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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서 책임지도록 하라" 조선이 역병을 극복한 방법

[전시] 국립중앙박물관 테마전 '조선, 역병에 맞서다'

등록 2020.05.12 13:47수정 2020.05.1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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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는 재위 50년에 현직 관리들을 대상으로 치러진 등준시 무과에 급제한 18명을 축하하고자 초상화를 그려 한 권의 책으로 묶게 했다고 한다. <등준시무과도상첩>이 그 화첩. 그런데 김상옥, 전광훈, 유진하 이 세관리의 초상화에 두창, 즉 천연두를 앓은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18명 중 3명에게서 앓은 흔적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당시 공포의 대상이었던 두창(마마, 손님, 호역)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두창 뿐이었을까.
 

두창을 앓은 흔적의 조선 관리 초상화. ⓒ 김현자

  
역병이 창궐했을 때 허준이 매실을 처방했다거나, 정조의 장자 문효세자가 홍역을 앓다 죽었다, 홍역 치료서인 <마과회통>을 저술한 정약용도 어렸을 때 홍역을 앓았으며 홍역으로 자식들을 잃었다 등, 조선 시대 관련 읽다 보면 여러 전염병이 사람들의 삶을 위협했음을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코로나 19로 인류의 삶이 뒤흔들리고 있다. 애초 기온이 올라가면 수그러들 것이란 전망과 달리 여름이 그리 멀지 않은 5월 중순 현재 우린 여전히 코로나 19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또한, 가을에 다시 유행할지도 모른다는 어두운 전망까지 나온다. 코로나 19는 언제나 종식될까. 전염병으로 삶이 위협받는 불안한 이때,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 조선 시대 우리 조상들의 전염병에 대한 인식이나 대처 등에 알아보는 것도 코로나 19를 극복하는 데 도움되겠다. 

11일,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테마전 <조선, 역병에 맞서다>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1612년,
온 나라를 헤집은 온역과 당독역.
지금까지도 활용되는 이름난 의서가 편찬되어 백성들을 구했습니다.
의술(醫術)은 인술(仁術)이 되고 인정(仁政)이 되었습니다.

1783년, 1786년.
또 다른 돌림병과 홍역이 쓸고 간 자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남았습니다.
나라가 책임지고 이웃이 돕는 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왕이 베푼 인정(仁政)은 또 다른 인정(人情)을 낳았습니다.

조선 시대 내내 사람들을 가장 위협했던 전염병, 두창.
금기를 지키며 마마신을 보내는 이에 순응하지 않고 결국은 종두법으로 극복해냈습니다.

2020년 코로나 19.
그 다음, 우리의 삶은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취지 중에서.

박물관 측에 의하면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19처럼 조선 시대 대부분의 전염병이 중국을 통해 들어왔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광해군과 정조 때를 중점으로 했다고 한다. 당시 전염병이 특히 많이 창궐해서가 아니라 전염병 대처에 특히 많은 관심과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전시는 전체적으로 3부로 구성했다. 1부 '조선을 습격한 역병'에서는 조선 시대 유행했던 대표적인 전염병을 소개하는 한편 역병에 희생된 사람들과 역병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두창으로 죽은 아이들의 묘지명(도자기나 돌 등에 죽은 사람의 신상을 기록해 함께 묻은), 조선 중기의 예학자 정경세가 두창에 감염돼 죽은 아들을 기리며 쓴 제문, 영조 대 노론의 대표학자 이재가 두창에 걸린 두 손자를 치료해준 의원에 감사하며 쓴 시 등이 전시된다.     
  

전염병으로 죽은 아이의 묘지명, 조선 중기 예학자 정경세가 춘추관에서 근무하다 두창에 감염되어 죽은 아들을 기리며 쓴 제문 등이 전시되어 있다. ⓒ 김현자

 

허준이 저술한 <신찬벽온방>(보물 제1087호)을 비롯하여 <제중신편>, <마과회통>, <동의보감> 등 조선시대 전문의료서적 20여점과 <등준시무과도상첩>과 <문효세자예장의궤도감> 등과 같은 책 등, 27점의 조선시대 책들이 전시된다. ⓒ 김현자


이어 2부 '역병 극복에 도전하다'에서는 광해군 때의 온역과 정조 때의 홍역 등, 새로운 감염병의 출현에 대응한 조정의 노력을 관련 전문서들을 통해 조명한다.

관련 <신찬벽온방>(보물 1087호. 허준박물관)을 비롯하여 어의 강명길이 정조의 명으로 저술했다는 <제중신편>, 정조가 왕세자인 문효세자가 홍역으로 죽은 무렵 홍역이 창궐한 데다 영남지방에 불어닥친 흉년에 장례를 간소하게 치를 것 등을 지시한 <문효세자예장의궤도감>, 한글 번역을 덧붙인 티푸스성 전문 의서 <벽온신방언해>, 정약용이 저술한 홍역 전문서 <마과회통> 등과 같은 여러 서적들, 역병을 막거나 물리치고자 제사 지낸 단이 마련된 곳을 표시한 지도 등이 전시된다.

