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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에 계시는 103세 할머니, 특히 생각납니다

[코로나로 바뀐 것] 요양원 가신 지 넉 달... 만날 수 없는 할머니

등록 2020.05.08 16:45수정 2020.05.0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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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내 아버지의 엄마)는 올해 103세이다. 10년 전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바로 알리지 못하고 한 달 후 말씀 드리니 말 그대로 대성통곡하셨다.


고부 사이인 할머니와 울 엄마의 인연은 벌써 60년이 넘었다. 부안의 섬을 고향으로 둔 두 분의 이야기는 동네 어귀를 넘나들 정도였다. 때론 바다를 건너는 멸치잡이 배와 사람들 그리고 귀동냥하는 갈매기에 이르기까지 한도 끝도 없이 재미났다.

섬에 계실 때는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맞나 할 정도로 총기와 근력이 좋으셨다. 평생을 살아온 섬 문화의 자연과 식생활이 그 비결이라고 말했다. 100세를 두고 의료시설의 도움을 받고자 도심으로 옮기신 후 오히려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어느 날 어디서 들으셨는지 "야야, 군산에서는 100살이 넘으면 노인들 장수했다고 축하금을 준단다. 그 돈 나오면 우리 증손녀(나의 딸) 용돈 줘야는디" 한다. 막상 100세 생일에 공기관의 축하금은 없었다.

장수하는 사람이 늘어나 예산이 부족해졌다고 말했단다. "오메 오메 그놈들이 거짓말로 했고만." "그러게요. 할머니. 그래도 건강하신 게 더 큰 축하금이에요"라며 가족들은 할머니의 역사적 100세 인장을 축하했다.

새해 1월, 조금씩 움직임이 더디고 때로 기억력에 부침이 생겨, 가족들은 할머니의 요양원행을 논의했다. 100세 이후 지금까지 엄마에게 핸드폰 통화를 할 정도의 총기가 있었는데 정신이 흐려진다고, 무엇보다 말할 사람이 없다고 하며 가족들의 의견에 동의하셨다.


끝까지 당신 집에서 살다가 떠나고 싶다는 할머니의 평소 바람이 멈춰지는 순간, 나와 딸은 그 무엇이라도 할 것을 찾았다. 다행히 딸이 대학 진학 후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말동무를 하겠다고 했다. 중고 학창 시절, 겨울마다 독거노인에게 연탄도 배달하고, 말동무도 해드렸는데 왕할머니를 못하겠냐고, 나름 어떻게 말동무 될까 고민하며 계획했다.

오랜만에 딸을 본 할머니는 "쟈가 누구냐?" "할머니, 제 딸 지원이에요. 많이 컸죠. 이제 대학생 돼요." "그 사이 또 키가 큰 것이냐"라며 반기셨다. 딸과 할머니의 동행이 시작된 것이다. 딸은 첫 날부터 할머니의 움직이는 동선을 꼼꼼히 보면서 불편한 것을 없애고 필요한 것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날은 딸기 향기로, 또 어느 날은 뜨끈한 군고구마 먹으며 미소로 방안에 온기를 넣었다. 할머니의 다 말라버린 정강이와 발을 본 날, "엄마, 내일은 할머니 발가락 발톱도 깎고 패티큐어도 해드리자"라고 했다. "아이고, 나는 평생을 살면서 화장품 한번 발라본 적이 없는디. 그런 거 미끌미끌하고 냄새나서 어떻게 바른다냐"라고 하셨다. 그래도 증손녀 딸이 발라주는 로션, 크림, 패티큐어 모두 신기하고 즐겁다고 하셨다.

한 달이 지날 무렵, "나도 이제 곧 들어간다는디. 뉴스 보면 뭐 전염병이 돈다고 그러더라. 조심혀라." 코로나19를 말씀하신 할머니는 예정 날짜보다 늦은 2월 4일 요양원에 가셨다.

"할머니 저희들도 자주 갈게요. 코로나도 금방 사라질 거예요. 그때까지 지원이가 준 곰돌이 램프는 항상 켜 놓고 계세요. 불이 꺼지면 알려 준 대로 충전도 해 보세요. 하긴 그 전에 저희들이 갈 거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요단강보다, 레테강보다 더 무서운 코로나19. 지금까지 할머니의 면회는 허락되지 않는다.
 

딸은 왕할머니에게 별도의 감사카드와 함께 고구마를 먹었던 1월의 풍경을 그림으로 보내왔다. ⓒ 박향숙

 
오늘 어버이날, 친정엄마는 할머니의 면회를 묻는 전화를 하셨다. 아직도 안 된다고 하니 잘 계시는지 담당자에게 사진이라고 찍어서 보내달라고 요청하라고 했다. 서울에 있는 딸은 세 사람에게 감사카드를 보냈다. 하나는 왕할머니, 다른 하나는 외할머니, 나머지는 딸의 엄마인 바로 나. 4대에 걸친 여자들의 애틋한 마음이 하나로 모여지는 아침을 맞았다.

딸의 카톡 카드에는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어버이날 노래 가사가 있었다. 꼭 전해달라며 왕할머니에게 별도의 감사카드와 함께 고구마를 먹었던 1월의 풍경을 그림으로 보내왔다.

"할머니, 저 지원이에요. 코로나 때문에 할머니 뵙지 못한 지 벌써 3개월이 지났어요. 제가 드린 곰돌이 램프는 벌써 방전되었지요? 불빛이 있으면 제 생각날텐데, 제 얼굴 기억하세요? 오늘 어버이날, 맛있는 거 같이 먹지 못하지만, 곧 뵐 수 있을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딸의 카드를 받고 나도 '어버이날 노래'를 들었다. 평소 잘 부르지 않았던 가사 3절이 새롭다.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아침뉴스에서 어버이날을 맞는 영상을 보았다. 우리 집처럼 코로나19로 면회가 금지되어 유리창에 두 손을 마주한 채 서로를 그리워하는 초로의 아들과 그 어머니. 슬픔이 가슴 깊숙이 밀려왔다.

생활 속 거리두기 지침이 실행된 지 이제 3일째. 그래도 '어버이날 면회 안 가도 불효 아닙니다.' '화상면담, 안심면담' '투명칸막이 면회' 등의 수많은 글귀들이 어버이날을 더욱 먹먹하게 만든다. 올해는 또 한번 '어버이날'을 기념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요양원 입주를 앞두고 할머니는 말씀 하셨다. "갈 곳이면 어서 가야지, 건너 가야지." 이제는 당신의 주거를 당신 자유 의지로 선택할 수 없음을 알았던 할머니. 당신이 선택하는 마지막 사랑은 자식들의 맘을 편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던 할머니. 어서 빨리 면회가 되어 할머니가 좋아하는 딱 한 가지 검정술(콜라) 가지고 뵙고 싶다.

증손녀딸이 발라주었던 핑크빛 페티큐어. 초록이 무성해지는 이 봄, 더 예쁜 색으로 발라드려야겠다. "이쁘다, 난생 처음이다. 뽈고니 예쁘다"라고 또 말씀하실 거다. 나도 역시 또 말할 거다.

"할머니 발가락이 내 거랑 똑같아. 내 발이 아빠 거랑 닮았었는데. 할머니가 울 아빠 엄마니까 당연하지. 근데 지원이 발가락도 나랑 같아."

103세 할머니, 80세 아빠(살아계신다면), 56세 나, 그리고 20세 딸. 4대에 걸친 우리집 사람들 발가락은 모두 닮았다.
#어버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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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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