록 2020.05.09 13:31수정 2020.05.09 13:31
0
원고료로 응원
 
a

박정희(중앙)와 김재규(오른쪽), 그리고 차지철(왼족) ⓒ 박도

김재규는 대장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3군단장을 끝으로 예편된 데 아쉬움을 가졌지만, 큰 무리 없이 25년의 군생활에 마음을 다스리면서, 이제 시골에 내려가 조용히 지낼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뜬금없이 유신정우회(유정희) 국회의원에 추천되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감투가 떨어졌다. 예비역 장성 8명 중 하나였다. 유신체제는 정치구도상으로는 통일주체국민회의와 유정회라는 두 '괴물집단'에 의해 유지되었다. 흔히 '통대'라고 불리는 전자는 체육관에서 대통령과 정족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국회의원을 한 번 투표 방식으로 선출하는 어용기구이고, 유정회는 대통령이 지명하여 통대에서 '비준'된 관선 국회의원 집단이다. 역시 어용기관이다.
  
유신정우회는 1973년 3월 7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9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구성한 준정당의 원내교섭단체를 말한다. 유정희의 성격은 정치적 조직이면서 정당도 아니고 사회단체도 아닌 특수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활동목표를 유신헌법 체제의 수호 및 발전, 국회의 직능대표적 기능에 둔다고 하였으나, 실제적으로는 대통령이 국회를 장악하기 위한 원내 전위부대로서 거수기의 역할을 맡았다. 일제 말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대정익찬회와 비슷했다.

제9대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를 치른 지 1주일 후인 1973년 3월 3일 박정희는 유정회 국회의원 후보 73명과 예비후보 14명의 명단을 확정, 이를 통대회의에 일괄추천했다. 후보자의 소속 분야별로 분석해 보면 징계인사 20명, 학계 7명, 교육계 3명, 예비역 장성 8명, 여성계 8명에 사회각계 4명으로 되어 있었다.

이렇게 박정희 정권은 유정회 국회의원을 빌미로 권력지향적인 대학교수, 학자, 문필가, 언론인들을 체제내로 편입시켰고 이들은 박정희 정권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국회는 물론 국회 밖에서도 유신체제를 옹호하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주석 2)

 

1973년 6월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에서 열린 유정회 현판식에 박정희(왼쪽)가 참여한 모습. ⓒ 보도연감

 
당시에나 지금이나 국회의원에 명을 건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김재규의 생각은 달랐다. 전혀 내키지 않는 감투였다. 더욱이 임명직 국회의원은 의식 있는 국민들의 조롱거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재규 장군은 처음에는 "군인은 군인으로 끝나야지" 하면서, 끝까지 '김재규장군'으로 남기를 원하여 의원직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김재규 장군은 자신이 유신을 반대했으므로 유정회 의원직이 유신에서 생겨난 기괴한 의원직임을 누구보다 더 잘 알아서 의원직을 수락 못하고 고민하였다. 김재규 장군은 고민 끝에 그래도 나라를 위하여 뭔가를 하려면, 시골에 묻혀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마지못해 의원직을 수락했다. (주석 3)

유정회는 '출생의 신분'에 걸맞게 행동하였다. 의회 본연의 임무인 '민의대변'과 '행정부 견제'의 역할이 아닌 유신체제를 비호하는, 박정희 충견노릇에 영일이 없었다. 김재규는 그럴수록 유정회 국회의원의 신분이 부끄러웠다.
 

건설부장관 시절(1974~1976년)의 김재규. ⓒ 국가기록원

 
과묵한 그가 이런 의사표시를 사람들에게 한 적이 없어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다. 더욱이 그의 짧은 의원생활(그는 그해 12월에 중앙정보부 차장이 된다) 동안 그의 의정활동이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도 않았고, 그의 '뜻'을 펼쳐보인 적도 없어 더욱 알 길이 없다. 국회에서 그를 만났던 전 공화당의 중진 한사람도 그가 3군단장 시절 이후 계속 '혁명'을 꿈꾸어왔다는 그의 주장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

어쨌건 김재규에게 유정회 의원자리는 그리 좋은 자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특히 지역구출신만을 진짜 국회의원으로 생각하는 세평 때문에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주석 4)



주석
2> 김삼웅, 『박정희 평전』, 275~276쪽, 앤길, 2017.
3> 오성현, 앞의 책, 95쪽.
4> 김대곤, 앞의 책, 126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재규 #김재규장군평전 #유정회 #중장예편 #중앙정보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 멋있는 수필 <멋>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