이중 특히 눈길을 끈 것은 1613년(광해군 5년)에 광해군의 명으로 허준이 편찬했다는 전염병 전문서인 <신찬벽온방>. 1612년 가을 함경도에서 시작한 온역(티푸스성 감염병)이 강원도를 거쳐 서울과 전역으로 퍼지자 내의원에서 소장 중인 <간이벽온방>을 배포해 전국의 의원들이 온역 치료에 도움받게 한다. 그러나 너무 간단해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허준에게 새로이 편찬하게 한 책이다.

허준은 이 책에서 온역의 원인을 청결하지 못한 환경과 청렴하지 않은 정치 등을 꼽는 한편 전염되지 않는 방법으로 ▲ 소합환 20알을 넣고 달인 물을 환자가 먼저 마시는 것으로 환자와 환자 주변을 소독시킨 후 의원이 들어가 진찰하게 할 것 ▲ 환자를 상대할 때 문을 열고 밖을 향하는 방법 등으로 반드시 등지도록 할 것 ▲ 미처 대처하지 못하고 온역 환자를 맞이했다면 독기를 빨리 밖으로 뱉어낼 것 ▲ 종이 심지로 콧구멍을 후벼 재채기할 것 ▲ 콧구멍을 소독할 것 ▲ 집안에 전염병이 유행하면 처음 병이 걸린 사람의 옷을 깨끗하게 세탁한 후 밥 시루에 넣어 찔 것 등, 현대의 방역과 어느 정도 맞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책 설명에서 더욱 인상 깊게 와 닿는 것은, 허준이 백성들의 형편을 고려한 간편한 처방을 위주로 했지만 부득이할 경우 고가의 약물을 사용하는 처방도 했다는 것. 그런데 이럴 경우 고가의 약을 '감당할만한 사족들이 나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전염병의 종식은 통치자의 반성과 함께 공동체가 고통을 분담하여 대처해야 한다는 인술(仁術)이 필요함을 역설(박물관 설명)'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약자에 대한 보호와 공동체 의식으로 극복하고자 한 선조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자휼전칙. ⓒ 김현자

   

조선시대 가장 위협적이었던 두창을 마침내 극복하게 한 지석영의 종두법 관련 유물들이다. ⓒ 김현자

 
 
-버려진 아이들은 나라에서 책임지도록 하라.

1783년(정조 7) 흉년과 가난으로 버려진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정조의 명으로 반포한 법령집이다. 총 아홉 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문과 한글을 함께 썼다. 정조는 '자휼전칙'을 제정한 이유를 강조하며 조정과 지방 수령들이 책임지고 버려진 아이들을 기르게 하였다. 실제로 한양 5부에서 4~10세 걸식 아이들을 진휼청에 보고하면 이곳에서 아이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했다. 우선 이들을 진휼청 밖 빈터에 흙집을 지어 살게 하고, 세 살 이하의 버려진 영아들에게 젖먹일 수 있는 유모를 찾아주거나 지원자를 물색해 양육에 필요한 양식과 의복을 지급하며, 병에 걸리면 혜민서에서 치료했다. 또 해당 관청에서는 친척이 있는 아이는 친척에게 보냈고, 아예 버려진 아이들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돌보도록 했다. 이러한 조치는 이해 2월 강원도에서 시작되어 서울과 전국으로 확산되었던 역병과도 관련이 깊다고 추정된다.-국립중앙박물관 <자휼전칙 법령집> 설명 전문.
 
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약자에 대한 보호와, 함께 이겨내려는 공동체 의식으로 극복하고자 정조가 반포했다는 긴급 구호 명령도 인상 깊다.

마침내 두창을 극복한 지석영의 우두법과 앞서 시험 되었다는 인두법 관련 유물들도 전시되고 있다.
 

<조선, 역병에 맞서다> 전시 설명하도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 ⓒ 김현자

  

조선시대 가장 치명적이었던 전염병 두창을 마침내 극복한 종두법과 앞서 시험된 인두법 관련 전시관이다. 옆은 근현대 방역을 알 수 있는 영상물이다. ⓒ 김현자

  
3부 '신앙으로 치유를 빌다'에서는 전염병의 공포를 신앙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백성들의 마음을 살펴본다. 조선 시대 내내 삶을 위협하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두창은 대두창의 경우 치사율이 30%에 달해 조선사람들을 가장 많이 죽게 한 돌림병이었다고도 한다. 이런 두창은 역설적으로 '질병 자체가 고귀한 신으로 받들어져 호구마마, 호구별성 등 무속의 신이 됐다(박물관 설명)'고 한다.

관련 유물로 괴질이 돌 때 역할을 한 '대신마누라도'(가회민화박물관), 불자들은 물론 전란과 역병 같은 국가적 재앙 시에도 구원해 준다고 믿었다는 석조약사불(국립대구박물관), 부적 등이 전시된다.

전시 규모는 작다. 하지만 전염병으로 백성들의 삶이 위협받을 때 극복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했던 조상들의 지혜와 강한 의지, 그리고 인술(仁術)과 인정(仁政) 넉넉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전시라고 말하고 싶다.

전시는 6월 2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 등을 통해 예약해야 입장 관람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관람, 박물관 측이 배포한 자료 일부를 참고해 썼습니다.
#코로나 19 #전염병 #두창 #신찬벽온방 #조선, 역병에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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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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