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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운 상대 차지철의 독행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 / 28회] 차지철이 실세 부통령이라는 세간의 '작위'를 받게된 배경

등록 2020.05.21 18:08수정 2020.05.2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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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 박정희 대통령 초도 순시를 앞두고 현장 점검에 나선 경호실장 차지철. 박정희가 앉을 자리에 미리 앉아 자세를 취한 모습이다. 차지철은 “각하를 지키는 것이 국가를 지키는 것이다”라는 표어를 붙여놓고 경호실을 강력한 권력기관으로 키웠다. 수도경비사령부조차 경호실 휘하에 둘 정도였다. 전두환과 노태우도 작전차장보와 행정차장보로 청와대 경호실을 거쳐갔다. 혹자는 10.26이 터진 이유를 김재규와 차지철의 충성 경쟁 또는 권력 투쟁으로 꼽기도 한다. 그의 오만함은 주변의 반발을 불러 10.26 직후 박정희를 저격한 사람이 차지철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 국가기록원

 
국회의원 선거와 신민당 사태 이후 차지철의 위세가 더욱 강화되었다.

그는 두 사건이 모두 김재규의 중정이 무능해서 일어난 것으로 박정희에게 보고하고, 대통령이 이를 믿는 것 같으니까, 심중을 헤아린 차지철은 앞뒤 가리지 않고 설쳤다.

차지철이 실세 부통령이라는 세간의 '작위'를 받게된 배경은 무엇일까.

차지철이 정치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78년 말께부터였다. 10년 간 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한 김정렴이 주일대사로 전임되고 주중대사로 있던 김계원이 78년 12월 신임실장으로 들어올 무렵부터였다.

신임 김 실장은 육참총장, 중앙정보부장 등 요직을 거쳤지만, 8년간의 주중대사 생활을 계속하다 78년 9월 귀국한 관계로 국내물정에는 지극히 어두운 편이었다. 46년 연전상과(延專商科)를 졸업한 그는 성격적으로도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절대권력자와 가장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치성이 물씬 풍길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만일 그 자리에서 충분한 역할을 제대로 못 해낼 경우 누군가가 그 역할과 기능을 대신해 주어야 하는데 차지철이 이 간극을 메운 것이다.

그는 4선의원에 외무ㆍ내무위원장까지 역임, 정치의 경험과 관록을 이미 10여 년간 쌓은 바 있다. 그가 국회의원이었을 때도 대통령과 관련된 어떤 역할을 할 때는 이를 은근한 방법으로 언론기관에 흘리곤 했다. (주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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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쿠데타 당시의 박정희 소장(가운데)과 그를 경호하는 박종규 소령(왼쪽) 및 차지철 대위(오른쪽) ⓒ 한국근현대사사전

 
차지철은 성격상으로나 경력으로 보나 김재규가 상대하기 버거운 존재였다. 그는 청와대 경호실장이 되어 자신의 위관 계급에 콤플렉스를 갖고 예비역 장성출신을 수하에 두는 등 상식과는 동떨어진 일을 서슴지 않았다. 박정희의 신임이 두터워질수록 그의 독행은 더욱 심해지고, 사사건건 김재규와 부딪치게 되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김재규는 일방적으로 몰리고만 있지 않았다.

"김재규는 그 나름대로 강경책을 건의해서 대통령의 신임을 얻으려 했다. 부마사태 직후 그는 종교법안(가칭)을 성안, 종교인의 정치활동을 규제해 보려고 했던 것도 하나의 사례라고 하겠다. 그 내용은 무리가 많아 시행하기 어려운 것이었다는 게 당시 이 법안의 사전심사에 참여했던 한태연(헌법학회 회장, 당시 유정회 정책위원장)의 회고다." (주석 4)

10ㆍ26 직전 모기관에서 공화ㆍ유정간부들을 오라고 해서 가보니 아무 말도 없이 유인물을 돌렸다. 내용을 보니 종교 법안이었다. 유럽의 모든 종교법안은 국가로부터 교회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그 목적인데, 내용을 들춰보니 예배 볼 때 정치얘기를 하면 잡아넣도록 돼 있는 것이 그 골자였다.

그래서 그대로 넘어가게 되면 큰일 날 것 같아 말문을 열었다.

"여러 어른들 계신데 먼저 얘기를 꺼내 안됐습니다만, 이 법안은 안 됩니다. 종교법안이란 독일이나 프랑스를 막론하고 종교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것이지, 종교인의 정치활동을 규제하려 만든 건 아니었습니다. 많은 종교인들이 반체제라고 하지만, 사일런트 머조리티(침묵의 다수)는 오히려 정부 지지하는 사람들인데, 이 법안이 나가면 그런 사람들까지 모두 반정부로 돌아서도록 만들게 됩니다. 그러니 이 법안은 보류해야 합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동석했던 박준규 공화당 의장서리와 태완선 유정회 의장도 덩달아 반론을 제기했다. 그랬더니 김재규는 선뜻 "그러면 안 되겠습니다. 각하께 이건 안 되겠다고 보고하겠습니다."고 철회의 뜻을 밝힌 일이 있다. (주석 5)


한태연은 갈봉근 교수, 김기춘 검사 등과 궁정동 안가에서 유신헌법 기초에 참가했고 그 공으로 유정회 국회의원이 된 인물이어서 김재규에 대해 적대적인 인식을 가졌을 것이기에 그의 발언을 액면대로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김재규는 차지철의 독주에 맞서려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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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의 정부 청사 연두 순시를 수행하고 있는 차지철 경호실장. 두 사람 사이로 당시 노태우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 모습이 보인다. ⓒ 동아일보

 
유신말기 격동의 시기에 김재규 부장의 처신이 어땠는지, 1979년 12월 10일 육군본부 군사법정의 세 번째 공판 진술이다.

김계원 : 본 피고가 느낀 바로는 정치 문제는 중정에서 전적으로 관계하는 업무입니다. 그런데 차 실장이 관계하기 때문에 김재규 피고로서는 대단히 못마땅하게 생각됐을 것이며, 자기 직권에 대해 침해를 당했다고 느꼈을 겁니다. 그로 인해서 차 실장에 대해서 상당히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고 느꼈습니다. 차 실장도 김재규 피고도 두 분이 서로 자기 자신이 각하에 대한 신임도가 제일 두텁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신임도에 대한 상호간의 견제나 질투 같은 것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검찰관님 말씀과 같이 신민당 문제 때문에 정기국회인데도 공전되고 있었고, 김영삼 의원의 발언 문제로 문제가 복잡해지자, 두 사람의 관계는 더 험악해졌다고 본인은 느꼈습니다.

검찰관 : 그 당시 차지철하고 김재규 피고인하고 신민당 전당대회에 대한 노선이 약간 달랐죠? 그런데 결국 차 실장 때문에 실패로 돌아가자. 그 비난이 중정으로 쏠리게 됐죠?
       
김재규 피고는 차지철의 농간이라고 생각하고 상당히 흥분했다고 진술하셨는데요…….

김계원 : 농간이 아니고, 중정에서 해야 할 일을 차지철이 도중에 가로채서 결국 성사도 못 시키고……모르는 사람들의 잘못된 결과에 대한 비난은 정보부로 오니까. 거기에 대한 분개의 말을 했습니다.

검찰관 : 중정에서 누구를 총재로 당선시키기 위해서 별도 공작을 하고, 차지철도 별도로 자기 노선에서 공작을 하고 그랬죠?

김계원 : 정치 문제에 깊이 개입하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중정에서 그 문제에 대해서 그 당시에는 크게 작용을 안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석 6)


주석
3> 강성재, 『쿠데타 권력의 생리』, 336~337쪽, 동아일보사, 1987.
4> 앞의 책, 340~341쪽.
5> 앞의 책, 341쪽.
6> 김재홍, 『박정희의 유산』, 90쪽, 푸른 숲, 1998.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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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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